삼례에서 보일러 교체하는 법
네이버 검색창에 ‘삼례, 보일러’라고 쳐 넣었다. 보일러 가게 대, 여섯 개가 쭉 떴다. 상호, 전화번호, 주소에, 약도까지 나왔다. 귀뚜라미 보일러도 몇 집 있었고 경동 보일러도 몇 집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귀뚜라미 보일러 한 군데와 경동 보일러 한 군데가 주소가 같았다. “나란히 붙어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중 귀뚜라미 보일러에 전화를 하였다. 전화벨이 열 번쯤 울린 후 특이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유부세요.”
“거기 귀뚜라미 보일러 맞죠?”
“맞아요.”
“그런데, 거기가 경동 보일러이기도 한가요?”
“뭐요? 그건 왜 물어요?”
“아, 인터넷에 보니까 주소가 동일하게 되어 있어서요.”
“보일러 설치하려고요?”
“예, 그렇습니다.”
귀뚜라미 보일러, 일반형은 55만원, 거꾸로 타는 것은 65만원. 다들 일반형으로 한다고 한다. “예, 고맙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조금 더 알아보고 전화하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또 다른 귀뚜라미 보일러에게 전화를 하였다. 이번에는 상대방이 즉시 전화를 받았다.
“유부세요.”
“......”
“유부세요.”
“아, 혹시 조금 전에......”
“유부세요.”
“조금 전에 저하고 통화한 귀뚜라미 그 사장님 아니신가요?”
“그래요......”
상대방도 당황하였다. 상호도, 전화번호도, 주소도 다른데, 같은 사람이 나오다니...... 나도 당황하였다. 그러나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 않은가? 여기 저기 전화해서 가격 등등을 비교해 보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보일러를 교체해야 하겠다. 아내는 보일러에서 가스가 새어나오는 것 같다고 한다. 어떤 때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 보일러가 오래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보일러 때문에 가장 큰 불편을 겪었을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 방이 보일러에 제일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생전에 보일러에 대해서 불평하신 적이 없다. 지금 든 생각이지만, 아버지 방에서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도 제법 크게 들렸을 것이다. 그런 소음이 없었어도, 밤에 여러 번 깨어나는 분이었는데......
반드시 귀뚜라미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동 보일러도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는가? ‘경동 나비엔’이라던가? 나는 두 군데 귀뚜라미와 통화를 한 직후 경동 보일러에 전화를 하였다. 상대방은 역시 지체없이 전화를 받았다.
“유부세요.”
“......”
“유부세요.”
“아......”
“유부세요.”
“아, 또 사장님이시군요?”
우리는 어색함을 숨기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경동도 귀꾸라미와 가격이 똑같다고 한다. 이 사람 말로는 품질이나 성능 면에서도 차이가 없다. 어쨌건, 세 번 전화했는데, 세 번 다 이 사람한테 걸렸다.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인가? 비교는 불가능한가? 전주 쪽에 알아볼까?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삼례에도 보일러 가게가 여러 군데 있는데 — 설사 그것들을 한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 무엇 때문에 외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말인가? 나는 ‘여기 저기 알아보고 비교해 보는 것’을 포기하고, 내일 아침 ‘유부세요’에게 전화를 하여 일을 맡기기로 결심하였다.
세 통의 전화를 하고 위와 같이 결심한 곳은 학교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전화번호를 하나 내밀었다. 오늘이 가스 검침하는 날이었는지, 낮에 검침원이 다녀갔는데, 그이가 보일러 가게를 한 군데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검침원은 우리보다 15년 정도 연배가 위인 분이다. 내가 알기로, 공무원으로 정년을 맞았다. 몇 해 전에 쓰러진 적이 있고, 그 이후로는 부인이 동반하여 검침일을 거들고 다닌다. 교양이 있고 경우가 바른 분이다. 나와 안면을 익히게 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일러를 교체할 것을 종용해왔다.
와이프가 말했다.
“그 사람이 그러는데, 자기 이야기를 하면, 잘 해 줄 꺼래. 배관청소도 해줄 꺼라는데? 녹물을 싹 빼내야 한데.”
“어디에 있는 거야? 삼례에 있는 거겠지?”
“그렇겠지.”
“그렇다면 뻔해.”
“뻔하다니? 아는 업자예요?”
“그럼.”
“어떤 사람인데?”
“유사장이라고 있어.”
“유씨예요?”
“그런 셈이지. ‘ 유부세요’라고 있어.ㅋㅋ”
첫댓글 ㅎㅎ.. 혹시 여기 미국 미시간에서도 보일러 집에 전화하면 '유부세요' 할 듯... 글로벌 시대이니까.. ㅎㅎ
헐 여기는 에어콘만 이십사시간 돌아가니 보일러 수리는 틀렸구만 아! 너무 멀어~~~
유부세요? 거기 삼례는 참 살기 좋은 곳이네유. 유사장만 잘 알아 놓으면 보일러 수리는 땡이니까요. 딴 것도 마찬가지겠지유? 단순한게 속 편한거에유~~딸깍! ㅋㅋ
그래, 결국 보일러 교체를 마졌다. 그런데, 유사장이 아니더라고. 딴 사람이었어. 2시간이면 끝나더라고. 미시간은 많이 춥겠고, 플로리다는 보일러 같은 거는 필요없겠지? 그래도 겨울에 갔더니, 마이아미비치도 춥더라. 수영은 했지만, 밤에는 자는데 춥더라고. 글로벌 시대 맞구나. 미시간, 플로리다, 서울, 삼례가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니......
나도 글 읽으면서 다른 보일러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맞아떨어졌네. 앞으로 스마트폰으로도 검색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