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1. 4.25(일) 10;00-16;00
★코스;기흥역-신갈천-용인동백호수공원-동백죽전대로-용인미르스타디움-금학천-경안천-보평역-백두산숯불갈비집-
경안천-초부교-백옥대로-약천 남구만 묘-백옥대로-왕산리지석묘-백옥대로-경안천-경기광주역(40km)
★참가(5명); 마라톤 킴, 바이크 손, 람보림, 오벨로, 스머프 차
용인 왕산리 지석묘에서
<후 기> 스머프 차
4월은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세월은 나이에 비례해서 참 빠르다. 4월의 마지막 봄 여행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라이딩의 향연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번 여정은 기흥역에서 신갈천-금학천- 경안천-남구만 선생 묘-왕산리 지석묘-경기광주역에 이르는 코스로 약 40km이다. 여행의 꽃은 약천 남구만 선생 묘와 왕산리 지석묘이다. 기흥역은 백남준 아트센터역으로 경기도 용인시 구갈동에 있는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과 용인 경전철의 전철역이자 환승역이다. 회원 모두 네파 붉은색 고어텍스 복장을 착용하고 기흥역에 모였다. 산뜻하면서 아름답게 보였다. 기흥역 8번 출구에서 신갈천 자전거길로 진입하고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면서 표표히 달렸다.
구름한 점 없는 벽공의 푸른 하늘로 완연한 봄 날씨였다. 맑고 시원한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면서 달리는 맛이 상쾌하였으며, 싱그러운 신록의 수목과 기화요초들이 지나갈 때마다 반겨주어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강남대역과 지석역을 지나면 어정역이다. 어정(御停)의 유래는 임금님이 이곳을 지나가다 물을 마셨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조, 성종 임금이 여주 영릉으로 참배 갈 때 여러번 용인을 거쳐갔던 기록으로 보아 전혀 근거없는 설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어정역을 지나면 용인동백호수공원을 만난다. 용인동백호수공원은 석성산자락에 위치한 공원으로 아기자기하면서 제법 운치가 있다,
추억을 남기고 동백,죽전도로로 진입하였다. 동백역을 지나면 약 1km에 이르는 메주고개를 만난다. 지루하면서 아름찬 고갯길이지만 용인미르스타디움 까지는 노페달링으로 신나게 달리는 내리막 구간이었다.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숨고르기하면서 간식(계란, 떡, 토마토, 에너지바)으로 카보로딩하고 금학천 자전거길로 진입하였다. 금학천은 초면이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금학천(金鶴川)은 경기도 용인시의 도심을 흐르는 작은 하천으로 기흥구 동백동 석성산과 부아산의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안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금학천 자전거길을 따라가면 용인시청, 명지대역, 김량장역을 차례로 지나간다. 김량장역에 이르면 금학천변을 따라 쭉 늘어선 시장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김량장 명칭 유래는 고려시대에 김량역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김령역, 김령원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시장이 서던 까닭에 김령장이라고 불렀는데 후에 변음되어 김량장이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김량장리가 되어 용인군의 군청소재지가 되었고 1966년에는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김량장동으로 승격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김량이라는 사람이 맨 처음 시장을 벌여 그의 이름을 따서 김량장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김량장역에서 약 1km 거리에 채제공 선생 묘가 있다. 채제공 선생(1720-1799)은 영조 19년(1743)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수원성곽 축성에 많은 공을 세워 정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운동장, 송담대역을 지나 경안천으로 진입하였다. 경안천은 낯익은 하천이다. 경안천은 문수봉 남서쪽의 용해곡 상봉의 해발고도 41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용인시 중심부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으며, 초월읍 지월리에서 곤지암천과 합류하여서 하리에서 팔당호로 유입되는 국가하천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소내'라는 뜻의 우천(牛川)으로 표기 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용인군 군청 소재지였던 김량장리(지금의 김량장동)를 관류한다 하여 김량천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경안천 북동쪽 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보평역으로 빠져나와 백두산숯불갈비집(처인구 포곡읍 둔전리)으로 향하였다.
12시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우리들이 첫 손님이었다. 두 테이블에 둘러앉아 돼지갈비숯불구이와 비빔냉면으로 정겹게 식사하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약천 남구만 선생 묘로 향하였다. 포곡로에서 경안천으로 진입하고 초부교를 건너면 약천 남구만 선생 묘소에 이른다. 약천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와 그를 상징하는 노래 '권농가' 시비가 방문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남구만 선생(1629-1711) 묘는 입구에서 약 30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밀바하면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흐드러지게 핀 영산홍과 철죽꽃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러나 남구만 선생 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해 보인다. 가파르게 올라가야 남구만 선생 묘를 만날 수 있다.
남구만 선생은 조선 후기 때의 문신이자 청렴 검소한 학자였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동창가(東窓歌) 시조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1651년 23세에 진사시험에 합격 후 1711년까지 60년 동안 국정의 중심에 서서 국가와 백성을 위해 봉사했다. 그러나 숙종 때 네번이나 유배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지만 영의정을 세번이나 역임한 불굴의 학자였다. 약천이란 호는 강릉으로 가는 도중 강원도 동해시 약천동에 들린데서 연유하였다. 그곳에는 약천이란 샘물이 있었는데 경치도 뛰어나고 물맛도 좋아 아예 그곳에 집을 짓고 학문과 풍류의 세월을 보냈다. 약천은 장희빈에게 죄를 가볍게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반대파의 여론에 밀려 조정에서 물러났고 그 이후는 경사와 문장에 전념하다가 83세로 서거하였다.
서화에도 능했으며 문집으로는 야기천집이 있다. 다음 목적지인 왕산리 지석묘로 향하였다. 백옥대로를 타고가다 왕산초교를 지나면 용인 왕산리 지석묘가 나온다. 람보림은 역사해설가 답게 지석묘에 대한 깊은 내역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고인돌은 경기 지방 여러 고인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보존상태가 완벽한 것으로 선사인들의 고인돌 축조기술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현재 2기만 있는데 근처에 받침돌로 추정되는 돌이 있어 원래는 3기의 고인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옥대로에서 경안천으로 진입하고 오포공설운동장과 자전거생태공원을 지나서 경기광주역에 오후 4시에 당도하였다. 바이콜 전사 5명이 단촐하게 라이딩을 즐긴 뜻깊은 하루였다. 바이크 손대장은 오벨로가 동참해 주어서 바이콜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하면서 오벨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오늘 라이딩의 하일라이트는 메주고개라고 하였다.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일행 모두가 좋은 감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노년에 외롭고 힘든 인생길에서 따뜻하고 정겨운 우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 한 줄기가 고요하게 흐르는 친구가 있어 즐겁고 행복감을 느낀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힘이 솟고 건강해지는 기분은 덤이다.
람보림이 기획부터 안내까지 완벽하게 연출해 줌으로써 심드렁하게 편안한 여행을 하면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서 기분 좋은 여정이었다. 람보림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함께한 바이콜 전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sd16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
기흥역 8번 출구에서
신갈천을 따라 이동
용인동백호수공원으로 진입
동백호수공원을 배경으로
동백,죽전도로를 따라 이동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휴식
금학천을 따라 이동
금학천변을 따라 줄지어선 김량장 시장
경안천 자전거길을 따라 이동
영동고속도로 교량 밑에서 휴식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둔전리 백두산갈비집 돼지갈비숯불구이와 비빔냉면으로 오찬 약천 남구만 선생 묘 입구에서 약천 남구만선생 묘로 가는 도중 약천 남구만 선생 묘소를 배경으로
남구만 선생 묘에서 바라본 경치 용인 왕산리 지석묘에서 오포대교 밑에서 휴식 경기광주역에서 상황종료(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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