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지봉
마중지봉(麻中之蓬)의 살핌이다.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삼(麻)밭 속의 쑥(蓬)’이라는 뜻으로 ‘곧은 삼밭에서 섞여 자라는 쑥은 바로잡아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는 것처럼 주위 환경에 따라 나쁜 사람도 선량하게 바뀔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좌우로 퍼져 자라는 특성을 지닌 쑥도 삼밭의 삼속에 섞여서 자라면 서로 키 재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곧게 자라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좋은 환경이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선(善)한 영향을 받아 착하게 될 수 있음을 이르는 성어로서 그 유래를 비롯한 의의와 만남이다.
삼(麻)은 삼베를 짜는 재료인 대마(大麻)를 지칭하며 대략 2미터(m) 이상 가늘고 곧게 자라는데 비해서 쑥(蓬)은 좌우로 퍼져서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특성을 지녔다. 삼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성을 지닌 쑥이 삼밭 속에 섞여 자라게 되면 키다리들과 경쟁해 살아남으려고 본능적으로 햇볕을 향해 웃자람을 거듭하여 곧고 바르게 자라기 마련이리라. 산야에서 쑥이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자라면 기껏해야 키가 1자(尺) 남짓 자란다. 하지만 밀식된 삼밭에 섞여 자라면 삼의 키(身長) 정도까지 거뜬히 곧게 자란다. 여기서 쑥에게 삼은 경쟁 상대이면서 좋은 친구이자 좋은 환경이다. 한편 마중지봉을 살피면서 연상되어 개념이다. 즉 코이(こい : 비단잉어)가 사는 물이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몸체의 크기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던 순자(荀子)의 사상을 담은 책인 ⟪순자⟫의 ‘권학편(勸學篇)’에 곧게 자라는 삼과 사방으로 퍼져 구불구불 자라는 쑥에 관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삼과 쑥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원문(原文)의 내용을 큰 틀에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편 유의어로서 근주자적(近朱者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귤화위지(橘化爲枳), 근묵자흑(近墨者黑), 남귤북지(南橘北枳) 따위를 들 수 있다.
당시 남쪽지방에 몽구(蒙鳩)라는 새가 있었는데 둥지를 상당히 화려하게 지었던 모양이다. 깃털로 둥지를 틀고 화려한 머리의 깃털로 장식했을 뿐 아니라 갈대의 이삭을 둥지에 매달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 둥지가 바람이 불자 갈대 이삭은 꺾이고 알은 깨지고 새끼가 죽었다고 한다. 이는 둥지가 완전치 못함 때문이 아니라 그 둥지가 있던 장소가 부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즉 둥지를 튼 지역적인 환경 문제라는 진단이었다.
한편 서쪽지방에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사간(射干)*이라고 하며 줄기의 길이는 네 치(寸)*이다. 하지만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며 백(百) 인(仞)*의 연못을 내려다본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렇게 깊은 연못을 내려다 볼 수 있음은 나무의 길이가 길고 높아서가 아니라 서 있는 장소 위치 즉 환경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자라는) 쑥이 삼 가운데서 자라면(蓬生麻中 : 봉생마중) / 바로잡아주지 아니해도 곧으며(不扶而直 : 불부이직) /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白沙在涅 : 백사재열) / 진흙을 따라 함께 꺼멓게 된다(與之俱黑 : 여지구흑) /
위의 내용에서 마중지봉이라는 성어가 생겨났다는 얘기다. 한편 난괴(蘭槐)의 뿌리를 지(芷)라고 하는데 만일 그것을 더러운 물에 담그면 군자(君子)는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며 백성들은 몸에 매달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탕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러운 물에 적셔져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중언부언 되는 얘기지만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자라는 특성을 지닌 쑥이 밀식(密植)된 삼밭에서 섞여 경쟁하며 성장하면 일부러 바로 잡아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곧게 자라게 되는 것을 순자(荀子)는 경쟁자인 삼(麻)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던 것 같다. 같은 이치로 바르지 않은 심성을 지닌 사람도 선하고 바르게 바뀔 수 있음을 의미로 쓰이는 말이 마중지봉이다. 이는 결국 성악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주창한 순자의 사상과 일맥상통하기도 하다.
하찮은 쑥의 경우도 환경에 따라 놀라울 정도로 변하는데 사람의 경우를 굳이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순자의 성악설이나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관계없이 태어난 이후에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선해지거나 악해질 개연성을 깡그리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선업(善業)과 덕을 쌓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본성에 무관하게 선해지게 마련이리라. 왜냐하면 나쁜 이들과 가까이 하면 시나브로 검은 물이 스며들 위험성이 한층 높게 마련이고, 붉은 빛에 가까이 가면 붉게 비춰지는 게 하늘의 섭리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던가. 결국 살면서 주위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함축하는 가르침을 위해 마중지봉이 생겨났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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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간(射干) : 범부채의 뿌리로서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된다. 한편 범부채는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50~100cm이며, 잎은 좌우로 편평하다. 7~8월에 누런 붉은색에 짙은 반점이 있는 꽃이 산상(傘狀) 화서로 피고, 뿌리줄기는 ‘사간’(射干)이라고 하여 약재로 쓴다. 관상용이고 고산지(山地)나 바닷가에 저절로 나는데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치(寸) : 길이의 단위이다. 1촌(寸)은 한 자(尺)의10분의 1 또는 약 3.03cm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1자(尺)는 약 30.3cm이다.
* 인(仞) : 길이의 단위로서 8척(尺) 또는 7척(尺)을 1인(仞)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100인(仞)은 800척 혹은 700척을 뜻한다.
수필과 비평, 2024년 8월호(통권 274호), 2024년 8월 1일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첫댓글 경상북도 청도에는
씨 없는 홍시가
유명하다더군요.
원례 청도 감나무의 감은 씨가 없는데 이곳 감나무의 감을 다른 지역에 심으면 씨가 있는 감이 열린다고 합니다.
청도에서 씨 없는 감이 열리는 것은 그곳에
독특한 토질과 기후때문이라 하더군요.
삼밭에서 곧게 자라는 쑥처럼 식물이던 사람이던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는것을 깨우치는 마중지병 (麻中之蓬)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