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줄기세포가 가져온 파장은 이미 의학계를 넘어 사회, 문화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2005년 황우석 사태이후 침체됐던 줄기세포 연구 및 치료제 개발은 다시 불붙기 시작해 각종 결과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세포의 재생을 통한 난치병 정복의 가능성에 대한 환호와 기대감이 있는 반면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필요한 모든 장기내 세포로 분화할 능력이 있는 줄기세포는 어떤 장기가 손상되든 다양한 분화능력 가운데 하나를 이용하면 원하는 장기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세포에 대한 미래의학의 패러다임인 것이다.
# 줄기세포란 과거 불치병으로 생각돼왔던 많은 종류의 만성적 질환이나 퇴행성 질환, 심지어 한번 손상되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왔던 장기들조차도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세포는 성장하면서 구조나 기능이 생물의 조직에 맞도록 변해 가는데 이를 ‘분화’라 한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들을 만들 수 있는 원시세포로 여러 갈래로 분화될 수 있어 ‘줄기세포’라고 부른다. 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우리 몸의 고장 난 부분에 필요한 세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필요한 장기를 만들거나 기존 장기의 성능을 개선시킬 수 있어 획기적인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줄기세포치료제 연구는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유도만능줄기세포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성체줄기세포는 분화가 끝난 조직이나 기관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주로 골수나 지방 등에서 얻는다.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는 환자 본인 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면역세포가 이식된 장기나 세포를 적으로 생각해 공격하는 면역거부반응이 적다. 또한 윤리적 논란에서도 자유롭기에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돼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줄기세포 치료제 대부분이 성체줄기세포치료제다. 하지만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이 배아줄기세포에 비하여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아직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배아의 발생과정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로 모든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난 수정란은 여러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배반포가 되고, 이 배반포 안에 있는 세포들이 피부나 뼈 등 다양한 조직의 세포로 분화된다. 배아줄기세포는 이 세포를 추출해 분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분화할 수 있도록 배양한 줄기세포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다양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기 이전의 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윤리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각국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를 금지하거나 신중하게 진행해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보다 연구가 부족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양하게 분화하는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를 허용하고 연구가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분화가 끝난 우리 몸의 세포를 ‘역분화’ 과정을 통해 체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유사한 상태로 되돌린 줄기세포로 ‘역분화줄기세포’라고도 부른다. 유도만능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은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하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사람 피부세포에 유전자 변형을 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수정란이나 난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 우리나라 줄기세포치료 수준은 우리에게 줄기세포 연구는 남의 일이거나 윤리적 문제가 많은 연구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줄기세포 연구 선진국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전 세계에서 3천 건이 넘는 줄기세포 임상연구가 진행될 정도로 각국은 힘을 쏟고 있으며 이미 상업화를 앞둔 연구가 200건이 넘는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 처음으로 심근경색 치료제를 허가받은 데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줄기세포 치료제도 국내에서 나왔다.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에 대한 뉴스가 줄을 잇는 것은 그동안 가능성으로만 회자하던 줄기세포 활용이 실용화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뒷받침과 연구노력 끝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들이 최종 임상실험 중이거나 시판 혹은 시판을 앞둔 것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개발된 퇴행성관절염 및 무릎 연골 손상 치료제는 지난 2012년 4월 연골 결손을 앓는 58세 여성을 대상으로 첫 시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대체하는 것이 아닌 되돌리는 재생의학으로 부작용이 적고 치료 유효성이 일관적이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줄기세포를 투여한 쥐 실험은 기억력이 향상됨을 입증함으로써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파킨슨 등 퇴행성 뇌신경계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우리나라도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7개 업체가 총 22개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급성심근경색 치료제인 ‘하티셀그램-AMI’를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로 허가했다. 기존에 심근경색환자들은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받으며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해주는 아스피린 등을 복용했다. 새로 개발된 줄기세포 치료제는 심근세포를 재생시키고 주변 세포의 기능 발달을 도와주는 줄기세포 치료제다. 식약청의 이번 허가는 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식약청은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 기준 자체가 경쟁력”이라며 “이번에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 기준을 마련했으며 우리의 기준이 전 세계 기준이 되도록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등 경쟁국들이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 식약청의 허가가 성급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 2세대 줄기세포 치료제 시대 열리나 1세대 치료제인 성체줄기세포는 분화하는 조직이 제한돼 있어 치료에 한계가 있다. 반면 2세대 줄기세포 치료제는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하는 줄기세포를 이용한다. 2세대 줄기세포 치료제는 배아줄기세포와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는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단백질에 의한 간접치료 효과에 의존한다. 이 경우 줄기세포는 병든 환경을 좋게 만들고 죽어버리기 때문에 직접적인 치료 효과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는 원하는 세포를 만들어 병든 세포를 직접적으로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세포의 분화기간이 적어도 2개월이 걸려 바이러스에 오염되거나 돌연변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해 치료 효과가 크고 안정적인 새로운 줄기세포 치료제가 바로 2세대 줄기세포 치료제다. 이 2세대 줄기세포치료제는 앞으로 10년 안에는 실용화될 것이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다.
# 앞으로 전망은 줄기세포에 대한 새로운 발견으로 과거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미래의학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다.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의 시점은 이미 지났고, 단지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더 현실적인 질문이다.
이에 따라 줄기세포 이식이 더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면역학적 거부반응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치료법의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 예로 골수이식과 관련해 이식 후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합병증의 3분의 1 정도가 이식된 줄기세포가 환자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를 통한 난치병 극복의 희망은 포기되어서도 안 되지만, 당장에 가시화시키겠다는 성급한 자세도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의학의 많은 혜택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필요했던 시간들, 그 시간이 줄기세포를 통한 희망에서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한 과학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