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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좋은 우리절(I Love Buddha) 원문보기 글쓴이: 수일화
소승과 대승이란 말부터 논의를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소승이란 작은 수레란 뜻인데, 오로지 자신의 깨달음과 해탈에 초점을 맞추고 수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승은 큰 수레란 뜻으로 보다 드넓게 일체중생이 한 몸 한바탕으로 보고, 더불어 같이 깨닫고 성불하는데 뜻을 두고 수행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런 대승에서 보살도 사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소승에서 보는 우주는 천상, 아수라, 인간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이런 육도세계의 윤회를 벗어나서 해탈에 이름을 목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 육도중생계(우주)는 끝없이 변화하지요.
성주괴공으로= 생겨나고, 유지되고, 파괴되어가며, 다시 허공으로 돌아가기를 거듭하는 윤회를 하며, 그 나머지 일체 중생도 역시 생멸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끝없이 윤회하고 있습니다. 그런 굴레인 생과 사의 윤회의 고통을 영원히 벗어나서 해탈하는데 주안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승불교에서는 수행을 해서 깨달아도 아라한의 경지까지는 가능해도 그 이상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디다.
*** 우리가 믿는 각각의 종교의 신은 육도중생계에 속한 계체들입니다.
불교에서 보는 관점으로는, 그 어떤 영성스러운 신이라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고 집착을 여의지 못한 중생이며 따라서 지은바 업으로 윤회하는 대상으로 봅니다.)
(천상 아수라 인간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이런 육도세계도 중중무진으로 헤아릴 수 없이 더 겹쳐있고 (예. 하나의 육도세계가 천개 모인 걸 소천세계. 소천세계가 천개 모인 걸 중천세계. 중천세계가 다시 천개 모인 걸 대천세계라고 하며, 그 대천세계가 수없이 다시 존재하는 걸 삼천대천세계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더욱 우주관이 확대되고 광범위해지게 됩니다.
천상 아수라 인간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이런 육도세계 외에도 수많은 불국토가 존재하는데, 곧 불국토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건립된 세계이며, (예 극락세계 다보세계 등 등) 이를 정토라고 구분 짓고, 다른 육도세계는 깨끗하지 못한 세계라고 하여 예토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도 법신과 보신, 그리고 실제적인 형상으로 모습을 나타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시는 화신으로 구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을 보좌하면서 수많은 중생계에 다양한 몸을 나투어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등등)
위와 같이 소승과 대승은 우주관도 약간 차이가 나며 수행의 목표와 실천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소승은 스스로 자신의 해탈이며, 대승은 더불어 같이 닦고 서로 제도하며 더불어서 해탈함을 목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승이나 대승 모두 복과 혜를 같이 닦는 걸 중시합니다.
그러나 복에 관한한 대승 쪽이 더 열망이 강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또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중생은 누구나 신령스러운 불성이 있으며, 모두 깨달아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소승불교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신행하는 모양도 달라집니다.
소승불교권은 오로지 스승과 제자, 그리고 그 스승을 따르는 신도들로 구성이 되며, 소승권의 스님들은 철저하게 계율 중심이고, 스승을 따라서 수행하고 닦고 가르치는 걸 중시합니다.
대승불교권은 소승권과 같이 부처님을 경배하는 건 비슷하지만 대승권의 스님들은 계율에서 좀 더 폭넓게 행동하고 이해를 하며, 널리 베풀고 닦는 보살행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경배 대상도 부처님과 스승에게만 한하는 게 아니고 더 넓고 광범위합니다.
그러다가 보니 서로 장단점이 나타나게 되는 데, 소승불교는 스승을 깊이 경배하는 관계로 스승과 제자가 대를 이어가며, 신도들도 역시 스승을 경배함이 부처님과 다름이 없이 경배하기 때문에 그 집단이 잘 유지되고 길게 잘 이어갑니다.
대신에 사상의 폭이 대승보다 좁고 고집스러우며 계율에 깊이 매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대승불교는 사상의 폭도 광범위하고 계율도 더 자유롭지만 스승과 제자와 신도의 결합이 좀 느슨합니다.
왜냐하면 사상의 폭이 넓다 보니 믿음도 너무 다양하고 그 색깔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단순화 된 소승불교와 달리 대승불교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폐단인 것입니다.
지금은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남방불교가 소승불교로 대별되며 한국, 일본, 중국 같은 불교 권은 대승불교로 분류가 되긴 합니다.
그러나 한국이나 중국, 일본은 순수한 대승불교라고 보긴 무리가 있습니다.
각각 토속 신앙이나 도교 같은 사상과 결합이 되면서 더욱 폭이 좁아지거나 기도하고 복을 비는 사사로운 대 집중을 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과 제자로의 맥도 단절된 면이 있어서 더 합니다.
현재 남방불교가 강력한 불교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 위에 언급한 것과 그 맥이 같이 통하는 것이며, 북방불교가 강력하게 그 맥맥이 유지되지 못하는 까닭이 또한 그 맥이 같이 통하는 것입니다.
대승과 소승을 떠나서 다시 소승과 대승을 초월하는 수행법이 인도의 달마대사 이래로 중국에 전해집니다.
이름하여 선종이 그 것이며, 조사선이며 돈오 수행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간화선을 한다. 화두를 든다. 하는 수행법이 선종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종의 근간은 역시 일체를 단박에 깨달으며, 일체의 업은 마음 따라 생기는 것이라서 오로지 그 마음을 깨끗이 하고 집착을 정화하며, 본래 스스로 자성이 신령스럽고 가없고 위없으며 청정함을 깊이 인식하고, 바로 깨달아 억겁을 초월한다는 사상입니다.
역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며, 더불어서 닦고 더불어 베푸는 면도 중시합니다. 또 내세뿐만 아니라 현세에서의 해탈을 중시합니다.
현제 한국의 조계종은 통 불교적이며 대승이면서 선종의 사상을 이어받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종도 세월 따라서 그 빛이 바래 버리면, 가장 중요한 스승과 제자의 이어 받음이 끊어지고, 그 위없고 가없는 크나큰 사상의 폭이 거꾸로 더 좁아져 버리며, 더불어 베푸는 면도 약해지고 계율마저 약해지는 다각적인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선종도 갈레가 많으니 조사선에 바탕을 둔 근본 선종이 있는 가하면(예 중국의 육조대사)
계율에 바탕을 둔 선종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살도에 바탕을 둔 그런 선종도 있는 것입니다. (예. 중국의 영명연수선사)
결론>
소승과 대승이 둘이 아니며 소승이라고 깔보고 약하다는 건 잘못 된 것이며, 대승이라고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잘못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장단점이 있으며 이해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그 당시 소승 사상이 깊었다고 하지만, 실천력이나 계율의 철저함, 그리고 보살행이 역사상 으뜸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승권보다 소승권의 스님들이 더 철저하게 보살행을 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거룩한 행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말잔치가 되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역시 소승과 대승을 초월하는 선종의 조사선이나 간화선도 잘못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면 가장 옹졸하고 가장 뒤 떨어진 왜소한 사상과 가장 뒤 떨어진 실천력을 보일 우려가 없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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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불교를 부파불교 혹은 아비달마 불교라고 합니다. 승(乘)은 싣고 운반한다는 뜻으로 소승이란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으로 대승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소승은 아라한과 벽지불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시고 난 후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혹함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깨달음의 길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어 보이신 많은 내용의 교설들은 부처님 당시에는 문자나 글로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 후대에 전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문자)로 적어 놓는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하여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하가섭은 500인의 아라한을 마가다국의 왕사성에 소집하여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을 수집하여 편성하였는데 이것을 제1 결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결집된 경과 율은 화합된 교단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었으나 약 100년쯤 지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용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비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종래의 엄격한 계율에 의해 생활하는 수행자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불교의 사상 또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불교교단 내에서도 진보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심화되었으며, 보수적인 장로(長老, thera)들은 제 2결집을 행하여 진보적인 사상을 배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불교교단은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승부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 대중부에서는 다시 8파로 나누어 지고, 상좌부에서도 11파로 나뉘어져 B.C 1세기 경에는 20부파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부파불교(部派佛敎, 불멸 후100여년~B.C 1세기 경)라고 말하고 그 이전을 원시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아비달마 교학은 부파불교 시대에 있어서 각 부파는 불교의 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arma) 교학이라고 하는 것이며, 법(法, dharma)에 대한(abhi-) 연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부처님이 살아 계신 당시에도 부분적으로 행하여 지고 있었지만, 각 부파의 성립으로 이러한 연구는 더욱 특색 있게 되었습니다. 각 부파는 자신들의 연구한 결과를 결집하여 간직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을 아비달마 문헌 또는 논(論)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모든 부파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아비달마 문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경전은 예전부터 있었던 경(經)과 율(律)에 논(論)이 하나 더 보태어져 삼장(三藏)이 성립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삼장의 완성은 부파불교 시대에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많았던 부파 불교의 삼장은 거의 사라지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남방(南方) 상좌부(上座部)의 것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상좌부의 삼장은 팔리어로 기록되어 이것을 파리삼장(巴利三藏)이라고 하고, 설일체유부의 삼장은 현재 범어로 된원래의 경전은 없고 한역(漢譯)으로 된 것만 남아 있습니다.
(1) 소승불교는 윤리적이고 역사적인데 반해, 대승불교는 종교적이며 철학적 입니다.
(2) 소승불교의 경전은 팔리어인 반면에, 대승불교의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으며 각 전파지역에서 각각의 언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3) 소승불교의 해탈 혹은 열반이란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로 개인적인 것인데 비해, 대승불교에서이는 보리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4) 소승불교에서 열반이란 무명으로 인한 세속적인 부정한 것들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대승불교에서는 부정한 것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절대불변의 고요함, 순수함, 영생에 대한 모호함을 없애는 것입니다.
(5) 소승불교에서 스님들은 성문(Sravaka)라 불리우며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오로지 나한 (Arahantahood)를 얻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열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대승불교의 수행자들은 궁극적으로 붓다가 되기 위해 또는 바라밀(도피안)로 알려진 완벽을 추구하고자 시도하기 위해 보디(Bodhi)를 구하는 서약을 한 보살의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모든 강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바다와 같은 거대한 느낌을 주는 최고선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6) 소승불교에서 평신도들의 역할은 주로 Sangha의 후원자로, 공양을 하거나 의복을 제공하거나 스님들을 위한 사원을 건립하거나 다른 사무들을 도맡아 하며, 5, 8계와 hearing discourse 를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대승불교에서 평신도들은 보살로서 인정되며 그 역할은 소승불교의 평신도와 같습니다.
(7) 소승불교신자들은 붓다가 한겁에 단한번 나타났다고 믿는 반면,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들 안에 부처가 있다고 믿습니다.
(8) 소승불교에는 공성(Sunyata)의 개념이 없으며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다고 합니다.
(9) 소승불교 명상 혹은 vipassana, sila 수행은 그 사람의 영적 발전을 위해 그 사람 자체를 정화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믿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은 스승에 대한 헌신이며 예불의식등은 그 중요성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간에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있습니다.
(1) 두 종파 모두 집착, 증오, 망상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2) 두 종파 모두 사성제와 8정도를 인정합니다.
(3) 두 종파 모두 이 현세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4) 불교의 두 종파 모두 모든 세속과 만물이 무상하고 찰라적이며 santana 안에 있고 anatmakam 실체가 없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