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79장 (구 337장) / 고린도후서 7 : 1 - 4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79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7장 1절 – 4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아멘!
창세기 17장 7절, 8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 - 또 창세기 22장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급하게 그 손을 멈추게 하시며 축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아멘! 이 외에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러 축복의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의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현재보다는 미래적으로 너와 네 후손에게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당장에 축복으로 주시지 않고 미래적으로 주실까요? 나는 지금 당장에 축복이 필요한데 하나님은 미래적으로 주시겠다는 약속만 하십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봅니다. 아버지가 대학생 아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약속합니다. “네가 만일 이번 학기에 올 A를 받아오면 자동차를 사줄게.”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내가 이번학기에 올 A를 받아 올테니 먼저 자동차를 사 주세요.” - 이럴 경우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동안 공부를 잘 하지 않던 이 자녀의 말을 믿고, 덜렁 자동차를 먼저 사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성경 66권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축복은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즉 “네가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라는 조건과 함께 주어지는 약속의 축복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그 약속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이 전제된 약속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의 성경을 보면, 좋은 축복의 말씀에만 모두 색 연필로 빨간 줄, 파란 줄, 초록색 줄, 노란색 줄로 밑줄을 그어났습니다. 그러나 책망이나 불리한 조건의 말씀에는 아무도 언더라인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약속의 조건에는 관심이 없고 축복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약속을 가진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앞부분 말씀에 보면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을 가진 성도의 삶은 항상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죄를 멀리하므로 자신을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이브가 왜 그 좋은 에덴에서 쫓겨났는지 아십니까?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정녕 죽으리라.” 는 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시고 살아계셔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 거수 일 투족을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새벽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고 계시며, 우리를 다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2절에서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두려워서 남을 해롭게 하지도 못했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남의 것을 속여 빼앗지도 못했으며, 하나님이 두려워서 아무 불의도 행하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약속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기에 바울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두려워서 양심을 속일 수 없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야 하며. 아주 작은 죄라도 하나님이 두려워서 지을 수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므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부부들이 모이면 남편들이 부엌에서 설거지 해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어떤 아내가 말하기를 우리 남편은 절대로 부엌에 들어오지도 않고, 설거지나 청소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집 남편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겁 없는 사람이네. 늙으면 무슨 고생을 하려고 그러나?” 그러면서 핀잔을 줍니다. 여러분! 우리와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 다른지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다음에 죽으면 지옥에서 그 고생을 어떻게 하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진담입니다.
여러분! 롯의 사위가 롯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가 유황불에 타 죽었으며 롯의 처도 롯의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들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각하게 들어야 하며 그대로 믿고 행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우리는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맙시다.
오늘 본문 1절 뒷부분에서 바울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육과 영을 혼탁케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을 혼란하게하고 병들게 하는 온갖 악한 이단의 영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영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교회와 자신을 말씀으로 잘 지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렇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들은 이들과 같이 살지 말고,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항상 깨끗하게 하므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에베소서 5장 26절에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다.” 고 했습니다. 즉 말씀을 듣고 회개하므로 우리의 영과 육이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더러운 죄가 보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 전에는 자기가 의인인줄 알았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으로 약속을 가진 성도의 삶은, 환란 중에도 기뻐한다고 말씀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한 마디로 말하면 바울은 환난 중에도 낙심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약속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환란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현대인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고, 자살도하고, 이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며 지옥을 경험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이 있답니다. 너무 너무 간단한 방법입니다. 한 마디로 “생각을 바꾸라.” 는 것입니다. 자꾸만 스트레스를 받는 일만 계속해서 생각하지 말고 좋은 일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위로를 받는 자는 환난 중에도 담대해지고.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믿는 성도에게는 환난 중에도 성령의 위로가 있음을 확신하며 바울처럼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