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을 걷는 아스카 나라 교토의 단풍과 와비사비의 美學(출발)
천년의 시간을 걷는 아스카 나라 교토의 단풍과 와비(侘)사비(寂) 의 美學
교토의 동쪽 히가시야마 기슭에 철학의 길이 있다. 일본 미의식의 원류인 一生一衣의 고고함을 간직한 은각사에서 뒤를 돌아보는 불상이 있는 에이칸도 영관당에 이르기까지 소박한 가운데 비범함을 간직한 명승지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교토 부흥의 신호탄이 된 인공수로 ‘비와코 소스이’의 지류가 교토 시내를 관통하면서 만들어졌는데 일본 근대철학계의 거두 니시다 기타로 교수가 이 길을 산책하며 사색한 데서 유래했다.
독일에 ‘칸트의 길’이 있다면 일본에는 ‘철학의 길’이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다.
고요하고 사색적인 분위기의 길답게 사계절 걷기에 좋다.
봄이면 만개한 벚꽃을 따라 걷고 여름이면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따라 걷고 가을이면 수로 위를 흐르는 단풍잎을 따라 걷고 겨울이면 텅 빈 나뭇가지의 쓸쓸함을 따라 걷는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돌 위에 새겨진 니시다 교수의 하이쿠 한 수가 마음을 붙잡는다. “사람은 사람, 나는 나, 어찌됐든 내가 가는 길을 내가 간다”
홀로 걷기 좋은 길, 이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정토종 승려 법연이 지었다는 초암 같은 절 호넨인이다.
세심교 다리를 건너 울창한 동백 숲속 조촐한 사원인데 지붕에 푸른 이끼가 가득한 산문 너머 묘지의 풍경은 적요하다.
그곳에 늦가을 햇살이라도 잠시 머물다 가면 누구라도 철학자의 마음이 되어 서성이게 된다.
일본의 문호 다니자키 준이치로도 이 풍경에 매료되어 만년에 <미친 노인의 일기>를 썼고 이곳에 살다 이곳에 묻혔다.
묘비에는 오직 한 글자 ‘寂’이라고 직접 썼다.
사색의 회랑처럼 이어지는 철학의 길이 끝나갈 즈음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는 만산홍엽의 뜨락이 있다.
사색의 여로가 새로운 시간 속으로 여미듯이 단풍 숲으로 장엄된 사원의 길은 미로처럼 촘촘하다.
교토의 천하절경으로 빛을 발하는 절 에이칸도의 만추 이곳에는 천년 세월의 화두를 간직한 작은 木佛 뒤를 돌아보는 부처님이 계신다.
정면관을 응시하고 앉아 있는 부처님이 아니라 사바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무슨 안쓰러움인지 그리움이 있는 것이지 길 위에 선 여래는 오늘도 하염없이 뒤를 돌아보고 있다.
교토 철학자의 길에서 / 무심재 이형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