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손으로 다한 임무
팔월 넷째 토요일은 음력으로 팔월 초하루로 추석을 보름 앞두었다. 이맘때면 선산을 찾아 벌초를 함이 연례행사였는데 지나간 이태는 코로나로 이동에 제약이 따라 고향을 지키는 큰형님에게 위임하고 들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객지에 나간 형제들이 모두 모여 벌초를 하기로 의논되어 고향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새벽녘 마산에 사는 작은 조카가 차를 몰아 집 앞으로 왔다.
우리 집안에서 수년 전 벽화산 고지대의 고조와 증조 산소를 숙부님 산소 곁으로 이장해 놓았다. 자손들이 벌초와 성묘를 다니기에 거리가 멀고 힘이 들어 선대 산소를 가까운 곳으로 모았다. 이제는 벌초를 하느라 예초기를 짊어지고 높은 산까지 오르지 않아도 되어 형제와 조카들이 수월해졌다. 형제들이 손을 모아 벌초를 하면 두세 시간에 끝낼 수 있을 만큼 일거리가 적었다.
날이 덜 밝아온 새벽에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의령으로 향해 고향 집에 닿아 큰형님 내외를 뵈었다. 진주 큰조카는 손녀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발이 묶여 걸음을 못한다고 했다. 큰형수님은 호박잎쌈과 장어국의 소박한 밥상을 차려내 이른 아침을 먹고 조부모님 산소로 올라갔다. 큰형님은 벌초를 위한 예초기를 비롯한 연장을 경운기 적재함에 싣고 산소가 가까운 산 아래로 이동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위해 큰형님과 함께 선발대가 되어 뒷산으로 올랐다. 큰형님은 팔순을 앞둔 고령에도 예초기를 짊어졌는데 나는 다루어본 경험이 없어 맡을 수 없었다. 작은 조카는 대여 예초기를 받아 오느라 조금 뒤처져 따라왔다. 나는 벌초 걸음을 나섰지만 선산 곁 밤나무 그루 아래 떨어진 햇밤을 주웠다. 멧돼지가 먼저 시식하고 남겨둔 알밤을 주워 모았다.
조생종 밤은 팔월 하순에 밤송이가 벌어져 지상으로 낙하했다. 이때 야생 멧돼지들이 먹을거리가 부족한 관계로 녀석들은 밤나무 그루 밑에서 살다시피 했다. 야행성인 멧돼지는 밤새 밤을 주워 먹은 뒤 날이 밝아오면 인근 수풀에서 잠을 자고 있을 테다. 밤나무 그루 밑에는 빈 밤송이가 그득하고 주워야 할 알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한 톨 한 톨 주워 모았더니 봉지가 묵직해졌다.
햇밤을 주운 뒤 벌초가 진행 중인 산소로 가니 손위 다른 형님들과 대구 사촌도 조카와 함께 나타나 벌초를 마무리 지었다. 가져간 술과 과일을 상석에 차려 절을 올리며 자손이 다녀감을 아뢰었다. 이후 연장과 주운 알밤 봉지를 챙겨 숙부님 산소로 내려갔다. 숙부님 산소 곁에는 몇 해 전 벽화산 팔부 능선에 위치했던 고조와 증조의 산소를 옮겨 와 묘역이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선대와 숙부님의 산소 벌초는 일거리가 적어 수월해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 벌초를 마치고 상석에 잔을 올려 자손의 임무를 완수했다. 벌초를 끝내고 고향의 특산물인 대붕 감들이 고물이 채워지는 밭둑에서 농로를 따라 집으로 내려왔다. 이후 큰형님의 들깨밭으로 가서 보드라운 깻잎을 따고 고추밭에선 홍초와 풋고추를 몇 줌 따 와 일부는 사촌과 나누었다.
아까 주워 왔던 알밤은 형제들이 가져가도록 다섯 봉지에 나누어 담아 놓고 텃밭으로 할 일이 기다렸다. 내가 창원에서 고구마를 심어 놓았다만 그보다 잎줄기가 싱그러워 찬거리로 삼으려고 잎줄기를 따 모았다. 나는 채집에서는 뭐든 일손이 빨라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에 가득 마련할 수 있었다. 고향의 흙내음이 물씬한 농산물에는 큰형님이 농사지은 고춧가루와 참깨가 더 있었다.
아침나절 선산 벌초와 농작물을 거두어 놓고 형제와 조카들은 마당에 야외용 돗자리를 펴고 점심상을 받았다. 큰형수님은 돼지 수육과 콩국수로 맛난 점심을 차려냈다. 나는 손위 형님들과 달리 반주도 곁들였다. 맑은 술에 맥주를 섞여 마주 앉은 사촌과 잔을 같이 비웠다. 점심을 들고 형제 조카들은 각자 타고 왔던 차량으로 고향 집을 나섰는데 잠시 졸았던 사이 창원에 닿았다. 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