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69장 (구 487장) / 고린도후서 7 : 5 - 1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69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7장 5절 – 16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아멘!
우리가 하는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이 없어서 하는 근심이요. 두 번째는 믿음이 있어서 하는 근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이 없어서 하는 근심을 세상 근심이라고 했고, 믿음이 있어서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계시는 근심은 어디에 속하는 근심입니까?
신구약 선경에는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550번이나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4장 1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잠언 17장 22절 말씀입니다.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여러분! 정말 근심은 살과 뼈까지 마르게 합니다. 제가 기도하다가 우리교회 교인들 중에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는 집이 있을까? 그래서 한 가정씩 묵상하며 생각해 보았더니 한 가정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가사가 생겼는가 봅니다. “근심걱정 무거운 짐 없는 사람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 이 찬송을 부르다 보면 성령님이 큰 위로를 주십니다.
벡크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냇물에서 흐르는 물을 방해하고 부딪쳐 깨어지게 하는 모든 돌들을 귀찮다고 모두 치워버려 보아라. 그러면 냇물은 아름다운 노래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차피 강물에는 돌들이 있듯이 우리 인생이 사는 날 동안에는 근심과 걱정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교회를 심하게 책망하는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보내놓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혹시 시험에 들어 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근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도 디도가 가지고 온 소식에 의하면 오히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크게 후회하고 회개 하였다는 소식에, 바울은 큰 위로를 받고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을 이루는 근심이라는 말로 위로를 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믿음으로 하는 근심이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합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 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성도의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 지라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같이 그 죄를 인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며 회개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이 염려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무서운 죄를 짓고도 영의 눈이 어두워져 자기가 지은 죄가 죄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혀 근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을 속이고도, 간음을 하고도,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부끄러워 하거나 전혀 근심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죄가 죄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근심도 하지 않고 걱정도 하지 않으며 회개의 필요도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어서 사회가 혼란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책망의 편지를 받고 시험에 들을까봐 크게 염려를 했습니다. 저도 가끔 바르게 살라고 책망 설교를 한 다음에는 교인들 중에 시험에 드는 사람은 없을까 하여 마음을 조이게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히려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하여 회개하며 깊은 염려에 빠졌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 소식을 듣고 너무너무 기뻐서, 너희들이 하는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구원과 회개를 이루게 하는 근심이라고 오히려 위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근심은 어떤 근심입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구원과 회개를 이루게 하는 믿음으로 하는 근심입니까? 아니면 믿음이 없어서 하는 세상 근심입니까? 잠언의 말씀과 같이 세상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는 근심이지만, 믿음으로 하는 근심은 영혼을 살찌게 하는 근심입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 11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성도의 근심은 믿음을 간절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왜 우리 믿음이 자라지 않는지 아십니까? 날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믿음 없는 걱정하고,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믿음으로 하는 근심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간절한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그래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믿음으로 하는 근심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서 양을 치는 목자들은 가끔 양중에서 가장 말썽꾸러기 양을 잡아서 다리에 상처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양이 상처가 아파서 꿍꿍 거리고 아파 할 때 그 양을 품에 안고 치료를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양은 목자에 대한 간절함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다 아물면 그 양은 목자를 잘 따르는 양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무지 순수한 말로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깊은 상처를 주시므로 그 마음이 간절해 져서 예수님을 믿고,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나 뼈를 마르게 하는 근심은 우연한 불경기가 가져다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를 하나님께 대하여 간절한 믿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이 고난과 근심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근심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이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455장 가사에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에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 우리는 우리의 근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며 더 믿음이 간절해지는 근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하는 근심입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 12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성도의 근심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도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애급에서 떠나 온 것을 후회하며 모세에게 원망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길을 40년 동안이나 가야했습니다. 모세가 말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거짓말로 들렸고 모세를 향한 원망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만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도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간절하게 하신 후,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은혜의 눈물을 흘리며 믿음의 근심을 하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바울을 원망도 했고, 한때는 바울은 가짜 사도라고 불신도 했으며, 한 때는 바울을 전도헌금을 가로챈 사람이라고 의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기를 이 모든 일들은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즉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걱정과 근심들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절박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세상이 막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어디론가 멀리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믿음이 없는 자의 근심이 아니라, 후회 할 것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즉 믿음으로 하는 근심으로 바꾸시므로 그 근심으로 인하여 회개를 이루며, 그 근심으로 인하여 믿음이 더 간절하게 되며, 믿음 생활은 물론 여러분의 모든 삶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