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뜨레야 11월 영적 독서 및 묵상자료 ☆☆
“가난한 과부의 헌금”
▒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장 38절~44절)
묵 상
어린 시절, 주일날 미사를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봉헌하라면서 약간의 돈을
제 손에 쥐여 주시곤 하셨습니다. 성당 가는 길에 가게도 있고, 오락실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주신 봉헌금을 쓰지 않고 받은 그대로 미사시간에 봉헌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께서는 이제부터 용돈의 일부를
절약해서 봉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봉헌하는 것이라는 가르침과 함께 말이죠. 저는 조그마한 상자에 그날 사용하다 남은 잔돈들을 넣기 시작했고, 그 돈으로
봉헌하기 시작했습니다. 잔돈들만 모았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생겼습니다. 때로는 어머니께 봉헌금을 받을 때보다 많은 돈이 모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평균적으로 봉헌하는 정도의 돈만 봉헌금으로 남기고, 성당 가는 길에 가게도 들리고 오락실도 들려서 돈을 쓰곤 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쓸 돈 써가면서, 있는 돈 중에 얼마를 떼어 봉헌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들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헌금함에
더 많은 돈을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피식 웃으면서 예수님께서 잘못 보셨다고 말씀드리고는 그들이 본 사실을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과부보다 부자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었다고 말입니다.
왜 같은 상황을 보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르게 얘기하고 있을까요?
제자들의 말대로 정말로 예수님께서 뭔가를 잘못 보신 것일까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 분들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많이 넣었다.’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실 테니,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답답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부가 봉헌한 것은 단순히 동전 두 닢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다는
믿음이었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살펴주실 것이라는 희망이었습니다.
복음에 그 과부의 과거가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 그 과부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통해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수많은 은총을 내게 쏟아부어주셨고, 지금도 쏟아
부어주시며, 앞으로도 쏟아부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주님께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을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꾸르실료를 통해 현존하신 주님의 큰 사랑과 은총을 체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체험한 사랑과 은총을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봉헌해야 합니다.
세상과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 안의 교회인 평신도들이 해야만 하는 소명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