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와 부안군은 새만금방조제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마주 보고 있다.
두 지역에 문화와 천문학의 베이스캠프 구실을 하는 곳이 있으니, ‘창작문화공간 여인숙’과 ‘청림천문대’다. 50년을 훌쩍 넘긴 공간에서 실험적인 시각예술을 선보이는 창작문화공간 여인숙과 우주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오늘도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청림천문대로 떠나는 여행은 묘하게 대조적이면서도 닮았다.
군산시에 자리한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중년 나이가 된 건물이 군산 지역 문화 사랑방이 되기까지
일제강점기 건물이 곳곳에 남은 군산시에서 수십 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골목을 돌면 번창하던 군산시의 옛 모습을 증명이라도 하듯 근대건축물과 적산 가옥이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다.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은 동국사 가는 길에 있다.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실내 전경
일제강점기부터 군산을 지켜온 건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의 나이도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지 오래다. 원래 건물은 여인숙이었다. 1960년 이 자리에 처음 건물을 짓고 ‘삼봉여인숙’이 영업을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여인숙이 대부분 그랬듯이, 이곳도 방은 좁지만 저렴하게 며칠 머물다 가려는 서민이 주로 이용했다. 번성하던 삼봉여인숙도 건물에 내려앉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지 2007년 문을 닫는다. 이후 건물은 화려하던 영화는 과거에 묻은 채 버려진 상태로 몇 해를 보냈다. 생명이 다할 것 같던 삼봉여인숙에 다시 호흡을 불어넣은 이가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의 이상훈 대표다.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의 활동을 보여주는 소식지 <여인숙 소통 문화 길>. 석 달에 한 번씩 발행한다.
이 대표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다른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산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이 대표는 지역 문화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군산의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던 중, 덩그러니 비어 있는 삼봉여인숙이 눈에 들어왔다.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는 군산을 주제로 한 전시가 꾸준히 열린다.
빠른 속도가 최선이 된 지 오래인 오늘의 세태로 따지면 진작 헐고 새로 지을 법도 한데, 이 대표는 삼봉여인숙 건물을 온전히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 즈음 공간을 꾸미고 운영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문화공동체 감’을 설립한다. 이런 노력이 모여 삼봉여인숙 자리에 군산 지역 문화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는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이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서 전시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도록을 판매한다.
여러 이웃이 모여 문화의 뜻을 이루는 곳
창작문화공간을 준비하면서 이름도 ‘여인숙’으로 새로 지었다. 흔히 아는 여인숙(旅人宿)이 아니라 여인숙(與隣熟)으로, ‘여러 이웃이 모여 뜻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군산이 비옥한 문화 영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문 안쪽 계단으로 오르면 작가들이 입주한 공간이다. 관람객은 출입이 제한된다.
이름은 새로 지었지만 건물 외관은 당시 모습 그대로다. 대신 한 명이 겨우 누울 만큼 좁은 방이 촘촘하던 1층은 개조해서 전시 공간과 사무실 등으로 활용한다. 실내가 넓지 않지만 당시 건물 구조가 남아 오밀조밀하게 나뉜 공간이 어떻게 쓰였을까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관람객 출입이 제한되는 2층 레지던시 공간은 입주한 작가들이 군산을 주제로 해마다 4~11월에 작업하는 곳이다. 가장 큰 주제는 ‘지역 읽기’다. 이를 위해 작가는 담당 문화해설사와 한 달 동안 군산 곳곳을 방문해 설명을 듣는다. 작가는 이 기간 동안 자신에게 군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 그 결과물을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전시한다.
도시 재생 프로그램에 그린 벽화
2015년에는 최은경, 정초롱, 안명호 작가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11~12월 결과 보고 전시를 열었다. 이들은 슬라이드 쇼, 유화, 오브제, 수집품 등으로 각자 군산에 대한 해답을 찾아 관람객에게 보여주었다.
[왼쪽/오른쪽]이것저것연구소 실내 전경 / 이것저것연구소에서 판매하는 아트 프린팅
도시 재생 프로그램과 이것저것연구소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만큼 정성을 쏟는 것이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다. 낙후한 주변 지역을 정비하고, 거리 곳곳에 문화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개관 직후 시작한 사업이다. 이를 위해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은 주변을 ‘동국사 가는 길’로 이름 짓고, 화단을 조성하고 벽화를 그렸다. 마을을 가꿔 나가는 노력으로 2012년에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나와 동국사까지 올라갈 것을 추천한다.
[왼쪽/오른쪽]군산을 소재로 3D 조형물을 만들어 판매한다. / 군산 곳곳을 그린 기념엽서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이 운영하는 '이것저것연구소'도 바로 옆에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이름처럼 이것저것 판매하는 재미난 곳으로, 수익금은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운영비로 사용된다. 신기하고 재미난 물건이 많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특히 창문 쪽에 진열한 76년 묵은 먼지가 눈에 띈다. 이것저것연구소 건물이 처음 세워진 시기가 1938년인데, 2014년 연구소가 들어서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나온 먼지를 작은 병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군산을 소재로 한 아트 프린팅, 3D 프린터로 만든 조형물, 엽서, 머그잔 등도 판매한다.
이것저것연구소에서 판매하는 76년 묵은 먼지. 인기 있는 상품이라 얼마 남지 않았다.
수련 시설을 겸한 청림천문대
변산반도국립공원 깊은 자리에 청림천문대가 들어앉았다. 한눈에 봐도 해가 지면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위치다. 축구나 족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넓고, 물길과 쉼터를 조성해 산책도 가능하다. 부안청림천문대청소년수련시설에 자리한 이곳은 청소년 특화 시설 1호 천문대다. 원래 있던 청림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별자리를 관측하고 수련 활동도 가능한 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청림천문대 천문관은 돔이 완전 개방된다.
청림천문대의 가장 큰 특징은 별 관측과 숙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와 함께 천체를 관측하고 추억도 남기기 좋다. 한방에 2~3인에서 최대 20인까지 머물 수 있다. 식사는 공동 취사 시설인 식당에서 각자 해결한다.
청림천문대에서는 별을 관측한 뒤 숙박도 가능하다.
청림천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건물 중앙에 자리한 천문관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문관의 상징과 같은 주망원경을 만난다. 최대 구경 1000mm 나스미스식 반사망원경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주망원경은 컴퓨터와 연결되어 별자리를 자동으로 추적할 수 있다. 청림천문대는 주망원경 외에도 굴절망원경 3대, 반사망원경 2대, 반사굴절망원경과 쌍안경 각 1대를 갖췄다. 하늘을 향해 완전 개방되는 천문관의 돔도 볼거리다. 천문관 안으로 수많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은 광경이 신기하다. 밤하늘 별자리를 제대로 관측하고 싶다면 맑은 날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노을이 예쁘거나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날도 별을 보기 좋다.
천문관에 있는 1000mm 나스미스식 반사망원경
청림천문대에서는 다양한 천문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천문관에서 주망원경과 보조망원경으로 행성, 은하, 성단과 성운 등을 관측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교육관에서 3D 입체 화면으로 별자리를 찾는 영상 관람 프로그램도 있다. 동절기와 하절기 운영 시간이 바뀌니 방문 전 확인해야 한다. 청소년 단체가 1박 2일 동안 체험하는 천문 특화 프로그램도 있다.
조금 서두르면 군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부안으로 이동해 청림천문대에서 별자리까지 관측할 수 있다. 군산과 부안에 자리한 미술과 천문 우주과학의 베이스캠프를 동시에 방문하는 여행 코스다.
3D 입체 영상을 관람하는 교육관
여행정보
여인숙갤러리
- 주소 : 전북 군산시 동국사길 3
- 문의 : 063-471-1993
- 주소 : 전북 부안군 상서면 노적길 25
- 문의 : 063-580-3896
글, 사진 : 이시우(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16년 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