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냥키치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은 1991년 10월 19일, 시력장애를 앓던 20대 남자가 훔친 차량을 몰고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의 여의도광장으로 돌진, 질주하여 23명의 사상자(사망 2명, 부상 21명)를 낸 사건이다.
사건 개요
범인 김용제(당시 21세)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자신이 근무했던 모 양말공장 사장의 승용차를 훔친 뒤, 1991년 10월 19일 서울 여의도광장에 차를 몰고 나온 직후, 오후 4시 35분 경 그곳에 나와있는 시민들을 향해 시속 100km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자전거를 타고 놀던 윤신재(당시 5세)와 지현일(당시 12세) 등 2명이 목숨을 잃었고, 김신중(당시 15세) 등 2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김용제는 차가 멈춘 직후 밖으로 나와 여중생 1명을 흉기로 위협, 인질극을 벌이다 시민들에게 격투 끝에 붙잡혔다.
사건 경위
경찰 조사에서 김용제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일하는 직장마다 번번히 쫓겨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냉대하는 것 같아서 사회에 복수하고 죽고 싶었다", '자신은 언제나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남들은 호의호식하고 행복해하는 현실에 좌절, 범행을 결심했다"라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거성관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이틀만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충격이 컸다. 김용제는 1992년 6월, 대법원으로부터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고 1997년 12월 30일 사형이 집행됐다.[출처 필요]
유사 사건
1992년 8월 16일 같은 장소에서 정신질환을 앓던 30대 택시기사가
자신이 운전하던 택시를 몰고 돌진하여 2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출처 : 위키피디아]
1991년 10월2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자동차를 질주해 23명의 사상자를 냈던 김용제가 현장 검증에서 윤신재군 사망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진에 모자이크 해야하면 알려줘!)
음...어...일단.. 여시들 안녕?!!
혹시 여의도 광장 (여의도공원) 차량질주 사건을 알고 있어?
인터넷강의 듣다가 알게 된 사건인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찾아보게 됐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일이다 보니 모르는 여시들이 많을 것 같아서 글을 쪄본당.
이 사건은 당시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 사건이라고 해.
일단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범인 김용제(당시 21세)가 주말 오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여의도 광장에서
훔친 차량을 몰고 시속 70km가 넘는 속도로 전력질주해서
유치원생 1명, 초등학생 1명이 사망하고 여러 사람이 부상을 입었어.
범인은 현장에서 사건을 일으킨 뒤에 차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서 열지 못하게 했지만
분노한 시민들이 차 유리를 깨뜨리고 김용제의 멱살을 잡아서 차 밖으로 끌어내.
그러는 중에 김용제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주변에 있던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인질로 잡아서 칼을 들이대고 협박했는데, 실제로 여학생의 배를 향해서 칼을 휘둘렀지만
다행히도 여학생이 금속 벨트를 차고 있어서 부상은 입지 않았대.
그 과정에서 시민들 10여명이 김용제를 제압하면서 인질극은 끝나고 김용제는 체포돼서 사형선고를 받아.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가 바로 김용제라고 해.
아마 '마지막 사형수' 라는 책을 읽어본 여시들도 있을거야! 김용제가 일기 형식으로 쓴 기록물에
조성애 수녀가 편지를 덧붙이면서 출간된 책이래. (나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 ㅠㅠ)
여러 사람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사건이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김용제를 이토록 악마로 만든 것은 김용제의 성장 환경이 큰 몫을 했다고 봐.
김용제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생일 때 가출을 해서 소식이 끊겼고,
그 몇년 뒤에 아버지도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어.
시력이 나쁘고 체격이 작다는 이유도 범인 자신도 늘 따돌림을 당했고
누구한테 털어놓거나 하소연할 곳이 없다보니 매일매일 분노와 불만을 가슴속에 쌓아뒀다고 해.
이런 감정들이 김용제가 청소년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밖으로 표출되었고,
칼을 들고 다니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려서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강도 예비 음모' 혐의로 3개월동안 교도소 생활을 하게 돼.
출소 후 이곳 저곳에 취업을 했지만 시력이 나빠서 실수가 잦다는 이유로 취업하는 곳마다 쫓겨나고
결국은.. 범행을 저지르게 된거지.
물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누구나 범죄자가 되는것도 아니야.
김용제가 저지른 일은 정말 용서받지 못할 일이고, 이미 그 죄값으로 사형도 집행이 됐지만
누군가 그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한마디 건넸더라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서 조금 씁쓸하기도 해.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좀 찡했던 부분! 인데,
당시 여의도 사건으로 손주를 잃은 할머님이 김용제를 양아들로 거두고 사형 집행 전까지 면회를 했다고 해.
다만 이건 인강 교수님께 들은 내용이라 확실하진 않아!
김용제가 쓴 책에는, 사형선고를 받던 날 할머님께서 한복하고 영치금을 넣어주시면서
검사에게 "우리 용제를 살려달라" 고 했다는 내용이 있대.
음.. 그리고 또 이 사건과 이듬해 같은장소에서 한번 더 일어난 광장 질주사건을 계기로
여의도 광장은 차량 진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잘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 공원에도 차가 막 들어갈 수 있고 그랬나봐.
혹시 사건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여시들은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793
[표창원의 사건 추적] 악마가 된 외톨이 빗나간 분노의 돌진
사상자 23명 낸 1991년 10월 여의도광장 차량 폭주 사건
이 글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 표창원 교수님이 쓰신 글인데,
사건이 나름 자세하게 써있어서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많이 참고가 됐어.
음..
쩌리에 글 처음 쪄보는데 어떻게 마무리하지..??
밍숭맹숭한 글이지만 읽어줘서 고마워!
문제 있으면 소근소근 알려줘 ☞☜
(참고 :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793)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거 손배책임자가 누구냐 그 판례맞지?
행법강의들으며 기억에 남는건 판례뿐인듯.....정작 중요한건 가물가물ㅜㅜ
진짜 나쁜놈이긴 한데 요즘은 더한놈들도 잘살고있는것같아서 화난다 정말.......
이사람도큰잘못을햇지만진짜누가따뜻한말한마디라도해줬으면..관심을가져줬다면..이런일을할사람은안됫을텐데.... 근데요즘은이사람보다더또라이같은범행도많은데왜사형안해 짜증나게 무서워서못살겠네
부모의 부재와 사회의 차별이 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네......
찡하다...
행정법 강의 들을때 들엇던 이야기다... 자기가 저지른 죄에 따른 결과는 당연하지만 가정환경이 좀 더 좋앗다면 이런 일도 없엇을듯 안타깝네..
금속벨트에서 심각한데 웃음터짐 천운이다 정말
나이거 써니쌤 행법강의 들으면서 알았음.....
저 윤신재라고 팻말 쓴 사람 손밑에 있는거 뭐야? 뭔지도 모르니까 뭐가 혐오인지도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