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내 펌글입니다.
이하 펌:
1차 세계대전이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의 1914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연대 이론엔 그 어떤 실제역사적 단서도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1914년 종말연대 이론은 그렇듯 1차세계대전이라는 실존역사에 절실히 의존하는 연대설인 것입니다. 1914년이라는 연도를 지목한 후 정말로 그 해에 일어난 중대사건. 그들에게 중요한 숫자 1914라는 숫자의 무게는 이 1차대전이라는 실제역사에 실려있습니다.
1914년 연대를 계산하는 예루살렘 멸망으로부터의 이방인의 때 /일곱 때 2520년의 계산자체도 워치타워협회의 것이 아니라 영국의 아크라 브라운. 기독교의 목사의 작품이라는 점을 협회서적에서도 고백하고 있으니(여호와의 증인 왕국선포자 책- 제10장 134면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서 자라감 -'일찍이 1823년에, 존 A. 브라운은 영국 런던에서 자신의 저술을 발표하였는데, 다니엘 4장의 “일곱 때”의 길이가 2520년임을 계산하였다'.) 그 부분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현재 몇가지 단서에 의하면 러셀은 1914년이 아니라 1915년이라 수정하여 기술한 성경연구판본이 발견된다는 정황도 있습니다.그가 그 계산 시작점인 예루살렘 멸망을 기원전 606년이라 생각했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당시 상황을 보면 유럽신문들 다수는 과연 전쟁이 일어날까 나지않을까를 기사로서 싣고있는 상황도 볼수 있고 독일(프로이센)같은 나라는 당시 예상되는 전쟁을 준비하느라 거듭된 군비증강을 밀어붙이는 상황도 보게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전쟁발발 상황을 기적처럼 예언한 게 아니라 모두들 일촉즉발의 상황속에 국제전쟁을 예상하고 있던 시기였던 겁니다.
초자연적인 미래예언같은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1차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을 단지 건조한 서술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 의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격살해사건. 그리고 이후 보복전에 들어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전쟁과 유럽 각국의 선전포고와 참전이라는식의 교과서적인 개요만으로 이야기하면 관련한 유럽사의 흥미로운 부분들을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건 다시 유럽내 민족주의 발흥사와 관련이 되며 왜 그런 민족주의가 탄생했는가를 추적하면 다시 슬라브와 게르만의 대결적인 서구역사까지 거슬러 살펴볼 수 있을것입니다.이와 관련한 역사는 다시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일단 오스트라아 황태자 저격이 발생한 민족주의 발흥또한 1914년 상황 훨씬 이전에 발현하고 있던 역사라는 점을 확인해 두고자 합니다.
구석구석에는 당시 혁신적인 무기의 공학적 발달사 한구석도 들어갑니다.무기의 발달을 따라 전쟁도 촉발됩니다. 흥미롭게도 그 부분엔 서양서 아주 먼줄 알았던 동아시아의 상황이 관련이 됩니다.
그 시점에 일본이 러시아와 벌였던 러일전쟁과의 인과적 연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멸하고 승리하죠.(1905년 5월)
그들 일본해군의 일제함포사격 전술을보고 영감을 얻은 영국이 그야말로 혁신적 함포체계의 전함과 전함 운영체계를 선보이게 되고 (영국 해군.1906년 신형전함 드레드노트 진수-일본의 전쟁에서 영감을 얻고 공격성능의 혁명을 이룬것으로 잘 알려져있다.)그런 공격성능을 갖춘 영국의 신형전함을 본 유럽 각국.특히 독일은 그동안 영국이 가진 해양군사강국의 자리를 신무기의 기술로서 넘볼 가능성을 엿보게 됩니다. 이런 독일-프로이센의 야망으로 영국과의 숨막히는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이는 결국 1차세계대전의 탄생(독일의 선전포고:1914년 8월-여호와의 증인이 그리스도가 임재하고 사탄이 쫓겨났다고 말하는 시점은 10월. 이 부분에도 2개월 먼저 1차대전 선전포고가 발령됐음을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국해군 1906년 전함 드레드노트(Dreadnaught)- 이 전함이 등장하고 유럽 각국들은 신무기의 공격력이 단지 숫자만 많을경우보다 우수한 결과를 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며 제해권1위인 대영제국은 이후 각국의 도전의식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야심만만했던 독일 또한 이후로 영국과 군비경쟁에 들어가고 이후 군비확장과 전쟁계획은 1914년 1차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거기엔 영국이 세계에 보여준 역사상 최대 최강의 제국의 면모의 충격이 원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독일뿐 아니라 유럽 각국들이 식민지를 갖춘 제국으로서의 지배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죠. 그 패권욕의 충돌이 벌어지는 것은 예상되는 역사였습니다. 영국이 그런 세계제국이 될 수 있던 역사를 다시 추적하면 영국해군 발전사를 뒤집어보게 될 것이고 이는 아마 거의 4세기쯤 전에 스페인 해군을 영국해군이 물리치고 영국 또한 제해권을 손에 넣은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1588년)
앞서 이야기한 게르만vs슬라브의 역사까지 들어가면 지역 상권및 이익을 갖고 다투던 훨씬 이전의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죠. 1차세계대전은 1900년대에 들어 에너지원으로서 중요해진 석유라는 자원의 쟁탈전이라는 성격 또한 갖고 있습니다.
1차대전이란 이렇듯 유럽사. 그리고 아시아 근대사까지를 총합적 포괄하여 발생한 역사입니다. 인간역사의 수많은 인과고리가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미쳐 1차세계대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주장처럼 1914년에 사탄이 지상에 내려와 도깨비처럼 등장한 역사가 결코 아닙니다. 역사란 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여러분에게 협회출판물뿐만 아니라 실재 역사와 사실들에 관심을 더욱 가지시길 권합니다. 역사왜곡의 무서움은 여호와의 증인이 이 건에서 입증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를 솔직하게 인식한다면, 과거를 각색하여 현재와 미래를 저당잡는 이상한 교리와 거짓들을 분별하시는데 더더욱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첫댓글 ㅇㅇ
감사합니다~~~*
카페내 다시 상기해보면 좋지않을까 하는 내용을 재업하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때와 관련하여 기원 70년과 연계해서 너무 복합적으로 섞어서
설명하시는 바람에 후세대가 너무나 헷갈려 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잘 보았습니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예수께서는 기원 70년 이후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이방인의 때가
기원 70년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왜냐하면 70년 포로생활 이후 예루살렘이 회복된 후,
페르시아 그리스와 로마시대까지 그나마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의 숭배의 중심지로 주류 유대인들이
비록 식민지배였지만, 나름으로 점거하고 살아왔으며,
정말 예루살렘이 황폐화되고 유대인들이 완전 쫓겨나고 근 2000년간 이방인들에게
제대로 짓밟혀 온 그 시작이 기원 70년이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한 번 던져봅니다.
@again return of 성경내용의 신학적 해석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나 생각해본 바가 없어 이점에 대해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내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펌글 내용도 딱 실제역사적 상황까지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카페내에서 종교적인 다른 선택 자체를 유도하진 않기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실제역사와 평행하고 또 종교적 의지자체가 인륜과 사회적 의지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각자의 종교적 해석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언젠간 리버럴한 이 카페의 환경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일단 일방적으로 주입되어 알아왔던 관념의 틀을 벗어버리고
성경을 읽어보니 성경 구절구절들이 너무나 새롭고 자유롭게 다가오네요. 궁금증이나 여러 가능성에 대한
사고도 많아지구요. 무엇보다 성서 이해와 관련하여 저 자신에게 자유롭고 정직해 지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이전까지는 좋든 싫든 일방적인 사고만 해왔었던게 사실이니까요.
자칭 통치체라는 사람들이 이리 저리 틀리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전력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재업시에 넣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