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늘소를 위하여
임성용
밤송이 가시에 햇살이 떨어질 때
모가지 속으로 한기가 또아리를 틀 때
늙은 인부들과 일을 마치고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갔다
공사장 부근을 지나 개울을 건너
밤나무숲이 있는 손두부집에서 보리밥을 먹었다
보리밥을 맛있게 먹고 내려오다, 돌다리쯤에서
까맣게 말라 죽은 곤충 한 마리를 주웠다
두 개의 뿔이 달린 장수하늘소였다
그걸 작업복 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와
안방 벽에다 무슨 장식처럼 붙여놓았다
아침 저녁으로 나는 그 하늘소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생겨났다
하늘소가 근사한 뿔을 흔들며 기어다녔고
이빨을 벌리며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생기가 넘쳤다
오늘도 하늘소가 잘 있나 없나 살펴보았더니
세상에, 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힘없이 머리를 수그리고 앞다리가 잘려 있었다
잃어버린 뿔과 다리를 찾다가
혹시 하늘소의 모습이 처음부터 이런 몰골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나는 기세당당한 하늘소를 상상하고 힘을 얻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진짜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늙은 인부들이 일당도 못 받고 돌아간 저녁
나는 멍하니 혼자 남아 있다, 배가 고파서
다시 개울을 건너갔다
밤나무숲을 지나자 머리에 돋아난 한쪽 뿔이 떨어졌고
갑충처럼 다리가 또 꺾이는 걸 이빨 악물고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