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설산 아래 차마고도 옛길과 유채꽃의 바다 나평과 만봉림 대협곡
길은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다. 시간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길이 되었다. 茶馬古道, 인류가 차와 말을 교역하기 위해 걸었던 길,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5,000여km가 넘는 험로가 뚫렸다. 길은 운남을 거점으로 티벳과 네팔, 북경과 베트남까지 이어졌다. 차와 말에서 시작된 물품은 소금, 비단으로 다양해졌고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길목마다 마을이 만들어졌다. 마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이정표와 같다.
길은 생계를 짊어지고 걸었던 마방들의 삶터였다. 살아서는 나귀처럼 등짐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사람들 그들의 눈물겨운 애환이 녹아서 길이 되었다. 고산협곡의 산허리를 따라 거미줄처럼 이어진 길을 보라 암산의 절벽을 깎아 만든 잔도를 따라가면 천길 벼랑 끝 낭떠러지와 그 사이를 굽이치는 거친 물줄기들 티벳에서 발원한 빙하의 물이 급류를 이루어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의 경계를 뚫고 장강으로 흘러간다. 그 풍경 속에 인간의 생존력을 증명하듯 길이 있고 다락밭이 있고 목동들의 휘파람 소리가 있다.
길을 따라서 어느 날 구도자들이 지나갔다. 어느 때는 창검을 든 침략자의 발길이 무성했다. 마방의 길이었다가 순례자의 길이었다가 전쟁의 길이었다가 지금은 고요하게 스치는 바람소리뿐, 떠도는 여행자의 길이 되었다. 문명을 이어주는 생명의 길이 되었다가 인간의 존재를 깨우치는 영혼의 길이 되어준 곳 아득하게 이어지는 그 길의 모퉁이를 걸어가면 산허리에 자리한 객잔의 작은 불빛이 기다려준다. 별들이 쏟아지는 칠흑 같은 밤이 깊어 가면 어디선가 환청처럼 마방들의 워낭소리 들려 온다.
차마고도에서 /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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