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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누가복음 21:29-33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눅 21:29-33 / [무화과나무의 교훈;마24:32-35,막13:28-4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그 밖의 모든 나무를 보라. 30) 나무에 잎이 돋으면 너희는 벌써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 31) 이와 같이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는 줄을 알라. 32)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이 세대가 다 끝나기 전에 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이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아는 자연현상을 적용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계속 종말을 대비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를 효과적으로 가르치십니다.
자연히 아나니(29-30) 무화과나무(마 24:32; 막 13:28)는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서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늦은 봄이 되어서야 잎사귀를 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자연현상은 굳이 믿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까이 온 줄을 알라(31)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있을 여러 가지 징조를 본다면 지금이 세상의 마지막 때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들은 모두 무섭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역사의 끝에 있을 징조들을 알려주시는 것은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종말은 두려운 심판과 형벌의 날이지만,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영광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말세에 있을 징조들은 곧 있을 재림의 알림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말세에 일어나는 여러 징조를 볼 때, 오히려 큰 위로를 받고 환난을 믿음과 인내로 통과할 용기를 얻습니다.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32-33) 예수님이 진실이라고 강조하신 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예언은 이때로부터 약 40년 뒤 유대 전쟁이 있었던 주후 7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상상이나 예상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진행 방향을 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보다 예수님이 더 큽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창조주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진리 위에 서는 믿음으로 역사의 마지막 때를 준비하고, 그때 있을 환난을 통과할 힘이 생기고 자라납니다.
적용: 창조주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며 확신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를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를 시작하기만 해도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습관화되면 기도의 맛을 느끼고 기도의 능력까지 얻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은 결국 기도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에 심취한 어느 순간에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 설 교 >
호크마 주석
=========21:29-31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 마 24:32-34과 막 13:28-30에는 무화과 나무만 언급되고 "모든 나무"에 관한 기사는 빠져 있다.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무화과나물를 마 21:9에서 예수께서 저주하여 말라 죽은 무화과로 해석하여 유대인으로, 또 "모든나무"는 이방인으로 간주 하였다. 그래서 유대인은 저주를 받지만 마지막 날에는 회복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누가가 모든 나무를 삽입시켜 기록한 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무화과나무가 없는 이방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Jeremieas, 이상근). 한편 팔레스틴에서는 겨울철에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봄이 온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무화과의 잎사귀가 계절의 시작을 알려 주듯이 우주적인 징조(25,26절)가 나타나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자연히 아나니 ------ 원어 "브레폰테스 앞헤아우톤"은 "스스로 본다"는 뜻이다. 즉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연해지고 싹이 돋으면 누가 그르쳐 주지 않아도 여름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Lenski, Marshall). 한편 누가는 이러한 표현에다 "이미"라는 시기를 나타내는 부사 "에데"를 덧붙여서 이미 그 시기가 가까이에 당도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21:32-33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세대"와 "모든 일"이 무엇을 가리키느냐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종말에 나타날 우주적인 징조를 가리키는 데에 거의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Geldenhuys는 이를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세대"에 대한 해석이다. 원어 "게네아"에 대해서 퀨멜(Kummel)은 동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 해석하여 예수 시대의 유대인으로 해석한다. 또 렝스토르프(Rengstorf)는 조상이 같은 민족으로 해석하여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 클로스터만(Klostermann)은 누가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엘리스(Ellis)는 예수께서 재림할 즈음에 사는 마지막 세대로,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단순히 "행악하는 자"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수가 어떤 세대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종말이 도래할 것을 확실히 말씀하셨다는 "마샬(Marshall)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한편 테일러(Taylor)는 원래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후대에 와서 여러 성경 기자와 또 학자들에 의해 예수의 재림으로 곡해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장 25~36절 / 김태환목사(캠브리지한인교회(
오늘부터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영어로 대강절을 “Advent (애드벤트)”라고 합니다. “애드벤트”라는 말에는 "coming into place (출현)" 혹은 "being", "arrival (도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adventcandle.png대강절의 두 가지 키워드는 "celebration (축하)"과 "anticipation (기다림)"입니다. “the celebration of the birth of Jesus the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함)”와 “the anticipation of the return of Christ the King (다시 오실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기다림)”입니다. 전자를 “첫 번 애드벤트 (First Advent)”라고 하고, 후자를 “두 번째 애드벤트 (Second Advent)”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첫 번 애드벤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축하하는 것이고, “두 번째 애드벤트”는 심판의 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대강절은 단순히 2,000년 전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축하하는 절기가 아니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의 의미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누가복음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징조와 현상이 있을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 말씀을 사람들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다시 올 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시작되면 그 때가 가까이 옴을 알고 미리 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에게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에는 해와 달에게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에 그 말씀이 이렇게 나옵니다.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잃을 것이다 (마태복음 24:29).” 우주적인 기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잠시 달이 태양의 빛을 가리는 현상은 보았지만, 달이 빛을 잃어 버리는 현상은 듣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현상을 보거든 내가 다시 올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 때 바다와 파도 소리에 사람들이 당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by the roaring seas and strange tides”라고 나와 있네요. 성난 바다와 이상한 파도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하늘에 있는 권세가 흔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for the powers in the heavens will be shaken)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하며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7절)”라고 했습니다. “인자 (the Son of Man)”는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말할 때 쓰는 특별한 용어입니다. “Then everyone will see the Son of Man coming on a cloud with power and great glory”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때 모든 사람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영광과 권능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름”이라는 말은 뒤에 나오는 “능력과 영광”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흔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구름으로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불을 밝히시면서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21)”라는 말씀이라든지, “그러자 아론이 이스라엘 모든 무리에게 말했습니다. 아론이 말을 할 때에 무리가 광야 쪽을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출애굽기 16:10)”라는 말씀이라든지,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구름은 육 일 동안, 산을 덮고 있었습니다. 칠 일째 되는 날, 여호와께서 구름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24:16)” 이런 말씀들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런 일이 시작할 때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이는 너희의 구원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28절)”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우주적인 기현상을 보면서 무서워하고 기절하겠지만 나의 제자들인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의 구원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일어나서 머리를 들라 (look up and lift up your heads, NKJV)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잎사귀가 돋는 것을 보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줄 깨달아라 (29-31절).”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성경 말씀이 믿어집니까? 아니면,”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 날라고?” 이렇게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염려해서 예수님은 한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Heaven and earth will disappear, but my words will never disappear).” (33절)
이 모든 말씀들은 지금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는 말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2012년 대강절에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을 피할 힘을 얻고, 인자 앞에 서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 (36절) “Keep alert and pray at all times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 “(so) that you might be strong enough to escape these coming horrors and stand before the Son of Man (앞으로 다가올 무서운 일들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기 위하여 힘을 얻도록)"
Keep alert라는 말은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정신을 놓고 있다는 것을 무엇을 말할까요? 34절에 그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네 마음이 방탕과 술 취함과 삶의 걱정으로 무겁게 눌리지 않도록 하여라.” 마음이 방탕하다는 말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술은 이렇게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친구입니다. 마음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찾는 것이 술이지요. 술 취하는 사람들이 늘 그래요. “내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줄 알아?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 그래요.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삶의 걱정으로 마음이 눌리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다가 갑자기 “그날”이 오지 않도록 정신을 바싹 차리고 살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에는 이 말씀이 더 이상 설명이 없이 간단하게 나와 있지만, 성경에는 깨어 있으라는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라. 왜냐하면 언제 너희 주님께서 오실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만약 도둑이 언제 들어올지 집주인이 안다면 미리 준비를 하고, 도둑이 집에 들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를 해야 한다. 인자는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마태복음 24:42-44) “주인이 집안을 맡기고, 제때에 양식을 내주도록 맡긴,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누구겠느냐? 돌아와서 볼 때, 주인이 명한 대로 일하고 있는 종은 복되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다. 그러나 악한 종이, 주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면, 생각지도 않은 날, 알지 못하는 때에 그 종의 주인이 올 것이다. 때에 주인은 그 종에게 벌을 내리고 그 종을 위선자처럼 여길 것이다. 그 종은 거기서 슬피 울고, 고통스럽게 이를 갈 것이다.” (마태복음 24:45-51)
주님은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을 주님은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 주인이 와서 보더라도 방심하지 않고 자기에게 지워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사람, 언제 주인이 와서 보더라도 자기 책임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은 올빼미처럼 잠을 자지 않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염려와 걱정에 눌려 지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한가지 더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나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는 많이 걱정하면서도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염려하지 않습니다. 지금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만연되어 있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목사, 전도사들까지 모두 자기 일상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그 일들 속에 묻혀서 영성 (spirituality)을 잃어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 회복이라는 말을 합니다. 회복이라는 말이 뭔가요? renewal? restoration? recovery? 영어 단어 “re-”로 시작하는 말은 “다시 (again)”라는 뜻도 있지만 “back” or “backward”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회복(回復)이라고 하면 본래 상태로 복구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회복이라고 하면 영적으로 복구된다는 뜻인데, 언제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영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하여 “삶의 걱정으로 무겁게 눌리지 않도록 하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현실적인 문제에 빠져 있고, 걱정으로 마음이 눌려 있습니다. 영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예배도 은혜가 안 되고, 찬양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도 물론 안 되고요. 영성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까 하나님과의 소통의 채널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문제에 억눌리지 않고 해방되는 길은 삶의 우선권 (priority)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우선권을 하나님께 두고, 영성에 두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일에 우선권을 두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 일로부터 해방될 수 없습니다. 학업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삶의 우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학업에 우선권을 두는 사람은 학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삶의 우선권은 영성에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우선권을 두는 사람은 결코 자녀교육의 억눌림으로부터 자유 할 수 없습니다.
Lueken.jpg제가 제 facebook에 글 하나를 올려 놨습니다. 조 루에켄 (Joe Lueken)이라는 미네소타 주에 사는 사업가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인데요. 그 글을 올린 것이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무도 안 읽었습니다. 한 사람이 “like”하나 눌렀습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대신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 먹은 사진 올리면 난리들입니다.
Joe Lueken은 자기가 사는 마을에 “Lueken Village Food”라는 수퍼 마켓을 두 개 운영하고 있습니다. North Dakota 주에도 수퍼 마켓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46년 간 성실하게 일한 대가지요. 1966년에 수퍼 마켓 매니저로 경험을 쌓고, 현재는 3개의 수퍼 마켓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진열대 곳곳을 살피고, 소비자들이 불편해 할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핍니다. 직접 미니 밴을 몰고 매장을 점검하러 다닙니다. 직원 휴게실에서 신문을 잃고 직원들과 수시로 대화를 합니다. 1978년에 수퍼 마켓의 오너가 되어 지금까지 하루에 2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조 루에켄은 자기가 운영하고 있는 수퍼 마켓에 대한 애착이 컸습니다.
Lueken2.jpg그런 그가 은퇴를 하면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자기 밑에서 일하던 직원 400명에게 자기의 수퍼 마켓을 모두 물려 준 것입니다. 그가 성공한 것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직원들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인정하면서 수퍼 마켓을 물려 준 것입니다. 루에켄이 은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기업들이 수퍼 마켓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고, 은퇴한 후에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는 거액을 제시한 업체도 있었지만 그는 모두 뿌리치고 직원들에게 수퍼 마켓을 물려 준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금 내 성공의 상당 부분은 우리 직원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내가 그 동안 받았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직원들의 손을 잡고 “당신들은 이것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이제 당신들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내년 1월 1일부터 운영권을 넘겨 받는다고 합니다.
정작 루에켄의 스토리가 감동적인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루에켄의 뒤를 이어 체인의 대표가 될 사람은 밤 샘 야근을 하던 경비원 브렌트 시카드 (Brent Sicard)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시카드는 1998년부터 루에켄의 수퍼 마켓에서 근무하면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을 새우며 매장을 지켰다고 합니다. 루에켄은 그를 체인 매니저로 임명했습니다. (영문 기사를 보시려면 http://today.msnbc.msn.com/id/49984095/ns/today-good_news/t/grocer-gives-stores-his-employees-free/로 들어가서 보세요.)
어떻습니까? 브렌트 시카드 같은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루에켄과 시카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닫는 insight가 없습니까? 우리는 깨어 있는 크리스천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Second Advent를 준비하는 우리는 브렌트 시카드처럼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고, 자신의 영성 (spirituality)을 길러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눅 21장 29~33절 / 정근두목사(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추운 겨울이 있었나 기억하는 것조차 가물거립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미 봄의 한 가운데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날씨의 변화로 알 수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여인네들의 달라진 옷차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아직도 차고, 봄옷을 꺼내어 입기 전에도 자연을 통해서, 초목을 통해서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사람들보다 초목들이 먼저 알아챕니다. 나뭇가지에 움이 튼실해지고 물이 오르는 것을 보면 겨울이 지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초목이 동시에 움이 트고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닙니다. 매화꽃은 일찍부터 활짝 피었다가 이제는 지고 있지만, 우리 집 동백꽃은 이제 겨우 수줍은 듯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활짝 핀 모습을 보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산에는 이미 진달래가 핀지 오랩니다.
꽃뿐만 아니라 나무들이 움을 트는 시기도 서로 다릅니다. 배나무, 포도나무 등은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감나무나 은행나무, 무화과나무는 언제 겨울잠에서 깨어날지 기척이 없습니다. 늦잠을 자는 것은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런 현상은 금수강산에 자라는 초목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타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여름이 오는 증거는 무엇보다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필 무화과나무를 필두로 모든 나무를 언급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여름이 요즈음 우리나라 일기처럼 예고 없이 갑자기 오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듯하다가 남풍이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갑작스런 더위가 올 것을 알아채는 방법이 바로 무화과나무 잎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아직 날씨가 여름처럼 더워지지 않았지만 무화과 잎이 연해지면 바로 무더운 여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무화과나무와 함께 모든 나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름 계절이 언급됩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29~30절) 주님은 초목의 변화를 통해서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을 전제로 당신이 긴히 하실 말씀이 있어서 운을 띠웁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31절)라고 앞서 7절에서 제자들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작하십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7절)
7절에 기록된 제자들의 질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7절상)였습니다. 이어진 두 번째 질문은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7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두 번째 질문을 먼저 답하신 셈입니다. 두 번째 질문,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7절하)부터 8절부터 28절까지 길게 말한 셈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비로소 그들의 첫 번째 질문,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7절상)에 대한 답을 비로소 31절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에 대한 첫 질문,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7절상)에 대해 비로소 답하십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파멸의 때만 아니라 당신의 재림에 대해서까지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더 충실한 대답을 하십니다.
당시 팔레스틴 사람들은 보통 무화과나무나 다른 나무들을 살펴보고 여름이 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마르고 팍팍하던 가지에 수액이 올라와서 연해지고 싹이 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여름이 가까운 줄을 상식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연계의 변화를 보고 여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앞서 지금껏 언급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31절)고 말씀하십니다. 겨울의 메마른 상태를 뒤로하고 생명의 흔적이 나뭇가지에 보이면, 새로운 계절이 온 것을 사람들이 알아채듯이 세상 마지막도 그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0절)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운 증표와 그 대책을 말씀하시고, 파괴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4절)고 그 운명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시작해서 온 세상의 멸망이란 대주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고 운을 뗀 다음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현상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예언한 다음, 28절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나가며 한 마디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34절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지를 일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를 교훈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종말 자체의 확실성에 대해서 강조하는 본문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그러고 나서 34절부터는 종말적 삶의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청중들로 하여금 종말이 분명히 온다는 사실을 뇌리에 심어주고 나서야 거기에 대비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교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덮치는 여름을 손쉽게 감지하는 방법은 무화과나무의 잎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흐름을 보면서 종말을 감지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 잎이 연하여 지는 것을 보면서 팔레스틴 사람들이 여름이 덮칠 것을 알아채듯이 여러분은 이 시대에 나타나는 종말의 징조들을 읽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종말의 징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천체에 나타나는 징조뿐 아니라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가까이에 일어나는 사회적인 변화를 우리는 감지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 수만 년 동안에 통용되던 도덕과 상식이 무너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짐승도 동종끼리는 짝짓기를 하지 않습니다만 지금은 이런 것을 소수자의 권리로서 요구할 뿐 아니라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구약부터 강조한 소수자의 권익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합니다. 하무라비 법전보다 더 탁월한 모세 율법이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거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교회의 사명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수정처럼 분명하게 말세적 현상으로 언급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는 분명하게 밝힙니다. 1장 20절 이하를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온통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서 종말이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그래서 신앙의 선배들은 이 세상을 장차 망할 도성, 장망성(將亡城)으로 여겼습니다. 장망성(將亡城)이란 존 번연이 천로역정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세상을 살던 성도들이나 그 이후에 세상을 사는 성도들이 모두 공유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우린 아예 우리 담벼락에 “E 편한 세상”라고 써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내면서도 “E 편한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쩌든지 “E 편한 세상”에서 오래 살려고 몰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E 편한 세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자주, 그리고 길게 종말에 대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피는 누가복음 21장에도 전장을 할애해서 종말에 대한 교훈을 하십니다.
8절부터 28절에서 말한 우주적인 징표가 나타나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분명히 종말이 가까워진 것을 깨닫도록 요청합니다. 8절부터 28절까지 주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생각한다면 예루살렘의 멸망도 우주적인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일 뿐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그 자체로도 분명한 성취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마지막 파멸을 비춰주는 거울 속 모습과 같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예수께서는 두 사건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과 우주적인 현상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31절) 누가는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으로 몇 차례 말하기도 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눅 10:11, 현대어성경)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누가가 기록한 주님의 교훈을 살피면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한 측면으로는 그 나라의 초기단계로 이미 현존하는 측면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궁극적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다고도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는 곧 올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약속의 궁극적 성취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망하는 것이 그 때 실현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이 약속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날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기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9)
그러므로 표적을 찾아 헤매는 오늘의 현상은 건강하지 못한 증상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복음 21장뿐 아니라 신약 다른 구절들도 모두 이런 시류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천년 교회의 역사는 이런 관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든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이 다미선교회의 종말론입니다.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주의해야 합니다. 재림은 분명히 있지만 주의 날은 “밤에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다. 도적은 집주인이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침입합니다. 재림 역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성취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깨어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를 향해 깨어있으라고 부탁하시고 그의 돌아오심을 준비해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정확한 일시를 안다는 사람은 반드시 잘못된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겸비하게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지어 아무리 좋은 의도로,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종말을 알아내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귀착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다만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일은 주님의 은혜 안에 자라가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올해도 우리는 성경대학에, 심지어 아기를 안고 다니며, 배우기도 합니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올해는 시간을 내어서 주님을 닮는 제자훈련을 시작해서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가까이 왔습니다. 아주 임박한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31절)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한 예언이 일찍이 성취되었기에 우주적인 종말에 대한 예언도 장차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없이 분명한 어조로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언급하며 선언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3절) 창조된 하늘과 땅이 존재보다도, 아니 사라지는 것보다도 재림은 더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장 엄숙한 말씀을 하실 때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천지, 하늘과 땅을 증인처럼 세웁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엄히 경고합니다.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신 4:26)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 30:19~20)
그러므로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장 33절은 주님이 발하신 최상급 교훈입니다. 종말의 도래에 관해서 주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 마태와 마가 역시(마 24:35; 막 13:31) 글자하나 다르지 아니한 꼭 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고백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문제는 32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32절) 특히 문제는 그처럼 확실히 선언 가운데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세대란 무엇을 의미하냐 하는 것입니다. 마치 얼핏 보면 이 세대란 지금 주님 앞에서 이 말을 듣고 있는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종말뿐 아니라 앞서 말한 우주적인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의미처럼 들립니다.
누가는 세대란 말을 그렇게 가끔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7: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9:41)
좀 더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11:29) 계속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같은 어조로 말합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11:30)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11:31,32)
계속되는 논조의 절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11:51)
더 나아가 17장에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17:25) 동시에 자주 이 세대란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기기도 했습니다. 즉 악한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오늘 본문 32절에 대입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 말을 들은 세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30년대에 이 말씀을 하셨고 이 책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60년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누가가 주님과 동시대 사람으로 보고 기록했다면 무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선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 세대를 “이 악한 인류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악한 인류는 이런 재난이 닥칠 때 심판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지구 종말을 경험할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뜻으로 보는 것입니다. 악한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피해갈 수 없다는 일반적인 말입니다. 예, 반드시 악인을 향해서는 심판과 보복이 있을 것입니다.
25~26절이 말하는 우주적인 현상과 함께 종말의 시작이 도래하면 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인자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누가가 분명히 말하는 가까운 사건, 즉 예루살렘의 파멸과 멀리 있는 사건, 우주적인 종말 사이의 간격을 없어지는 것입니다.
32~33절이 강조하는 이 세대라는 구절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의 사건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파멸과 우주적인 종말을 동시에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파괴 자체가 마지막 종말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예루살렘의 심판은 최후 심판의 전조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구약 선지자들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동시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자기 세대를 향해 예언한 것이 결국은 종말의 사건을 위한 예언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시대에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의 성취의 구분은 때때로 분명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선지자들이나 주님 자신도 자주 종말론적인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마치 그것들이 함께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사건들은 원리적으로는 서로에게 결합되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는 상당한 시간 간격에 의해서 분리되어 있는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구약 선지자들이나 누가가 전한 예수님의 가르침도 동일한 방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분명히 시간이 아주 많이 서로 차이가 나기도 하는 그런 사건들을 일련의 단일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처럼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말은 분명히 전 세계적일 것입니다. 하늘과 땅 전부가 관련된 우주적인 격변과 이변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불변의 것으로 여겨 왔던 하늘과 땅조차도 더 이상 그 불변함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의 와중에도 오직 한 가지 영속적이고 지속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 모든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진리는 절대적이고 영원히 확실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말씀하신 모든 것이 결국 성취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주적인 징조를 동반하는 인자의 오심은 하늘과 땅의 영속성보다 더 확실합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주님의 말씀한 종말은 반드시 실현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편해지고, 정치인이 온갖 분홍빛 약속을 해오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마감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이나 위대한 업적은 삶을 마감하는 순간 모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질 순간에도 남는 것들을 관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도 불변하고 주님 말씀대로 살아온 여러분의 삶도 영원할 것입니다. 주 안에서 가꾸어온 관계도 영원할 것입니다.
바다의 파도처럼 세상 풍조는 항상 변합니다. 정치적인 풍조도 자주 변하고, 온갖 것의 유행주기도 매우 짧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적인 인기란 더욱 허망할 뿐입니다. 뜨거운 사랑을 받다가도 하룻밤 사이에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스타를 꿈꾸지 마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중요시하는 것들도 일시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무가치할 뿐입니다.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복된 봄날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누가복음 21:29-33 해설
누가복음 21:29-33 해설
29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향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종종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예수님은 사람들이 나무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계절을 알아차리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늘의 징조와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민감성을 가지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즉, 시대의 징후를 파악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달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신 것입니다.
30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에 대해 설명하시는 가운데 주신 비유로, 무화과나무와 다른 나무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처럼 세상 끝날이 가까워질 때 나타나는 징조들을 보고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이들이 시대를 분별하고 영적 깨어있음을 유지하여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을 대비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늘 경계하고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31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종말에 관한 징조들을 언급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도록 교훈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재난, 전쟁, 기근 등의 징조들이 일어날 때 그것이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진행되는 일임을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신자들이 이러한 징조들을 볼 때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신앙의 피난처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32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종말의 징조와 그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시는 가운데 나온 말씀입니다. "이 세대"라 함은 예수님의 contemporaries, 즉 contemporaneously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좀 더 넓게는 복음서의 독자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주후 70년)부터 시작하여 종말의 마지막 날까지 일어나는 사건들이 포함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확실성에 대한 강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33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 즉 천지(하늘과 땅)가 사라질지라도 그의 말씀은 영원히 그대로 존재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이고 불변하며 언제나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진리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과 약속이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지속될 것을 확신시키며, 그분의 말씀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기준과 소망이 될 것임을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진리를 붙잡고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눅 21:20~33 / 조정의목사
3주에 걸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서 나누신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감람산 강화”라고 부르는 이 말씀의 주제는 “종말”입니다.
감람산에 앉아 예루살렘을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종말론 강의는 바로 이 거대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40년 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은 무너졌지만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것은 종말의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환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시기 전에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앞으로도 없을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마 24:21). 그리고 그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고(마 24:29) 사람들이 무서워 기절할 것입니다(눅 21:26).
이것이 바로 “인자의 징조”이고(마 24:30), 그때,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종말론 강의를 함께 정리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왜 주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는지 깊이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종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지식적으로 유익을 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자녀를 두고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데, 한국에 일어날 엄청난 재난에 대한 소식을 미리 알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자녀들에게 그 재난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심정으로 이야기를 하습니까? 그 이야기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잘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고, 잘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해를 당하지 말고 잘 대처해서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정이 그와 같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무서운 환난을 잘 대비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이 해를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그런 간절한 심정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종말에 관한 가르침을 정리해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주님의 제자인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찾아 배우기 원합니다.
1. 예루살렘 멸망(20~24절)
21:20절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먼저 예수님이 바라보신 가까운 미래의 환난은 “예루살렘의 멸망”이었습니다. 20절에 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성 밖을 수많은 군대들이 에워싸는 것을 볼 때, 곧 이 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비할까요?
21절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야 합니다(21절). 환난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뿐만 아니라 주변 유대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안전한 지역으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진짜 심각한 지역은 예루살렘 성이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피신하라고 하시고,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촌) 성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에워싼 군대들이 곧 성을 파괴하고 그 안에 있는 자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이 완전히 파괴되고 백성이 죽임을 당하며 끌려간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BC 586년 바벨론에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수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하며 포로로 끌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 무서운 재앙이 다시 한번 제자들이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예루살렘 성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일어날 모든 환난이 아무 의미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이라고 하셨습니다.
22절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무슨 의미일까요? 실제로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거역할 때 이와 같은 징벌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26장 31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대항할 때 “내가 너희의 성읍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 2세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광야에 모아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언약을 맺을 때,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한다면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신 28:53).
그 이후로도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호세아, 미가, 스가랴 등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를 대적하고 거절하는 백성을 징벌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사 34:8; 렘 5:29; 6:1~8; 26:1~9; 46:10; 50:27; 단 9:26; 호 9:7; 미 3:12; 슥 8:1~8).
특별히 제자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성전에 대한 징벌이 기록된 말씀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왕상 9:6~9).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실제로 586년(370여년 후) 하나님은 자기에게 돌아선 백성을 말씀하신 그대로 벌하셨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높은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이 재건되고 예루살렘 성이 복원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자기 하나님을 거절했을 때, 결정적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땅에 온 하나님을 그들이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때(요 1:11),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을 예루살렘과 그 성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 며칠 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손에 의해 죽게 될 것입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치며 자기 하나님을 십자가에 없애 죽이라고 외치는 백성들의 손에 의해 말입니다(마 27:25).
가까운 미래에, 역사적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40년이 흐른 뒤, 징벌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날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날에 어떤 재앙이 있을까요?
23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절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 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학살과 살육이 계속되는 그 날에 아이 밴자들(임산부), 젖 먹이는 자들은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큰 환난을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백성에게 임한 무서운 진노를 피해 빨리 도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수많은 사람이 칼날에 죽임을 당할 것이고, 또 수많은 사람이 이방에게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예고하신 예루살렘 멸망의 참혹한 모습입니다.
40년 후 실제로 예루살렘에 이러한 무서운 환난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로마 티투스 장군의 군대들이 성을 에워싸 완전히 고립되었을 때 굶주림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삶아 먹었습니다. 약 11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습니다. 9만 7천여 명의 백성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된 자들은 애굽이나 제국 여러 영토 곧 이방 지역에 사로잡혀 갔고, 건설 현장에서 강제노역하거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던져졌습니다.
참 무서운 환난입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죽거나 끌려가고, 성은 박살 났습니다. 완전히 끝이 난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4절)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방인의 때”라는 기한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참 신비로운 표현입니다. “이방인의 때”. 그때가 다 차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찰 때까지 하나님을 거절한 유대인들은 억압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자기 골육 유대인을 간절히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여기에도 기한이 나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그때까지는 이스라엘의 더러가 우둔하게 됩니다. 유대인이 멸망 받음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풍성히 누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롬 11:11~12). 그동안 유대인 중심으로 흘러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 중심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럼 유대인을 위한 미래는 이제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이방인의 때가 차고 나면” 밟혔던 유대인들이 속량을 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이 두 번째로 나오는 “인자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본 먼 미래에 어떤 징조와 함께 그날이 오는지 살펴봅시다.
2. 인자의 징조(25~28절)
25절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절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이방인의 때가 차고 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받고 나서,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피와 같이 됨-계 6:12),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하늘의 권능들(천체)이 흔들립니다(마 24:29; 사 13:10; 34:4). 계시록에 보면 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낮 삼 분의 일에 비춤이 없다고 말합니다(계 8:12). 온 세상이 암흑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바다와 파도에도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계시록 말씀에 보면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 땅에 쏟아져 땅, 수목의 삼 분의 일이 타 버릴 것”을 말합니다(계 8:7).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의 삼 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이 삼 분의 일이 죽습니다”(계 8:8~9).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면 무서운 파도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외에도 계시록에 기록된 이 날의 징조는 끔찍하고 무섭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갖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서워할 것입니다. 기절할 정도로 무서워할 것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염려하여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일 것입니다.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공포를 아십니까? 이 날엔 지구 전체가 그 비행기처럼 요동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마침내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27절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자주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십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능 그리고 영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시며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무서운 징조, 그리고 무한한 능력과 영광을 지니신 왕, 예수님의 재림. 이 일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절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이런 일 즉 하늘에 무서운 징조가 일어나고, 땅과 바다가 흔들리고, 마침내 인자가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는 것입니다.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났지만 뭔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전에는 일어나지 못했고 머리를 들지 못했던 것이죠. 24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방인들에게 밟혀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에 유대인들은 마침내 머리를 들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 “너희” 곧 유대인의 속량이 시작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태복음에 따르면 인자가 큰 능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는 또 다른 대상이 등장하는데, 바로 “땅의 모든 족속”입니다. 이방인을 가리키는 표현이죠. 그들은 인자가 오는 것을 보며 통곡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30).
왜죠? 그들에게 주어진 기한이 이제 끝났고 그들에 대한 심판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일어나 머리를 들고 자기를 속량하실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유대인을 회복하실 때가 이른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날에 하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마 24:31) 천사들을 보내실 것이고, 그 천사들이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대적으로 온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막 13:27).
이것이 장차 유대인에게 임할 속량의 날입니다. 인자가 오시는 그 날에 이런 구원의 역사가 유대인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사도 바울은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고 나서 온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가 인용한 이사야 59장 20절 말씀처럼 시온 곧 예루살렘에 구원자가 임할 때,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구름을 타고 다시 임하실 그 때, 그분은 경건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돌이키시고 그들의 죄를 씻으실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분을 믿는 자를 속량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유대인과 맺으신 아브라함, 다윗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고 자기 백성의 땅을 찾아주시며, 자기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그 나라를 다스림으로써 말입니다.
3. 대비하라(29~33절)
자,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고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잘 알고 그 위기를 피하라고, 대비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 비유를 더해주셨는데, 29절과 30절에 그 비유가 나옵니다.
29절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절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예수님의 비유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였는데, 다른 모든 나무를 통해서도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감람산에 무화과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이 비유는 생동감이 넘치는 비유였을 것입니다.
겨울에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습니다. 겨우내 딱닥 하고 생명력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가지가 연하여지고(마 24:32), 싹이 나고 잎사귀를 내면 곧 여름이 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5~6월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예수님은 단지 계절이 돌아온다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싹이 나고 잎사귀가 나면 곧 열매를 맺을 것을 너희가 알지 않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무가 보여주는 신호를 읽을 줄 알았습니다.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마 24:32; 막 13:28). 나무를 보면서 가지가 연해지는 징조, 싹이 나는 징조, 잎사귀가 나는 징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열매 맺는 날이 곧 올 것을 기대하고 대비하는 것처럼, 조금 전까지 말씀하신 징조들이 올 때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31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에게 속량이 찾아온 날부터 이 땅에 시작되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아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실 것을 말합니다.
그 전에 일어날 여러 징조들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고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강조하며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큰 환난이 일어나고 일월 성신에 징조가 생기고 바다와 파도가 요동하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이는 환난의 시기가 길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다. 한 세대 안에 징조의 시작부터 인자의 임재까지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 13:20)
환난은 극심하겠지만 그 기간은 아주 길지 않을 것입니다. 한 세대 안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징조가 일어날 때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을 구원하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속량의 날을 준비하는 그들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3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아주 강력한 표현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한 말은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말 계획표가 말씀하신 그대로 조금의 오차 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증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어떻게 말씀에 반응해야 했을까요? 흥미롭게도 그들의 세대 안에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징조의 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미리 이것을 알려주시고 피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AD70년 11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9만 7천명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은 정말 예수님의 경고를 기억하고 잘 대비했을까요?
유대인의 반란은 66년부터 열심당원을 통해 시작되었는데, 로마 정부는 그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여러 번 예루살렘을 위협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67년도에는 갈루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갑자기 공격하고 에워쌌는데 쉽게 점령할 수 있었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갑자기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거민의 많은 숫자가 그 공격에 놀라서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스도인 중 많은 사람이 요단 강 건너편 산지 마을 펠라로 숨었고, 일부는 리바누스 산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래서 70년 최후 대접전 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무너지는 성에서 완전히 피신했습니다. J. C. 라일은 제자들이 “주님의 충고에 따라 행동했고, 마지막 포위 때에 있었던 비참함을 피했다”고 말합니다(351p). 그들은 잘 대비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의 말씀은 유대인에게 맞춰진 종말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은 “이방인의 때”입니다. 아직 충만한 수가 채워지지 않았고 유대인의 회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이 거절했기 때문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우리에겐 일월 성신의 징조가 없습니다. 천체가 흔들리고 바다가 요동치는 환난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 오실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주님께서 큰 소리와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죽은 자들 그리고 그 때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 순으로 그 음성을 듣고 공중으로 끌어 올려질 것입니다. 여기도 구름이 나오죠? 예수님께서 공중에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공중에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영원히 우리는 주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인인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주의 공중 재림입니다. 휴거라고도 부르는 이 날은 아무런 징조가 없습니다.
현상으로서 세상에 난리와 소요에 대한 소문이 일어나고 성도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겠지만, 유대인에게 있을 그런 대환난은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환난이 있기 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재난과 핍박을 경험할 때마다 주 오심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자세하게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는 주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주가 모든 믿는 자를 공중으로 끌어 올리실 때 당신은 이 땅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대환난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대환난 끝에 주가 이 땅에 임하실 때 그것을 통곡하며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대비하십시오. 믿는 자를 불러 공중으로 끌어올리시기 전에 그 속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시기 바랍니다. 그 방주에 타는 방법은 돈도 명예도 열심도 아니고 오직 믿음입니다.
둘째로 위로를 받으십시오. 바울은 우리가 어느날 주님의 호령에 따라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을 말하고 나서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살전 4:18). 이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를 다시 만나는 날입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와 근심을 벗어버리는 날입니다. 슬픔과 눈물이 씻기는 날입니다. 낮고 천한 삶을 살았더라도 높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반전을 맞이할 수 있는 날입니다. 주를 위해 한 일에 대한 칭찬을 받는 날입니다. 핍박과 고난에 대한 풍성한 보상이 주어지는 날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섬기는 그분이 약속한 모든 것이 실제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성취되는 날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살았던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 날이 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는 그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그 사실이 우리 삶에 진정으로 큰 기쁨과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