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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世(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완주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庚川面) 가천리(佳川里) 불명산 기슭에 있는 작은 사찰이지만 누가 뭐래도 어엿한 국보 316호다.
그리고 이 절을 찾는 사람들 중엔 ‘열렬한 팬“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 다른 절과 또 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
흔히들 이 절을 두고 수수하지만 당당해서, 규모가 작아서, 없는 것이 많아서 아름다운 절이라고 한다.
이 절을 알게 된 것은 그곳이 고향인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게 2005년 쯤인가?. 그러다 몇 년 후 다시 만났다. 우연히 서점에서 읽게 된 심인보 님의 ‘곱게 늙은 절집’에서다.
그리고는 달려갔다가는 또 한동안 잊고 살았다. ‘곱게 늙은 절집’은 큰 절집이 아닌 암자나 작은 절을 소개하는 책으로 요즘 와서 구입해 읽으려고 하니 품절에다 그나마 나와 있는 중고서적은 갑절 이상 주어야 살 수 있다.
첫 소개로 나온 화암사 편에서 “절로 가는 길은 가난해야 제격이다....”라는 이 말은 비로소 그곳에 도착해서야 실감이 난다.
가을이 시작되는 지난 주말 화암사를 찾았다.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 추부 나들목을 나와 37번 국도에서 다시 17번 국도를 따라 2차선 도로를 달리면 대둔산 입구가 나오고 천등산을 왼편에 끼고 도는 괴목동천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 20분 정도 달리면 화암사라 씌인 작은 작은 이정표가 눈에 띄고, 마을 골목 같은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것도 잠시고 금방 시골길을 만난다.
농로인 시멘트포장 도로변에는 그 흔한 가게도 없고 자칫하면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놓칠 정도로 정말 가난한 길이다. 정체불명의 특산물을 파는 가게나 믿어도 되는지 알 수 없는 방송출연 음식점들로 입구부터 줄줄이 늘어서서 반기는(?) 이 없어 더 좋은 절이다.
이렇게 다시 십 여분을 달리면 그냥 터만 넓혀 놓은 주차장이 나온다. 달렸던 길을 되돌아 보면 이 주차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주차장에서부터 화암사로 향하는 임도와 숲길의 갈림길로 나뉘어진다.
이 갈림길에 화암사 안내판이 있다. 화암사 연혁과 전설을 적어 놓았다.
길은 숲길로, 또는 계곡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뒷짐지고 올라도 30분이면 화암사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니 누구나 오를 수 있다.
우리의 절 대부분이 그렇듯이 절집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절로 드는 길이 아니던가.
지난 장마에 남은 물줄기로 수량은 매우 적으나 깨끗한 물길도 있어 폭포가 되어 내리고 졸졸거리는 계곡 물소리에 심신이 시원하게 적셔온다.
산중이라 물 떨어지는 소리가 깊게 들린다. 주변 산세도 고만고만하고 늘 푸르렀던 상록수의 숲은 잠시 한숨을 쉬면서도 초가을의 바람에 이내 웃는 소리로 바뀐다.
차곡차곡 길을 밟다보면 언제 올랐는가 싶을 정도랄까 아무튼 간에 기별도 안 간 듯 가파른 바위 길 앞에 길손의 수고를 덜어 줄 겸해서 나타나는 것이 생뚱맞은 구조물의 철계단이다.
20분간 거니는 짧은 산길이지만, 숲과 널찍한 흙길과 비좁은 바위길, 벼랑길이 두루 있다.
예전에는 어디로 올랐을까?
“불명산 골짜기 입구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바위벼랑의 허리에 너비 한 자 정도의 가느다란 길이 있어 그 벼랑을 타고 오르면 하늘이 만든 것이요 감춰둔 도인의 복된 땅이다” 대충 이런 요지의 글이 중창비는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
하늘이 만들지도 않고 도인의 복된 땅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세상 밖과는 거리를 두면서 정말 “곱게 늙어 가고 있는 절”이다.
철계단 시작에는 ‘화암사 가는 길, 공공미술과 만나다!’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우화루 꽃잎길’이라고 불려지는 이 계단은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길이 아닐런지.... 화암사를 짝사랑한 시인 안도현의 시와 수필도 만났다.
나는 문득 안도현 시인이 다음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시가 궁금했다.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다 나만 바라보고 싶은 ‘화암사’
대중매체의 기행문에서 소개하는 글을 보고 찾은 여행지가 때로는 실망을 줄 때가 있다.
화암사는 막연히 알고 찾았다가는 정말 싱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규모로 말하자면 우리들 고향 동네 뒷산 어딘가에서도 만날 수 있는 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찾아서 떠난다면 느끼는 맛은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높여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올랐다기보다 동네 야산을 산책한 정도의 철제계단을 모두 오르면 땅은 완만해지면서 푸른 산 아래 기와지붕부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화암사.
나무다리를 건너기 전에 세속에서 남은 미련은 떨치고 들어서라는 뜻인지 아니면 주지 스님의 넓으신 자비인지 국보로 지정된 소중한 사찰 면전에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흡연구역’의 팻말이 이채롭다.
작은 개울을 지른 통나무다리 건너 나무기둥 몇 개가 세월이 지나간 모습 그대로 몸체를 받치고 버티고 섰다.
마당에 들어서니 ‘불명산화암사(佛明山華巖寺)’라는 현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우화루(雨花樓).
경사면에 막 생긴 돌을 써서 석축을 쌓고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마루를 내어 마당을 확장한 지혜가 돋보이는 누각이다. 일반적인 사찰처럼 산문(山門) 중 첫 번째인 일주문 현판에 씌어질 이름이 우화루에 붙어 있다.
일주문과 사천왕상도 없는 빈약한 절이라고 처음 방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지금도 절을 대하는 내 안목이래야 별반 나아진 것이 없지만 한 번 가고 또 가면 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우화루 아래는 석축으로 막혀서 왼쪽으로 내어 준 짬으로 드나들 수 있는 돌계단이 조심스럽게 반긴다.
절 안은 남북으로 우화루와 극락전, 동서로 적묵당과 불명당이 마주 앉아 있어 마당이 네모반듯한 ‘ㅁ’자형이다. 규모가 경북 안동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반집 가옥 형태인 ㅁ자형으로 어느 대감집보다 작고 소박하다. 마당의 크기도 누각만하다.
세월이 그대로 묻어나는 원목 느낌의 옛스러움은 우화루가 지족불욕(知足不辱)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
지족불욕( 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스스로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지 않으며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
올 해 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국민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자들이 우화루 앞에 섰다면 좀 나아졌을까?.....
우화루(雨花樓).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이름도 건축만큼 아름답다. 적묵당. 툇마루에 앉아 잠시 몸을 쉬니 불명산 자락과 하늘이 어울려 가을을 재촉한다.
적묵당은 뒤쪽으로 ㄷ자 형의 승방으로 그 안에 만들어진 마당은 승려들의 생활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의 금지되어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우화루를 바라보니 마루가 높지 않아 마치 마당과 텅 빈 우화루의 마루가 연결된 하나의 공간과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마당이 작은 줄을 모른다.
세월을 지키느라 눈만 커진 목어 한 마리와 목탁이 아무런 채색도 없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반가웠다. 잘 있었구나!
화암사 목어는 마곡사 목어와 선암사 암자 누각에 걸린 목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어 가운데 하나라고 하니 다시 볼 수밖에.
화려한 덧칠을 하지 않은 빛바랜 모습이지만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충분히 내뿜고 있었다. 절집만 잘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극락전.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하앙식(下昻式)구조를 지닌 건물이다 '하앙(下昻)'은 일종의 겹서까래로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인데,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여 있다.
극락전 현판도 글자마다 하나씩 나눠서 써서 하앙과 하앙사이에 걸었다 화려하게 조각된 포작 장식물과 하앙사이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지 않도록 배려한 결과라고 한다
이것은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고르게 받친다. 극락전 앞쪽 하앙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나, 건물 뒤쪽 하앙은 꾸밈없이 뾰족하게 다듬었다.
뒤쪽이라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문화재 관련 보수를 나온 듯한 분이 용의 꼬리라고 한다.
듣고 보니 또 그럴 듯하다. 단청장엄의 고운 오색은 간 데 없고 기둥위에 짜여진 공포며 도리, 서까래의 나무결은 세월에 삭을 대로 삭았는데 누가 그 뜻을 알랴.
쉽게 말해 '하앙(下昻)'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하앙양식이 발견되면서 일본의 건축문화가 중국에서 직수입되었다는 학설이 힘을 잃게 되었다고 함)
극락전 내부로 들어가 예를 올리고 불단을 바라보니 이곳 절집에 어울리는 아담한 금동아미타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본 어느 여행객의 “참! 예쁘다”는 소리가 귓전에서 멈춘다. 불단위의 닫집(절에서 불상을 감싸는 작은 집이나 불상 위를 장식하는 덮개. 집의 모형)이 환상적이다.
극락전 내부 촬영 실패로 이 두 사진은 카페 '불교문화재의 이해'에서 퍼옴
용 한 마리가 눈을 뻔히 뜬 채 힘차게 꿈틀거리는 모습은 친근감을 주면서도 부처님을 호위하듯 긴장된 시선은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비천상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하마터면 예사롭게 스쳐갔을 불전속의 닫집에서 한 쌍의 비천 [천상에 사는 천인, 천녀 혹은 천(天)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초인간적인 힘이 있고 자유롭게 날 수 있다 함. 출처 : 세계미술사전]이 하늘을 날아 오르는 곳이 극락세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비천이 아름다운 닫집으로는 이곳 화암사와 함께 화성 용주사 대웅전, 부산 범어사가 유명하다고 한다.
화암사 동종 극락전 안엔 도 유형문화재인 동종이 있다. 역시 400년 전 만들어진 종이다. 일제 강점기 때 무기 제조에 쓰기 위해 종을 강탈하려는 왜경들이 들이닥쳤는데, 이를 알고 종이 스스로 울자 스님이 종을 땅에 파묻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철영재 뒤꼍에 외롭게 서있는 부도. 누구의 것일까?
절 뒤쪽으로 나있는 임도로 하산 시작.
절을 감싸고 있는 불명산의 기운을 한 뭉텅이 받아서 간다.
애써 지우려하지 않아도 첩첩인 쌓인 산 너머로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깊어오고 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마음을 정겹게한다.
아름다운 가을처럼 모든 이들의 삶이 높게 푸르게 풍성해졌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곱게 잘 늙어가기를 바란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없어 질 때 우리는 아쉬움을 느낀다. 더러는 욕심을 부린다. 화암사를 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그런 생각이 느껴지지가 않더란 것이다.
곱게 늙어가기. ‘그저 열심히 맑게 살자’
완주의 별미
경천저수지 30년 전통의 숨은 맛집. 산수장가든
무우청 시래기와 장맛으로 비린내를 다스려서 팔팔 끓여서 나오는 붕어찜. 냄비만 끓다가 닳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혀도 마음도 같다
전화 : 063) 263 - 5078
주소 : 완주군 화산면 화평리 14-1
이외 화산 참붕어찜, 약수가든이 있으니 선택은 자유
첫댓글 [늙으니 더 아름답도다]
화암사, 내사랑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안도현 作 『화암사, 내사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