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황구지천에서 날아온
청둥오리 한 마리
석양을 등지고 저 혼자 상념에 잠겨 있다
6월의 논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튼실한 내력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루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노인이 털털거리는
늙은 자전거를 아주 느리게 밟는다
좁다란 농로가 젖먹이 어린애처럼 노인의 짐받이에 얹혀
엄지손가락을 한가로이 빨고 있다
역시 석양이 그 등 언저리 어디께쯤 비루고 있다
지나간 시간이
한순간에 잘게 부서져 금광맥처럼 쏟아져 나온다
Loser 시 한 편을 읽다가
문득 그 석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한 번도 나의 등을 비춘 적 없는,
갓 출시된 1g짜리 돌 반지만 한 노을도,
아침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은 낙지 머릿속에 든 알밥처럼
황조가 가사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그 옆에 왜가리도 와아~악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혼자이고
짝 잃은 청둥오리도 논둑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전에는 보지 못했다
오늘따라 묵직한 금광석을 싣고 가는 탈탈거리는
늙은 자전거 뒷모습이 한결 가볍다
- 시집〈카멜이 바늘귀를 통과한 까닭〉여우난골
사진 〈Bing Image〉
연 꽃
한 영 숙
세상의 굳은살 박인 수만 개 울타리를 지나 촉수 낮은 붉은 전구가 젖 물리는 어머니 방. 그 어린 시절 감자 머리통만 한 가난들이 양말 뒤꿈치로 등 떠밀려도 꼴깍꼴깍 안온의 경이를 삼키는, 한삼매 젖은 눈빛과 눈빛 사이 연등이 하늘하늘 흘러가던 그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