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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엮음, <박인환 번역 전집>, 푸른사상, 2019년 9월 30일
【일러두기】
1. 작품들을 시, 기행문, 소설로 분류해서 발표 연대순으로 배열했다.
2.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특수성을 살리는 것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대 맞춤법 규정에 따랐다. 의미를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는 어휘는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병기했다.
3. 작품의 본래 주(註)는 원문대로 수록했다.
4. 부호 사용은 단행본 및 잡지와 신문명은『 』, 문학 작품명은「 」, 다른 분야 작품명은 < >, 대화는 “ ”, 강조는 ‘ ’ 등으로 통일했다.
5. 글자의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는 네모(□)로 표기했다.
【책머리에】
2008년 간행한 『박인환 전집』에서 빠진 번역 원고들을 『박인환 번역 전집』으로 묶는다. 시장성의 문제로 오랫동안 묵혀오고 있었는데, (재)인제군 문화재단의 도움으로 다행히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편협한 모더니즘에 갇혀 있던 박인환의 시 세계가 『박인환 전집』 이후 열리게 되어 이제는 어떤 연구가도 박인환 시인을 참여의식이 없는 명동의 댄디보이로 평가하지 않는다. 앞으로 박인환의 시 세계는 더욱 활발하고도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될 것이다.
(재)인제군 문화재단은 물론이고 박인환 연구에 큰 힘을 주시는 문승묵 선생님께, 연보를 감수해주신 박인환 시인의 아드님 박세형 선생님께, 자료 입력에 많은 수고를 해주신 이주희 시인께, 인정 많은 최병헌 손흥기 시인께, 여러 도움을 주신 권태훈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편집 작업에 수고해주신 한봉숙 대표님을 비롯해 푸른사상의 식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동안 나는 여러 권의 책을 내었다. 그렇지만 되돌아보았을 때 학문이 깊지 못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앞으로 박인환 연구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박인환 시인이 번역한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은데,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거기에는 악인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나 참다운 선인이 훨씬 많았다.”
2019년 9월 21일
맹문재
【작품 해설】
전쟁 반대와 예술 및 추리의 세계
―박인환의 번역 작품론
맹문재
1.
주지하다시피 박인환은 해방기 이후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시인이다. 1948년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함께 ‘신시론’ 운동을 추구하며 동인지 신시론(산호장)을 발간했고, 1949년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함께 ‘신시론’ 동인지 제2집에 해당하는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을 발간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피란지 부산에서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고 모더니즘 시 운동을 지속했다.
박인환은 모더니즘 운동을 심화하기 위해 영미 문학론을 탐색했는데, 특히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과 스펜더(Stephen Spender)의 시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오든(Wystan Hugh Auden)의 시론,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실존주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생애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또한 1954년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 등과 함께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발족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인기 배우들, 영화화된 문학 작품들, 영화 시론 등을 활발하게 발표했다. 박인환은 1955년 3월 5일부터 4월 10일까지 36일간 대한해운공사의 상선 ‘남해호’를 타고 미국 여행을 했다. 새로운 문물을 탐구하려는 것으로, 즉 모더니즘 시 운동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박인환의 번역 작업 역시 이와 같은 차원으로 이해된다. 박인환은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는 ‘청록파’류나 정치적인 지향에 경도된 ‘조선문학가동맹’류의 시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시어로 현대사회를 반영하려는 것을 지속 및 확대하기 위해 외국 작품을 읽고 독자들에게 전한 것이다. 박인환이 번역한 작품을 발표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백조사, 1952. 5. 15)
2) 윌리엄 아이리시의 소설 「새벽의 사선」(『희망』 2권 8호, 1952. 9. 1)
3) 제임스 힐튼의 소설 「우리들은 한 사람이 아니다」(『신태양』 21호, 1954. 5. 1)
4) 알렉스 컴포트의 시 「도시의 여자들을 위한 노래」(『시작』 2집, 1954. 7. 30)
5)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사건의 핵심」(『민주경찰』 44호, 1954. 11. 15)
6)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바다의 살인」(『신태양』 28호, 1954. 12. 1)
7)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백주의 악마」(『아리랑』 2권 2호, 1956. 2. 1)
8) 펄 S. 벅의 소설 「자랑스러운 마음」(『여원』 2권 2호, 1956. 2. 1)
9)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법문사, 1959. 10. 10)
10)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의 이름이라는 전차」
2. 전쟁과 관계된 작품들
『소련의 내막』은 미국의 소설가인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이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와 함께 1947년 7월 말부터 약 2개월 간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특파원으로 소련에 다녀온 뒤 발표한 기행문이다. 1948년 1월 14일부터 31일까지 신문에 연재된 뒤 바이킹 프레스(Viking press)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큰 반향을 울렸다. 이 기행문은 정치적인 면보다 민중들의 삶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해 제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의 실정을 구체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존 스타인벡은 독일군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폐허화된 곳곳을 복구하는 소련 민중들의 눈빛에서 재건의 희망을 보았다. 또한 러시아 민중들이 세계의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악인보다는 참다운 선인이 훨씬 많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전쟁을 바라지 않는 러시아 민중들의 마음을 미국인들에게 제대로 전했다.
존 스타인벡은 고학으로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1925년 학자금 부족으로 중퇴하고 작가생활에 투신했다. 육체노동으로 전전하다가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별장지기를 하면서 소설을 발표하였다. 1937년에 발표한 『생쥐와 인간』은 두 노동자의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미국 희곡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1939년의 『분노의 포도』에서는 기계화 농업의 압박으로 농토에서 쫓겨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변천하는 사회 양상과 함께 그려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96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에덴의 동쪽』은 남북전쟁에서 제l차 세계대전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에덴동산을 찾아 미래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들은 한 사람이 아니다」는 제임스 힐튼(James Hilton, 1900∼1954)의 작품이다. 의사인 데이비드는 극장의 댄서인 레니 아르가드레바나의 부러진 손목을 응급 치료를 해주면서 인연이 된다. 데이비드는 매주 금요일을 산드마스의 해안에서 보내는데, 그곳의 연예장에서 댄서로 일하는 레니가 해고되자 자살을 시도한 것도 접하게 된다. 데이비드의 치료로 레니는 소생했지만 자살 미수범이라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기가 어렵게 된다. 그리하여 데이비드는 레니를 원조하려고 자신의 아들인 제럴드의 보모로 고용한다. 그렇지만 아내인 제시카는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레니를 싫어한다. 그러는 사이에 영국과 독일의 전쟁으로 동원령이 공포된다. 데이비드는 레니를 살리기 위해 런던으로 가는 열차를 탔지만 플랫폼에서 체포된다. 데이비드가 레니와 함께 집을 나오던 날 제시카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민중들의 삶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힐튼은 영국 소설가로 『잃어버린 지평선』(1933), 『굿바이 미스터 칩스』(1934) 등이 대표작이다. 193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로 거주지를 옮겨 1942년 영화 <미니버 부인>을 작업해 오스카상(극본상)을 받았다. 『잃어버린 지평선』을 통해 이상향 또는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샹그릴라(Shangri-La)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알렉스 컴포트(Alex Comfort. 1920~2000)가 쓴 「도시의 여자들을 위한 노래」는 박인환 시인이 추구한 반전(反戰) 의식이 담긴 작품이다.
오 눈(雪)과 불타는 포화의 세계여
밤과 요동하는 램프의 국토여
오 동포와 적의 밤이여
나는 그대와 만났다 그대는 또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대의 손은 고독에 빠져 있는 애인들과
모든 노래와 아직 출생하지 않은 어린애에의
복수에 빛나는 별로서 가득 차 있다
포화 속의 ‘애애(哀愛)로운 공주’여
그 여자의 애인은 전사했다
그 여자의 애인은 전사했다―
모든 공동(空洞)의 자궁을 위해 해어진 손가락을 위하여
복수는 불꽃이 되어 저편 별들을 향하여 비상한다
―「도시의 여자들을 위한 노래」제1∼4연
위의 작품의 화자가 마주한 상황은 “오 눈(雪)과 불타는 포화의 세계여/밤과 요동하는 램프의 국토여/오 동포와 적의 밤이여”라고 노래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전쟁이다. 포화로 세계가 불타고 국토가 요동치고 동포와 적의 밤이 놓인 것이다. 그리하여 “포화 속의 ‘애애(哀愛)로운 공주’”의 “손”에는 “복수에 빛나는 별로서 가득 차 있다”. “복수는 불꽃이 되어 저편 별들을 향하여 비상”도 한다. 그 이유는 “그 여자의 애인”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알렉스 컴포트의 1940년대 반전운동은 1950∼60년대의 반핵 운동으로 이어졌는데, 궁극적으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인간의 노화에 대해 연구하며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매달렸다. 사회로부터 오는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자 및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했다. 그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전쟁을 지목했다.
3. 예술 세계의 소설들
「자랑스러운 마음」은 펄 S. 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의 작품으로 한 여성 조각가의 삶을 통해 예술가의 길을 조명하고 있다. 수전은 마크와 스무 살에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출산 비용 때문에 판매한 조각상이 인연되어 조각계의 거성인 반스에게 공부하는 기회를 갖는다. 반스는 수전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파리로 와서 공부할 것을 여러 차례 제안하지만 수전은 거절한다. 그렇지만 수전은 조각을 손놓지 않고 <민중>이라는 제목의 군상을 제작해 현상 모집에 응모해 당선된다. 그리고 남편이 균이 있는 우물물을 먹고 돌연 사망하자 자신의 공부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러나 킨네아드와 만나 결혼하면서 예술보다 생활을 우선한다. 그러다가 정이 없고 새로운 여자가 생긴 남편에 실망해 <아메리카의 행진> <춤추는 러시아인> 등의 군상 제작에 몰두한다. 수전은 고향에 있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달려간 뒤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을 뜬 아버지를 조각하기로 다짐한다.
펄 S. 벅은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10년 대학을 다니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1914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1917년 중국 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 박사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는데, 큰딸은 정신박약아였다. 펄 S. 벅은 중국의 영혼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작품을 그려내었다. 빈농으로부터 입신하여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 일가의 역사를 그린 『대지』(1931년)가 그 좋은 예이다. 펄 S. 벅은 1938년 미국의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중국에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전쟁고아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의 전략사무국 중국 담당으로 들어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어 박진주(朴眞珠)라는 이름을 가졌다. 한국전쟁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3년)와 한국의 혼혈아를 제재로 한 『새해』(1968년) 등을 썼고, 1965년 다문화아동 복지기관인 펄 벅 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였다. 196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을 세워 10여 년 동안 한국의 다문화 아동들을 위해 복지활동을 펼쳤다.
『이별』은 윌러 캐더(Willa Sibert Cather, 1873~1947)의 장편소설로 제3부로 구성되었다. 루시 게이하트는 해버퍼드 출신으로 18세의 나이에 시카고로 음악 공부를 하러 간다. 음악에 천재성을 가지고 있고 성격이 쾌활하다. 그녀의 부친 제이콥 게이하트는 시계 수리하는 일을 하며 거리의 악대를 인솔하고 있다. 루시는 시카고의 아우어바흐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는데, 어느 날 아우어바흐 선생의 친구인 클레멘트 세바스찬의 독창회를 듣는다. 루시는 중년의 나이에 부르는 그의 노래에 매료된다. 그 인연으로 루시는 세바스찬의 반주자인 제임스 모크퍼드가 다리 수술을 하게 되자 대신 연습 시간에 피아노 반주를 맡게 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세바스찬이 동부 지방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을 때 해버퍼드에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해리 고든이 루시를 찾아와 청혼한다. 루시는 세바스찬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그뒤 세바스찬은 영국, 프랑스 공연과 아내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물론 시카고로 돌아올 것을 루시에게 약속한다. 그 사이 해리 고든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안타깝게도 코모호에서 배가 전복되어 세바스찬이 사망한다.
제2부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루시가 고향인 헤버퍼드로 내려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아버지, 언니 폴린, 이웃의 램지 부인 등의 도움을 받고 과수원에서 햇볕을 쬐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한다. 아우어바흐 선생에게 다시 공부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편지도 받는다. 그렇지만 만날 때마다 따스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냉정하게 대하는 해리 고든으로 마음이 상한다. 루시는 스케이트를 타러 강에 갔다가 그만 익사한다.
제3부는 루시가 세상을 뜬 지 25년이 지난 이야기이다. 그녀의 아버지 게이하트가 세상을 떠 장례를 치른다. 선량한 사람들이 조문을 많이 왔다. 루시의 언니인 폴린도 세상을 떴다. 게이하트 집안이 문을 닫은 것이다. 루시가 세상을 뜬 뒤 해리 고든은 게이하트와 친하게 지냈다. 경제력이 없는 게이하트를 위해 담보로 잡은 집보다 많은 돈을 자신의 은행에서 빌려주었다. 루시에게 사죄하려는 것이었다. 해리는 은행 출납계인 밀턴 체이스에게 게이하트 집을 넘기고 잘 지켜주기를 부탁한다.
윌러 캐더는 미국 소설가로 미국 평원의 개척자와 정착민들의 삶을 그렸다. 1903년 첫 시집 『4월의 황혼』을 출간한 뒤 소설 쓰는 데만 전념해 1912년 첫 장편소설 『알렉산더의 다리』를 간행했다. 『나의 안토니아』(1918), 『오 개척자들!』(1913) 등에서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개척자들의 기상과 용기를 그렸다. 『우리 것 중의 하나』(1922)와 『사라진 여자』(1923)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4. 추리 세계의 소설들
「새벽의 사선」은 오전 1시 10분 전부터 6시까지 일어난 연애, 절도, 살인, 범인 체포 등을 쓴 윌리엄 아이리시(William Irish, 1903∼1968)의 추리소설이다. 뉴욕의 홀에서 댄서로 살아가는 미스 브리키와 그녀에 관심을 갖고 있는 퀸 윌리엄스는 고향이 같다는 사실로 가까워진다. 퀸은 미스 브리키에게 자신이 그레이브스 집에서 자외선 램프 공사를 하다가 금고에서 돈을 훔쳤다고 토로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돈을 금고에 갖다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금고가 있는 방에 갔을 때 청년 신사의 사체가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절도범뿐만 아니라 살인범으로 체포될 운명에 처해진 두 사람은 살인범을 잡기 위해 나선다.
윌리엄 아이리시는 미국 소설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이다. 본명은 코넬 조지 호플리 울리치(Cornell George Hopley-Woolrich)이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면서 영화 작가로 활동하던 1930년 결혼하였지만 파경을 맞아 뉴욕의 허름한 호텔에서 모친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살았다. 뉴욕주 하츠데일의 페른클리프 묘지에 안장되었다. 아이리시 작품의 장점으로는 치밀한 논리적 구성, 등장인물들을 밀어붙이는 압도적 상황, 도시적인 우수와 슬픔을 던져주는 분위기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문체이다.
「바다의 살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추리소설이다. 해리 모건은 쿠바의 땅 하바나의 항구에서 선원으로 살아간다. 중국인을 플로리다 등에 밀항시키는 일의 유혹을 받지만 거절하는데, 배를 고용해서 낚시를 배우던 존슨이 용선료며 낚시 도구 파손비 등을 지급하지 않고 플로리다로 도망가자 생각이 달라진다. 아내와 딸 셋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커진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인 밀항, 주류 밀수, 쿠바인 밀항 등에 손을 대는데, 결국 생명을 잃고 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의 소설가로 전쟁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를 받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완성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일생 동안 그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그는 스무 살에 제1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소설의 제재가 되었다. 1940년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노인과 바다』(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했다.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백주의 악마」는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의 작품으로 탐정 푸아로가 잉글랜드 데번 주의 해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해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해변가의 호텔에는 푸아로, 가드너 부처, 미스 브루스터, 바리 육군 소령, 스티븐 레인 목사, 레드펀 부처(남편 패트릭, 아내 크리스틴), 블래트, 마셜 부처(남편 케네스, 아내 알리나) 등이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미모의 여성으로 항상 남자 관계를 맺어 스캔들을 일으키는 알리나가 해변가에서 교살당했다. 푸아로의 추적 끝에 범인은 알리나와 함께 밀회를 가졌던 패트릭이고, 공범자는 그의 아내인 크리스틴으로 밝혀진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영국 추리소설 작가이다. 메리 웨스트매컷(Mary Westmacott)이란 필명으로 연애 소설을 집필하였으나, 80여 편의 추리 소설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녀가 창조해낸 에르퀼 푸아로와 제인 마플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의 작품은 영어권에서 10억 부 이상 팔렸고, 103개의 언어로 번역된 다른 언어판 역시 10억 부 이상 판매되어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 또한 그녀의 희곡 『쥐덫』은 1955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2012년 11월까지 공연 중이다. 1971년 대영 제국 훈장 2등급(작위급 훈장)을 받았다.
5.
박인환이 번역한 작품들은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전쟁을 반대하는 작품들,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작품들, 그리고 추리 세계의 소설들로 나눌 수 있다. 박인환이 번역한 작품들은 총 10편인데,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은 사후에 간행되었다. 그의 타계 이후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박인환 번역 전집』에서는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사건의 핵심」(『민주경찰』44호, 1954. 11. 15)을 발굴하지 못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의 이름이라는 전차」도 찾지 못했다. 작품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쉬움이 크다.
「사건의 핵심」을 쓴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1991)은 영국 소설가이다. 그의 작중인물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타락한 장소이고, 분위기는 악이 만연한 것을 강조한다. 그의 『스탬불 특급』(1932) 『권총을 팝니다』(1936) 『밀사』(1939) 『공포의 성』(1943) 등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제3의 사나이』(1949)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첩보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욕망의 이름이라는 전차」를 쓴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미국 극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이과나의 밤』 『유리 동물원』 『지난여름 갑자기』 등이 있다.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환상과 낭만 이면에 숨어 있는 현실의 문제를 주제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박인환 시인 연보】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아버지 박광선(朴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사이에서 4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나다. 본관은 밀양(密陽).
1933년(8세)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하다.
1936년(11세)
서울로 이사.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에서 거주하다가 종로구 원서동 134번지로 이사하다.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39년(14세)
3월 18일 덕수공립보통학교 졸업하다. 4월 2일 5년제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다. 영화, 문학 등에 심취하다.
1940년(15세)
종로구 원서동 215번지로 이사하다.
1941년(16세)
3월 16일 경기공립중학교 자퇴하다. 한성중학교 야간부에 다니다.
1942년(17세)
황해도 재령으로 가 기독교 재단의 명신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44년(19세)
명신중학교 졸업하고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3년제)에 입학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의과, 이공과, 농수산과 전공자들은 징병에서 제외되는 상황.
1945년(20세)
8․15광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하다. 아버지를 설득하여 3만원을 얻고, 작은이모에게 2만원을 얻어 종로3가 2번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개업하다. 초현실주의 화가 박일영(朴一英)의 도움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고 많은 문인들이 교류하는 장소가 되다.
1947년(22세)
5월 10일 발생한 배인철 시인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중부경찰서에서 조사 받다(김수영 시인 부인 김현경 여사 증언).
1948년(23세)
입춘을 전후하여 마리서사 폐업하다. 4월 20일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 발간하다. 4월 덕수궁에서 1살 연하의 이정숙(李丁淑)과 결혼하다. 종로구 세종로 135번지(현 교보빌딩 뒤)의 처가에 거주하다. 겨울 무렵 『자유신문』 문화부 기자로 취직하다. 12월 8일 장남 세형(世馨) 태어나다.
1949년(24세)
4월 5일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동인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 발간하다. 7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내무부 치안국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다.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後半紀)’ 동인 결성하다.
1950년(25세)
1월 무렵 『경향신문』에 입사하다. 6월 25일 한국전쟁 일어남. 피란 가지 못하고 9․28 서울 수복 때까지 지하생활하다. 9월 25일 딸 세화(世華) 태어나다. 12월 8일 가족과 함께 대구로 피란 가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1951년(26세)
5월 육군종군작가단에 참여하다. 10월 『경향신문』 본사가 부산으로 내려가자 함께 이주하다.
1952년(27세)
5월 15일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백조사) 번역해서 간행하다. 6월 16일 「주간국제」의 ‘후반기 동인 문예’ 특집에 평론 「현대시의 불행한 단면」 발표하다. 『경향신문』 퇴사하다. 12월 무렵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하다.
1953년(28세)
3월 후반기 동인들과 이상(李箱) 추모의 밤 열고 시낭송회 가지다. 여름 무렵 후반기 동인 해체되다. 박인환은 해체 반대하다. 5월 31일 차남 세곤(世崑) 태어나다. 7월 중순 무렵 서울 집으로 돌아오다. 7월 27일 한국전쟁 휴전 협정 체결.
1954년(29세)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하다.
1955년(30세)
3월 5일 대한해운공사의 상선 ‘남해호’를 타고 미국 여행하다. 3월 5일 부산항 출발, 3월 6일 일본 고베항 기항, 3월 22일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항 도착, 4월 10일 귀국하다. 『조선일보』(5월 13, 17일)에 「19일간의 아메리카」 발표하다. 대한해운공사 사직하다. 10월 1일 『시작』(5집)에 시작품 「목마와 숙녀」 발표하다. 10월 15일 시집 선시집(산호장) 간행하다. 시집을 발간했으나 제본소의 화재로 인해 재간행하다(김규동 시인 증언).
1956년(31세)
1월 27일 『선시집』 출판기념회 갖다(문승묵 엮음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박인환 전집』 화보 참고). 2월 자유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다. 3월 시작품 「세월이 가면」 이진섭 작곡으로 널리 불리다. 3월 17일 ‘이상 추모의 밤’ 열다. 3월 20일 오후 9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하다. 3월 22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다. 9월 19일 문우들의 정성으로 망우리 묘소에 시비 세워지다.
1959년(3주기)
10월 10일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법문사) 번역되어 간행되다.
1976년(20주기)
맏아들 박세형에 의해 시집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간행되다.
1982년(26주기)
김규동, 김경린, 장만영 등에 의해 추모 문집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간행되다.
1986년(30주기)
박인환 전집(문학세계사) 간행되다.
2000년(44주기)
박인환의 고향인 강원도 인제군청과 인제군에서 활동하는 내린문학회 및 시전문지 『시현실』 공동주관으로 ‘박인환문학상’ 제정되다.
2005년(49주기)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박인환』(문학사상사) 간행되다.
2006년(50주기)
문승묵 엮음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박인환 전집』(예옥), 맹문재 역음 『박인환 깊이 읽기』(서정시학) 간행되다.
2008년(52주기)
맹문재 엮음 『박인환 전집』(실천문학사) 간행되다.
2012년(56주기)
강원도 인제군에 박인환문학관 개관되다.
2014년(58주기)
7월 25일 이정숙 여사 별세하다.
【앞날개】
박인환(朴寅煥)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다.
1933년(8세)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하다.
1936년(11세) 서울로 이사해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39년(14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다.
1941년(16세) 경기공립중학교 자퇴하고 한성중학교 야간부에 다니다.
1942년(17세)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44년(19세) 평양의학전문학교(3년제)에 입학하다.
1945년(20세) 8․15광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개업하다.
1948년(23세) 입춘을 전후하여 마리서사 폐업하다. 4월 20일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 발간하다. 4월 덕수궁에서 이정숙(李丁淑)과 결혼하다. 12월 8일 장남 세형(世馨) 태어나다.
1949년(24세) 4월 5일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동인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 발간하다.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後半紀)’ 동인 결성하다.
1950년(25세) 1월 무렵 『경향신문』에 입사하다. 6월 25일 한국전쟁 동안 피란 가지 못하고 9․28 서울 수복 때까지 지하생활하다. 9월 25일 딸 세화(世華) 태어나다.
1951년(26세) 5월 육군종군작가단에 참여하다.
1952년(27세) 5월 15일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백조사) 번역해서 간행하다. 6월 16일 「주간국제」의 ‘후반기 동인 문예’ 특집에 평론 「현대시의 불행한 단면」 발표하다.
1953년(28세) 여름 무렵 후반기 동인 해체되다. 5월 31일 차남 세곤(世崑) 태어나다. 7월 중순 무렵 서울로 돌아오다.
1954년(29세)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하다.
1955년(30세) 3월 5일 대한해운공사의 상선 ‘남해호’를 타고 미국 여행하다. 10월 1일 『시작』(5집)에 시작품 「목마와 숙녀」 발표하다. 10월 15일 시집 『선시집』(산호장) 간행하다.
1956년(31세) 1월 27일 『선시집』 출판기념회 갖다. 3월 시작품 「세월이 가면」 이진섭 작곡으로 널리 불리다. 3월 20일 오후 9시 자택에서 타계하다. 3월 22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다.
1959년(3주기) 10월 10일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법문사) 번역되어 간행되다.
2014년(58주기) 7월 25일 이정숙 여사 별세하다.
【뒷날개】
푸른사상에서 간행된 전집 넣음
【맹문재 약력】
『김남주 산문 전집』에 사용한 것을 판권에 넣음
【뒤표지 글】
우리들은 러시아의 민중도 세계 중의 다른 민중과 동일하다는 이외의 결론을 꺼낼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악인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나 참다운 선인이 훨씬 많았다.
― 박인환 옮김, 존 스타인벡의 『소련의 내막』 중에서
모든 경험이 그의 소유로서 남아 있다. 때에 따라서 슬플 때도 있을 것이다. 허나 슬픈 밤은 있어도 밤이 밝고 아침이 오면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 박인환 옮김, 펄 S. 벅의 「자랑스러운 마음」 중에서
이곳에서 너무나 많은 경험을 쌓아왔으므로 영원히 이곳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고향의 동리라고는 하지만 자기로 하여금 허다한 실망에 부닥치고 또한 그것에 이겨나간다는 것을 가르쳐준 곳은 이 장소 이외에 또 다른 곳이 어디 있을 것인가?
― 박인환 옮김, 윌러 캐더의 『이별』 중에서
2019년 09월(박인환 번역, 해설, 연보, 서문 등)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