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님이 쓴 글을 참 좋은 내용입니다. 나도 동감합니다.
나는 조선시대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장점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조선시대는 사회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비교적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 또 사회적으로 비교적 평등했다(노예제 사회에 비해), 철학과 문학이 발달했으며, 서민문화가 발달(나는 이것은 결코 동의하지는 않습니다)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장점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연구자들이 한 책을 보면 되겠지만, 내가 조선시대에 대해서 비판적 안목을 갖는 것은 단 한가지 측면입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고 스스로를 가둔 시대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북애자의 규원사화에 이런 말이 있지요. 조선의 역사를 모르고, 중국의 역사만 안다.
또 북창 정염이 하던 말. 내가 오대십국 시대에 태어났으면 돌림 천자한번은 했을것이다는 말.
조선시대 사람들은 스스로가 동국, 동이, 변방임을 자처하고 스스로가 세계의 standard 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가 뭐 그렇지 하는 생각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의 한계를 긋고 현실에 안주하는 제후국으로 그저 살아갔습니다. 이것은 백성들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위정자들이 그렇게 백성들의 기백까지도 죽인 것입니다.
( 조선시대 백성들은 중국놈을 뙤놈이라고 했습니다. 뙤놈은 본래 대국놈이란 뜻인데, 뙤놈이라고 부르는 말 속에는 결코 존경심이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미국인을 양키놈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미국이 큰 나라임은 인정하지만, 오노같은 놈을 결코 환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역사가 변할 수도 있고, 천하의 중심은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고려시대 진화의 이야기를 들어보았겠지요. 북방의 미개하고, 송은 쇠퇴하고 있다. 이제 고려가 중화다는 의미의 글 말입니다)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이지요.
내가 조선시대를 비판하는 것은 지도층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첫번째 조선초기에 대해서 비판은 조금은 가볍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원나라의 지배를 경험했던 인간들입니다. 원의 속국에서의 삶이란 정말 끔찍한 것입니다. 일제의 지배보다 더 지독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 지배를 받으면서 스스로 대륙세력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고, 그것이 결국에 가서는 사대외교를 하게 된 셈이지요. 한번 뜨거운 맛을 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뜨거운 맛을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지요.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불굴의 용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아쉽기만 하지요. 내가 이성계와 주원장의 글을 올린 것은 그 때문입니다. 주원장 역시 원나라의 지배하에서 핍박받은 사람이지요. 그렇지만 원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리버님의 의견처럼 조선초기에는 분명 실리적 사대였습니다. 우선은 조선의 정치를 안정시키자. 핍폐한 농민들을 살리기 위해 과전법을 실시하고 백성을 우선 잘살게 하자. 그것이 훈구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훈구파를 이긴 사림파들은 지나친 명분론에 치우쳤습니다.
나는 조선초기보다 조선후기를 더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이만 하더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깨닫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지만, 그의 제자인 김장생-김집을 거쳐 제자인 송시열에 이르면 완전히 명분이 우위에 서고 실리는 사라집니다.
효종은 북벌을 이야기하지만, 송시열은 북벌을 내세우면서도 먼저 임금의 덕이 바로 세워야 한다고 운운하면서 실제로 군비를 증강하고, 북벌에 나설 장군과 병사를 모으는 일은 스스로 회피했습니다. 그는 겁쟁이였습니다.
그는 도리어 김장생-김집이 완성한 예학과 보학을 내세워서 사대부들이 비록 임진왜란때 일본군에 의해 쫓겨다녔지만, 명나라를 불러와서 나라를 구하지 않았느냐. 우리들이 하는 일이란 너희 백성들과는 다르다. 백성들이 일으킨 의병이 나라를 구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가 나라를 구했고, 그것을 성사시킨 것은 우리 사대부들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까불지 마라. 백성들은 사대부에게 예를 다해라, 어딜 감히 넘보느냐. 너희와 사대부는 혈통이 다르다. 이 족보를 보아라. 여자들도 괜히 전쟁때 일본군과 싸웠다고 생생내지 말고 집안에 들어가라.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이렇게 백성들을 깔아뭉게고, 이미 권위를 상실한 사대부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권위를 세우는 노력의 한 가운데 바로 명나라에 대한 사대가 있었습니다. 이미 망한 명나라를 끝까지 존숭한 이유는 명에게 조선이 사대하듯, 백성들은 사대부에게 예를 다하라. 그것이 질서다는 것입니다.
즉 조선은 이미 임란과 호란의 와중에 깨어진 사회질서를 다시금 붙잡기 위해 죽은 명나라의 혼령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조선의 사대가 가져온 가장 극악한 것이지요.
나는 여러분들께 한명기 선생이 쓴 "광해군" 책을 보라고 권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덕일 선생의 "송시열" 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겠습니다.
우리 역사의 가장 극악한 변곡점이 바로 이 시대 17세기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때 조선이 완전히 거세된 나라가 되었다고 봅니다. 한 나라의 미래 비젼도 없고, 그저 없어져야 할 권력층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엉터리 철학을 내세워 민중을 핍박한 시대로 나는 이 시대를 극도로 나쁘게 평가합니다.
인조반정. 그 최악의 사건. 실리가 죽고 헛된 명분이 무덤에서 살아나와 조선을 암울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나는 평가합니다.
사학과에 다니시는 분들은 나의 이러한 조선시대에 대한 혹평이 너무 지나치다고 할 것입니다.
나 또한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비난할 것은 비난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칭송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조선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나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이 되는 역사적 교훈을 찾는 작업, 우리에게 모델이 되는 역사를 찾는 작업을 합니다. 내가 이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보고 그 관점에서 우리가 비난할 것은 비난하고, 배울 것은 배우자는 것입니다.
나는 고구려가 연개소문 집권 이후 경직된 사회분위기가 결국은 나라를 망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권력이 너무 집중되어 그 폐해가 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의 새로운 대응에 맞대응을 하지 못해서 나라가 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집권층의 내분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이런 점들은 분명 실패의 역사이며, 비난의 대상이며, 우리가 따라하지 말아야 할 교훈의 역사입니다.
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그들의 잘못하면 한 사람이 망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망치고, 심지어 나라와 민족이 망치게 됩니다.
나는 임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위정자들이 나라를 변모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나라를 위해 싸웠던 의병장들을 죽이고, 나라를 위해 싸웠던 백성들을 도리어 착취하는 그 나쁜 행태에 대해 분개합니다.
병자호란때 왜 의병이 적게 일어났는 줄 여러분 생각해보셨습니까.
위정자가 자기 일신의 안녕을 위해 백성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백성들은 나라를 등지게 됩니다.
어떤 분이 내가 이성계와 주원장에 대해 쓴 글을 읽고 이것은 오늘의 위정자들에게 향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나 또한 오늘의 위정자들에게 일갈합니다.
너희들의 정권 안정을 위해 외세에 사대하느라고 백성들의 이익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너희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또 백성을 착취하려고 하겠지. 하지만 들어라. 역사를 배운 이들은 이제 다시 또 과거처럼 무능하게 너희 위정자들의 행위를 묵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라. 이놈들아.
가슴속에 시꺼먼 도둑놈 심뽀를 지닌 위정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백성들의 이익을 팔아먹는 짓거리를 한 것들은 단언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백성들이 비록 지금은 힘없고, 말없지만, 결국은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실리적 사대가 아닌, 맹목적 사대,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행한 엉터리 사대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다면서 나라의 미래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떠나라, 착취당한 백성들아" 라고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