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일 설교 2024년 4월 21일
요한 10:11-18. 1요한 3:16-24
부활의 참된 완성은
16세기 스페인의 위대한 신비주의자 십자가의 성 요한은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탁월한 설명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믿음의 기원은 지성(지력)에서 나오고, 소망은 기억에서 일어나며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숙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성 즉 이해력에서 믿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기억하는 것에서 바람 즉 소망으로 더 나아가며 내가 원하는 것 즉 의지에서 좀 더 깊이 나아가면 사랑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이 모든 일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독서로 들은 요한의 편지는 온통 사랑에 대해 권고로 가득합니다.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3:18)
이 말을 듣는 우리에게는 묵직한 울림과 동시에 부담감이 함께 떠오릅니다. ‘진실하게 사랑함’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자유’, ‘선택’ ‘의지’에 비해 ‘사양’, ‘희생’, ‘헌신’의 의미가 떠올려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는 대상일 때도, 사랑을 주는 입장일 때도 이 단어의 무게감은 상당합니다. 분명한 것은 사랑은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단 한 번 일어난 후 멈춘 것이 아님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느리지만 끊임없이 우리 자신 안에서 도도한 강물처럼 천천히 그리고 넉넉하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화려하거나 요란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저 ‘희생과 헌신’으로만 생각할 가벼운 개념이 아닙니다.
주고받는 보상의 개념이 몸에 밴 우리에게 사랑은 고루한 것, 추상적인 의미일 수도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깊게 묵상합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 스스로 정체를 밝히신 착한 목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합니다.
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착한 목자인가요?
오히려 효율적으로 양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 좋은 목자가 아닐까요?
“착한”의 헬라어 원어 칼로스(καλοσ)는 질서 있는, 건전한, 참됨의 뜻이 있습니다.
단순히 선한 목자가 아니라 강하고 능력 있는 진정으로 자비로운 목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목숨을 바칠 정도의 목자는 양을 위한 어떤 희생도 할 수 있고 양들이 진정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목자라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의미를 한 걸음 더 들어가 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예수님의 이 선언은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한 선포라고 묵상이 되더군요.
착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차이를 아는 것은 세상을 사는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자의 마음 자세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착한 목자와 삯꾼 목자 모두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욕구와 원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릅니다.
진정으로 신뢰하고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보호하는 존재가 착한 목자라는 사실입니다.
그 근원에 바로 하느님께서 이미 나를 알고 계신다는 믿음과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보호하신다는 소망 그리고 나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신 사랑 그 자체임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보다 더 깊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먼저였음을 깊이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나(우리)가 해야 할 사랑에 대해 알게 됩니다.
사랑은 느리고 더딥니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랑받음으로써 진실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시초를 하느님에게서 찾습니다. 모두가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이의 실패에 안도하지 않고 다른 이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조급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손해를 볼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느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리에게 물려본 아픔과 뿔뿔이 흩어져 버린 두려움과 상실감을 체험했기에 이제 우리는 다시는 영적으로 나약한 허상 즉 삯꾼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리인지 어느 것이 옳은 길인지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리와 같은 허상뿐인 두려움에서 벗어나 참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전하는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제대로 깨닫고 알아들으며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두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리의 세력이 사방에서 덤빌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시기에 우리도 하느님을 알고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된다는 진리를 깊이 깨달읍시다.
그것을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고백합니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 자세입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기쁨의 희로애락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할 것을 정확히 아뢰는 것이 소망입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은 마음가짐입니다.
이제 사랑의 시작은 놀랍게도 우리가 바라는 것 즉 욕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말도 깊이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몸으로 살아냄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깊이 알아듣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완성해 나가도록 힘써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