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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순수가 동심을 만날 때
동화작가
최미혜
Ⅰ. 해설에 앞서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박남수 <아침> 일부분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시는 어린 독자를 전율케 했다. 어둠이 새를 낳고 돌을 낳다니 이런 발상을 한 시인이 도대체 누군지 궁금했다. 새벽에 깨어나 이 현상을 목격한 어린 독자는 박남수 시인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시를 찾아 달달 외우며 시인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작가가 되기 위한 시동이었다.
한 시대의 작가군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작가가 ‘나는 무슨 소명으로 이 땅에 태어났는가.’를 매일 반추하며 어린 독자를 섬기는 자세로 몸을 낮춘다면 글의 품격 또한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읽어야 할 작품 수는 동시 14편, 동화 9편이다. 2020년 11월부터 2012년 7월호까지 <문학도시>에 실린 작품이다. 9개월간 실린 내용 중 참신성과 상징성, 실험적인 작품 몇 점을 평하고자 한다.
Ⅱ. 풍덩! 작품 속으로!
①
코로나19로 학교도 못 가는데 이젠 태풍까지 불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장난처럼 싱겁다. 눈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마음은 바깥으로 내달리고 있다. 놀이터에라도 가서 놀고 싶은데 나갈 수 없으니 마음뿐이다.
학교 안 갈 때 놀이 공원에 가고 싶지만 문을 열지 않으니 갈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모두 금지 구역이다. 피시방, 노래방, 인형 뽑기방…….
엄마는 백화점이나 팬시점도 절대 가지 마라고 한다. 영화관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안 된다, 친구들과 모이는 것도 안 된다, 뭐든 안 된다는 것뿐이다.
“엄마, 어디 나갈 수 없으니 심심해 죽겠어. 집 안에서 처박혀서 뭘 하란 말이야?”
“이럴 때 책 많이 읽으면 좋잖아.”
“에이 따분해.”
“그럼 레고라도 하든지.”
“그건 백 번도 넘게 했어.”
“그럼 어쩌란 말이야. 엄마도 힘들어 죽겠어. 정 그렇다면 시골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 줄까?”
“거기도 싫어. 함께 놀 사람이 없잖아.”
“그럼 참아야지. 시골에 가라고 해도 안 한다면 방법이 없지.”
2020. 11. 김재원 동화. <방아깨비 따라 뛰고 싶어!> 일부분
제목 속에 아이의 갈망이 엿보인다. 코로나로 힘겹게 하루를 보내는 아이의 일상이 눈에 선하다. 작가는 태풍을 데려와 기상이변이 왜 왔는지를 은유적으로 묻는다. 그러면서 문명의 이기를 아무런 감사 없이 누리는 삶을 잠시 불편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집안의 비상구역에 성냥과 초를 늘 준비했다. 그러나 정전이 없는 요즘에는 이런 돌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할뿐더러 스마트폰의 손전등으로 얼마든지 초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갑자기 닥치는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 글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정전일 때 엘리베이터가 멈춘다는 사실을 저학년 아동인 경우 모를 수 있다. 부모가 없으면 당황하고 그러다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
②
바깥이 조용하다. 태풍이 벌써 지나간 건가? 창문을 쪼끔 열어 보았다. 그 순간 창문 틈으로 황소바람이 휙 들어왔다. 촛불이 꺼져 버렸다. 아직 다 지나가지는 않았나 보다. 촛불이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없으니 아주 깜깜하다. 금방이라도 등 뒤에서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어서 라이터를 찾아 초를 켜야겠다.
더듬더듬 책상 위를 찾아보았다. 이상하다. 라이터가 만져지지 않는다. 아까 분명히 책상 위에 놓아둔 거 같은데.
한참 더듬다가 책상 다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퍽-.
방바닥에 곤두박질치면서 넘어졌는데 이상하게 금방 방바닥에 닿지 않았다. 어디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방바닥에 큰 구멍이라도 있는지 내 몸을 블랙홀처럼 훅- 빨아 당겼다.
2020. 11. 김재원 동화. <방아깨비 따라 뛰고 싶어!> 일부분
예전에는 잠결이나 꿈속을 판타지로 이용했다. 꿈에서 딴 세상을 만났다가 깨어나면 현실인 구조다. 이런 방법은 뻔한 결론이라 이제 아이들이 더 이상 빨려들지 않는다. 웹툰만 해도 판타지가 자유자재로 운용되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가 장점이라 그런지 무척 황당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빠져든다.
판타지로 가는 길은 작가들이 더 고민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구슬 던지기, 주사위 게임, 카드놀이를 하면서 독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훅 빨려 들어가야 한다. 시각을 넘어 후각, 청각, 촉각, 미각적 활용을 시도한다면 훨씬 신선할 수 있다.
작가는 촛불을 준비했다. 불이 꺼지면서 어린 시절로의 기억이 소환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살았다. 그날도 태풍이 심한 날이었다. 태풍이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마을의 형이 왕잠자리를 잡아 다른 잠자리를 유인하는 걸 마술이라고 생각하며 신기하게 바라보는 풍경.
부모가 퇴근해 오자 전기가 들어오고 주인공은 불이 너무 밝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촛불이 주는 은은한 정서. 순간 주인공은 시골에 가 살면서 방아깨비처럼 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어른도 많이 겪는 일이다. 모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그러하다. 작가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학원살이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뒹군다면 더 창의적인 아이로 자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할머니가 들려주셨지
섬은 육지였다고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내 살붙이
섬아 섬아 둥둥 섬아
자장가 소리 들려오고
섬들은 꿈속에서
엄마 엄마 부른다.
2020. 12. 송순임 동시. <꿈꾸는 섬> 전문
이 동시는 우선 자연스럽다. 리듬감이 있어 암송을 하면 입에 착 감긴다. 먼저 산 이는 손자손녀에게 살아온 경험과 애환을 이야기하며 시행착오를 줄이게 한다. 그게 먼저 산 자의 할 일이며 지혜로운 이의 삶이다. 시를 써놓고 작은 소리로 읽어보면 군더더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조사나 의태어, 의성어의 남발은 읽는 독자의 흥취를 반감시킨다.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적당한 양념이 맛을 낸다. 이 작가의 다른 동시도 그런 점에서 간결하며 맛깔스럽다.
그날 오후였어요.
“형, 여기 알밤이 있어.”
“와! 제법 토실토실하네.”
아랫마을에 사는 형제가 알밤들을 주워 호주머니 가득 넣어 돌아갔어요. 어린밤나무는 아쉬운 눈길로 형제를 바라보았지요. 그것을 본 엄마나무가 말했어요.
“이제 넌 아기들을 낳는 엄마가 된 거야.”
어린밤나무의 눈이 점점 커졌어요.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어요. 어린밤나무는 엄마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어요.
“네. 저는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많은 아기들을 낳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하렴.”
“엄마, 저의 이름은 오늘부터 ‘아름드리’예요.”
“아름드리? 정말 좋은 이름이구나. 우리 아름드리야!”
2020. 12. 박진희 동화. <아름드리> 일부분
뼈아프고 고생스러운 일을 다 겪어보았다는 뜻의 ‘밤송이 우엉송이 다 끼어보았다.’라는 속담은 가시가 있는 밤송이와 갈퀴 모양으로 굽어서 찌르는 우엉의 꽃송이에서 나온 말이다.
어린 시절 율곡의 집 앞을 지나던 스님이 ‘15세가 되면 이 집 아들은 호랑이에게 물려갈 팔자다.’라는 말을 흘리고 간다. 율곡의 부모는 놀라 뒷산에 밤나무를 천 그루 심었다. 아들의 호가 율곡(栗谷)으로 바뀐 사유도 그러하다. 밤을 땅에 뿌리면 밤에서 싹이 나와 꽤 자랄 때까지 밤 껍질이 어린나무 뿌리에 계속 붙어 있다고 하여, 밤나무는 근본(선조)을 잊지 않는 나무로 여겨 밤을 제상(祭床)에 올린다고 한다.
이 동화는 나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우리가 백 년도 못살고 가면서 나무나 자연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나무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보배로운 글이다. 마지막 부분에 아빠와 형제는 산을 다시 올라 칡넝쿨에 휘감긴 밤나무를 살려낸다. 우리 인간사회가 그러하듯, 숲속 나무들에게도 괴롭히는 악당이 있음을 작은 속삭임으로 슬쩍 암시한다.
①
우리 할머니는
컴맹.
컴퓨터 자판 위에
손가락으로
가나다 꼭꼭 찍는
독수리 타법.
지웠다가 쓰고
또 지우고 다시 쓰고.
단축키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2021.01. 오선자 동시. <할머니와 컴퓨터> 일부분
②
학예회 날
강당 벽에
짝지의 시가 걸렸다.
줄지어
시화를 보다가
짝지 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우와,
너무 잘 썼다.”
친구들
칭찬을 듣고
짝지 얼굴이 붉어졌다.
선생님도
“고놈 참.”
2021.01. 오선자 동시. <꼬마 시인> 전문
①은 손자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는 할머니 이야기다. 손자가 잘하는 게 있으면 할머니도 잘하는 게 있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시인의 감수성과 세상에 대한 다정함이 녹아 있다. 손자에게는 쉽지만 할머니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컴퓨터 공부다. 손자가 배운 걸 쉽게 알려주니 할머니는 얼마나 기쁠까. 이제 할머니는 자신감을 가지고 거리를 당당하게 걸을 것이다. 무인 음식점에서 어르신이 음식을 주문하지 못해 쩔쩔매는 걸 봤다. 젊은이가 봤을 때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인데도 처음 대하는 낯섦은 어르신을 주눅 들게 한다.
②는 강당에 걸린 짝지의 시를 보고 칭찬하는 아이 시선이다. 시인은 질투와 시샘이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상대의 잘난 점을 칭찬하는 게 미덕이라는 걸 알린다. 시는 주인공보다 오히려 칭찬하는 친구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도 주인공보다 더 멋진 행동을 하는 이가 사회를 아름답게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①
모두 다혜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주현지, 다혜 좀 봐라. 너희들은 매일 붙어 다니면서 어쩜 그렇게 다르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랑 다혜를 비교까지 하다니. 얼굴도 예쁘고, 상냥하고, 공부까지 잘한다고 엄마는 침이 마르도록 다혜 칭찬이다. 그러면서 꼭 빼먹지 않고 ‘다혜 좀 닮아 봐라.’ 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토라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선생님까지…….
2021. 02. 최명 동화. <요정이 왔어요> 일부분
애증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내밀한 심리묘사가 자연스럽고 촘촘하다. 현지와 다혜. 친하면서도 다투며 크는 아이다. 나머지 숙제를 위해 현지는 학교에 남게 되고 다혜는 기다려 준다. 이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다혜를 칭찬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일상을 세세하고 현실감 넘치게 끌고 가는 작가의 내공이 글속에서 느껴진다.
②
‘다혜가 지금쯤 교문을 지나가겠지. 계집애 잘난 척은.’
책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엔 온통 다혜가 빙글거렸다.
새로 들어온 그림책이 여러 권 보였다. 도우미 어머니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었다. 표지 그림이 예뻐서 모두 읽고 싶었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두어 칸 뒤로 들어갔다. 두툼한 책들이 보였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의 설탕이라고?’
제목을 보니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달래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지금쯤 문방구 앞을 지나가겠지?’
책을 펼쳤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부모님이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요정을 찾아갔다.
‘우와, 어떻게 요정을 찾아갈 생각을 했을까?’
책 속의 요정은 평범한 모습에 양손이 여섯 개의 손가락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던 요정들은 고깔모자에 요술 지팡이를 들고,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라니?
2021. 02. 최명 동화. <요정이 왔어요> 일부분
다혜랑 가기 싫어 도서관으로 향한 주인공. 도서관에 가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다혜를 괴롭히려고 그랬는데 오히려 괴롭기는 자기 자신이다. 그때 나타난 요정.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된 요정이다. 요정은 현지가 다혜랑 가까워지길 권하면서 사과할 기회를 준다. 현지 입에서 나오지 않던 말이 불쑥 튀어나오자, 다혜 또한 자기의 속내를 알린다. ‘우리 엄마도 너를 부러워해.’ 하는 말이다. 현지는 엄마가 입만 열면 다혜처럼 해 봐, 라는 말을 했기에 늘 그게 불만이었다. 거기다 선생님까지 다혜를 칭찬하니 화가 난 거다. 요정은 현지와 다혜가 화해한 걸 보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렇다면 요정은 어디서 나타난 건가. 현지가 읽던 책속에서 등장했다. 결국 책을 많이 읽으면 요정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작가의 능청이 글속에 숨어 있다.
배가 아파서
끙끙거리며
밤새도록 앓던 엄마.
일주일 꼬박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야
겨우 살아났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와 이리 해 놨노.”
“제발 어질지 좀 마라.”
엄마 잔소리에
내 짜증도
다시 살아났지만
그래도 좋다.
엄마 목소리!
2021. 03. 김춘남 동시 <살아났다> 전문
김춘남 시인의 두 작품은 다 밝고 경쾌하다. 춤으로 치면 탭댄스다. 아동문학을 하는 작가들은 마음의 본향인 순수를 놓치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거기다 동심을 소중히 모셔 와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설명적인 글이 된다. 가르치려 드는 시나 동화는 이제 아이들이 읽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주목할 만하다.
우선 엄마를 불러왔다. 엄마가 아프면 온 집안이 살얼음이다. TV소리를 죽이고 아빠는 담배를 덜 피운다. 아이들은 살금살금 안방을 엿보며 엄마 기색을 살핀다. 엄마가 거실과 부엌으로 나오면 안도의 숨을 쉰다. 그만큼 엄마는 집안의 중요한 존재다. 아빠가 주는 산 같은 믿음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나이 먹어도 동심을 간직한다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이런 동시가 탄생하리라. 아프던 엄마가 살아나 ‘제발 어질지 마라, 쫌!’ 할 때 이런 말을 듣는 아이는 행복한 아이다. 그런 잔소리를 그리워하는 아이가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다.
①
“나는 점점 나무가 되고 있단다. 멋있는 일이지.”
유심히 살펴보는 나를 보고 나무가 말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내 몸이 숲이 될지도 몰라.”
나무가 농담을 하며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작은 풀들과 나무들을 보란 듯이 쓱 내밀어 보였다.
“혹, 외계인 아닌가요?”
의심스런 눈빛으로 나무를 쳐다보았다.
“흐흠, 외계인일지도 모르지. 나처럼 이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엔 온몸에 진물이 흘렀단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지. 산에 숨어 살면서 흐르던 진물도 사라졌는데 대신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변했단다. 내가 나무를 좋아해서 그런지 점점 나무와 닮아 가고 있어. 그럴수록 나무가 내는 소리, 풀들이 말하는 소리가 느껴져.
2021. 03. 한미화 동화. <걸어 다니는 나무> 일부분
나무의 탄생을 보면 재미있다. 하늘을 나는 거위는 깃털에 밤송이가 붙어있는 줄도 모르고 날고 있다가 밤송이를 땅에 떨어뜨린다. 곰은 또 어떤가. 지저분한 털 속에 사과 씨앗들이 콕 박히면서 곰이 발을 헛디뎠을 때 곰의 털에 박혔던 씨앗이 땅에 떨어진다.
이 글은 기묘한 울림을 준다. 주인공이 농구를 하다가 산을 봤는데 절벽에 서 있던 나무가 성큼성큼 걸어 사라진다. 주인공은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산을 오른다. 그러다가 산에서 굴러 떨어지고 절벽에서 사라졌던 나무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바이러스에 의해 나무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판을 바꾸면 어떨까. 판타지 동화로 접근했다면 독자의 몰입도는 배가될 것이다. 외계인이 심어놓은 아바타가 그 나무라는 설정은 아이 입을 빌리지 말고 그것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면 흡인력 강한 동화가 될 수 있다.
미국 판타지 드라마 <사슴뿔을 가진 소년>에서는 반인반수 인간이 나온다. H5G9라는 바이러스는 흑사병 이후 최악의 바이러스다. 그 영향으로 임산부는 돼지코 소녀, 사슴뿔 소년을 낳는다. 비약일 수 있으나 미래사회에는 반은 인간이며 반은 식물인 생물 탄생이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이 글은 현재 시점이며 인간으로 살다가 바이러스에 의해 후천적으로 나무가 된 사람이야기다.
이 글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강자의 무자비한 힘에 의해 주인공이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은 한 인간이 주변 환경에 의해 침몰하기도 하고 비상하기도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동화는 병에 걸린 한 인간이 숲으로 도망가면서 일어나는 삶을 보여준다. 작가는 어린 독자로 하여금 환경 문제, 그로 인해 수반되는 역병들, 인간성 고갈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②
“제가 행복할 때는 친구들과 놀 때, 맛있는 것 먹을 때, 게임할 때라서 아저씨하고는 좀 다르죠. 그런데 들어 보세요. 분명 외계인이 아저씨 몰래 식물바이러스를 몸에 넣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들 때문에 사라지는 숲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런데 왜 외계인이 지구의 숲을 지키려고 할까요?”
“흠, 글쎄?”
“그건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면 인류는 지구와 같은 별을 찾으려 할 테고 그러면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식물들은 자신들의 별이 위험해질 거라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아저씨는 지금 그 외계인들이 심은 바이러스 때문에 그들의 아바타가 되어 지구의 숲을 지키는 거죠. 아저씨는 아마도 중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2021. 03. 한미화 동화. <걸어 다니는 나무> 일부분
아이의 엉뚱한 상상에는 많은 복선이 숨어 있다. 외계인들이 심어놓은 바이러스. 지구를 망하게 해놓고 또 다른 별을 찾아 나서는 지구인. 지금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는 바이러스 또한 공포의 대상이다. 닭과 오리의 전염병이나 소, 돼지에게 발생하는 구제역 역시 인간이 자초한 짐승들의 복수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하늘은
맑은 유리 한 장을
갈아 끼우고
동동
몇 조각구름도
말끔히 쓸어 놓았다.
바람도
뒷짐을 진 채
조심조심 비켜 다닌다.
2021. 06. 강현호 동시 <비 갠 뒤> 전문
하늘, 구름, 바람이 조화를 이루는 비 갠 뒤의 풍경이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다. 오랫동안 아동문학계에 몸담아 좋은 시를 많이 써온 시인답게 절제와 여백이 느껴진다. 할 말을 다하지 않으면서 눈빛과 손짓으로 나머지를 채우는 여유로움. 그 속에 감도는 미풍. 비 갠 뒤의 세상 풍경을 마지막으로 평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Ⅲ. 먹구름도 환하게
실컷 울고 나면
먼 길 떠날 수 있다.
2021. 05. 박선미 동시. 부산아동문학상 수상작 <먹구름도 환하게> 전문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많이 울었다. 이제 모든 걸 떨치고 먼 길을 가야 한다. 작가에게 무기력은 녹슨 칼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무기력을 떨치기 위해서는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조심스럽다. 코로나가 물러갈 때까지 때를 기다려야 한다.
굽은 길을 돌아서면 항상 좋은 것이 기다린다는 생각은 나를 설레게 한다. 설렘은 우리를 살리는 힘이다. 어둠이 돌을 낳고 새를 낳고 꽃을 낳듯, 우리 또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숲길을 힘차게 걸어야 한다. 광장까지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굴뚝새가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을 같이 노래하자며 덤빌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첫댓글 최미혜 동화작가님!
문학도시 8월달 작품해설 '순수가 동심을 만날 때' 잘 읽었어요. 앞으로는 평론도 해봐요. 좋아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