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가을 난 가을걷이를 끝내고 쌀값폭락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랠길없어 안절
부절하고 있었다.
40Kg한포대에 6만400원으로 책정된 정부수매가격이 현장(R P C,정미소)에선 5만
4-5천원에 그나마 봄에나 돈을 준다고 하고 있으니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살아가
기가 힘들은 상황에 처하게 된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른직장을 잡고 계속 농사를 짓는 상황인지라 그래도 돈의 구애를
적게 받는 사람인데도 대출금이자며 원금이며 농약값,비료값,애들 학원비에 가슴 미
어지는 돈의 고통을 충분히 받고 있었기에 혹시나 쌀을 이용하여 건강식품이나 그
가공품을 만드는 회사나 상품을 찾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 건강코너를 돌아다니며 살
펴보고 있었는데 다음 까페쪽에 어디선가 13살 소녀의 가슴아픈사연을 접하게 되었
다.
내용인즉 아버지께서 술 담배도 하지않는 사람인데도 매일 밤을새워 농수산물 시
장에서 일하던중 간경화라는 병이생겨 지금 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곧 돌아가시게
되었다. 누군가 우리가족을 도와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병원비를 내지못
해 어머니역시 힘들어 살지못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난 그때 나에게 닥쳐진 쌀판매의 문제는 저 아이에게 비하면 너무나 호사로운 걱
정이란걸 깨닳았고 난 좀 힘든거고 정말 힘든사람들의 걱정은 죽느냐 사느냐 의 문
제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난 여기서 정말 깊은사색에 빠졌고 몇일이고 그어린아이가 외쳐대는 애절한 목소
리를 듣고 있었다.
그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었고 난 백과사전과 인터넷에서 간에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의 마음의 결정은 그로부터 몇일뒤 한포대에 5만 4천원이라는 헐값으로 쌀을 모
두 팔아 얼마간의 대출금을 갚고 마음이 많이 자유로와 지고나자 결행 되었다.
먼저 전화번호부에서 대학병원과 의료원등에 전화를 하여 장기를 공여하는 기관
의 알아보니 국립의료원의 장기이식센타(K N O S) 라는 기관이걸 알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조직만 갖춰놓았지 전혀 성과가 없었던 터라 직원들도 서로 어떻게 설명해
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고 난 좀 실망스러웠지만 내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그들의
안내에 따라 아주대학교에 가서 먼저 사회사업팀과 순수성여부를 상담하고 정신과
의사의 면담과 혈액채취등 7가지 정도를 2회에 걸쳐 조사하고 (5번정도 내원하여)
그결과가 국립의료원에 통보되면서 내 정보는 죽어가는 다른사람들의 희망이 되었
다.
난 M R I 나 C T 등 고가의 검사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고 철회할경
우 본인이 검사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료원직원의 설명에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누
군가에게 내가 필요할것이란것에 정말 기쁘고 즐거운 대기 기간이었다.
과연 날 필요로 하는사람은 어디사는 어떤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그분
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것에 마음 뿌듯했다.
기다리던중 울산에 사시는분인데 서울서 수술을 할테니 이식을 해주겠느냐고 K N
O S 직원의 전화를 받고나서 기쁘게 OK를 했는데 이때부터가 힘든시간의 시작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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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글들
간이식 이야기(1)
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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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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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라려? 글 올리다 탈퇴해 버리면 어쩐데유? 아이디 정지 먹었나요? 빨리 복귀해서 간증 이어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