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한 달여 앞이다. 벌써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는 수능 합격을 기원하는 상품이 가득하다. 그중 가장 고전적이지만 꾸준히 인기를 끄는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엿! 중학교 2학년 역사 ① ‘조선 사회의 변동’ 단원 중 김홍도 ‘씨름’에 등장하는 엿장수가 그 시초일까? 합격 기원의 상징으로 혹은 상대방을 골탕 먹일 때 내뱉는 비속어로 이중적 뜻을 품은 엿의 면면이 궁금하다.
취재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eil.com
도움말 김미경(요리 연구가)·진혜숙 원장(가온국어) 자료 국립국어원 참고 <한국문화기초용어사전>
<동국여지승람>이나 <고려사> 등에 따르면 엿은 단술이나 음식의 조미료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이후 <규합총서>와 <동의보감>에 엿을 만드는 과정은 물론 지역마다 특색 있는 엿을 소개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에 와서 서민들에게 엿이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엿은 언제부터 수험생들의 합격 기원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까? 가온국어의 진혜숙 원장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과장에 가기 전에도 엿을 먹었다”고 설명한다. 진 원장은 “시험에 붙었다, 떨어졌다는 우리말 표현은 엿의 성질을 합격 여부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며 우리 조상들은 시험 합격을 넘어 소원 성취를 빌 때도 엿을 활용했다고 한다.
More talk 조선시대에는 남몰래 공부하는 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과거를 공부하는 자녀를 둔 집에선 하루가 멀다고 엿을 고는 바람에 그 단내가 동네방네 퍼졌기 때문이죠. 당시 부모들은 엿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강했다는데요. 김미경 요리 연구가는 “엿의 주성분인 맥아당이 뇌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서 조선시대 왕들은 새벽에 눈뜨자마자 물엿 두 술을 먹고 공부했을 만큼 엿은 당시 최고의 브레인 푸드라고 설명합니다.
‘엿 먹어라’는 비속어에는 여러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1964년 서울 지역 중학교 입학시험 사건이다. 당시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시험을 치러야 해 중학입시가 대입보다 더 치열했다. 자연 시험에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묻는 문제가 나왔고,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아밀라아제의 옛명칭)’였다. 그러나 일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무즙’도 정답이라고 주장하며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문교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라고 외쳤던 것. 결국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들도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이 사건 이후 ‘엿 먹어라’가 남을 골탕 먹일 때 쓰는 욕설이 됐다고 전해진다.
More talk 엿의 위상이 하락한 데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영향도 있다고 해요. 일본인들이 우리 고유의 엿을 천시했는데, 그 이유는 독립투사들이 주로 엿장수로 위장해 활동하며 그들을 애먹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엿 열 섬을 버려도 방(榜) 붙지 못할 놈”이란 속담도 전해지는데요. 아무리 물심양면 지원해도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 하는 수험생을 두고 비아냥하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수능 합격 기원 선물로 엿보다 껌이 효과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세인트로렌스 대학 심리학과 서지 오나이퍼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험 직전 5분간 껌을 씹으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시험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이는 씹는 운동이 뇌를 활성화하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껌 씹은 뒤 효과는 시험을 시작한 후 약 20분간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껌 씹기는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운동선수들이 껌을 씹는 이유도 긴장감이 해소되고 집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껌을 씹으면 뇌에 혈류량이 증가해 뇌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More talk 교육열이라면 우리나라 못지않은 중국에서는 최근 쭝쯔(綜子)라는 나뭇잎에 싼 찹쌀떡이 대표적인 합격 기원 음식으로 꼽힌다고 해요. 쭝쯔의 ‘쭝’이 중국어로 ‘합격하다’라는 의미의 ‘중(中)’과 발음이 같아 생겨난 문화랍니다. 일본 수험생들은 시험 전날 ‘가츠동(돈가스 덮밥)’을 즐겨 찾는데요. 돈가스의 줄임말인 ‘가츠(カツ)’가 일본어로 ‘이기다’라는 뜻의 ‘가츠(勝つ)’와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