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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외솔 최현배(崔鉉培․1894~1970) 선생이 1932년에 한글이 목숨이라고 쓴 휘호가 발견됐다는 신문 보도를 봤습니다. 당시 경성의 한 음식점 방명록으로 보이는 금서집(錦書集) 속에 들어 있는 이 휘호는 한지에 먹으로 쓴 것으로 외솔의 힘이 넘치는 필체였답니다.
이 달에는 우리의 선배요 스승이신 외솔 선생님의 겨레사랑 한글사랑 정신을 되새겨보고 그 분의 참된 삶을 본받기 위해 누리그물에서 그 분에 관한 글을 퍼 옮겼습니다.
외솔 선생과 청년
외솔 최현배 선생은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3년 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에도 한글 사랑에 일생을 바친 위대한 한글 학자였습니다. 그분이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의 일입니다.
선생의 집 앞마당은 항상 깨끗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와서 마당을 쓸고 가는 낯선 청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웃 사람이 그 청년에게 까닭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함흥 감옥에서 선생님과 한 방에 있었습니다. 제가 배탈이 나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고 굶으면 낫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혼자는 어려울 터이니 같이 굶자고 하시면서 하루 종일 저와 함께 굶으셨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저의 아픈 배를 어루만지면서 정성껏 돌봐 주셨습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 없는 감옥 속에서 받은 그 은혜를 어떻게 해서라도 갚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처지라 선생님의 집 마당이라도 쓸어 드리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외솔 선생의 인품도 훌륭하지만 은혜를 갚으려는 그 청년의 마음씨 또한 갸륵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베푼 것 이상 되받고 싶어하면서, 다른 사람의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요즈음,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더없이 그리워집니다.
치열한 경쟁 의식 속에서 점점 영악해져만 가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돌이켜 봅시다. 참으로 살맛 나는 세상은 이런 훈훈한 인정과 의리와 사랑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국립국어연구원에서 100억이 넘는 나랏돈을 들여서 만든 ‘표준국어사전’이 엉터리라는 것이 국회 문화관광위 윤철상 의원이 낸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그 사전을 만든다고 처음 말할 때부터 잘못된 일로 보고 바로잡기 위해 애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말글 문제의 원천이고 근본으로서 매우 중대한 일이기에 그 관련 글을 첫머리에 올립니다. - 편집실 -
표준국어대사전 한자․일어 합성품
국고 92억 원이 투입돼 8년 간의 연구 끝에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이 순우리말보다는 중국어와 일본어 사전에서 따온 한자 중심으로 구성된 합성품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관광위 윤철상(尹鐵相.민주) 의원은 4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지난92년부터 99년까지 8년 간 국고 92억 원 등 총 11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표준국어대사전이 우리말을 무리하게 한자어로 변용 시켜 한자어가 주(主), 우리말이 종(從)으로 전락하는 등 주체성을 결여한 합성품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학자 500여명이 참여해 제작한 대사전은 50만 단어, 7천328쪽의 방대한 분량이나, 쓰이지 않는 한자어나 파생된 외국어,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단어까지 수록하고 있다"며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의 우리말 쓰임새가 2대 8 정도로 차이가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대표적인 사례로 푸른 하늘이라는 우리말 대신 궁창(穹蒼) 벽공(碧空) 벽락(碧落) 벽우(碧宇) 청공(靑空) 등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나 일본식 한자어 21개가 수록돼있고, 뛰어나다는 뜻의 한자어로 도월(度越) 일군(逸群) 탁발(卓拔) 등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어로 채워진 점 등을 들었다.
또 우리말의 개천을 開川, 변덕을 變德, 오밀조밀을 奧密租密, 호락호락을 忽弱忽弱으로 표기해서 마치 한자어에서 따온 말인 것처럼 오인하게 한 것도 사례로 제시됐으며, 날씨가 흐린 뒤 갬을 뜻하는 담후청(曇後晴)이라는 단어는 일본 사전에도 없는 말인데도 대사전에 소개돼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우리나라의 저명한 학자들이 펴낸 최대의 국어사전이 고작 중국어와 일본어 사전에서 낱말을 옮겨 수록단어 숫자를 늘리거나 아름다운 우리말조차 한자어로 변용 시킨 것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며, 차제에 국어사전이라는 단어도 한글말사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 최종 편집: 2002년 10월 04일 15:04:30
'표준 국어 대 사전'을 보고
우리말 바로 쓰기 모임 회장 김 정섭
1. 대중(표준)으로 삼을 수 없는 '표준 국어 대 사전'
우리 말글살이(언어 생활)를 잘못 이끌어 가는 여러 가지 문제점 가운데서 첫 손가락 꼽히는 것이 바로 '국어 사전'이라는 것은 두루 아는 일이다. 그 동안 제대로 만든 우리말 사전이 없었기 때문에 말과 글을 어떻게 써야 바른 지 몰라서 오랫동안 갈팡질팡해 왔다. 그래서 대중삼을 만한 올바른 사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 새로 펴낸 '표준 국어 대 사전(표준 사전)'은 이런 우리의 바람과는 거꾸로 해방 뒤 곧바로 시작한 '우리말 도로 찾기'부터 '한글만 쓰기', '국어 순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오십 년 넘게 많은 분들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해 온 '고치거나 버려야 할 말'을 바로잡기는커녕 버젓이 '대중말(표준말)' 자리에 올려놓았고, 풀이말과 보기 말(예문)은 온통 일본말과 서양말을 바로 뒤친 말투(직역 투)로 어지럽게 써 놓아서 보는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한다.
2. 잘못 붙인 사전 이름
'국어 사전'이라면 속내를 보나마나 '나라말'이 아닌 '국어'를 바탕으로 만든 사전일 수밖에 없다. '국어 사전'이란 이름은 '우리말 사전'이 아니라 '한자말 사전'이라는 것을 미리 밝힌 것이다. '국어'가 '우리말'이란 생각 바탕에서 만든 사전이 우리말을 제대로 담은 사전으로 태어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바라는 것은 '국어 사전'이 아니라 '우리말 사전'이다.
'국어'는 왜놈 종살이 때 '왜말'을 가리키던 이름이고 '조선 왜말'이라는 것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자말인 '국어'가 아니라 '나라말'이라 해야 옳다. 따라서 사전 이름은 '우리말 사전'이나 '한국말 사전'이라 해야 한다. '국어 사전'이란 이름표를 달고서는 누가 언제 만들어도 '표준 국어 대 사전(표준 사전)'이 태어나면서 안고 있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 없다.
3. 엉터리 대중말(표준말)과 어이없는 본보기 말(예문)
한국말이란 한국 사람이 오늘날, 나날살이(일상생활)에서 두루 쓰는 '겨레말(배달말)'을 바탕으로 삼고 여기에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우리말로 뿌리내린 들온말(외래어)을 아울러 일컫는다. 따라서 '나라말 사전'은 이와 같은 나라말의 뜻매김에 따라 '표준말의 잣대'에 맞는 대중말(표준말)을 올림말로 삼아야 한다. 또 그 쓰임새를 바르게 보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말글살이(언어 생활)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길잡이 구실을 하도록 해야 한다. '표준 사전'은 엉터리 말을 올림말로 실어 어느 것이 대중말(표준말)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고, 요즘 쓰지 않는 중국 고전과 우리 고전에 나오는 옛 중국 한자말, 조선 왜말(일본 한자말), 한문 글자를 짜깁기해서 만든 온갖 말 같지 않은 말을 뒤섞어 놓았고, 서양말도 아직 들온말(외래어)로 뿌리내리지 못한 여러 나라 말을 함께 올려놓았다. 거기에다 쓰임새가 바르지 못한 본보기 말(예문)로 우리말을 비뚤게 쓰도록 만들어 놓았다.
4. 우리말이 아닌 한자말 사전
오십만 낱말이 실렸다는 '표준 사전'에 한자말과 겨레말이 얼마만큼씩 실렸는지 세어 보지 않았지만 어떤 이는 올림말 가운데 한자말이 열에 일고여덟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겨레말 (배달말)보다 한자말이 많다. 겨레말과 들온말(외래어)이 서로 어울려 있는 것이 나라말이지만 어디까지나 겨레말이 바탕이 되고 들온말은 모자란 데를 메우고 깁는 데서 그쳐야 한다.
그런데 '표준 사전'은 앞서 나온 여러 '국어 사전'과 마찬가지로 한자말이 주인이고 겨레말은 조치개(부수적인 것)로 덧붙어 있다. 이런 사전을 보고 배운 사람들은 한자말도 우리말이고 한문 글자도 우리 글자라는 생각에 얽매일 수밖에 없고 끝내 뜻을 나타내는 말은 모두 한자말로 쓰고 겨레말은 토씨로 쓰는 말글살이(언어 생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5. 들온말(외래어)과 버릴 말로 갈라내야 할 한자말
한자말 가운데는 들온말로 자리잡은 것도 많다. 이런 한자말은 두말할 것 없이 겨레말과 마찬가지로 우리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한자말이 다 우리말은 아니다. '고구마, 구두, 가마니, 냄비'가 일본말에서 들어왔지만 일본말을 우리말이라 하지 않고, '야호, 인두, 말, 토끼, 미숫가루'가 몽골말에서 들어왔다고 몽골말을 우리말이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한자말은 '중국 옛말'이거나 '중국 사투리'이고 '일본 한자말'이다. 겨레말보다 더 많이 대중말(표준말)로 올려놓은 이런 한자말은 모조리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따져서 쓸모가 있는 말만 들온말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버릴 말로 갈라내야 한다. 이 일이야말로 우리말을 바르게 하고 '국어 사전'을 '한국말 사전'으로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다.
우리나라 '한문 고전'이나 '중국 고전'에서 뽑아 실은 한자말은 우리말이 아니므로 마땅히 우리말 자리에서 몰아 내야 하고 '사전'에 실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문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평생에 한번 구경하기도 어려운 '옛 한자말'은 '고대 한자어 사전'을 따로 만들어 거기에 실어야 옳다.
다음은, 뜻이 같은 여러 가지 한자말을 쓸 말과 버릴 말로 갈라내야 한다. '편지'를 나타내는 한자말이 '서간, 서한, 간찰' 따위 백 아흔 여덟 가지나 실려 있고, 아버지를 나타내는 말도 '부친, 가친, 엄친' 따위 예순 세 가지가 실려 있다. 이밖에도 '금잠초, 지정, 포공초, 포공영'처럼 뜻이 똑 같은 한자말이 보통 서너 가지씩 실려 있다. 이런 여러 낱말 가운데서 꼭 쓸모가 있는 말만 들온말(외래어)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쓸어 내야 한다.
뜻이 같은 한자말에는 오랫동안 우리가 써 온 한자말과 왜놈 종살이 때 들어온 조선 왜말 (일본 한자말)이 있는데 '처지', '호상'은 우리가 써 온 한자말이고 '입장', '상호'는 조선 왜말이다. 국어 사전에는 함께 실린 '소제(청소), '지진(지동), 출세(입신양명), 배우(광대), 면직 (파직), 형제(동기), 화장(단장), 외출(출입), 기중(상중), 역할(직분) 따위가 그 보기다. 두 가지를 다 들온말(외래어)로 받아들일 까닭이 없다.
뜻이 같은 겨레말과 한자말도 손질해야 한다. '해와 태양', '바다와 해양', '젖먹이와 유아', '아버지와 부친', '어머니와 모친', '아내와 처', '사람과 인간', '한가위와 추석', '수릿날과 단오', '도둑과 도적', '입구와 어귀' 따위 낱말들을 둘 다 '겹대중말(복수 표준어)'로 삼느냐, 한가지만 '대중말(표준말)'로 삼느냐 하는 것도 '나라말 사전'에서 판가름해야 할 일이다.
뜻이 같은 겨레말이 있다면 굳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다. 한자말은 우리가 만든 것이든, 중국 옛말이든, 조선 왜말이든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씻어 내야 한다. '호상'이니 '상호'니 할 것 없이 '서로'라 하고, '세탁'을 버리고 '빨래'라 해야 한다. 한자말을 갈음할 겨레말이 없을 때는 겨레말로 새말(신조어)을 만들든지 뜻이 비슷한 겨레말의 뜻을 넓혀서 뜻매김하여 써야 하고 그것이 어려울 때만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라말 사전에서 할 일이다.
이밖에도 한자말에서 들어와 우리말로 자리잡으면서 소리가 바뀐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은 우리말이므로 굳이 말밑을 밝혀 올림말로 싣는 것은 잘못이다. 한자말인 '고초, 관혁, 백채, 침채, 침장, 성황당'을 '고추, 과녁, 배추, 김치, 김장, 서낭당'의 원말이라고 한 것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다. 이런 말은 '말밑 사전(어원 사전)'에나 실어야 할 낱말이다.
한문 글자는 글자 한 자 한 자가 한 낱말 구실을 하면서 놓인 자리에 따라 글월을 이룬다. '박수'는 본디 '손뼉을 친다'는 한 글월(문장)이다. 하지만, 이런 한문 글월을 우리는 하나의 이름씨로 쓰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박수치다, 축구차다' 따위가 그 보기다. 우리나라 말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한문 '글월'을 글월이 아닌 '한자말'로 치고 여기에 '~하다'를 붙여 대중(표준)으로 삼는다. '박수하다, 축구하다'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표준 사전'에선 '박수치다' 따위를 표준말로써서 우리 말본을 깨뜨렸다. 더욱이 '피로 회복', '안전 사고', '신토불이' 따위 얼토당토않은 엉터리 말과 조선 왜말을 대중말로 올린 것은 우리말을 죽일 작정하고 한 일이거나 아니면 '표준 사전'을 쓰레기통으로 생각하고 마구 쓸어 넣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 한문 글자로 서양말을 소리나는 대로 쓴 한자말도 서양말과 함께 대중말로 올려놓았다. 나라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겁도 없이 사전을 만들겠다고 나선 데서 일어난 일이다. '구라파, 아세아, 영국(잉글랜드), 미국(아메리카 합중국), 독일(도이칠란트), 서반아(스페인), 비율빈(필리핀), 인도(인디아)' 따위 나라 이름과 '낭만(로망), 초자(글라스)', '불(달러)' 따위 소리를 따거나 꼴을 본 떠 만든 한자말은 마땅히 본디 나라말 소리대로 한글로 써야 바르다. 일본과 중국 사람은 '歐羅巴(구라파)'를 '요로빠'와 '어우로바'라 하는데 이는 일본과 중국에서 제 나라 한문 글자 소리대로 '유럽'이라고 읽은 말이다.
6. 서양말은 들온말(외래어) 아닌 남의 말(외국어)
들온말(외래어)은 알다시피 일본말, 중국말, 서양말 따위 남의 나라말(외국어)이 우리말 속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말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말을 덮어놓고 들온말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양말을 갈래 지어 들온말로 명토박은(지정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오늘날 쓰는 어떤 서양말이건 들온말일 수 없다. 아직은 남의 나라말일 뿐이다.
그렇다면 '표준 사전'에서는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서양말을 그 나름대로 들온말 잣대를 만들어 막을 것은 막고 버릴 것은 버리고 꼭 쓸모가 있는 말은 우리말로 바꾸거나 새말을 만들고 그렇게 할 수 없는 말은 본디 소리대로 다듬어서 들온말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 한두 사람이 어느 글 한 귀퉁이에 한두 번 쓴 서양말까지 찾아내어 올림말로 실어 놓았고 뜻이 같은 여러 서양 나라말도 두세 개씩 함께 올려놓았다.
7. 남의 말(외국어)을 바로 뒤친(직역한) 보기 말
'사전'은 낱말의 뜻을 풀이하고 쓰임새가 옳고 그른 지, 비뚤고 바른 지 판가름하는 잣대다. 올림말은 말할 것도 없고 뜻풀이나 보기 말 또한 말본에 맞고 우리말다운 글월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표준 사전'에는 말본에 맞지 않은 올림말도 많고, 남의 말(외국어)을 바로 뒤친 말투(직역 투)로 풀이한 것도 적지 않다. 쓰임새의 보기 또한 알맞지 않은 것이 수두룩해서 '사전' 구실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말을 잘못 쓰는 빌미를 주고 있다.
이수열 님은 '표준 국어 대 사전에 부치는 제언'에서 남의 말을 바로 뒤친 말투의 보기로 '가지다', '~지다', '~되다', '~화하다' 따위와 매김꼴 토씨 '의'를 보기로 들고 잘못을 밝혔고 제움직씨와 남움직씨를 갈래 짓지 않은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시키다'는 '남에게 무엇을 하게 한다'는 뜻인데 나날살이(일상 생활)에서 '스스로 무엇을 한다'고 할 때도 쓰고, '하다'를 붙여 움직씨로 만들 수 없는 말에도 '~시키다'를 붙여 쓰는 일이 잦지만 옳고 그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표준 사전'에선 마땅히 이 말의 쓰임새를 바로잡아 보여야 하는데 '교육시키다' 같은 엉터리 말을 비롯하여 '등록시키다, 오염시키다' 따위를 늘어놓는 데서 그치고 올바른 쓰임새를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풀이하는 말 곳곳에 잘못 쓰는 '~시키다'를 본보기 말로 실어서 우리말을 병들게 하고 있다.
8. 뜻과 쓰임새가 다른 말을 하나로 묶은 억지와 잘못된 말을 표준말로 올리기
이제까지, 초등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갈래 지어 바르게 써 오던 말을 뜻이 같은 한뜻말(동의어)로 묶어서 쓰임새를 헷갈리게 한 것도 적지 않다. '귀고리'는 치레로 귓불에 다는 고리이고, '귀걸이'는 '귀걸이 안경'과 '귀가 시리지 않게 거는 물건'인데 이 두 낱말을 같은 것이라고 하는 어이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드날리다와 들날리다', '메아리지다와 메아리치다', '주인공과 장본인' 같은 말도 소리가 비슷하거나 뜻이 비슷하지만 쓰임새가 아주 다른 말인데 같은 뜻으로 쓰도록 하거나 멀쩡한 말을 바르지 못한 말이라고 해 놓았다. 게다가 '탄신일, 벌서다, 박수치다, 부상입다' 따위 오랫동안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애써 오던 말도 바른 말인 '탄신, 벌쓰다, 박수하다, 부상하다'와 함께 쓸 수 있다고 해서 대중말(표준말)을 흐려 놓았다.
9. 마무리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 펴낸 '표준 국어 대 사전'은 우리말 속에 섞어 쓸 수 없는 한자말, 조선 왜말, 서양말 따위 남의 말과 아무렇게나 짜깁기해 만든 엉터리 말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잘못 쓰는 말을 모아 대중말(표준말)이라는 이름으로 올려놓은 쓰레기통이고, 우리말 속에 일본 말투, 서양 말투를 돌림병처럼 퍼뜨리는 애물단지다. 이 사전으로 말미암아 우리 말이 더 더러워지고 더 병들기 전에 하루바삐 거두어서 불살라 버려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