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곡이가 자꾸 밥값 내라 재촉하는데…” / 조성월 스님
일타 큰스님은 은사 스님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땐
꼭 조성월스님이라고 하셨다.
“내가 말이여 내원사서 중이 될라꼬 하이
아무도 나를 제자로 받아주는 이가 없어.
그른데 조성월스님이 나를 제자로 삼겠다고 자청했다 말이여.
얼매나 고맙던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지.”
시골에서 온 열여섯 살 떠꺼머리총각을
대중들은 아무도 반겨하지 않았다.
머리를 땋아 촌티도 줄줄 흐르는데다가
키만 껑충하게 커 어설프기가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애마냥 콧물까지 훌쩍거려 다들 꺼렸던 것이다.
게다가 내원사 큰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은 다 도인인 줄로 알고,
궁금한 것은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니까
모두들 귀찮은 촌놈이라고 여겼다.
조성월스님은 키도 자그마하고 체격도 작아
말을 안하면 비구니로 오인할 정도로 얌전하셨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할 뿐만 아니라 말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으며
늘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그런 스님이 촌뜨기를 상좌로 삼겠다고 큰방에서 발언을 한 것이다.
온 대중이 놀란 것은 물론이다.
당시는 상좌를 두면 양식값을 사중에 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참선하는 수좌 스님들은
상좌를 둘 생각을 엄두도 못 내었다.
양식값을 내기 위해 탁발을 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큰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도 하루 한 끼에 쌀 서홉이 든다고 계산해서
양식을 내고 공부하였다. 본인의 양식 값조차도
내기 어려운 사정인데도 조성월스님은 용기있게 제자를 두었다.
아마 장래에 도인이 될 거라는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런 어려운 처지여서 출가한 뒤에 강원에 가고 싶었지만,
조성월스님께서는 돈이 없어 보내지 못하셨다.
훗날, 큰스님은 강원이야기만 나오면 조금 아쉬워하셨다.
“우리 스님이 쪼매마 여유가 있았으마 날 강원에 보냈을 낀데.
그 때는 돈이 너무 없을 때라 우짤 수가 없었능기라.”
얼마나 아쉬웠으면 그 때 강원만 갔더라면
글 보기가 훨씬 수월했을 거라는 말씀을 누누이 하셨다.
큰스님은 돈이 없어 강원에 보내지 못한
스승님의 마음은 더 아팠을 것이라고 하셨다.
조성월스님은 젊은 시절엔 제방에서 참선을 하시다가
노년엔 경주 활성리에 있는 연지암에서
근 10여 년을 정진하며 혼자 계셨다.
연지암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96호인
‘석조약사여래입상’이 계시는 곳이다.
말년에는 큰스님이 월내 관음사로 모셔와
절 입구에 있는 요사에서 지내게 하셨다.
조성월스님은 제자이긴 하지만 큰스님을 매우 어려워하셨다.
도인이 된 제자가 흐뭇하기도 하지만
법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해 절절 매셨다.
당시의 이야기를 큰스님 제자 중에 한 분이며
월내 묘관음사 주지를 오래 사신 혜원스님에게 들어보았다.
큰스님이 집에 계실 땐 조석으로 은사 스님 방으로 찾아가
“스님, 밥값 내 놓으시오”라고 종주먹을 들이대었다.
뿐만 아니라 출타해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은사 스님께 들러
“밥값은 언제 낼 거냐”고 인사를 드렸다.
모르는 이들이 오해할지 몰라 한마디 덧붙이지만,
진실로 은사 스님에게 공부로 은혜를 갚아드리고자 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묻는 선문답이다.
그럴 때마다 조성월스님은 언제나 머리만 긁적이다 대답을 못하셨다.
얼마나 들이댔으면 손상좌 혜원스님에게
“혜원아, 향곡이가 자꾸 밥값 내라고 재촉을 하는데
답을 못해 답답해 미치겠다.
언제 밥값을 낼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성월스님이 환한 얼굴로
손상좌 혜원스님을 불렀다.
“인자 밥값을 다 냈느니라”며 기뻐하셨다.
아마 모르긴 해도 흡족할만한 답을 하신 게 아닌가 싶다.
그 후로는 큰스님이 은사 스님께 “밥값 내라”는 소리를
안 하신 것은 물론이다.
월내에서 정진하시다가 어느 따스한 봄날 입적에 드셨다.
그야말로 옛 선사들이 좌탈입망(坐脫立亡)에 드셨다는
말씀 그대로 좌탈을 하신 것이다.
좌탈이란 단정하게 앉아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이다.
조성월스님은 앉은 채로 조용히 입적에 드셨는데,
혜원스님은 그 때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좌탈을 직접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근래에는 전 종정이시며 백양사 방장이셨던
서옹선사(西翁禪師)께서 좌탈에 드셨다.
사찰에서는 매일 아침 쇳송을 치며 염불을 한다.
그 중에 ‘오종대은명심불망(五種大恩銘心不忘)’이라는 염불은,
다섯 가지 은혜에 감사드리며 잊지 않고 명심하겠다는 다짐이다.
다섯 가지 중에 ‘유통정법사장지은(流通正法師匠之恩)’이란
대목은 정법을 알게 해주신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뜻이다.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맹서를 아침마다 하는 셈이다.
일타 큰스님이야말로 은사 스님이 밥값을 하고 떠나시도록 했으니
스승님에 대한 은혜를 갚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