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걸려온 전화
(오형칠)
20여 년 전에는 급한 일이 생기면 전보를 쳤다. 이제 전보는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지금, 전보는 스마트폰, 휴대폰, 일반전화나 이메일과 자리를 맞바꾸었다.
옛날, 전보는 부정적인 일이 많아 어지간하면 전보를 치지 않았다. 아버지 별세, 어머니 별세, 입원 위독 급래라는 등등이다. 사람들이 전보를 받으면 우선 가슴부터 쓸어내린다. 지금은 간혹 축하, 축전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과학이 발달했다 하여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손해 본 사람이 있다. 처음 삐삐가 나왔을 때 감시당하는 사람처럼 자신을 숨길 수가 없는 까닭에 저걸 무엇하려 갖고 다니느냐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다. 지금은 휴대전화 보급률이 100%되었으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며칠 전에 물건을 보내려고 김해공항에 간 아내에게 전보만큼 긴박한(?) 전화가 왔다.
사위와 딸 소영이, 손자 소녀는 5년째 베트남에 살고 있다. 가끔 베트남에 택배를 보낸다. 비용은 1킬로 당 만 원 정도다. 한 달 전에도 7킬로를 보냈다. 외국에 살다보니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기가 쉽지 않다. 소영이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여 우리집으로 보내면 아내가 챙겨 보내곤 한다.
좋은 기회가 왔다. 진영에 사는 아내 친구가 사업차 베트남에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물건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소영이에게 보낼 생필품을 사 모아 두 박스를 만들었다. 청색테이프로 봉하고 다시 노끈으로 묶었다. 그녀는 여기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진영에 산다. 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말했다.
“택배로 진영으로 보내면 좋을 텐데.”
“미안해서 그럴 수 없어요.”
아내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지난 8월 9일은 아내 친구가 베트남에 가는 날이라, 아내는 아침 7시에 김해공항으로 떠났다. 아내는 내 아침밥으로 시리얼, 사과, 우유를 준비해 놓았다.
나는 기도회에 갔다와 조금 눈을 붙인 후 7시 20분에 일어난다. 잠결에 핸드폰이 울렸다. 한참 만에 핸드폰을 들었으나 이미 끊긴 후였다. 다시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메시지를 남기는 중이었다. 일어나 아침밥을 먹으려고 시리얼 이 담긴 그릇에 우유를 부었다. 휘 저어 숟가락을 입에 갖다대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왜 전화를 빨리 안 받아요, 사고 났어요.”
이렇게 말하며 콜택시 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기 속에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하거나 흥분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예.”
아내 몸이 괜찮다는 말을 듣는 순간 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5분이 지났을까. 아내는 그렇지 않지만 나는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 아니라고 느꼈다.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는데 또 벨이 울렸다. 원래 기다리는 사람은 1분도 지루한 법, 더욱이 사고를 당하고 8시에 공항에서 친구를 만나자는 약속을 했으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왜 빨리 오지 않느냐는 목소리로 아내가 물었다.
“지금 어디에요?”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빨리 오세요.”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안한 아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현장에 갔다. 아파트에서 7-8분 거리에 있는 흥동다리다. 러시아워라 자동차는 줄을 이었다. 흥동다리를 지나자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도 무덤덤했다. 한순간 ‘내 말이 맞잖아 택배로 부쳤으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면 현실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 생활 철학이다.
나를 본 그 사람은 인사를 했다. 키가 크고 순하게 보였다. 우리 자동차 뒷범퍼가 떨어져나갔으나 상대방 차는 이상이 없었다. 두 자동차는 운행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 분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차를 다 고친 후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혹시 보험회사에 연락할 일이 생길까봐 사고차를 여기에 두고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라고 했지만 아내는 차를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그 분 말을 믿기로 했다.
“그럼, 그렇게 해.”
아내는 가버렸다. 그 분도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호대 옆에 전경이 있었으나 관심이 없었다.
사고는 이렇게 발생했다. 전하다리 앞에서 노랑불이 들어왔다. 이곳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노랑불이 들어오면 멈춰야 한다는 말을 이집사에게 들었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주었다. 아내는 그걸 의식하고 노랑불이 들어오자 차를 멈추자 곧 빨간불 들어왔다. 하지만 그 차는 아내는 으레 진행할 줄 알고 경적을 울린 후 가다가 아내차를 받았다. 그곳은 약간 경사졌으므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1미터 정도 밀려나갔다. 그게 완충 작용을 했다고 아내는 후에 말했다. 아내는 1분 정도 운전적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 사람은 아내가 다친 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요즘 노랑불이 들어와도 꼬리물기를 하는 수가 많다. 나도 그랬다. 이미 아내 차는 멈춘 상태, 자기는 차간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으므로 자기가 잘못을 인정했다. 변명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다. 작년에 아내가 농협 앞을 지나는데 길가에 섰던 차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다. 100% 방어 운전을 할 수 없는 상대방 과실이지만 아내도 10% 과실이 있다하여 할증료를 내고 있다. 이유는 다같이 움직이는 자동차는 100% 과오를 인정치 않는다고 한다.
아내는 떠난 후 그 분에게 10분 거리에 있는 약국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그분은 회사원으로 교육받으려 가는 중이라고 했다. 차는 백색 구형 아반떼, 넉넉한 삼림은 아닌 듯했다. 차는 시내 중심도로로 진입했다.
“저 사거리에 세워 주세요.”
우리는 헤어졌다. 차에서 내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울긋불긋한 약국 장식, 우리약국이 아니라 새로 개업한 약국이었다. 이미 그 차는 내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두 블록 앞에 내린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하거나 흥분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착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사거리를 지나 약국에서 문을 열고 성경을 치고 정상적인 업무를 보는데 아내는 도착하여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지난번 일이 생각났다. 100% 잘 못이 없다해도 10%만 과실을 인정하면 일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안다. 김해에 도착한 아내에게 삼성자동차에 차를 맡기라가 부탁한 후 자동차 영업을 하는 백집사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삼성에 가 볼 게요.”
백집사는 보살펴 주고 아내를 병원에 태워주었다. 차는 그 다음날 저녁에 찾았다. 어려운 일을 처리해주는 게 고마워 내년에는 백집사에게 보험을 들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경비 70만 9천원을 그분은 삼성에 지불했다. 병원비 2만 2천원까지 보내주었다. 그 분은 인격적인 사람이었다. 아무런 변명이나 핑계도 하지 않고, 차가 언제 나오는지 알아 연락 해주고, 아내 건강도 염려해주었다.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동차를 잘 고쳐줘 고맙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 일상은 마치 시냇물처럼 조용히 흐른다. 순조롭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돌멩이 하나를 내 일상에 던지셨다. 풍덩하고 소리가 나지만 곧 조용히 흘러간다. 내가 너희들의 일상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나 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