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9.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7:15~25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14) 내 영이 아직 살아있는 증거
1. 지난 주 이야기, 율법의 기능
율법의 기능은 구원과 은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함으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율법조차도 변질되었습니다. 죄는 변질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죄를 밝히는 기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씀 앞에 서게 되면 우리의 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죄를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의 무감각’에 빠지지 않고, 거룩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왜 다시 죄를 짓는가?
저는 1998년 찬양팀 리더로 사역자로 ‘경배와 찬양학교’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역자들만 따로 모여 기도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함께 했던 모든 사역자들이 통회하고 자복하며 바닥에 뒹굴고 울부짖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2시간 동안을 기도했습니다.
저도 얼마나 울었는지, 축농증을 앓았었는데 그 근원까지 쏟아져 나와 그만 축농증도 치료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축농증보다도 내 마음에 주의 은혜로 가득한 경험을 했습니다. 세상이 정말 달라보였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달라보였습니다. 햇빛도 공기도 이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벅찬 마음으로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한 주간도 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짜증내고, 힘들어하고, 죄 가운데 자리한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것일까요?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을 다 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거듭남이 거짓일까요?
뜨거움과 열심이 사라진 마음과 답답한 영적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서 있는 우리를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15,19절’을 봅시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롬 7:15,19)
사도바울도 우리처럼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 안에 악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1)
사도바울이 이렇다면 하물며 어리석고 부족한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이는 한편으로는 위로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절망이 됩니다. 바울도 이기지 못한 것을 우리가 이길 수 있겠는가?...
나치에 저항한 위대한 목사요 천재신학자였던 본회퍼도 자신의 시 <나는 누구인가?>에서 이를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집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그 위대했던 본회퍼목사도 이랬습니다.
드디어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탄식합니다. ‘24절’입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한 청년이 목사님에게 와서 상담을 신청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7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것 같은데, 아직 마음이 냉랭하고 굳어져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이 이럴 바에는 신앙을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마음이 굳어져 있고, 부족한 모양으로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영이 아직도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아무 문제도 없고, 내 마음이 굳어져 있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진짜 문제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이 절망적인 고백은 그만큼 사도바울이 신실함으로 바로 서려고 애를 썼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간절한 탄식이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드디어 사도바울은 선포합니다. ‘25절’입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5)
우리 주님이 승리케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감사가 바로 믿음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믿음이 살아 있다는 것이고, 믿음이 살아 있으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반드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아멘.
이제는 ‘힘들다. 힘들다. 괴롭다. 괴롭다.’ 하지 마시고, 감사하십시오.
내 영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이런 자를 우리 주님이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는 죄인도 의인도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좇기만 하면 됩니다. 내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첫째는 '내가 부족한 자'라는 고백을 가지는 것이고, 둘째로 나를 다시 세우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결국 감사가 영을 살리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