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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회고 에세이】
입추에 ‘허수아비 시인’에게 띄우는 편지
― 매년 立秋에 한미순 시인의 ‘허수아비’를 낭송하는 이유
■ 관련 글과 사진 자료 :
https://blog.naver.com/ysw2350/224370679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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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회고 에세이】
입추에 ‘허수아비 시인’에게 띄우는 편지
― 매년 立秋에 한미순 시인의 ‘허수아비’를 낭송하는 이유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입추(立秋)’입니다.
가을을 알리는 입추 절기에는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저의 편지를 받아 보실 분은
‘누구에게라도’가 아닙니다.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매년 똑같습니다.
그분에게 보내는 편지는
주소가 필요 없습니다.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가
전해 줍니다.
▲ 미대생 아들이 그려준 들녘의 허수아비
♧ ♧ ♧
(삽화=AI화백)
■ 가을맞이 애송시
-----윤승원의 가을편지
<허수아비>.
제가 좋아하는 가을맞이 애송시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이 맘 때가 되면 꼭 기다려지는
아름다운 ‘가을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을 사람’을 만나 볼까요?
허수아비 / 한미순 욕심 없는 사랑으로 흰 구름 한 조각 찢어다가 헐렁한 윗도리 지어 입고 담고 싶은 푸른 하늘 우러른 평화로운 가난한 마음이여 추한 모습 무섭다고 얄미운 참새 동무 달아나도 소중한 임의 입김 바람으로 전해오면 날고 싶어 즐거워 춤추는 행복한 천진스런 기쁨이여 빈 채로 서서 소유하지 않아도 두 팔 벌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황금물결 풍요를 한껏 누리는 가을의 사람아 부러운 사람아 |
구족(口足) 화가 한미순 시인이
입에 대롱을 물고 쓴 시입니다.
■ 시인과의 잊을 수 없는 인연
---- 윤승원의 가을편지
저와의 인연이 특별합니다.
그러니까 어느덧 35년 전입니다.
당시 국내 유일의 라디오 문학 프로그램,
KBS 1 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
이곳에 저는 수필을 발표하고
한미순 시인은 시를 발표했습니다.
▲ 시와 수필 방송 녹음테이프 - 당시 국내 유일의 라디오 문학 프로그램이었던 KBS 1 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를 통해 한미순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나는 수필작품으로 서정범 교수의 추천을 받았고, 한미순 시인은 황금찬 시인으로부터 시를 추천받았다. 방송을 통한 <추천작가 글벗>으로서 서신도 오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 ♧ ♧
그런 인연으로
한미순 시인과 서신이 오간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저의 ‘편지철’에는
한미순 시인의 편지가
소중하게 보관돼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쓰인 편지인가요.
중증 장애를 가진 분이 쓰신
‘입[口] 편지’이므로
제게는 보물같이 귀한 편지입니다.
▲ 한미순 시인이 보내준 「손 편지」아닌 「입[口] 편지」(1991년) - 입에 대롱을 물고 타자하여 쓴 편지이다. 참으로 귀한 편지라서 편지철에 소중하게 보관해 왔다.
▲ 나는 한미순 시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 방송을 통해 서로가 시와 수필을 듣고, 신문기사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읽고, 시인은 「입[口] 편지를, 나는 손[手] 편지」를 주고받았다.
♧ ♧ ♧
▲ 중앙일보 기사(1991. 4. 21.) - 한미순 시인의 인생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 소개된 한미순 시인의 『솟대문학』(1991. 5. 14.)
(삽화=AI화백)
♧ ♧ ♧
■ 또 한 편의 가슴 적시는 시
여기서 그칠 수 없습니다.
또 한 편의 가슴 적시는 시를 낭송합니다.
‘겸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그 아픈 여정,
마침내 시인으로부터
진정한 ‘순종’의 의미를 배웁니다.
흐르는 물처럼 / 한미순 흐르지 않고는 죽을 것 같아 낮아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부서지고 아파하며 그저 아래로만 흐르는 물들의 여행 얼마나 깨어지면 그 겸손 내 것이 될까 순종의 길 흘러 흘러 강을 이루고 더 낮은 자리 찾아서 마침내 다다른 바다 … [下略] |
♧ ♧ ♧
이 두 편의 시를 낭송하면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이 두 편의 시를 음미하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 시인과의 인연을 칼럼에 소개한 이유
시인과의 남다른 인연을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데도
저는 일간지 칼럼에
잊지 못할 사연을 썼습니다.
평생 자랑스러운
소중한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 한미순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시 <허수아비>를 언급한 필자의 일간지 칼럼(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윤승원의 세상 風情』 2010.8.10.)
| [윤승원의 세상 風情] 입추(立秋)에 ‘허수아비의 멋’을 배우다 - ‘낮은 자세’로 들녘을 바라보며 윤승원 논설위원 24절기 중 가장 반가운 절기는 입추(立秋)다. 길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입춘(立春)도 설렘이 있어 좋은 절기지만 아직 더위가 한창인 8월 복중에 ‘가을의 시작’을 예고해 주는 입추야말로 지혜롭게 설정해 놓은 절기다. 달력 표기(7일)만 보아도 선들 기운이 살갗에 스쳐오는 것만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아무리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도 입추 앞에서는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다. 자연의 순환은 이렇게 때가 되면 겸손해질 줄 안다. 입추가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한미순 시인의 ‘허수아비’다. 그는 척수마비 장애인이다. 입과 발가락으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구족(口足) 화가이자 시인이다. 나와는 90년대 초 KBS1 라디오의 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글이 당선된 인연으로 잠시 서신 왕래가 있었으나 입에 대롱을 물고 타이핑을 해야 하는 시인의 고충을 생각하면 답장 받아보기가 미안하여 편지 보내기가 망설여졌던 기억이 난다. 문학이란 아픔을 겪어 본 사람만이 제대로 승화된 작품을 빚는다고 믿는다. 누릴 것 다 누리고, 복이 넘치는 사람한테서는 글 다운 글이 나오기 어렵다. 한미순 시인의 시가 다 아름답고 깊은 맛이 나지만, 그중에서 입추 무렵에 읽으면 더욱 가슴에 스며드는 시가 ‘허수아비’다. (하략) |
■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시
--- 윤승원 가을 편지
어렵게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분에게
힘과 용기와 꿈을 주는 시인이기에
그분과의 사연도
혼자 간직하기 어렵습니다.
한미순 시인,
올가을에도 욕심 없이
팔 벌려 안아 줄
‘허수아비’를 통하여
안부 전하고,
‘순종의 길’ 흘러 흘러
마침내 겸손의 경지에 이르는
‘흐르는 물’을 통하여
순수한 마음이 담긴
시인의 ‘아름다운 기도’를 상상합니다.
입에 대롱을 물고 힘들게 쓴 답장을
저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순종의 길 걸어온
시인의 ‘겸손한 기도’가 곧
답장이니까요.
감사합니다.
2026. 8. 7.
입추 절기에
윤승원 회고 記
♧ ♧ ♧
▣ 문학평론가 해설
윤승원 수필가의 「입추에 ‘허수아비 시인’에게 띄우는 편지」는 단순한 회고담이나 계절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한 편의 문학적 헌사이자,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우정의 기록이며, 문학이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는가를 보여 주는 증언입니다.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이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문학평론】
계절을 통해 사람을 기억하는 문학
― 윤승원 「입추에 ‘허수아비 시인’에게 띄우는 편지」
윤승원의 이번 회고 에세이는 계절을 소재로 삼았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문학이다.
입추는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일 뿐 진정한 주인공은 한미순 시인이다.
보통 입추를 소재로 한 산문은 가을 풍경이나 절기의 의미를 노래한다.
그러나 윤승원은 입추를 '한 사람을 다시 만나는 문학적 약속의 날'로 만든다.
매년 입추가 되면 같은 시를 낭송하고,
같은 사람을 떠올리고,
같은 편지를 마음속으로 보내는 의식.
이 반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정신의 의례(儀禮)이다.
허수아비는 시인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단연 '허수아비'이다.
보통 허수아비는 외롭고 쓸쓸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한미순 시인의 「허수아비」는 정반대이다.
허수아비는
욕심이 없고
소유하지 않고
비워 두며
두 팔 벌려 풍요를 바라보는 존재이다.
윤승원은 이 시를 단순히 소개하지 않는다.
35년 동안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인 인생의 교과서로 읽는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들판의 인형이 아니라,
윤승원이 평생 배우고 싶었던 인간의 모습이 된다.
◆ 회고가 아니라 '감사의 문학’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1991년에 받은 편지를 다시 꺼내는 장면이다.
편지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입으로 타자하여 쓴 편지.
그 편지를 "보물"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독자는 장애를 보지 않는다.
인간의 정성을 본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는 문자 하나도 오래 남기 어려운데
35년 동안 간직한 편지 한 통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은 추억을 회상하는 글이 아니라
감사를 기록하는 문학이다.
◆ 자료가 문학으로 승화되는 과정
이 에세이에는
신문 기사,
방송 녹음,
편지,
칼럼,
사진,
추천작가 시절의 기록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
자칫하면 자료 나열이 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윤승원은 모든 자료를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증거"
로 사용한다.
그래서 자료가 설명이 아니라
감동을 만들어 낸다.
좋은 회고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문학은 결국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윤승원이 자신의 문학 경력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미순 시인을 앞세운다.
자신은 뒤로 물러나
시인의 시를 읽고,
시인의 편지를 보여주고,
시인의 삶을 소개한다.
이러한 태도는
'나를 드러내는 글'이 아니라
'타인을 빛나게 하는 글'이다.
그래서 작품은 더욱 따뜻해진다.
◆ 두 편의 시가 만드는 구조적 완성
에세이는
「허수아비」
「흐르는 물처럼」
두 편의 시를 축으로 삼는다.
첫 번째 시는
비움을 말한다.
두 번째 시는
낮아짐을 말한다.
비움과 낮아짐.
이 두 가치가
윤승원이 평생 추구해 온 삶의 철학과 만나면서
에세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인생론으로 확장된다.
◆ 편지를 쓰지만 답장을 기다리지 않는 이유
작품의 마지막은 매우 인상적이다.
"입에 대롱을 물고 힘들게 쓴 답장을
저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 글 전체를 완성하는 핵심이다.
"시인의 겸손한 기도가 곧 답장이니까요."
여기서 편지는 끝난다.
그러나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이제부터 편지가 시작된다.
답장이 없어도
이미 서로의 마음은 도달했다는 사실.
이보다 더 성숙한 우정의 표현은 드물다.
◆ 윤승원 회고문학의 특징
이번 작품은 윤승원 회고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첫째,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감동으로 확장하는 능력이다. 자신의 경험을 독자의 삶과 연결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승화한다.
둘째, 실제 자료를 문학적 장치로 활용하는 능력이다. 사진과 편지, 신문 기사, 방송 기록이 단순한 증빙을 넘어 서사의 일부가 된다.
셋째, 인물을 존중하는 시선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를 비추는 태도에서 깊은 인간미가 느껴진다.
넷째, 계절과 문학을 결합하는 감성이다. 입추라는 절기를 하나의 정신적 기념일로 재해석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시간을 아름답게 이어 준다.
■ 종합 평
「입추에 ‘허수아비 시인’에게 띄우는 편지」는 한 편의 계절 수필을 넘어 문학적 우정의 기록이며, 감사의 서간문이고, 기억을 예술로 승화한 회고문학의 모범이라 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한 가지 소중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문학은 유명한 사람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잊지 않아야 할 사람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입추라는 절기를 빌려 한미순 시인의 삶과 시를 다시 독자 앞에 불러냄으로써, 한 사람의 정신이 계절과 함께 해마다 새롭게 살아나는 아름다운 문학적 의식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계절 수필, 회고 수필, 서간 형식, 문학 증언, 인물 에세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성숙한 산문으로서, 오래 간직될 만한 깊이와 울림을 지닌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윤승원 수필가님의 회고 에세이를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문학적 품격'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회고문은 과거의 사실을 나열하거나 자신의 이력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끝까지 '나'보다 '한미순 시인'을 앞세웁니다. 그래서 글 전체에 겸손과 존경의 정서가 흐릅니다.
또 하나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시간의 힘입니다.
1991년에 오간 편지, KBS 라디오 문학 프로그램의 인연, 2010년의 신문 칼럼, 그리고 2026년 입추의 회고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기록들이 흩어진 자료가 아니라, 한 편의 긴 산문시처럼 연결됩니다. 이러한 구성은 회고 에세이에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장점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름다운 순종의 길 걸어온 시인의 '겸손한 기도'가 곧 답장이니까요."
이 문장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입니다.
편지를 쓰면서도 답장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표현은, 인간관계의 성숙함과 문학적 여운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한미순 시인의 삶뿐 아니라, 그 삶을 바라보는 윤승원 수필가의 따뜻한 시선을 함께 만나게 됩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선생님의 문학 세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인 '기록문학의 가치'도 잘 보여 줍니다.
방송 녹음테이프, 입으로 타자한 편지, 신문 기사, 칼럼 등을 단순한 자료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무게를 증명하는 문학적 증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훗날 이러한 자료들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1990년대 지역 문학과 방송 문학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떠오른 한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은 세월을 기억하지만, 문학은 사람을 기억한다."
선생님의 이번 회고 에세이는 바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 작품입니다.
입추라는 절기를 빌려 한미순 시인의 시와 삶을 다시 오늘의 독자들에게 건네는 일,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문학적 생명을 이어 주는 아름다운 헌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윤승원 회고문학선』과 같은 한 권의 책으로 엮인다면, 이 글은 그 책의 첫머리나 한가운데에서 깊은 울림을 전하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되기에 충분한 품격과 감동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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