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캠핑을 메인으로 놓고 보자면 백패킹은 리버럴한 일탈 같은 느낌이다.
소중한 일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복되는 ‘틀에 박혀있음’을 벗어나 가족과 함께 야외에서 하루이틀씩 묵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토캠핑이라면 무거운 배낭을 매고 혼자서 떠나는 백패킹은 익숙한 공간과 살가운 가족들을 떠나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나는 그런 느낌이랄까.
낯선 곳으로 떠날 때면 늘 설렌다. 그 설레임은 폐부 깊숙한 곳으로 신선한 공기를 흘러 들어가게 하는 일종의 펌프질과 같다. 마음을 정리하고 동력을 얻으며 치열하게 살아야 할 근거들을 마련하게 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중요하고 또 소중하다.
지난 10월의 월출산 천황사 야영장, 11월의 춘천 중도에서의 멋진 인연으로 조우하게 된 아볼타님(avoltath.blog.me)의 제안으로 지난 주말 충남 보령에 위치한 원산도 백패킹 여행을 다녀왔다.
사랑하는 가족의 주말을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나는 여행인지라 마음 한 구석엔 미안함과 애잔함이 남아 있어 배낭을 꺼내고 패킹할 장비들을 정리하고 하는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편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읽었는지 패킹을 도와주는 아내의 손길이 마음을 쓰다듬는다. 지난 번 백패킹을 다녀온 후로 배낭을 풀어 정리하면서 사용하는 일부 장비에 네임태깅을 해 두어야겠다는 혼잣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몇몇 장비에 빨간 리본을 가지런히 묶어놓는다. 아내의 솜씨는 늘 깔끔하고 정갈하다.
패킹을 하려고 장비들을 모아두니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하다. 배낭에 장비를 차곡차곡 넣을 때마다 스무 살 언저리 때는 60리터쯤 되었던 낡은 코오롱스포츠 배낭도 거대해 보였는데 다양한 장비들이 풍부해진 오늘의 백패킹은 95리터짜리 배낭도 늘 빡빡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배낭에 채우는 것이 여행에 꼭 필요한 장비들인가, 아님 ‘여행’을 핑계로 하는 내 욕망을 채우는 것인가. 한번쯤은 곰곰이 돌이켜 볼 사안이지 싶다.
차에 오르고 시동을 켜니 새벽 4:30분을 가리킨다. 늦어도 6시30분 쯤엔 대천에 도착해야 하니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래도 과속은 금물이다.
주말이긴 하나 이른 새벽이라 서울 시내가 고즈넉하다. 이런 고즈넉함을 즐기려면 어쨌건 간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대천에 도착하여 아볼타님과 투빈스님을 만나 원산도로 떠나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아침 7시 20분에 떠나는 배를 탔지만 날이 잔뜩 흐린 탓에 마치 새벽풍경을 보는 듯하다. 어릴 적 작은 항구도시에서 자랐던 까닭에 새벽녘의 항구와 항구 근방에서 맡게 되는 비릿한 바다내음은 익숙하고 편하다.
뭍에 사는 사람들을 섬을 그리워하고 섬에 사는 이들은 뭍을 동경한다. 뭍과 섬을 물리적으로 이어주기 위해 오가는 배는 뭍 사람들의 그리움과 섬 사람들의 동경을 실어 나른다. 때로 궁금함이 인다. 섬을 그리워하는 뭍 사람들은 섬에서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것인가. 뭍을 동경하는 섬 사람들은 뭍으로 나와 삶을 터전을 꾸려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뭍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내 잠시, 아주 짧은 순간 알 수 없는 서글픔을 느낀다.
선발대 아닌 선발대로 먼저 도착한 원산도 해변은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이를 데 없다. 섬마을에 바닷가에 설치된 원색의 알파인텐트는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이윽고 이 섬에서 만나기로 한 백패커 여행자들이 속속 도착한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한 시간을 넘게 걸어 온 여행자들이 내려놓은 배낭. 사람마냥, 배낭도 서로를 의지한 채 숨을 고르는 듯 보인다.
여행자들의 텐트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삶과 일상의 무거운 등짐은 잠시 내려놓고 한적하고 고요한 섬에 몸 하나 뉠 텐트를 치고선 그 안에 웅크리듯 누워 하룻밤을 보낼 것이다. 사람들에겐, 이처럼 조용히 혼자 웅크리고 쉴 수 있는 저마다의 동굴이 필요하다.
어릴 적 작은 도시에 살면서 자주 보았던 발자국. 신작로를 내거나 흙바닥 골목길을 시멘트로 새로 덮을 때면 고양이나 견공들이 먼저 주인 노릇한다. 섬마을 골목길에도 예외가 없구나.
포토그래퍼 김대진 님도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온화하면서도 장난기 많은 그는 카메라만 잡으면 세상 그 어떤 무게도 능히 감당할 만큼 진지해진다. 무릇 프.로.페.셔.널.이 무엇인가를 그를 보면서 다시금 배우게 된다. 마치 하늘에 떠서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매처럼 움직이지 않고 바다를 응시하는 중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의 뷰파인더에는 어떤 현실들이 찍혀 있을까. 기대된다. 아마도 며칠 후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여행을 위해 이틀 전 섬에 먼저 들어온 캠퍼 마샬님(http://blog.naver.com/sungbukedu)이 준비한 성찬. 이번 여행 내내 그는 캠퍼들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으며 보이지 않는 수고와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마샬님의 자원봉사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다.
마샬님. 고맙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
바닷바람을 거센 해안가를 피해 방갈로 뒷편의 공간에 쉘터를 치고 잠시 모였다. 마샬님이 준비한 음식, 그리고 조금씩 서로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나누면서 갖는 훈훈하고 정감어린 시간들...
투빈스 재훈님도 여럿이 모이는 캠핑에서는 늘 굿은 일을 도맡아 하신다. 그의 가장 큰 미덕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늘 부드럽고 즐겁게 연결해 주는 파란신호등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 재담에 가까운 입담은 사람들 사이에 놓인 공간을 파고들어 마음의 각을 누그러뜨리고 분위기를 온화하게 하며 어느덧 모두를 즐겁고 유쾌한 공간으로 이끌어낸다.
이처럼 탁월하게 분위기를 풀어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단언컨대 행운이다.
마샬님(왼쪽)과 연리지님(오른쪽)이 나란히 앉으셔서 투빈스 님의 인사말을 경청하는 중. 혼자서 섬에서 이틀을 보낸 마샬님은 이미 섬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의 머그컵은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팻트병을 오려내어 맥주를 한 잔 하는 중인 판도라님(blog.naver.com/pandora73). 불구멍 나 있는 장갑이 인상적이다.
잠시 모여 인사를 하고 허기를 달래고선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저녁 무렵 어딘선가 삼삼오오 다시들 만나겠지. 스무 명이 넘는 백패커들에게, 원산도는 그리 넓은 섬이 아니다.
섬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쉘터위로 무심히 흐르는 초겨울의 햇살.
모두들 흩어져 각자의 시간을 갖는가 싶더니 일제히 카메라들을 들고 뭔가를 주시한다.
카메라 배낭을 매고 섬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던 김대진 님은 카메라렌즈를 교체하고 피사체를 노려보기 시작.
아볼타님은 애지중지하던 니콘 F-1.2 표준렌즈를 장착하고 피사체를 겨냥한다.
텐트에서 한숨 자던 판도라님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텐트 입구를 열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하루종일 흐릿하던 날씨였는데 해질 무렵에 모습을 드러낸 서해안의 낙조!!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낙조를 카메라에 담느라 모두들 일제히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
아마 각자의 뷰파인더에 저마다의 마음의 프리즘에 투과된 낙조의 모습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것을 훔쳐보는 즐거움도 쏠쏠할 듯.
엎드리듯 낮은 텐트들을 비추며 서서히 서해로 가라앉는 낙조..
해가 저물고 이내 이 작은 해안에는 밤이 내려앉을 태세다. 바람은 여전하고 기온은 더욱 떨어진다.
날씨가 춥고 쌀쌀한 것은 견딜 수 있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니 밖에서 쉘터를 설치하거나 불을 피울 수가 없다. 고심끝에 텅빈 마을의 식당 한 켠을 빌리고 잠시 모여 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
루서스님(blog.naver.com/sungbukedu)이 준비해 오신 호주산 쇠고기가 오늘 저녁 백패커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능숙한 솜씨로 먹을 수 있는 부위를 발라내는 칼잽이의 손길은 바로 마샬님. 과거 레스토랑 쉐프 경력도 있으시다는 말씀을 솜씨로 증명해 주신다. 그래도 날카로운 칼을 다루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걱정에 또 걱정..
회치듯 날렵하게 발라낸 고깃살은 불판에 던져지고 지글거리며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불판에서 오르기 무섭게 젓가락들에게 집혀져서 공중부양하는 고깃점들. 백패킹 여행에서 이처럼 맛있는 고기를 먹기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루서스님께서는 제법 많은 양의 쇠고기를 준비해 오셨는데 그 마음씀씀이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마샬님이 새로 구입한 스노우피크 헤드랜턴을 머리에 장착하고서 장난을.. 맞은편에 계시는 분은 비틀즈님(blog.naver.com/sungbukedu). 캠핑과 낚시를 즐기시는 멋진 분인데 우연찮게 이번 백패커여행에 오시게 되었다고. 반가운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마샬님의 새로운 랜턴이 모든 해드랜턴들의 야코를 죽이는 중. ㅋㅋ
아볼타님이 기타를 안고 부른 노래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의 노래. 노래도 쓸쓸하고 아볼타님의 목소리도 쓸쓸하다.
기타를 넘겨받아 답가를 부르는 마리나그림. 그에게 기타는 이십 대 청춘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음악을 듣는 아볼타님의 얼굴엔 나즈막한 웃음이 흐르지만 그의 웃음에는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묻어 있다. 그와 함께 했던 최근 몇 번의 캠핑 여행 동안 느낀 것이지만 그의 모습에서는 어떤 쓸쓸함과 애잔함 같은 것이 묻어난다.
아볼타님과 주고거니 받거니 하던 몇 곡의 노래를 마무리하고 기타를 쉬게 한다. 피곤한 이들 먼저 자리를 뜨고, 남은 이들은 남겨진 술 몇 잔을 더 기울인 후 아쉬움을 뒤로 각자의 텐트로 돌아간다.
텐트로 돌아오니, 해질 무렵 켜 두었던 카멜레온 전등이 반갑게 맞이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텐트가 흔들리고, 흔들리는 텐트를 따라 춤을 추던 카멜레온 전등도 이제 쉬게 해 줘야지..
새벽녘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밤새 텐트를 흔들던 바람은 자취를 감췄는데 그 자리를 차겁고 무거운 새벽공기가 대신한다. 이제 겨울이 목전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새벽녘. 무거운 공기처럼 새벽 구름이 서해바다를 가르고선 연기처럼 흘러내린다.
이른 아침의 쌀쌀함은 장작불로 녹인다. 반가운 온기가 흐른다.
아침을 맞이하는 텐트들. 한곳에 모여 있던 여러 텐트들은 거센 바람을 피해 저녁 무렵 방갈로 뒷편으로 피신. 알파인텐트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텐트를 걷지 않아도 고정팩만 빼면 텐트 째 들고 이사를 갈 수 있다는 점.
장작불 아침식사에 해솔님(blog.naver.com/sungbukedu)이 합류하셨다. 선하고 정중한 인상이 무척 온화하신 분. 웃음이 해맑은 사람치고 좋지 않은 사람 없다는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분이다.
양은냄비를 꺼내들고 장작불 아침식사에 합류한 아볼타님. 뭔가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아른아른. 작은 미소 하나에도 카리스마가 흐른다.
제 몸을 불사라 온기를 제공하는 장작불. 가장으로서 사는 것도, 한 사람의 아내로 아이들의 아비와 어미로 사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뜨겁게 타오르는 장작불, 이내 검은 숯으로 변해 가다가 다 타 들어 갔을 때는 비로소 재로 남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 인생이라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뒤로 하고 나는 커피 내릴 준비에 들어갔다. 원두 째 가져오면 핸드밀까지 가져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어젯밤에 원두 반 봉지 정도를 미리 핸드밀로 분쇄해서 가져왔다.
캠핑여행을 떠나 아침에 커피를 준비할 때면 마음이 즐겁다. 집 떠나서 먹는 모든 음식은 맛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추운 밤 야영을 마치고 아침에 내려 마시는 커피는 더더욱 그러하다. 코펠에 물을 올려놓고 드리퍼에 원두를 부어 넣으니 그 향기가 가히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기가 막히다.
이제 짐을 싸야 할 시간.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매우 즐거우면서도 또 몹시 아쉬운 시간이다. 아볼타님은 백팩에 다시 짐을 꾸리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짐을 싸는 동안 다음 여행계획을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겨 하신다.
생각해 보니, 집으로 돌아갈 짐을 꾸리면서 다시 떠날 여행을 상상하는 것, 이거 정말 아쉬움을 달래는 기막히게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짐을 싸야 할 시간.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매우 즐거우면서도 또 몹시 아쉬운 시간이다. 아볼타님은 백팩에 다시 짐을 꾸리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짐을 싸는 동안 다음 여행계획을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겨 하신다.
생각해 보니, 집으로 돌아갈 짐을 꾸리면서 다시 떠날 여행을 상상하는 것, 이거 정말 아쉬움을 달래는 기막히게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카메라도 못내 아쉬운 듯 바다쪽을 응시한다.
모두들 각자의 배낭을 배고 뭍으로 실어다 줄 배가 도착할 선착장으로 가는 떠남의 여행을 시작.
꽃과 낙엽이 진 섬 길을 걷는 것은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선착장 한 켠에 쌓여 있는 백패커들의 배낭들. 이 배낭들에는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는 대신 무거운 장비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이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물리적으로 무거운 배낭을 내려 놓는 대신, 다시 삶의 무거운 짐들을 각자 매고 일상을 향할 것이다.
장비가 가득 담긴 무거운 배낭은 삶과 일상속에서 느끼는 마임의 짐의 알레고리일 수도 있겠다. ‘야영’이라는 삶을 위해서는 텐트, 코펠, 버너, 침낭을 비롯해 많게는 40kg 가까이 되는 무게의 짐이 필요하다. 이 무거운 등짐을 지고 먼 길을 걷고 떠나는 동안 마음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저처럼 무거운 배낭을 질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이 보기엔 ‘호사’로도 비춰지는 백패킹 여행을 두고 ‘고행’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할 수도 있겠지만 저마다 떠 안고 있는 삶의 무거움을 해소하기 위해 안락하고 편안한 여행 대신 택하는 백패킹 여행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여행이자, 충분히 고행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배낭을 매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노래는 다름 아닌 임희숙이 부른 <내 하나의 님은 가고>였다.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행렬들..
돌아오는 배편에서는 마저 나누지 못한 인사와 술잔이 오가고..
이내 항구에 배가 도착한다.
판도라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차장을 보다가 사이드미러에 비친 노을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광경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늘 걸어온 뒤안길에 놓여 있었다. 곁에 있을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 자동차의 사이드미러에 비친 노을을 보면서 문득 드는 늦은 깨달음이다.
동료의 텐트 폴대가 부러지고, 작은 티피텐트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버릴 만큼 거센 바람이 불었던 지난 밤. 모래밭에 꼭꼭 눌러서 박아놓은 팩들이 텐트를 무사히 지켜냈다.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팩들이었음에도 용케도 잘 버텨주었다.
지난 밤, 이 팩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버티면서 텐트를 지켜 내었을까. 삶의 모습도 이러한 듯싶다. 치열하게 버텨내기. 그리고 살아내기.
스무살 무렵 형님의 책꽂이 한 켠에 쓰여져 있던 좌우명이 바로 이것이었다.
치열하고 꼿꼿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