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제목 :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경건(주기도문)
설교본문 : 마태복음 6:1~23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0년 10월 18일
마태복음 5~7장은 예수께서 산에서 증거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예수께서 이 땅과 하늘의 왕으로서, 장차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때
어떤 기준으로 심판하실지 그 심판의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7장에 ‘천국의 대헌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 첫 부분으로 3주 전에 ‘팔복’에 대한 말씀을 전하였고,
오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주기도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신앙의 기초가 되는 개인 경건
● 구약의 성도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경건은
1)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 : 거듭남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3:3)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한 마디로 ‘거듭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다시 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육신의 생명 외에 하나님께서 새로 주시는 영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영의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자이고,
영의 생명이 없이 육신으로만 사는 자는 멸망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2) 육의 생명이 계속 이어져야 하듯 영의 생명도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나서 영의 생명을 가졌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의 생명이 죽고 맙니다.
그러면 이전에 주님을 알지 못했던, 거듭나지 않은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이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먹고 움직이고 호흡하는 생명의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생명도 그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생명의 일들이 계속되어야 하는데,
3) 거듭난 생명, 영의 생명을 이어지게 하는 것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영의 생명이 이어지게 하는 것을 ‘경건’이라고 합니다.
육은 먹고 적절하게 움직이는 일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영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통해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구약의 경건 세 가지를 설명하시고,
구약의 세 가지 경건이 참된 경건이 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구제’, ‘말씀과 기도’, ‘금식’ 이 세 가지였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이 세 가지를 잘하는 자는 신앙이 좋은 자로 여겨져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가 구제와 말씀과 기도와 금식을 많이 하는 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내놓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것이 유대 사회에서 권력을 잡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이 일을 잘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경건은 아무 쓸모없는 헛된 경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경건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6장의 말씀에서 위의 세 가지 경건 중에서 기도에 대한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구제와 기도의 방법
1) 구제의 방법 : 은밀한 중에 행하라
2) 기도의 방법 : 은밀한 중에 진심을 담아
(구제와 기도의 방법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6:1~15의 큐티를 참조해주십시오.)
제 2 부 : 주기도문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고 말씀하시면서 주기도문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은
주기도문에 나온 이 기도 제목들을, 이런 것들을 갈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삶의 목표로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2. 이렇게 기도하라 : 주기도문
주기도문은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기도 중에 최고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기도문을 무당이 외는 주문(呪文)처럼
생각 없이 외우기만 합니다.
주기도문이 주께서 주신 가장 좋은 기도라 할지라도
이렇게 중언부언하듯 생각 없이 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의 뜻을 잘 이해하여 마음을 담아 기도하십시오.
1)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은 하늘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계신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보좌에 앉아 이 땅과 하늘을 다스리시며 세상을 심판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2) 우리 아버지여
➀ 하늘에 계신, 만왕의 왕이요 창조주이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감히 그분을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 아빠처럼 친밀감을 갖고 늘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친 아빠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나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아파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친 아빠처럼 나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친 아빠처럼 항상 나와 교제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주 “아버지”하고 부르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기도입니다.
➁ 그런데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도
그분께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일은 주님의 복음을 증거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이 구절 속에는
‘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옵소서’하는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본래 스스로 계신 분이요 스스로 거룩하신 분입니다만,
우리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기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그 거룩하심에 걸맞게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를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그 영광을 다시 우리에게 기쁨으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온 세상에 높여지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십니다.
온 세상 가운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주를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과 내 몸과 내 생각에,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에 임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얼마만큼 임했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나와 우리 교회,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복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받들어 섬기며
주님의 말씀을 왕의 말씀으로 여겨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온전히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역시 이 기도 안에도 나를 통해 주님의 복음이 세상에 전해져서
이 땅의 모든 만민에게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하도록 나를 사용해달라는 기도입니다.
4)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이 계신 저 천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온전히 복종되고 순종되는 것처럼,
저 천국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가 온전하게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 속에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되도록
나와 우리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써달라는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나를 써주시옵소서”,
혹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의 기도입니다.
5)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정확한 번역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양식을 구하는 자들이 내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그리고 한 달이나 일 년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양식을 구합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서 내일도 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라는 말씀에는, 나에게 여분의 양식이 있을 때
그것을 우리 공동체 중에 연약한 자와 함께 나누라는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공동체에 어려움을 당하는 자가 있는데
나는 여유분을 가지고도 그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하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기십니다.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준 것만큼만 우리의 죄도 용서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도에는 주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라는 자들은
자기에게 죄 지은 자도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가 잘 안될 때에는
그를 용서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시험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유혹과 미혹이고,
악은 핍박하는 시련과 환난을 통해 나를 무너지게 하려는 사탄의 공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런 일로
우리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악에 세력에 굴복하지도 않게 되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8)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송영을 드리며 기도를 마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개(大蓋)’는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자면”을 뜻하는 중국식 표현으로서
헬라어는 ‘호티’로, 영어로는 ‘for’이고, 우리말로는 ‘왜냐하면’입니다.
그러므로 이 뜻은 “우리가 왜 이렇게 기도를 드려야 하느냐 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입니다.
※ 여기의‘대개’를 신천지에서는 ‘대강, 대략’의 뜻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인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뜻을 바르게 알고,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에게 바르게 대처하여야 하겠습니다.
● 묵상 :
주기도문은 가장 훌륭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뜻을 잘 이해하고 그 뜻대로 진심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제 3 부 : 참 보물을 알아보는 좋은 눈
3.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1) 보물은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소중히 여기는 것(21절).
여기에서 예수님은 믿음을 돈과 물질로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이 가장 애착을 갖고 움켜쥐려하는 것이
바로 돈과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보물은
내 마음과 육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과 에너지를 가리킵니다.
내가 애착을 갖고 있는 나의 그 보물이 나를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2) 마음에 보물로 여기는 것, 그것이 곧 그의 믿음입니다(21절).
아무리 구두쇠라 할지라도 자신이 마음이 있는 곳을 위해서는 돈을 씁니다.
돈 한 푼 쓰는 것을 벌벌 떠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씁니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옷을, 가족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족을 위한 일에,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먹은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가장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는 것, 그것이 곧 그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귀하여 여기고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그는 돈을 믿는 것입니다.
3) 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19~20절)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것은 저축이나 저금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시간과 돈과 물질을 이 땅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에 최고의 가치와 행복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에 애착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을 위하여 어느 정도 저축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돈과 물질 중의 일부는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구원받게 하며, 연약한 자를 돕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직 자기나 자기 조직만을 위해 사용하며, 필요 이상으로 돈을 모으기만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나 연약한 자를 돕는 일에는 도무지 사용하려하지 않는다면
그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는 자입니다. 돈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은 우상숭배입니다.
4)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누가복음 16장)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매일 벌이는 잔치를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데,
그 집 문 앞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위해서는 단 한 푼의 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끝에
이 부자가 돈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여 죽어서 지옥에 갔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렇게 돈을 자신과 이 땅의 것을 얻는 것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자들을 향하여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약 5:2~3).
● 묵상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십시오.
물론 그 물질로 당신과 당신 집의 평안을 위하여 사용해야 하겠지만,
그 물질의 일부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물질에서 얼마나 많은 양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믿음의 양이 될 것입니다.
4. 좋은 눈과 나쁜 눈 :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1) 눈은 마음의 등불이니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22절)
눈이 나쁘면 온 몸도 어두울 것이니(23절)
사람은 눈을 통해 파악한 것을 마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분별합니다.
눈이 온전하면 마음 역시 앞에 있는 것을 바르게 분별하고
눈이 온전하지 못하면 마음 역시 바르게 분별할 수 없습니다.
눈이 온전하여 앞에 있는 위험물을 바르게 판단했다면 온 몸이 평안해지고
눈이 온전하지 못하여 바르게 판단하지 못했다면 온 몸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요즘에는 눈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여러 도구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도구나 그 어떤 것을 이용하든 간에 앞에 있는 위험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 좋은 눈과 나쁜 눈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의 영의 문제로 비유하셨습니다.
좋은 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순전함을 간직한 눈이고,
나쁜 눈은 세상의 탐욕으로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린 눈을 가리킵니다.
지금 내 앞에 닥친 이 일이 영적으로 위험한 것인지의 여부를 분별할
영적으로 건강한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냐(23절)
여기에서 빛은 참과 거짓을 분별할 분별력과 지혜를 뜻합니다.
이 빛이 우리 인생의 등불 역할을 하여 삶을 바르고 건강하게 살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욕심과 탐욕으로 그 분별력을 잃은 자, 그 빛을 잃은 자들은
어두운 것만 찾으려 할 것이니 더욱 더 어두움 속으로 빠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그 어둠 속에서 나와야 하는데
분별력이 없으니 지금 어둠 속에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고,
또 자신의 상태를 안다 할지라도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니 답답한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합시다.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탄이 세상 욕망으로 나의 눈을 흐리게 할 틈을 주지 마십시오.
혹 욕망과 집착이 생겼더라도 주 앞에 내놓아 그것을 얼른 청소하는 자가 되십시오.
● 결론으로 마태복음 6:25~34 큐티의 묵상포인트 부분을 읽어주십시오.
주님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써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삼아주옵소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