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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범죄도시’다. 대놓고 ‘조폭전쟁’을 내세웠다. 최민식^하정우가 나왔던 ‘범죄와의 전쟁’을 떠올리게하는 영화다. 제목만 보면 ‘범죄와의 전쟁’ ‘아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마동석이 주연으로 나왔고 조진웅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강윤성 감독에겐 '입봉'작이고 '한주먹' 하는 터프한 열혈형사(마석도)로 나온 마동석과 피도 눈물도 없는 조선족 조폭우두머리(장첸)로 분한 그룹 GOD출신 윤계상을 제외하면 이름값 있는 배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전에는 기대치를 논하기 힘들다. 당연히 극장가 최대 대목인 추석연휴에 개봉하는 영화치고는 그리 함량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남한산성’, ‘킹스맨-골드서클’, ‘아이 캔 스피크’사이에서 존재감이나 보일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영화 도입부부터 스크린에 깊이 빠져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주먹은 여벌이고 칼과 도끼로 ‘연장질’하는 액션은 잔혹하고 섬뜩하지만 의외의 유머코드도 곳곳에 숨어있다. 무엇보다 스토리전개가 헐렁하지 않고 짜임새있으며 러닝타임을 단 일초라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속도감이 있다.
이영화는 허구가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래서 몰입도도 높은 편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치룬 조선족 폭력배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실제 2001년 7월 연변 흑사파 행동대장은 부산항에 밀입국해 2005년 폭련단을 구성한뒤 서울로 상경해 가리봉동 접수에 나섰다.
경찰과 적당히 공생관계를 형성하며 2개파 조선족 폭력조직이 관리하던 가리봉동은 연변흑사파(영화에선 하얼빈)의 등장으로 피바람이 분다. 굴러온 돌 흑사파는 술집, 도박장, 게임장, 매춘, 재건축까지 곳곳에서 전선(戰線)을 확대하며 박힌 돌인 기존 폭력조직들과 사생결단의 싸움판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가리봉동은 마피아전성시대 시카고를 방불케 하는 범죄지대로 떠올랐다. 대낮에도 살인과 폭력은 예사이고 상대조직원의 사지(四肢)를 절단하는 극악무도한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가히 '가리봉동 잔혹사'다.
실제로 조선족 폭력조직은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했다. 팔다리 절단부터 살인까지 가격을 매겨 250만원~1천500만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중동난민들 때문에 범죄율이 높아진 유럽처럼 우리나라도 조선족 이주자가 많아질수록 신종범죄도 늘어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촘촘한 전개로 긴장감을 고조시킨 신인감독의 연출력도 돋보였지만 주조연배우들도 제 몫을 해냈다. 마동석은 체구에 걸맞는 화끈한 '핵펀치'의 소유자지만 따뜻한 감성과 썰렁한 유머로 건조한 느와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지난해 tvn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젠틀한 패션감각과 굿매너로 여심을 자극했던 윤계상은 이 영화에선 꼬질꼬질한 장발에 잔인하고 비열한 조선족 조폭두목으로 변신했다. 역시 조선족 조폭두목을 열연했던 영화 '황해'의 김윤석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돌’출신 배우라는 선입견을 우습게 만들 정도다. 또 1000대1의 오디션을 뚫고 발탁된 무명배우들의 연기도 마치 맞춤옷을 입힌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범죄도시’는 기대치를 크게 웃돈다. 연출은 의욕과잉에 빠지지 않고 절제돼있으며 불필요한 복선도 보이지 않는다. 가성비가 높은 영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로는 빼어난 수작이지만 ‘조선족’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재생산하고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범죄와의 전쟁’의 아류는 아니지만 그 영화를 뛰어넘기엔 왠지 부족해 보인다.
/네이버블로그<박상준인사이트>영화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