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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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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송강가사와 술(酒) 이야기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82 09.07.02 11:41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필자의 먼저 글 면앙정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담양 일대 누정(樓亭) 답사 떠나기 전 먼저 관계 가사(歌辭)를 읽고,

거기 나타낸 서술과 지금 풍광을 비교한다면 즐거움이 더 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그런 것도 있었다 정도로만 알던 가사를 구하여 읽었다.

요즈음 인터넷이 좋아 클릭만 하면 원문(原文)이고

현대문 번역이고 주체를 못하게 우르르 쏟아진다.

 

그리하여 면앙정가, 성산별곡을 읽고 (이 둘은 담양 누정답사의 필수다)

내친 김에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백발가까지 섭렵했다.

 

또 담양 가사문학관에 들렀을 때는 대표적 가사 19 수(首)가 실린

책을 한 권 사서 (5천원 밖에 하지 않는다) 요즈음 들쳐 보고 있다.

 

! 그랬더니

옛날엔 대학 입시 때문에 할 수 없이 배우느라

거의 무슨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로 들리던 가사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 오지 않는가?

 

솔직히 말해 고등학교 때 사미인곡을 읽을 때는

무슨 아부를 이렇게 하나? 예를 들어 ;

 

차라리 죽어가서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죡죡 앉았다가

향므든 날개로 님의오새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님조츠려 하노라

 

아무리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거라도 그렇지

사람이 뭐 이런 식의 사이께레(最敬禮)를 다 하나?

참 간신이 따로 없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이를 먹으니 송강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 사대부들 정치적 신조가 일반적으로

그 같았을 것이라고 받아 들일 수 있다.

 

아울러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 내는 데는

가사(歌辭)만한 그릇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한국 현대시(詩)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서가 메마른데다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릇 시(詩)란 운율(韻律)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래에서 곡을 빼고 가사만 취한 것이 시(詩)고

(詩)에 곡(曲) 붙이면 바로 노래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 필자의 소박한 시 관(觀)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시에서 운율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산문(散文)을 분량을 조금 줄였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건 시(詩)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시 읽는 옛 가사(歌辭)는 그냥 읽는 데도 가락이 나오고

(曲) 만 붙이면 바로 노래가 될 것 같다.

 

1970년대 초 김지하 씨가 오적을 발표하여

당시 박정희 정권에게 아주 혼쭐이 나긴 했지만

가사체를 빌려 현대시를 쓴다는 것은 아주 좋은 시도였는데

그 뒤로 이어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각설(却說)하고..

송강가사(松江歌辭)를 읽다가

술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 있어 옮겨 본다.

 

 

성산별곡(星山別曲) 끝 부분쯤에서

 

 

엇그제 비슨 술이 어도록 니건나니

잡거니 밀거니 슬카장 거후로니

마암의 매친 시름 져그나 하리나다.

 

(현대어)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잡거니 밀거니 싫도록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 적으나마 풀려진다

 

 

성산별곡은 지금 광주호반(湖畔) 옛날 창계(滄溪)를 마주보고 있는

식영정(息影亭) 환벽당(環壁堂) 일대를 읊은 가사(歌辭)다.

 

 

 

사진: 식영정 (가사문학관에 전시 된 그림을 이번에 가서 디카로 찍었다)

 

 

사진: 환벽당

필자 사진은 너무 까칠한 것이 술 맛 떨어질 것 같아

고 김대벽씨 작품을 올려 보았다.

 

식영정도 좋고 환벽당도 좋지만

니근 술을 슬카장 거후른  연후(然後)에야

비로소 흥취가 오르면서 경치가 완성되지 않겠는가?

 

필자는 위장을 잘랐으니 슬카장 거후르기는 이제 틀렸지만

머리는 아직 남겨 놓았으니 상상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술 전 마신 술 가지고도 남 몇 평생 마실 분량은 될 것이고

 

 

슬카장(싫도록) !

거후르다(기울이다) !

 

이거 아주 근사하게 들리는 말인데

왜 사어(死語)가 되어 버렸을까?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정치적 행적에는 좀 거시기 한 면이 있다.

 

정여립(鄭汝立)사건 1589년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위관(委官)을 맡아 별 대단한 근거도 없이

많은 선비들을 죽을 곳으로 몰고

전주 일대를 순식간에 역향(逆香)으로 만들어 버렸다.

 

혼자 한 것은 아니고 선조(宣祖)의 조종이 있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이렇게 술 좋아하고 아름다운 시(詩)를 짓는 인물이

정치에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모질었을까?

 

요즈음 정치가 워낙 혼탁하다 보니 시심(詩心)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소리가 더러 있지만 정송강이나 고산(孤山) 윤선도의

경우를 보면 별로 맞는 말 같지도 않다.

시는 아름답게 지어도 정치는 영 아니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쯤하고..

제목이 술 이야기니 관동별곡에 나오는 술 구절을 보자.

 

 

 

(사진) 관동별곡 중 일부분. 가사문학관에 걸려 있음

 

저 원문(原文) 16세기 국어는 읽기 거북할 것이라

텍스트로 다시 써 본다.

 

져근덧 가디마오 이술한잔 먹어보오

북두성 기우려 창해수 부어내여

저먹고 날먹여늘 서너잔 거후르니

화풍이 습습하야 양액을 추혀드러

구만리 장공에 져기면 날리로다

이술   가져다가 사해에 고로 난화

억만 창생을 다 취케 맹근후에

그제야 고쳐 만나 또한잔 하잣고야

 

 

(져근덧: 잠깐만,  거후르니;기울이니, 습습(習習)하야:솔솔 불어

양액(兩腋): 두 어깨, 져기면: 웬만하면, 난화: 나누어)

 

옛날 고등학교 때 분명히 읽었을 텐데

그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거 아주 죽이는 구절 아닌가?

 

잠깐 가지 말고 이 술 한잔 먹어 보는데

북두성 기울여서 바닷물을 부어

 

술꾼이라야 이정도 호기를 부리는 것이고

술꾼 아니고는 이런 구라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저 먹고 날 먹이거늘 !

 

그렇지 우리나라 주법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눠

억만 창생을 다 취하게 만든 후에

 

정 송강은 술꾼임에 틀림없고, 정치행적은 어찌 되었든

그가 남긴 시는 우리나라의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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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02 16:04

    첫댓글 잘 배우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 작성자 09.07.02 17:56

    미스타이프 하나 : 위 본문 중 "..전주 일대를 순식간에 역향(逆香)으로' 에서 괄호 안의 한자 부분은 당연히 逆鄕 입니다... 고쳐서 읽어 주십시오.

  • 09.07.03 20:05

    송강 정철 우리 시댁 선조이십니다 은잔을 하사받아 잔에 술을 딱 한잔만 마시라는 어명에 늘 술이 부족해 은잔 안쪽을 깍고 깍아서 드셨다는 말씀이 전해 지더군요 아들 원택 정철 12대손입니다,사실 연일정씨 후손들은 술을 ...성품들이 너무 온순하기만 합니다,저마다 집안의 내력은 있다는 마음이구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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