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식 수필 (5 of 5) - 넌 괜찮니?

[마음따라 길따라]

(지난 7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60회 박관식 군은 지나간 몇 년간 충출하고 수려한 수필을 남겼습니다.   일부는 본 재카나다경기중고등학교 Cafe 에 실렸었던 글도 있고, 타계하기 전인 작년 2020년에 쓴 수필도 몇 개가 있습니다.        고인이 남긴 수필을 하나씩 본 Cafe 에 올려드리면서 함께 고인을 추모합니다)

넌 괜찮니? - 2020.03.22

사지가 꽁꽁 묶이고 발가벗긴 채로 눕혀져 있었다.

실내는 마치 우주왕복선이 연상될 만큼 로봇 수술기, 컴퓨터 모니터,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기들이 질서없이 늘어서 있었고 더욱이 한쪽 벽에 대형 유리창을 통해서 참관인들의 시선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온도는 아마도 섭시 영도 정도로 벗겨진 몸에 대한 수치심도 느낄 수 없이 춥고 괴로웠다.    마취사와 집도의는 뒤로 물러나 서 있었고 5명의 수술 집행 요원들과 수간호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수술대 앞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그녀가 수술 집행을 선언한다.    “지금 2019년 4월3일 9시 정각이다.  이제부터 박관식의 수술을 시작한다.    모든 행동은 나의 승인과 확인을 요한다 이상, 시작한다”     그때부터 나의 몸 이곳저곳에 센서들이 붙여지고 확인 요청과 응답으로 시끄러워졌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그녀의 태도는 마치 적진을 향하기 직전의 결사대의 소대장을 보는 것 같았다.   비장함을 넘어서 그녀의 표정은 결연함과 불안함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 전에 수술대에서 바늘이 스르르 나오더니 정확하게 나의 왼쪽 손목의 정맥에 주사한다 마취였다.

3년 전인가 부정맥 때문에 ICD 라는 제어장치를 가슴에 심었지만 이건 단순한 비정상적인 심장 작동을 조정할 뿐 근본적으로 심장 자체의 Dynamic Balance 잡아주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몸이 항상 피곤하고 특히 언덕길을 오르는 데는 너무 힘이 들어 몇 번이고 쉬어야 한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큰 누님의 걸음조차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금년 초에 나를 진찰한 히피풍의 의사는 Ablation 시술하면 완쾌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다. 

그게 뭔가?   사전에도 그런 단어는 없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알아낸 것은 심장 내에 핏줄을 통해 전깃줄을 집어넣어 심장벽을 전기로 긁어내서 심장의 무게 중심이 균형 잡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비정상으로 춤추는 심장에 전깃줄을 넣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부위를 찾아내서 그곳을 태워버리기까지.... 

그렇지만 결심했다.    해버리자.    직립 보행이 불가능하다면 떠나버리자.    세 다리나 네 다리로 허우적거리면서 무슨 그렇게 좋은 세상을 보겠다고 힘들게 연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살만큼 살았잖아.    지금은 두발로 서서 큰 누님과  나란히 걷는다.    아무래도 그분이 이번에도 도와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Canada 에 너무 미안하다.     초콜릿 100불어치 사서 바친 것이 총비용이었다.

어린 시절 1.4후퇴 때의 대구 피난시절에 길에서 질주하는 미군 트럭을 피해 어느 어른과 담벼락에 피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트럭이 되돌아가려고 후진을 하다가 그 담을 무너지게 했다.   옆에 어른은 트럭에 받쳐서 즉사하고 키가 작은 나는 상처 하나 없이 튀어나와 목숨을 건졌다.    그때 운전석의 흑인병사가 큰소리로 엉엉 울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생 때 자주 오르던 인수봉 정상은 가운데 4자 정도 벌어져 두 개로 쪼개져 있다.   백운대 방향으로 다가서려면 그 사이를 건너뛰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서 그 힘으로 몇 걸음 앞으로 가다가 멈춰 서서 발 밑을 내려다보았다. 

한 발자국 앞이 정상의 끝이었다.    밑으로는 아득히 백운대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그때 어떤 큰 그림자의 손이 어깨에 느껴졌다..

60년대 말 방학 때 홍도를 향했다.         당시 흑산도까지 선편이 있었고 거기서 어선을 빌려서 홍도로 가는 중 바다에 파도가 일어서 배는 엔진을 끄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때 선미에 앉아있던 나에게 갑자기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저물녁에 배는 해류를 따라 흘러서 흑산도로 흘러 돌아갔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더니 그때 마음이 불안해서 기도한 적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제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줄 건가 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불안한 적이 있었다.

카나다로 건너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뇌막염에 걸렸다.     병원 문턱에서 정신을 잃고 쓸어져서 3일인가 후에 깨어났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통은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다.   몸무게가 1주일 사이에 80에서 40Kg 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넓적다리 두께가 반으로 줄었다.   병원에서는 회생 가능성을 40% 정도로 봤고 설사 회복되더라도 뇌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리라 진단했다. 

이때 마누라가 최후의 수단으로 온몸에 침을 꽂았다.     병원에서는 난리가 나고 만일의 경우에 의료진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다는 각서에 사인을 요구해 왔다.    사인을 한 후에 거침없이 침을 계속 꼽아나갔다.        그 후에 놀랄 만큼 회복의 속도가 빨라졌다.     심지어 병원 담당의사가 찾아와 침술에 대해 가르쳐주기를 몇 번이고 요청했지만 난감한 영어 실력과 침술 지식으로 응해줄 수 없었다.   

오로지 이제 막 시작한 이민 생활에서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마누라를 두고 이역만리에서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항상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완쾌해서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2002년에 7년간 운영하던 사업체를 매각하고 Yellowknife 를 떠났다.     짐이 좀 있어서 자동차로 Toronto 까지 5,500 킬로를 달려보기로 했다.   10월 중순이지만 위도가 63도 정도 되니 길에는 눈이 쌓여있었고, 기온이 영하 30도를 넘나들었지만 Edmonton 까지 1,500 킬로만 내려가면 거기서부터는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운전해도 될 것 같았다.       출발해서 300 킬로쯤 왔을까. 백미러를 보니 저 멀리에서 탱크로리 한 대가 오고 있었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눈길이라 조심해서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귀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왼쪽으로 가서 뒤에 오는 트럭을 보내고 가라는 소리였다.  

이때 트렁크 왼편에 트럭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차는 폐차 수준으로 망가졌지만 나와 동승했던 마누라와 큰 아이는 무사했다.    이때부터 가끔 귀에 들리던 환청은 사라져 다시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1969년 이었으리라 울릉도 성인봉을 올랐다가 아래 마을로 똑바로 내려가려고 길도 없는 풀 숲, 나무 숲을 헤치며 경사면을 가고 있는데 위에서 돌이 굴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즉시 달리면서 낙석의 위치를 확인하려는데 쌀 한 포대 크기의 돌덩이가 가슴을 스치면서 떨어져 내려갔다.   머리를 숙여서 가슴을 내려다보니 속에 입은 러닝까지 걸레가 되어 찢겨있는데 정작 피부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아사바사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우디 사막 한복판에서 공사를 할 때인데 의외로 이곳에

뱀들이 많았다.    모두가 독사들이다.     심지어 구렁이들과 도마뱀들도 독을 품고 있었고 코브라의 10배의 독을 자랑하는 Sand Snake 도 흔했다.    하루는 눈 바로 위에 성냥알 크기의 빨간 사마귀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뱀을 만났다.   

인상부터가 더럽다.    전과10범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길이는 50센티 정도, 꼬리로 똑바로 서서 노려보는데 정말 무섭다.     우선 튼튼한 플라스틱 통 안에 뿔 뱀을 넣고 단단하게 조치했다.   

그리고 현지인을 불러다 대면시켰더니 일단 물리면 쓰러지기 전에 영혼은 육신을 떠난다는 거였다.      나도 이럴 경우에 한반도의 남자들과 동일하게 이놈이 몸에 주는 활력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어 6개월 이상 지속됐다. 

만일 한달 후에 본국 휴가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육체가 불에 타올랐을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니 그런 일도 있었단 말이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많이 있었지만 한 번도 다치거나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단순하게 재수

좋았다고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아무래도 누가 뒤에서 돌봐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만 돌봐주실 뿐 앞에서 끌어주신 적은 기억에 없는 것 같다.    가령 복권을 살 때나 그런 때 말입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셔서 장항 외가에 머물고 계실 때 마당 우물에 대나무가 똑바로 떠있었다고 한다.     이때 지나가던 한 탁발승이 이 집에 장차 귀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걸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다.    미친놈 소리에다가 왕따 되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아버지는 장로이셨고 어머니 또한 신앙이 깊으셨지만 땡 중의 예언에는 깊은 신뢰를 갖고 계셨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나를 격려하셨다.

성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 정도라면 놀아도 성공에는 아무 지장이 없으리라는 신념으로 열심히 놀며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아버님도 할머니께서 공주 동학사 부처님께 3천 배를 올리느라 무릎 살이 다 헤어지고 나서야 얻으신 귀한 분이셨다.

이 정도면 전설의 고향에 나와도 크게 부끄럽지는 아니한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께서는 부처님을 외면하고 예배당을 찾으셨으니 온갖 동네 잡신들의 후원을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차단하셨음은 불문가지의 상황이다.     그래서 이 몸의 위대한 인생 성공은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덧 칠십도 중반을 넘어서는 이 자리에 서서 뒤돌아보니 무난하게 인생을 걸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살면서 데꼬복꼬가 없을 수 없었고 아직도 가슴속에 오래된 기도의 제목들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이럭저럭 살아가고 있으니 귀한 인물은 아니더라도 복 받은 인간임에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바라기는 앞으로 누구도 괴롭히지 말고, 괴롭힘을 당하지 말고, 조용하게 조상님들이 가신 길을 따라서 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도 나를 안위하시는 그분의 손길이 계속하여 주시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면 너무나도 염치없는 바람이 아닐까?

박관식 60회 - 2020년 3월22일

[일추]

진솔하게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의 명복을 빌며 좋은 글 올려주신 김선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음따라 길따라]

박관식 동문이 생전에 출중한 수필을 많이 남기고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