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8경은 역사학적 외에도 문학적으로 이미 너무나 유명하여 그곳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관동8경뿐만 아니라 이번에 춘계답사가 예정된 다른 곳도 이제껏 접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번 답사에 큰 의의를 두었다.
이번 답사 일정에는 현재 진행 중인 강의에서 교수님들이 언급하셨던 곳들이 포함 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나의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답사 후 좀 더 다각적으로 학문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 곳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중 3곳을 정하여 서술 할 생각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원주 감영에 이어 갔던 원주 향교 였다.
<사진1> <사진2>
향교는 현재 존재하는 교육 기관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운영하던 하나의 관립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 유래가 상당히 깊다. 나의 짧은 학식으로는 향교가 이전에는 조선시대에만 존재하던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와는 다르게 향교는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이유로 삼국시대에도 존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까지 계승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그 명맥이 크게 부흥하여 1군-1향교의 모습을 이룬다. 향교의 기능으로는 유교이념의 전파를 통한 교육과 공자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의 선현들을 모시는 제사 두가지 기능을 하게 되는데,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과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전학후묘(轉學後廟)로 배치하게 된다.⑴
이번에 답사를 도착했을 때에는, 원주향교에서 지내는 문묘제례를 경험해 볼 좋은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답사 일원 중에 몇몇은 직접 복장을 갖추고 참가하기도 하였고, 나머지 인원도 직접 제례에 참가 할 수 있었다. 문묘제례가 끝난 후에 <사진1>의 대성전에서 5성과 송조 2현 및 동국18현을 모신 모습을 확인<사진2>하며, 이전에 향교에 대한 강의 때에 박경하 교수님께 “동국18현은 이후에 왜 더 다른 학자들을 더하지 않느냐고” 질문 했을 때, 교수님께서 “이후로는 학자들이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답변해주신 내용이 기억났다. 원주향교를 답사함으로써 강의실에서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실제적으로 머릿속에 구현되지 못했던 향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고, 문묘제례까지 참여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시간이 되었다.
두 번째는 오대산 사고지이다.
<사진3> <사진4>
오대산 사고지는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과 함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1963.01.21.에 유적으로 등록 되었으며, 사고를 지키는 절로 월정사가 정해졌다가 거리상의 문제로 영감사로 정해졌으나, 현재 문화재청에는 월정사의 소유로써 기록 되어 있다.⑵ 오대산 사고지에서 보관하던 조선왕조실록 교정본은 일본의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하였으나, 그마저도 관공대지진 당시에 대부분 훼손되어 72권만이 남아있다가, 현재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반환 되어 있다.⑶
이 오대산 사고지는 강의 중에 교수님이 조선왕조실록을 언급 하시면서 수업을 하신 내용에 있었기 때문에, 답사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갔던 곳이었다. 사고지는 오대산 국립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사고지로 가는 좁은 길목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있어, <사진4>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사진3>는 오대산 사고지의 답사 당시 모습인데, 기대했던 모습과 달리 사고지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였고, 이전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곳 사고지의 황량하고 초라한 모습에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특별히 이곳이 더욱 인상 깊은 이유는, 박경하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하신 말씀처럼 “영구임대형식” 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반환 받음으로써,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된 점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차후 이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논의가 다시 이루어져 완벽한 소유권 이전까지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대산 사고지를 내려왔다.
세 번째는 둘째 날에 경포대에 풍광을 접한 이후 답사 했던 오죽헌 이다.
<사진5> <사진6>
오죽헌은 보물 제 165호로써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자란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은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신사임당은 현재까지도 현모양처와 현명한 어머니상의 본이 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다. 뿐만 아니라 율곡 이이는 퇴계이황과 더불어 훌륭한 학자로 추앙 받는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⑷
오죽헌은 <사진6>에서 볼 수 있듯이 오죽헌이 지어진 위치에 검은 대나무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이 건축물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추측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써도 그 의미가 있다.
오죽헌은 답사지에 직접 도착하기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답사지 였다. <사진5>에 나온 것처럼 오죽헌이라는 현판의 건물만 달랑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규모에 놀라웠다. 이전에는 오죽헌의 역사적 사료로써의 가치도 알지 못하였고, 사전지식이 너무 부족했으나 내부를 보며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율곡이이 의 동상 앞에 새겨진 견득사의(見得思義) 라는 말은 지금의 관리들 또한 마음 깊게 품어야 하는 정신이라는 것에 감탄하였다. 오죽헌의 기품에 감격하며 오죽헌의 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끝으로 답사일정을 마치게 되며 느낀 점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하신 말씀 중 역사를 연구하는 두가지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부분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각종 자료를 활용하여 그 시대에 대한 연구를 연구실 안에서만 행하여 끝내는 것, 두 번째는 직접 연구에 관련된 지역 등을 답사하여 그것으로 연구를 행하는 것을 말씀해주시면서 교수님께서는 후자에 속한다고 하셨는데, 이번 답사를 통해서 나 또한 답사를 통하여 유적이나 답사지를 직접 체험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것에 큰 차이를 느끼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이번 답사가 큰 밑거름이 될 것 이라 확신한다.
※ 각주
1.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문학박사 박경하 교수님, 한국역사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 중앙대 문화컨텐츠기술연구원 원장/. 중앙대 다문화콘텐츠연구사업단장 역임. 조선시대 향교와 향약, 향음례, 양사재에 대한 13-1향교pt 자료 참조.
2.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에 오대산 사고지 등록자료 참조.
3.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문학박사 박경하 교수님, 한국역사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 중앙대 문화컨텐츠기술연구원 원장/. 중앙대 다문화콘텐츠연구사업단장 역임.
조선왕조실록 관련 자료 13-1실록요약본pt 자료 참조.
4.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에 오죽헌 등록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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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오죽헌이 생각외로 큰 건물이어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너무 관광단지로 만들다보니 옛 모습이 다소 사라진 것 같아서 약간의 실망도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유적관광단지로 발전시키다 보니 지적하신 부분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답사에 가셔서 교수님의 설명을 정말 빠짐없이 경청하신듯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인이 많을텐데 왜 18현밖에 되지 않을까 했던 저의 궁금함이 학우님의 글과 교수님의 간접설명으로 해결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동국18현에 대해서 궁금점이 해결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동국18현에 대한 의구점이 남아있었는데 김경태 학우 글을 보고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오죽헌의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훌륭한 인물을 배출했다는 선입견 없이도 충분히 인상깊은 곳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마 우리가 율곡이이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오죽헌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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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우님들도 동국18현에 대해서 이 글을 보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