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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성전 건축의 꿈
열왕기상 8:17~19,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 왕 시대에 성전을 완공하여 온 백성들과 함께 법궤를 성전 안에 안치하고 난 뒤에 성전 낙성식에 축하와 경배를 드리고자 모인 온 백성 앞에서 솔로몬 왕이 연설하는 내용 중에 나온 일부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기가 성전을 지어 봉헌하게 된 그 내력을 말씀 드리는 중에 자기 아버지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여 나단 선지자에게 말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보내어 하였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 몇 가지의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는 성도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17절과 18절에 보면, 솔로몬의 아버지 성군 다윗에게 마음의 강렬한 소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왕궁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초라한 천막 아래 놓여져 있었던 것이 늘 다윗의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왕으로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가 천막 안에 놓여 있는 것이 죄송해서 마음이 안절부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번듯한 성전 건물을 지어서 그 안에 안치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그렇게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고 고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의 그 말을 듣고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성전을 건축해드리고 하는 마음의 소원을 다윗이 갖고 있는 것이 참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에 다윗이 성전 건축할 마음만 먹고 있어도, 그 소원을 마음에 담은 다윗이 좋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다’는 이 히브리어 단어 ‘토브’는 어학적으로 몇 가지 점에서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뜻입니다. 도덕적으로 볼 때 다윗이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가진 것을 하나님은 다윗이 착하고 선하다고 평가하신 것입니다. 둘째, ‘토브’라는 좋다는 단어에는 미학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성전 건축해드리려는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다윗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멋지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셋째, 철학적으로 가장 좋다는 의미로도 이 ‘토브’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성전 건축을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게 이상적이고 행복한 마음 상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세워 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 자체가 행복한 마음, 복받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좋다는 ‘토브’는 단어에는 경제적으로나 실제적으로도 유익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는 마음은 실제적으로, 생활적으로도 유익한 일로서 좋다고 하나님은 다윗을 평가한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는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을 위하는 마음을 품고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보기도 좋고 착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유익한 것이라고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록을 보면, 성전을 위하는 일들에는 항상 하나님의 축복이 따르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어드린 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이름을 크게 높이시고 솔로몬 왕국을 크게 부강하게 만들어주시고 솔로몬의 명성을 세상에 크게 떨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그의 지혜의 탁월함과 그의 부의 풍부함으로 오늘날까지도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이 이십 오 세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즉위 첫째 해, 첫째 달에 그 동안 그 아버지 아하스 왕이 우상 숭배로 더럽혔고 문을 닫아걸었던 성전을 다시 열고 수리하고 온갖 잡동사니와 우상들을 다 날라 치우고 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전혀 성전 일을 하지 못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다시 정결하게 하여 성전에서 날마다 번제를 드리게 하고 찬양을 드리게 하고 성전 문을 잘 지키게 함으로써 거룩하게 섬기게 하였습니다. 지키지 않던 유월절도 거국적으로 지켜서 하나님께 와서 유월절 제사에 참석하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 왕 때에 온 세상을 뒤덮던 앗수르 제국의 공격이 유다까지 미쳤을 때 나라가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망국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도와주시어서 나라를 건져주시고 그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셨고,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다시 은혜를 주시어 그를 깨끗이 고쳐주시고 15년이나 더 살게 해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한 요시아가 왕위에 올라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태양상이나 온갖 우상들을 치우고 또한 바알의 제단들을 다 없애고 망해버린 황폐한 북 이스라엘 왕국에 잔존해 있던 우상의 제단들을 다 허물고 우상을 깨뜨리는 등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성전과 그 땅을 청결하게 한 요시아 나이가 26살 때인데, 그가 성전을 수리하고자 신하들까지 보내고 성전을 수리할 헌금들을 챙겨서 성전 수리 공사 감독과 일꾼들에게 넘겼는데, 그 헌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살피다가 우연히 거기서 여호와의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율법 책을 요시아 왕에게 갖다 주어 낭독하였더니 왕의 마음에 큰 감동과 영적 각성이 일어나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시아는 신하들을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청하였습니다. 훌다 선지자는 이르기를 그 율법 책의 언약대로 우상 숭배로 그 나라는 망하게 되겠지만 요시아 왕이 말씀을 듣고 통곡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이시고, 요시아 왕에게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직접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시아 생전에는 나라가 평안하고 강성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바벨론 나라가 앗수르를 정복하러 나섰을 때에 앗수르와 연합하여 바벨론과 싸우려고 출정하는 애굽 왕 느고를 막으려고 요시아 왕이 므깃도 골짜기까지 가서 방어하였는데, 우연치 않게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 백성들은 온 국민의 애곡 속에서 요시아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드렸는데, 이로써 요시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을 위하여 건축하며 수리하며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자 힘쓰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교회의 예배당 자체가 솔로몬 성전과 같이 유일한 독보적인 신학적 중요성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예배당은 구약 시대 솔로몬 성전이 지녔던 그 지극히 복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성전 사랑의 아름다운 모범을 보였던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아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특별히 여기고 사랑하고 성전을 사랑하며 아름답게 가꾸고 수리하기를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라는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우리의 마음과 손길을 좋게 여기셔서 우리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특권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윗 왕이 이처럼 그 마음에 성전을 지어드릴 마음이 간절하고 진심이었던 것은 오늘 본문의 짧은 3절의 구절 안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정말 아름답고 좋은 성전을 지어드릴 마음이 꽉 차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을 지어드릴 마음에 다윗은 밤낮으로 설레고 그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반짝이는 생각들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 “그러나 너는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라는 말씀은 다윗의 간절한 소원과는 달랐습니다. 이는 그 마음 자체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선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성전 짓는 일을 다윗에게는 맡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건축의 특권을 주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역대상 28:3 말씀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유에 대하여 들은 말씀을 그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방 민족과의 전쟁은 하나님 백성과 교회를 위한 거룩한 싸움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의미로 전쟁을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나라와 싸우는 데 있어서 겁을 먹고 도망치면 그것은 신앙의 연약함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전쟁을 하고 승리하고 돌아와도 이스라엘 장정들은 사람의 피를 몸에 묻혔기에 부정하게 간주되어 반드시 칠일 동안은 진영밖에서 정결하는 기간을 지난 후에 성읍과 집에 들어올 수 있었고 성전에 들어와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 흘리는 일을 다반사로 했던 용사 다윗은 그런 면에서 부정해진 때가 많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평화롭고 조용한 성전을 짓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성전을 짓는 일에 있어서 손에 피가 묻지 않은 사람을 통하여 짓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을 짓는 지극히 복스러운 특권을 아무에게나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은 없지만 손이 깨끗한 사람, 큰 죄가 없는 사람을 통하여 성전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다윗 왕은 매우 고결하고 아무 죄를 짓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용사로서 전쟁터에서 피를 많이 흘린 일로 하나님께서 성전 짓는 것을 막으셨으니, 참으로 성전을 짓는 것은 지극히 복스러운 자만이 받는 영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절에서 이르기를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짓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고 하시더니, 하나님은 다윗 대신에 그 아들 중에서 솔로몬을 택하시고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전 짓는 것은 지극히 복스러운 일인데, 아무나 성전 지어드리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주권적 작정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도 솔로몬이 받았던 것 같은 성전 건축의 지극히 복스러운 특권을 받기를 기쁨으로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축복과 상급입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그토록 열렬히 바랐지만 거절되었지만, 다윗에게 아직 남은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하는 특권이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 특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필요한 물품들을 한없이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거멀못과 놋과 백향목 나무와 참나무와 각종 천들과 금은보석 등을 생전에 많이 준비해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을 잘 조직하여 성가대도 24반차로 나누어 섬기도록 하였고, 성전 경비대도 조직하여 잘 성전을 지키도록 준비하였고, 제사장들도 24반차로 나누어 조직하여 하나님의 제단에서 질서 있게 섬기도록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성전의 설계도면도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서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기록하여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들 솔로몬이 시작하기만 하면 큰 어려움 없이 성전을 착착 지어나갈 수 있게 하였고 또 성전이 완공되면 모든 백성들이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아름답게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미리 다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자기 왕궁을 짓는 데는 13년이 걸렸지만 성전을 짓는 데는 상대적으로 짧은 7년밖에 걸리지 않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아버지 다윗이 이렇게 성전 건축을 위하여 치밀하게 미리 다 준비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들에게 솔로몬과 같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특권이 혹 주어지지 아니할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전 건축의 특권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에는 주의 백성들 모두에게 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 감사합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신 다른 까닭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성전 건축은 그 건축물 자체의 결과보다는 그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였던 솔로몬의 건축 기간은 7년이었지만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한 기간은 훨씬 더 길었습니다. 대략 계산해보면 다윗이 나단 선지자로부터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들은 때가 그의 나이 40세 정도라고 보면, 약 30년을 성전 건축 준비에 쏟아부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 건축은 그 준비하는 기간이 훨씬 더 성전 건축 기간보다 길고 그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영적 축복이 훨씬 더 풍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 건축 준비의 복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정성스럽고 지혜롭게 준비에 힘쓴다면, 그것은 곧 성전 건축의 영광과 특권을 함께 누리는 것과 같을 것이요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그 복과 은혜가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실천해봅시다. 먼저, 쉬운 것으로는 옛날 광야 교회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만들라는 시내산에서 모세의 말을 듣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든 물품들을 풍성히 내어드린 것처럼, 다윗과 그 백성들이 자원하여 후계자 솔로몬이 짓게 될 성전을 위하여 풍성히 물품을 미리 내어드린 것처럼, 우리도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적은 물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는 복된 습관을 가집시다.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서 필요한 예물을 가져올 때에 그 가져온 물건이 너무 많아서 가져오기를 그쳐달라고 청할 정도였으니, 이는 그들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기를 위하여 우리가 즐거움으로 준비차 물품을 드릴 때 그것들을 주님께서 즐겁게 받으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나 더 중요한 영적 성전을 우리가 건축하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한 성도 한 성도가 거룩한 영적 성전을 잘 지어갈 때에 그것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진정한 성전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외적 성전을 잘 지었다 해도 성도들의 심령 성전이 부실하게 지어지면 그 외적인 성전의 아름다움은 곧 빛이 바래고 결국 그 외적 성전조차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 왕이 성전과 왕궁을 짓는 동안까지는 깊이 타락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성전을 다 짓고 난 후에는 급격히 이방 여인들을 첩으로 많이 삼고 우상 숭배를 허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성전 건물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서 있었지만, 그 성전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혼합해지고 점점 타락해감으로써 그 후에 결국 4백년 후에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황폐하게 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성전 건축의 특권과 축복을 살펴보면서, 더 중요한 우리의 영적 성전을 잘 가꾸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읽고 묵상하기를 힘씁시다.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가장 귀한 것으로 알고 늘 부지런히 성전에 모여 예배하고 또 받은 바 은사들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봉사에 언제나 몸 드리기를 즐거워합시다. 또 성령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은혜에서 멀어진 자들을 보면 기도해주기를 힘쓰며 늘 사랑으로 격려해줍시다. 나아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도하여 주의 백성들의 수를 더해가며 하나님 나라를 더욱 확장해가는 일에 앞장섭시다. 그리할 때 내적인 성전이 아름답게 지어져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가운데 우리에게 외적인 성전도 세워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우리가 기꺼이 그 복된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 그 영광스러운 특권도 주실 것입니다. 모세 시대와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룹바벨 성전을 세운 그 세대는 지극히 복된 이 영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우리 성도님들도 이러한 자랑스러운 특권을 언젠가는 주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우리 세대가 비록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할지 몰라도, 우리가 성전 건축의 역량을 키우고 우리의 내적 성전을 잘 가꿔간다면 다음 세대에 가서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외적 성전까지 세우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이제 구약 시대는 지났고 신약 시대도 깊어져서 외적인 성전의 중요성이 많이 희석되어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외적 성전이 이면에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내적 성전을 건축하라는 이 귀한 메시지만큼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마지막 때입니다. 솔로몬이 외적 성전을 잘 지어놓고 타락하여 성전의 그 영광이 가려졌지만,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려는 다윗의 거룩한 열망이 가진 아름다움은 참으로 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면서 그의 내면적 영적 성전이 지극히 아름답게 지어져간 것처럼, 우리들도 남은 생애 동안 우리의 내적 성전을 잘 가꾸어갑시다.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내적인 성전과 외적인 성전을 잘 세워가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헌신과 수고를 따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장차 주님 앞에 가서도 지극히 큰 영광을 받아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