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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2일
말씀: 롬1:16-17
제목: 복음의 능력
믿음이 연약하고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굉장히 오래된 성도들이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일전에 말씀드렸지만 교회가 무너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가 왜 무너지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무너진다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너진 신앙을 세워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태양이 발하는 에너지를 1초 동안 만 정확하게 축적할 수만 있다면 이 지구상에 있는 60억 인구가 100년을 쓰고도 넉넉히 남음이 있다고 합니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 한 방울은 사탄의 권세를 부수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도 넉넉히 남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이면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과 특권과 권세를 누릴 수 있도록 흘리신 보혈입니다. 그리고 그 피가 우리 마음속에 흐르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승리가 보장 되어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이 말은 “유” 좋다 “겔리온” 소식이란 뜻입니다. 바로 유앙겔리온은 좋은 소식,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 ‘Godspell’ 좋은 이야기, 복된 이야기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털루 전투가 끝날 즈음에 모든 영국 사람들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전쟁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기면 유럽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여기서 패하는 날이면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말발굽아래 처절하게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웰링톤 장군이 패배했을까? 아니면 승전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줄 것인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전보도 전화도 e-mail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전쟁의 결과는 오직 높은 탑 위에 올라가서 알려주는 파수병의 신호로 전 런던 시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드디어 수기 신호가 올라가는데 안개 속으로 어렴풋한 글씨가 보여집니다. “웰링턴 장군이 참패” 온 백성 앞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진 2시간이후 안개가 걷힌 다음에 또 다른 한 글씨가 보였습니다. “웰링턴이 참패시켜 승리하였다!” 이 승전 소식을 유앙겔리온, 즉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승리하면 자유인이요 패하면 노예로써 멸망당하던 사도 바울 당시 전쟁의 승전보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이 사회적인 개념을 기독교에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그를 의지하는 모든 백성을 살려내는 영원한 구원의 소식을 “복음” 유앙겔리온이란 단어로 소화를 시켰습니다. 예수 그 분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영육 간에 모두 다 부활할 영원한 승리를 ‘유앙겔리온’, 복음이란 단어로 소화를 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이 ‘유앙겔리온’이 승전의 소식은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사렛 예수 그분의 복음 안에 있다고 외칩니다. 그 분 안에 생명이 있고, 영원함이 있고, 진리가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은 보상이 있고 승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 고모님이 31일 날 저녁에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고모의 전화를 처음 받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놀랬지요. 왜냐하면 저희 큰 아버지께서 90이 넘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비보가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런데 고모님이 하시는 말이 ‘잘못 눌렀데요’ 우리가 듣는 소식은 슬픈 소식도 있고 아픔과 상처의 소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마는 주님의 소식은 승리의 소식 영광의 소식, 복음의 소식입니다. 이 복음이 엄청난 역사를 이루었고 또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복음이 얼마나 능력이 되는지 체험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능력’이라는 말은 원어로 “뒤나미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다이나마이트” 폭탄을 말합니다. 즉 반석이라도 폭발시켜 산산조각을 내는 엄청난 힘,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는 현대의 문명을 다이나마이트의 문명 즉 폭탄의 문명이라고 이름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통 시대를 가능케 했던 것이 다이나마이트입니다. 선로 고속도로 다리 등을 가능케 했던 것이 다이나마이트의 능력이었습니다. 다이나마이트는 산도 헐고 바위도 산산조각 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수많은 위인과 성인과 철인들이 천성가는 길을 뚫기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였으나 그들의 수고는 헛수고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이나마이트만이 천국가는 길을 뚫어내고 열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신앙인들 중에 이런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써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데 우리 영명교회가 이런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하진선교사라고 지금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로 카이스트 박사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교수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분입니다. 이 최하진선교사가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잘 한 것은 아닙니다. 모태신앙이었는데, 여러분 모태신앙이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이것도 못태 저것도 못태 아무것도 못태가 모태신앙인입니다. 그는 모태신앙인이지만 평신도 보다 낮은 병신도적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 가장 중요한 시기인 30대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결심을 하고 중국으로 가기 전에 미국에 잠시 들렸는데 스탠포드대학에서 대학연구교수로 채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순간 갈등이 찾아왔을 것 아닙니까? 스탠포드대학에가면 노벨상을 탄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 있답니다. 이 최하진 선교사가 사진을 쭉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죽었더랍니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면 죽은 것인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죽음인가를 생각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서 중국선교사로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 분이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세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학교를 세우려면 최소한 6만불, 우리나라 돈을 칠천만원 정도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후원금, 건축헌금을 지원받아야하는데 마냥 죽치고 있을 수 없어서 1월 10일에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를 해 놓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실직당한 김명진형제가 컴퓨터 살 돈 천불을 헌금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가 굉장히 부담스럽지요. 그런데 3일 후에 서동민장로라는 분이 컴퓨터 안 필요하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교회에 컴퓨터 사업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업이 잘 안 되어서 자기는 필요 없는데 도와주는 측면에서 한 대 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컴퓨터를 김명진형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김명진형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 컴퓨터가 내가 사려고 한 서브용 컴퓨터라고 말입니다. 이런 체험들이 참 많은데 이렇게 해서 1월 6일까지 오만불이 모였답니다. 1월9일 밤10시까지 L.A공항에 가야하는데 일만 불이 부족합니다. 최하진선교사가 잘 아는 은퇴목사님이 마지막 저녁을 먹자고 해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식사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헤어지면서 사모님이 ‘얼마 없데이’하면서 봉투를 하나 건제 주더랍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용돈 정도 준 것으로 알고 받아서 집에 가서 보니까 그게 만 불이라는 것입니다. 비행기 떠나기 3시간 전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살아계신 체험들이 사실 중국 선교사로 가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짓는데 큰 믿음의 발판이 된 것입니다. 학교를 처음부터 다 지은 것이 아니니까 고등학교를 짓고 또 중학교 유치원 이렇게 지었을 것 아닙니까? 그 때마다 깃발을 꼽고 일단 기공예배부터 드린답니다. 물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더라는 체험이며 간증입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수많은 중국학생들에게 복음의 사역자가 된 것이며 물론 공개적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런 간증이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선택해야할 귀로에 놓일 때가 많지 않습니까? 대학, 직장, 결혼상대자,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최상의 선택이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선택이 주님을 붙드는 선택입니다. 올 한 해가 주님을 붙들고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을 선택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선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자신이 선택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런 선택에 반드시 우리가 보여야할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보인다는 것을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까? 믿음은 현실에서는 손해 볼 것 같고, 어려울 것 같고 힘들 것 같지만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길을 가는 것이 믿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의 삶의 주인임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록 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시며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새해를 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 3장6절을 보면‘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고 했습니다. 먼저 발을 내 딛어라 는 것입니다. 요단강이 마른 땅이 되어서 건넌 것이 아니라 먼저 넘치는 강에 발을 내 딛어라 는 말입니다. 하나님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니까 요단강이 마른 땅이 되고 장정만 60만, 남녀 약 2백만, 짐승과 함께 약 5백만이 그 요단을 건넌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십시오. 먼저 발을 내 디뎌야합니다. 2011년은 생각만 하지마시고, 미루지 마시고, 믿음 없다고 변명하지 마시고, 먼저 말씀을 지키며 요단을 건너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일이 일어남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심을 분명히 볼 것입니다. 2011년은 하나님이 일하시며 하나님의 일이 우리의 삶 속에 날마다 나타날 수 있도록 주님을 붙드시고 삶 속에서 주님을 선택하시고 요단을 먼저 믿음으로 건너는 심령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런 차원에서 첫발을 내 디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영명교회가 개척한지 19년이 되는 해입니다. 적어도 자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성도로 성장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해는 첫발을 내 딛되 새벽기도의 첫 발을 내 디뎌보시기를 원합니다. 1월 3일부터 요단을 건너갑시다. 새벽의 문을 열어봅시다. 새벽의 첫발을 내 디뎌보십시오. 그리고 전도의 첫발 또한 중요하지 않습니까? 전도는 교회의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이런 주님의 사명과 책임을 위해 첫발을 내 디디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첫발을 내 디디는 순간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스토리가 쓰일 것입니다. 최하진선교사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적과 표적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역사와 일하심을 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내 디디는 순간 하나님의 스토리는 쓰이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교회의 목표가 2012년을 준비하는 한 해입니다. 그러면 2012년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한 교회를 개척하고, 희귀난치병환자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고, 선교센터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이것보다 더 큰 계획도 이루시는 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그래서 올해가 그 믿음의 첫발을 내디딘다는 의미에서 2011년이 준비하는 한 해입니다. 어떻게 준비하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심어야합니다. 우리가 심을 때는 그 씨를 보고 심지만 그 씨로 꽃이 필 때, 씨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형체로 바뀌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한 개의 씨가 심어져서 열매로 맺어지면 엄청난 숫자로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심는 축복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2012년,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심는 대가를 치르신다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이 요구되고 또 올해도 여러 가지로 여러분들이 감동되는 대로 믿음의 실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스토리가 영명교회를 장식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고 못사는 인생은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의 스토리가 많이 쓰였는지 아니면 인생자체의 스토리가 많이 쓰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이 땅에 대통령까지 지냈다 하더라도 그래서 세상 역사에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하더라도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이야기가 없으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다면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반드시 햇빛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이며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은 나와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퇴로를 만들어 놓으시고 대안을 만들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말씀을 이론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며, 이삭이 누구며 야곱이 누구며 엘리야가 누구며 요셉이 누구인지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야기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옛날 동화책 읽듯이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동일하게 적용되며 역사하며 일어남을 그들의 삶이 교훈이 되어 말씀대로 살아내며 몸으로 동일하게 체험하는 축복을 누리셔야합니다.
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꿈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의 꿈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내 꿈과 하나님의 꿈이 가까워 질 때 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생과 내 인생이 합쳐질 때입니다.
말씀에 감동이 있으면, 기도의 응답이 있으면 첫발을 내 디뎌서야 합니다. 십일조의 첫발, 헌신의 첫발, 직분의 첫발, 기도의 첫발 디뎌보세요. 그것을 위해 장애를 퇴로를 차단하십시오. 믿음을 보인다는 것은 완전히 100%로 불가능한 가운데 100%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믿음임
어느 날 새끼낙타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엄마 나는 왜 이렇게 긴 발가락이 세 개나 되나요’ 그러니까 엄마 낙타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사막을 건널 때 미세한 모래 위를 걸어 다니다 보면 미끄러지기 쉬운데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긴 발가락이 세 개나 되는 거란다.’ 그랬더니 또 새끼낙타가 묻습니다. ‘엄마 엄마 그러면 왜 나는 눈썹이 이렇게 길어요.’ 엄마가 하는 말이 ‘사막을 걸을 때 모래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눈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눈썹이 긴 것이란다’ 그랬더니 다시 새끼 낙타가 또 묻습니다. ‘그러면 엄마 등의 혹은요?’하고 물었더니 엄마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건조한 사막을 건널 때에 물을 저장해 두기 위해서란다.’아기 낙타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엄마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정말 멋져요 큰 발가락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지요, 긴 눈썹이 있어서 눈에 모래도 안 들어가지요, 또 등에 혹이 있어서 물을 저장해 둘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엄마’ ‘왜 아들아’ ‘그런데 왜 우리는 동물원에 있나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생명이 풍성하지 못하고 구원 받는 심령들이 없으며 더불어 교회가 신앙과 믿음이 무너지는 일이 있다면 우리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교를 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작년에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버티는 것이라고 했지요. 믿음으로 버티며 사는 삶이 지금 우리에게 가치가 있고 감격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서 가는 길에 무슨 가치와 감격이 있습니까? 세상적으로 교회가 가면 자꾸 자기 교회를 과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화의 뚜렷한 증거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가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 좋은 학원에 대한 이야기, 어디에 투자를 해야되느냐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 밖에 할 것이 없다면 교회가 하나님의 이야기가 없어서입니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만 오간다면 세속적 삶을 교회에서도 살고 있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는 늘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그러나 우리는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은 없어도 은과 금은 있을지어다’그러면 교회에 무슨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은과 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그렇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누구에게 빼앗길 수도 없는 영원한 것들이 확보된 자들입니다. 그 감격과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담대함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며 많은 심령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며 심어가는 일에 헌신된 삶을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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