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버린 기대(期待)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철썩 촤르르, 철썩 촤르르”
파도가 일차로 해변의 조약돌을 밀어올리면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밀려든 물이 빠져나가면 뒤따라 돌들은 우루루 굴러내리며 아우성을 쳤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소리를 치는듯 했다.
그것을 본 지가 언제였던가. 세월은 오십년 전으로 되돌려진다. 소리쳐울던 해조음(海潮音). 그것을 잊지 못하다가 근자에 여수 적금도와 고흥간에 ‘팔영대교’가 개통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현장에 이르러서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 옛날 풍광좋던 몽돌밭이 온통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흔적이라도 찾을까 싶어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실망감이라니.
서편 바닷가는 온통 몽돌 밭이었는데, 종적을 감추고 없었다. 방파제 공사를 하느라고 골재로 쓰느라고 없애버린것 같았다. 이만저만 실망스런 것이 아니었다. 당시 보면 물이 들고 날때 수많은 돌들이 일제히 구르면서 장관을 연출했는데, 흔적조차 없으니 맥이 딱 풀려버렸다. 이런 무모한 짓이 어디 있단 것인가.
예전 나는 한때 전경부대에 근무하면서 그 섬에서 6개월 남짓 생활했다. 그러면서 해안 순찰을 돌며 그곳의 몽돌이 그르며 아우성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시기는 대개 물때가 사리 때인 일곱물이나 여덟 물 때. 밀려오는 파도에 올라온 몽돌이 물이 빠지면서 거의 3,4미터나 밑으로 끌어 내려졌다.
그러면서 그곳에서는 격정적인 교향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몽돌이 구르면서 현란한 연주를 했다. 그런 현상은 파랑주의보가 내리면 한층 더 강렬해 졌다. 첨병으로 밀려온 파도가 먼저 돌의 피면을 적시고 나면 본진으로 밀려온 파도가 세차게 돌을 강타했다. 그런 파도는 일정하지 않아서 어쩔 때는 숨길을 조금 고르다가 거세게 한번씩 몰아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돌들은 아우성소리를 냈다. 촤르르 차르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소리는 초저녘에 더욱 잘 들렸다. 해서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아 저녁을 먹으면 이내 바닷가로 나왔다. 이때는 바다전경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더욱 커져서 신비감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파도는 몽돌들을 얼마나 시달려 놓았던 것일까. 그곳의 몽돌들은 하나같이 피면이 반들반들하고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로 미뤄보아 억겁의 세월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보면 돌들은 모두가 대책 없이 구르지는 건 아니었다. 작은 돌은 조금 구르다말고 큰 돌이 한참을 굴러 내리면서 큰 소리를 내었다.
이곳 돌들은 무른 돌이거나 푸석돌이 아니다. 청회석의 강돌로서 들어보면 마치 쇳덩어리와도 같았다. 한데 그런 돌이 파도에 구르고 씻겨서 연마석과 같았다. 그런 돌을 감상하기에는 별빛이 총총한 날 보다는 약간 흐려서 물체가 어슴푸레 보이는 날이 제격이었다. 온전히 귀로만 환상적인 소리를 모아 들을 수 있어서다.
어느 날 나는 밖으로 나와 몽돌 밭 위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고선 한식경 파도가 굴리는 몽돌의 합주곡을 듣고 있었다.
“철썩 촤르르, 철썩 촤르르”
듣고 있노라니 파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파도가 몽돌을 덮치면서 내는 소리가 확연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보나마나 파도가 쌓인 모래성의 하상을 무너뜨리자 휘젓고 빠져나간 자리에 있던 몽돌들이 머금은 물을 토해내면서 무너진 소리일 것이었다. 이때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데굴데굴 굴러 내릴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신비한 체험으로 또 하나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게 있다. 부서를 바꾸어 거문도에서 근무할 때인데 당시 서도를 담당했다. 그곳을 가자면 본도인 거문도에서 덕촌리로 가는 배를 타고 이동하여, 변촌을 지나 서도리로 향해야 한다.
그곳으로 가자면 오솔길을 지나는데 풋풋한 동백나무 군락이 길게 늘어서서 터널을 이루어 반겨준다. 여름철에 이곳을 지날 때면 동백나무가 햇볕을 가려주고 겨울에는 등불처럼 꽃등을 밝혔다. 그곳의 동백꽃은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일찍 피었다. 위도가 낮고 해양성기후가 형성되어서인지 모른다.
나는 마을 출장을 갈라치면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이마에 닿고, 손으로 헤치고 지나는 맛이 그만이었다. 그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 정취를 어찌 잊을까. 차가우면서도 보드라운 감촉. 은은한 꽃향기. 그리고 별천지 같은 풍경.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결코 그것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기대를 안고 모처럼 찾아간 적금도는 크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날은 함께 글을 쓰는 문우와 동행했는데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섬을 가로지르는 특색 있는 대형 현수교가 한개도 아니고 네 개나 지나치고 있어서 낭도에 들러 전망대 구경을 하고 사도가 바라보이는 포토 존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 까지는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적금도에서 그만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전에 거문도를 찾아갔다가 오솔길이 확장되어 있는 바람에 몰 풍경을 보고 실망 했듯이, 여기서도 몽돌 밭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를 교각이 세워지고 돌들은 골재로 사용했는지 온통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동행한 친구는 내가 그러나저러나 조발도와 둔병도, 낭도와 적금도, 그리고 고흥을 잇는 다리의 아름다움을 누누이 말 했지만, 나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저 사라진 몽돌 밭만 자꾸 눈에 밟혔다.
그렇게도 앞을 내다보는 눈이 없단 말인가. 그것은 얼마나 소중한 자연유산인가. 그것이 그대로 잘 보존되었더라면 교통의 접근이 용이해진 이곳은 앞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이고, 그 몽돌 밭은 명소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심심이 지친 관광객들이 찾아와 대자연이 펼치는 합주곡을 감탄하며 들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도 마을안길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였을까, 나는 크게 낙심하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온 지금은 차라지 아니 가본 것만 못하다는 생각만 든다. (2020)
첫댓글 개발과 보전의 난제를 다시 한 번 생각게 됩니다 개발에는 자연의 훼손이 필연적인 듯합니다 그러나 파괴된 몽돌밭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안타까운 소회는 영영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겠군요 다만 또 한 세월 흘러가면 상처가 아물어 옛날의 그 몽돌 구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다 저도 장차 그 섬들이 쓰레기로 덮이고 몸살을 앓을 것 같은 걱정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고 그 몽돌밭은 그 어디에도 없는 억만금짜리의 보배운데, 무지몽매한 탓에 없애버리고 말았으니 크나큰 손실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단언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서보니 그곳은 완전히 파해쳐 버려서 복원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 가치는 한번 생각해 보면 알것입니다.
어른 주먹 두배 정도의 청석 몽돌이 파도가 밀려오가 빠져나갈때마다 거의 2미터를 밀어올려지고 물이 빠지면서 구르는 정경을.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관광자원을 파괴해 버리더니. 완전히 기분이 잡치고 말았습니다.
"철썩 촤르르, 철썩 촤르르” 정겨운 소리입니다. 파괴는 순간이고, 100% 복원은 어렵습니다. 자연이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전 적금도의 바다풍경은 환상적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을 보존하지 못하고 파괴시킨 것은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무지가 빗은 자연파괴의 한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창작산맥 2020 여름호 발표
어쩜 사람들이 이리도 우매할까요..
4대강 개발한다고 생태계를 파괴시킨 일이 생각나네요. 개발해야할 것과 보존해야할 것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음이 개탄스럽습니다.
정말 적금도의 몽돌밭은 해조음이 한상적인 곳인데 지난번에 다리가 놓여 가보았더니 파해쳐서 크게 변형을 시켜놓았더라구요.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그것을 본후 그날 기분을 완전회 망쳐버렸습니다.
적금도 몽돌밭의 환상적인 해조음, 청석님의 글을 통해 저도 몽환에 빠질 지경입니다.
그런데 개발이라는 편리한 문화를 추구하면서 우리 주변에는 너무 나도 많은 곳이 적금도와 같이 망가 졌습니다. 우리 마을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는데, 백만평이나 될 엄청난 백사장이 있었는데 그 모래를 흔적도 없이 다 파내 버려 독초만 무성한 폐허 공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하얀 세 모래 밭에서 여름이면 인근 주민들이 모래 뜸질을 하고 했는데 그 때가 그립습니다. 저는 그리운 것은 가슴에만 담아 두고 살기로 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적금도의 몽돌의 훼손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놔뒀더라면 다리가 놓려져서 많은 사람이 찾을텐데 좋은 광광명소를 하나 없애버리지 않았는가 합니다.
섬진강 철교밑도 생각이 나는군요. 제가 광주서 근무할때 대원들과 그 다리밑에서
쪽대로 은어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어먹었지요. 그때보니 강폭이 무척 넓고 모래밭이 아주 컷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흉질 만들어 버렸다니 매우 아쉽습니다.
여수는 많은 유적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존보단 허물어지고 그 곳엔 새로운 콘크리트건물이 서있습니다. 이제와서 옛것을 복원한다는건 매우 어렵지요. 고증도 거쳐야하고 아쉽지만 이제라도 보존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서편 적금도 몽동밭 훼손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줍니다. 그런 명소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운 것은 눈으로 확인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슴에만 담아두고 간직한 편이 낫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몽돌은 아무곳에나 있는 돌이 아닙니다.
명소가 될 명소가 될 돌밭을 파헤치고 말았으니 그리도 앞을 내다보는 눈들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몽돌밭 몽돌 구르는 소리>
https://youtu.be/2udGRwF1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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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동산문학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