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26일 박 동원 논설위원이 올린 컬럼입니다. 이 재명과 유 동규 관계를 표본으로 정치계의 의리,신의,의무의 차이를 재미있게 꼬집었네요. 必讀 强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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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시절부터 15년을 생사고락 함께한 가신(家臣) 김희중이 투옥 중 부인이 자살을 했는데, MB는 문상은커녕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출소 이후 막막해진 상황에 MB에게 몇 번이나 만나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전까지 '이명박'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不敬)이라던 이가 원한을 품었다. 김희중이 솔로몬 저축은행 금품수수 건으로 감옥갔으니, MB는 해가 될까 엮이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평생 이익만 추구해온 장사꾼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배신감을 느낀 김희중은 MB재판 때 온갖 증거를 다 들이대며 복수를 했다.
민주당 'MB버전' 이라는 이재명. 호주에서 같이 골프 쳤던 김문기(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까진 몰라도, 유동규를 ‘측근’이 아니라고 한 건 큰 패착이었다.
이재명가(家)의 행동대장격인 유동규는 '몸빵' 실무역을 했던 이다. 정진상은 기획실장역, 김용은 전무역으로 보면 된다. 이·ᆞ정ᆞ·김 선에서 계획되고 논의된 사항을 집행했던 이가 유동규다.
그런 유동규를 ‘측근’이 아니라고 했으니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낄 만하다. 나름대로 '뒷골목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살까지 시도했던 ‘돌쇠형’이 “김문기를 모른다”며 발뺌하는 이재명을 보며 의리에 대한 강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동규는 기자에게 "이 세계에 의리는 없더라"고 말했다.
‘삼국지’를 관통하는 한 단어가 바로 '의리(義理)'다. 동양에선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서양은 계약관계 우선이라 공적 도리인 ‘의무(義務)’는 있어도 의리란 개념은 없다. 영어사전에 '의리'를 넣으면 ‘loyalty’가 뜬다. 이건 충성심이다. ‘fidelity’도 뜨는데 이건 충실함, 부부간 신뢰의 의미다.
의리란 사람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인데 사실 매우 사적이다. 안 지켜도 그만이다. 다만 관계가 파탄 나고 사적 복수나 응징이 뒤따른다. 서양의 경우 봉건제가 만든 공적 의무 때문에 법치와 민주주의가 발전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의리를 중시 여겨온 동양은 여전히 의무에 약하고 권력이든 사업이든 매사 사적 의리로 엮이고 해결하려 한다.
대한민국 정치인이 힘든 건 ‘그놈의 의리’ 때문이다. 정치하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대의(大義)를 위한 의무보다 늘 의리를 앞세우니 마음을 나누든 물질을 나누든 자리를 나누든 늘 측근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 정치 자체가 위험한 한국 정치인은 측근들과 헤어질 땐 마음을 다치지 않게 배려해야 된다.
사실 의리보다 중요한 건 ‘신의’다. 의리는 저버릴 수 있되 신의까지 저버리면 안 된다. 유동규는 이재명이 자길 ‘측근’이라고 하지 않았을 땐 크게 반응이 없었지만, 김문기를 모른다고 한 걸 보곤 반응했다. 의리 없는 것까진 정치적 대응이라 보고 참았으나, 신의 없는 장면을 보곤 인간적 기대를 접은 것이다.
입으론 “의리, 의리” 하지만 실상 결정적 순간엔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남자들의 개나 줘버리는 의리다. 뻑하면 ‘육친(肉親)적 동지애’ 운운하며 ‘대망’을 언급하던 한 정치인이 자기 절친이 중병이 나 모금하는데 십원짜리 한 푼 안 내놓걸 보며 역시 과한 남성적 의리는 개나 줘버리는 것이었단 걸 확인했다.
의리보다 신의, 신의보다 중요한 건 의무다. 특히 정치에선. 의리와 신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여전히 공공을 위한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대의나 이익을 실현하는 사적 영역이다 보니 의무보다 의리를 중시하고 그놈의 의리 때문에 사달이 난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