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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소감】
좀처럼 눈을 떼기 어려운 재미있고 유익한 이양자 교수의 수필집
― 팔순 원로 역사학자가 보내준 『모차르트를 사과하다』를 읽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재미있는 수필집을 만나면 반갑다. 파격적인 제목의 수필집을 만나면 즐겁다. 지식과 교양이 배어나는 유익한 수필집을 만나면 고맙다. 담백한 자기 고백이 깃든 진솔한 수필집을 만나면 왠지 설렌다.
그런 수필집이 내 집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책을 보내준 저자에게 서둘러 고맙다는 답장을 하기 전에 이런 귀한 책을 내 집까지 착오 없이 배달해 준 집배원에게 먼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 팔순의 원로 역사학자 이양자 교수가 친필 서명하여 보내준 신간 수필집
증정본 책을 받으면 순서와 절차가 있다. 먼저 책 봉투에 적힌 저자의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가위로 오린다. ‘저자의 말’을 읽는다. 책 제목으로 삼은 글부터 찾아 읽는다. 그것으로 일단 따끈따끈한 신간 서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한다.
그러나 잠깐,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만으로는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풍부한 인물 정보를 제공하는 유력 언론사 ‘조선일보 인물 정보’를 검색한다. 저자의 ‘이력’뿐만 아니라 ‘관련 기사’도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온다.
저자에 대한 이 정도의 기초적인 정보를 입수한 후에 책을 읽으면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수필집이란 본래 저자의 ‘자화상’이나 ‘자전적’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작가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고 나서 책의 서문과 눈에 띄는 작품 한두 편 읽어보면 바쁜 시간에 제백사(除百事)하고 책을 끝까지 읽을 거냐, 대충 넘겨보고 말 것이냐, 판단이 선다.
‘독서’란 내 귀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다. 귀한 시간을 아깝지 않게 투자하여 무언가를 얻는 일이다. 책에서 즐거움을 얻든, 배움을 얻든, 정서를 풍부하게 하든,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한다. 그런 책을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날 고민하고 공을 들였는지 가슴으로 느낀다.
나는 좋은 글을 만나면 충격을 받는다. 충격을 받으면서도 밑줄을 긋는다. 밑줄을 그은 대목은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된다. 기억장치에 저장해 두었다가 언뜻 생각날 때 펼쳐 본다.
이 책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눈을 떼기 어렵다. 책에서 신비로운 에너지가 발산한다. 그 같은 마력이 어디서 나올까?
아, <술을 좋아하는 여자 교수>.
아, 이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인품의 작가와 마주하는 ‘대작(對酌)’이다.
잔이 연거푸 건네진다. 누가, 누구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그렇다면 사양하지 말고 얼른얼른 받아 마셔야 한다. 저자와 독자도 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아야 한다. 따뜻한 정을 느끼면서 책장을 넘기는 일은 저자의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 마시는 일이다.
어, 취한다.
‘명정(酩酊)’이란 말의 실제 사례는 이미 저자가 본문에서 설파했다.
『이제 나이 팔순은 넘었는데…. 그동안 나는 병원 응급실엔 서너 번 갔고, 경찰서엔 두어 번 갔다. 그리고 나의 술 짝지(짝꿍) 남편도 먼저 떠나가고 황혼이지는 어스름 저녁이 되면 혼자서 술을 마신다.』
애주가가 사람 좋다고 했던가. 애주가와 낙천가는 동의어인가. 이른바 ‘혼술 반주 예찬’을 좀 더 들어본다.
『그럼 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
술기운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지면 기분이 업~되면서 긴장되었던 근육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약간의 취기가 온갖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울고 싶어지고 애틋한 추억에 젖어 센티멘털해진다. 멋지진 않지만, 시상이 마구 떠오르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악이 더 감미로워지고 세상사 모두 로맨틱해진다. 저 달이, 다가온 가을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이 모진 세상에 술 한 잔 아니하고 무슨 맛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처럼 멋지고 찬란한 ‘혼 술 예찬론’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저 유명한 수주(樹州) 변영로 선생은 『酩酊 40년』이지만, 팔순의 원로학자 운경(芸卿) 이양자 수필가는 『酩酊 50년』이다. 수주 선생을 능가하는 여교수가 부산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수필집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독자로서 이 수필집을 ‘재미있다’라고 서두에 밝힌 데는 요 대목이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술이 인연이 되어 결혼했고) 결혼을 하고 난 뒤 젊은 시절, 남편이 술 때문에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나는 으레 소주 반 병 이상을 빈속에 혼자 마시고 기다렸다. 주사(酒邪)가 심한 남편에게 나의 주사로 맞불을 놓기 위해서였다.』
독자가 ‘좀처럼 눈길을 떼기 어렵다’라고 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 있다.
문득 존경하는 역사학자 낙암 정구복 교수님이 떠오른다. 저자와 같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출신 아닌가.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매일같이 뵙는 다정다감한 원로 역사학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낙암 교수님께도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책의 저자인 이양자 교수님과 정구복 교수님은 아마도 사학계의 선후배 사이가 될 것 같다. 유력 언론사 ‘인물 정보’에 노출된 두 분의 연세를 살펴보니, 이양자 교수님(1941)이 정구복 교수님(1943)보다 두 살 위로 보인다.
아무튼,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또 다른 분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즐거움이다.
요즘 내게는 이런저런 곳에서 매일같이 이메일을 통해 <보도자료>를 보내온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나의 글을 읽는 분들이 그렇게 많다.
내 블로그의 ‘필자 소개’ 문구가 이렇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한 일상에서 보석 같은 이야기 찾기』
어떤 인상 깊은 분들의 따뜻한 일상이나 특별한 에피소드, 또는 놓치고 싶지 않은 귀한 이야기를 틈틈이 소개해온 까닭일까. 전국에서 부쳐오는 다양한 책을 읽고 깊은 감명받는 대목은 소감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언론사 기자가 아니다. 책을 카페나 블로그에 소개하더라도 기사 형식으로 쓰지 않는다. 지방 언론사 논설위원으로 다년간 사설과 칼럼을 쓴 습성이 있다. 국가 기관 정보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경력도 있다. 남의 글을 읽으면 핵심적인 논점이나 특이 현상을 가려내고 분석하는 글도 많이 써 왔다.
하지만 나는 본래 수필 문학으로 등단한 사람이다. 30여 년 넘게 문단 활동하면서 수필 문학을 공부하고 애호해 온 사람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길든 창작 습성이 다양한 형식의 인터넷 글쓰기로 이어져 왔다.
수필집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생애 한 단면을 파악하는 일이다. ‘파악’한다는 말은 공직 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책에서 얻은 지식은 알게 모르게 내 정서 함양에 도움을 준다.
독서는 그러므로 ‘콩나물시루’와 같다. 허경영 총재가 강연에서 즐겨 쓰는 표현이다. 유익한 강연을 많이 듣거나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콩나물시루 물 주기’처럼 지식과 교양이 자연히 길러진다는 말이다.
『모차르트를 사과하다』
책 제목이 다소 파격이다. 권위와 품격을 중시하는 원로 학자의 발상 같지는 않다. 하지만 독자가 어찌 그 깊은 뜻을 알겠는가. 한평생 학문을 연구해 온 학자이긴 하지만 문단 등단 이후 더 높은 차원의 문학적 취향에서 나온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북 마케팅’ 전문 출판사 측의 조언에 따른 제목 선택이 아닐까 짐작해 보지만,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다.
아무튼, 책 제목으로 삼은 작품은 독자에게 야릇한 흥미로움을 주면서도 저자의 ‘자아 성찰’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숙연해진다. 작가 특유의 수필 창작 기법이다.
명문대학교를 나와 한평생 학문적 권위로 살아온 학자로서 탄탄한 성공의 길을 걸어온 원로 역사가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라는 고백을 한다.
“용서해 주길 바란다”에서 끝나지 않고, “그래도 모두 훌륭하게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맙다”라고 덧붙인다. 한 가정의 자상한 엄마로서 자식, 며느리 앞에서 ‘사랑의 언어’도 빠뜨리지 않는다.
자아 성찰이긴 하지만 독자는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반성을 후회로 느끼진 않는다. ‘성공한 자식’을 둔 ‘성공한 엄마’의 삶의 여유나 행복, 또는 부러움으로 느꼈다면 결례의 소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틀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쯤 거듭 읽어본다. 두 번쯤 곱씹어보면 이 책의 부제를 저자가 왜 「친절함에 대한 사색」이라고 붙였는지 비로소 답을 찾게 된다.
이 한 편의 수필에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흥미로운 사연이 담겼다. 하지만 이양자 교수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진정한 ‘수필 문학의 맛’을 보여주는 것은 마지막 한 문장에 있었다. ■
2023. 6. 8.
윤승원 소감 記
♧ ♧ ♧
◆ 덧붙임 :
이양자 수필가에게 아호를 여쭸더니, 선물 받은 아호 액자(사진)를 보내왔다.
♧ ♧ ♧
♧ 윤승원의 ‘청촌수필’ 블로그에서
◆ 운경 이양자(수필가, 역사가, 동의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23.6.9.09:33
윤 선생님~
이렇게 멋지게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이양자)
◆ 운경 이양자(수필가) 2023.6.9. 09:38
윤 선생님~!
저의 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냅니다
【나의 호 ‘芸卿’(운경)에 대한 해설】
老子 道悳經 云
(노자 도덕경 운)
"夫物芸芸各復歸根" 此觀取自然理法之謂也
("부물운운각복근귀 차관취자연리법지위야)
得其根源以後繁而茂之 美且大哉其歸根之意也歟
(득기근원이후번이무지 미차대재기귀근지의야여)
乃取芸字而爲雅號之於 李陽子博士淸案笑而受之
(내취운자이위아호지어 이양자박사청안소이수지)
其夫如民與我同庚莫逆之友也
(그부여민여아동경막역지우야)
辛巳 暮春, 柳 鐸一 題
(신사 모춘, 류탁일 제)
노자 도덕경에 말하기를
“대저 만물이 왕성함은 각기 그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이를 볼 때 자연의 이치를 터득함을 말함이니
그 근원을 얻은 이후에야 번성하고 무성해지는 것이다.
아름답고 또한 큰 것도 그 뿌리로 되돌아감의 뜻이거늘!
이에 운(芸)자를 취하여 이양자 박사의 아호를 지으니
이 박사는 청초한 모습으로 웃으며 받았다.
그의 남편 여민 김종원 박사와 나는 동갑으로 막역한 친구 사이다.
신사년 늦은 봄 류탁일 지음.
◆ 운경 이양자(수필가) 2023.6.9. 09:43
***저의 호는 대학원 때 안동 출신 한학자께서 춘사(春史)라
지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뜻은 내 이름이 李陽子이므로, 오얏이 태양에 익어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니 이는 바로 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한때 쓰긴 했으나, 저는 이름에 ‘양’자나 ‘춘’ 자가 들어감을 싫어
하여 즐겨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류탁일 선생님이 제가 회갑 되던 신사년 그해에
저의 호를 ‘芸卿(운경)’이라 지어주셨습니다.
'芸' 자의 뜻은 향기나는 풀(향초), 많을, 왕성할 등의 뜻이 있고,
‘卿’ 자는 벼슬, 선생, (여자의 호칭으로) 아주머니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호 “운경” 의 뜻은,
왕성한 선생님이나 향기로운 (풀) 벼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왕성한 선생님”도 저를 표현해주는 적합한 뜻인 것 같고
또한, 교수라는 직함은 “무관의 제왕”을 뜻하는 것이니
향기로운 풀(운향) 같은, 그러나 권력의 힘이 없는,
학문적인 벼슬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으니
마음에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 답글 / 윤승원(소감 필자, 블로그 주인) 23.6.9.10:40
졸고 소감을 따뜻한 눈길로 봐주시고 귀한 격려의 댓글을 올려 주셔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아호가 참으로 뜻이 좋고, 부르는 사람도 예쁜 언어의 뉘앙스를 느낍니다.
또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첫댓글 저자인 이양자 교수의 답장을 받고, 곧이어 전화가 걸려와 장시간 통화하다
♧ ‘청촌수필’ 블로그에서
◆ 운경 이양자(수필가, 역사가, 동의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23.6.9.09:33
윤 선생님~
이렇게 멋지게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이양자)
◆ 운경 이양자(수필가) 2023.6.9. 09:38
윤 선생님~!
저의 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냅니다
【나의 호 ‘芸卿’(운경)에 대한 해설】
老子 道悳經 云
(노자 도덕경 운)
"夫物芸芸各復歸根" 此觀取自然理法之謂也
("부물운운각복근귀 차관취자연리법지위야)
得其根源以後繁而茂之 美且大哉其歸根之意也歟
(득기근원이후번이무지 미차대재기귀근지의야여)
乃取芸字而爲雅號之於 李陽子博士淸案笑而受之
(내취운자이위아호지어 이양자박사청안소이수지)
其夫如民與我同庚莫逆之友也
(그부여민여아동경막역지우야)
辛巳 暮春, 柳 鐸一 題
(신사 모춘, 류탁일 제)
노자 도덕경에 말하기를
“대저 만물이 왕성함은 각기 그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이를 볼 때 자연의 이치를 터득함을 말함이니
그 근원을 얻은 이후에야 번성하고 무성해지는 것이다.
아름답고 또한 큰 것도 그 뿌리로 되돌아감의 뜻이거늘!
이에 운(芸)자를 취하여 이양자 박사의 아호를 지으니
이 박사는 청초한 모습으로 웃으며 받았다.
그의 남편 여민 김종원 박사와 나는 동갑으로 막역한 친구 사이다.
신사년 늦은 봄 류탁일 지음.
◆ 운경 이양자(수필가) 2023.6.9. 09:43
***저의 호는 대학원 때 안동 출신 한학자께서 춘사(春史)라
지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뜻은 내 이름이 李陽子이므로, 오얏이 태양에 익어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니 이는 바로 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한때 쓰긴 했으나, 저는 이름에 ‘양’자나 ‘춘’ 자가 들어감을 싫어
하여 즐겨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류탁일 선생님이 제가 회갑 되던 신사년 그해에
저의 호를 ‘芸卿(운경)’이라 지어주셨습니다.
'芸' 자의 뜻은 향기나는 풀(향초), 많을, 왕성할 등의 뜻이 있고,
‘卿’ 자는 벼슬, 선생, (여자의 호칭으로) 아주머니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호 “운경” 의 뜻은,
왕성한 선생님이나 향기로운 (풀) 벼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왕성한 선생님”도 저를 표현해주는 적합한 뜻인 것 같고
또한, 교수라는 직함은 “무관의 제왕”을 뜻하는 것이니
향기로운 풀(운향) 같은, 그러나 권력의 힘이 없는,
학문적인 벼슬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으니
마음에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 답글 / 윤승원(소감 필자, 블로그 주인) 23.6.9.10:40
졸고 소감을 따뜻한 눈길로 봐주시고 귀한 격려의 댓글을 올려 주셔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아호가 참으로 뜻이 좋고, 부르는 사람도 예쁜 언어의 뉘앙스를 느낍니다. 또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다.
장천 선생이 이양자 여사의 수필집을 읽고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것을 충심으로 경하드립니다. 운경 이양자 여사는 대학교 3년 선배되시는 분입니다. 비록 선배님이지만 대학교 때의 특별한 사연으로 이름을 기억할 뿐이었습니다.
어떻든 지금도 문단에서 좋은 글을 쓰신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그 부군인 김종원 교수님은 잘 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중하게 이양자교수님을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소망합니다.감사합니다.
저자와 독자의 이런 따뜻한 소통이 참으로 귀하고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글을 통한 인연은 뜻밖에 이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산에 사시는 저자께서 이른 아침에 저의 졸고 소감을 읽으시고 곧바로 문자를 주시고 이어서 전화를 주셨을 때,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낙암 교수님도 두 분 교수님을 기억하시니 반가운 일입니다. 앞으로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소망’하신다는 낙암 교수님 말씀도 전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운경 이양자 교수님이 저의 블로그에 이렇게 답글을 남기셨습니다.
운경 이양자 답글(낙암 정구복 교수님에게) :
운경 선배님! 선생님의 글과 사진을 보니 더욱 반갑습니다. 선배님의 존함은 알찍이 들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옵고, 올사모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낙암 교수님 댓글은 저의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를 통해 저자인 운경 교수님에게 전해 드립니다. 운경 이양자 교수님도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십니다.
운경 교수님이 저의 네이버 블로그에 이렇게 답글을 남기셨습니다.
(정구복 교수님 댓글에 대하여)
"어머나~ 넘 반갑습니다~♡"
운경 이양자박사님의 눈부신 연구실적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여 마지 않습니다.
특히 그 연구실적은 동양사 가운데서도 한국에 크게 영향을 미친 중국의
여러 인물과 관련되어 있어서 주목을 끌게 합니다.
말로는 동양철학을 전공한다고 하면서 현대 중국의 여러 인물에 대하여 소홀하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며,
이양자박사님의 학문적 연구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 있었음을 뒤늦게나마 깨우치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귀한 저서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또한 금상첨화격으로 수필집까지 출판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건강을 기원합니다.
.............................................. 성남분당에서 지교헌 (청계산 - 고림)
高林 지교헌 교수님 귀한 댓글도 저의 블로그를 통해 운경 이양자 교수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한평생 동양철학을 전공하시고, 현재는 문단에서 인품과 작품으로 존경받고 계신 지교헌 원로 수필가님의 댓글을 대하면 운경 교수님도 학문적 정서가 통하는 바 있어 반가워하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승원 올림)
이양자 교수님이 지교헌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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