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평(永平)8경 시조
제1경 화적연(禾積淵) 국가명승 제93호
제2경 금수정(金水亭)
제3경 창옥병(蒼玉屛)
제4경 낙귀정지(樂歸亭址)
제5경 선유담(仙遊潭)
제6경 와룡암(臥龍岩)
제7경 백로주(白鷺洲)
제8경 청학동(靑鶴洞)
* 개요; 경기도 포천시의 한탄강 주변은 조선 시대 영평현(永平縣) 지역으로, 이곳은 풍광이 뛰어나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시와 글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중 특히 아름답고 유서 깊은 여덟 곳을 ‘영평8경’이라 일컫는다.(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서 발췌 수정)
또한 이 8경을 재미있게 풀이해 지금까지 민요로 부르고 있다.(순서는 조금 바뀌어도..)
“화적연(볏가리) 벼를 베어/금수로 술을 빚어/창옥병에 담아놓고/와룡말 치켜타고/백운암 찾아가니/청학은 간데없고/백로만 날아든다/장암(마당바위)에 고요히 쉴까”
1. 화적연(禾積淵)
볏가리 쌓인 바위 물 밑은 이무기가
알량한 글쟁이는 전투기로 보는데
겸재는 양물(陽物)로 여겨 수음(手淫) 한번 시켰군
* 한탄강에 있는 멋진 바위와 둘러싸고 있는 깊은 물(못)을 가리킨다. 마치 볏단을 쌓아올린 것처럼 보인다 하여 그렇게 부르는데, 방향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면적은 1,300여㎡이다. 조선의 거장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년~1759)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보면, 그의 독특한 산수관(山水觀)에 의해 거대한 양물로 묘사했다. 대안(對岸)에서 바라보면, 미국의 신예전투기를 빼닮았다. 어떤 이는 잠수함으로 보기도 한다. 옛날에 기우제를 지냈든 곳인데, 해마다 익사사고가 일어난다. 2012.11.13 국가명승 제93호로 지정되었다.
禾積淵
계긍(季肯) 박세당(朴世堂 조선 1629~1703)
衣袖沾殘紫洞煙(의수첨잔자동연); 자동의 안개가 옷소매 적셔
飄飄歸路入龍淵(표표귀로입룡연); 표표히 귀로 때 귀룡연에 들어서네
更憐六六峯如畫(경련륙륙봉여화); 더욱 어여쁘라 그림 같은 열두 봉우리가
欲逼楓岑萬二千(욕핍풍잠만이천); 풍악산 일만 이천 봉에 방불한 것이
(그는 화적연을 귀룡연으로 명명했다)
2. 금수정(金水亭)
영평천 굽어보라 절벽 위 세운 정자
돌계단 가파르오 주춧돌 울린 풍류
지붕은 청학이 되어 빙글빙글 도느니
* 창수면 오가리(五佳里) 영평천 변에 있는 정자이다. 1989년 복원되어 포천시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이 정자는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아 앞에 흐르는 맑은 물과 잘 어울려, 옛 선비들의 풍류소리가 지금도 들릴 듯하다. 근래에는 낚시줄을 드리우는 장면도 더러 본다. 오르는 계단이 많으며, 화강암 주춧돌이 근사하다. 세종 때 김명리가 이곳에 작은 정자를 세워 우두정(牛頭亭)이라 했는데, 그 후 어떤 사연에 의해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에게 전해지면서, 금수정으로 개칭되었다.
3. 창옥병(蒼玉屛)
수백 길 푸른 벼랑 속살은 보지 말게
갖가지 동물에다 거꾸로 자란 왜송(矮松)
강가에 옥병풍 펼쳐 곡수연(曲水宴)을 즐기렴
* 영평천 가에 있는, 글자그대로 푸른 옥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절벽이다. 벽에는 여러 동물모양의 기이한 형상과 암혈(巖穴)을 위시해,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거꾸로 매달려있다. 전설과 보물을 간직한 보장산(寶藏山) 자락에 위치한다. 1931년 암각을 파내고 터널을 뚫어 경관이 많이 훼손되었다.
* 여기 왜송(키 작은 소나무)은 해방둥이나, 6.25 동란세대를 의미한다. 그들은 굶주려 자랐으니, 왜소할 수 없을 수밖에.. 지금 세대들은 그들이 피땀 흘려 이루어 놓은 성과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지 않는가?
題二養亭壁(제이양정벽)-이양정 벽에 쓰다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이 짓고,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쓰다.
谷鳥時時聞一箇(곡조시시문일개); 골짜기의 새소리 이따금 들려오는데
匡床寂寂散群書(광상적적산군서); 책상은 쓸쓸하고 서책은 흩어져 있네
每憐白鶴臺前水(매련백학대전수); 언제나 안타까운 건 백학대 앞의 시냇물
纔出山門便帶淤(재출산문변대어); 산 어귀를 나서자마자 곧 흙탕물이 될 턴데
4. 낙귀정지(樂歸亭址)
축대는 황량하나 장암(長岩)은 빛나거다
비경을 독점할까 강물은 유장(悠長)한데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니 낙귀(樂歸)조차 물거품
* 영중면 거사리 냇가에 있는 옛 정자 터다. 영의정을 지낸 황(黃) 모가 벼슬을 그만 두고, 낙귀정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그 후 모함(어떤 잘못을 저지른 지는 모르지만)을 받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게 된다. 그 때부터 폐허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빼어난 풍광은 남는 곳이라, 후대에도 계속 회자(膾炙)된다. 개천이 평평하고, 맞은 편 노란 색의 장암(長岩-마당바위)이 아름답다. 낙귀란 ‘돌아와(은퇴 후) 즐긴다’는 뜻이다.
5. 선유담(仙遊潭)
삽십 리 긴긴 청류 피서객 북적대나
봉래(蓬萊) 형 신필 암각(岩刻) 물총새로 날아가고
신선이 멱 감은 못엔 흰 구름이 내려와
* 포천시 이동면 소재. 장장 10km에 이르는 백운계곡에 있는 못 이름이다. 바위가 아름답고, 물위로 비치는 구름 그림자가 운치 있다. 조선의 명필 봉래 양사언이 예서체로 쓴 ‘仙遊潭’ 암각자(岩刻字)가 단아하다. 피서철이 되면 인파로 붐벼, 선경(仙境)이 무색할 정도다.
仙遊潭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
淸湍曲曲自回通(청단곡곡자회통); 여울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는 곳
側石幽花數瓣紅(측석유화수판홍); 물가 바위 숨은 꽃 두세 송이 발그레
不管招提路多少(부관초제로다소); 절간으로 가는 길 멀건 말건 나 몰라라
題詩且坐水聲中(제시차좌수성중); 물소리 속에 앉아 시나 한 수 써볼까
6. 와룡암(臥龍岩)
철쭉 핀 단애(斷崖) 밑은 홍류(紅流)가 흐르는데
윗몸만 내밀고는 가만히 누운 청룡(靑龍)
강바닥 드러날 즈음 천마(天馬) 되어 난다네
* 영평천과 수입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약간 하류에 있다. 바위의 기이함보다는, 주위 풍경이 아름다워 더 유명해졌다. 예부터 철쭉이 피는 6월이면, 활짝 핀 꽃이 그대로 수면에 비춰 절벽도 붉고, 물도 붉어, 수중의 사람과 물고기까지 모두 붉게 보인다 한다. 형태는 누워 있는 용처럼 생겼는데, 상체는 수면 위로 떠있고, 꼬리에 해당하는 바위는 길이가 50m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암의 이름은 고려시대의 문헌에도 나와 있다. 현재는 홍수 예방조치로 와룡암의 자취가 사라져,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서 발췌 수정)
7. 백로주(白鷺洲)
사방이 트였는데 은자(隱者)가 몰래 접근
피라미 뛰는 여울 외발로 선 해오라기
바위는 실눈 뜬 채로 아귀(餓鬼) 세상 관조(觀照)해
* 한내천 하류에 있으며, 백로들의 쉼터라고 할 수 있다. 바위라기보다 조그마한 바위산쯤으로 여기는데, 마치 ‘백로가 물속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백로암(白鷺岩)이라는 이름은 약 400년 전 문헌에 보인다. 최근 백로주 북쪽 하천부지에 잔디와 나무를 심고, 유원지를 조성해 관광객 유치에 힘쓴다. 암각문 하나 소개한다. 당 이백(李白) 701~762)의 시 ‘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의 제5, 6구가 새겨져 있다. 三山半落靑川外(삼산반락청천외) 二水中分白鷺洲)(이수중분백로주)-삼산은 푸른 하늘 밖으로 반쯤 떨어져 있고/두 강물은 백로주에서 중간이 나누어졌네.(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서 발췌 수정)
8. 청학동(靑鶴洞)
석각자(石刻字) 닳아져도 아담한 바위 병풍
수십 길 절애 아래 개천은 포근한데
첫 삽 뜬 흙구덩이서 푸른 학이 날아가
*일동면으로부터 흘러내려온 물을 껴안은 듯 병풍과 같은 절벽이다. 유수량이 적기는 하나, 단애 밑으로 맑고 푸른 물이 흘러 절경을 이룬다. 낭떠러지에는 ‘청학동(靑鶴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곳 전설로는, 어떤 가난한 효자가 아버지의 시신을 이장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한 삽을 뜨는 순간, 그 속에서 청학 한마리가 나와 슬프게 울다 창공에 원을 그리며 날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효자는 그곳에 산소 쓰기를 단념했다고 한다.(디지털포천문화대전에서 발췌 수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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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書硏究》 제34호 2016. 12. 30 발행.
첫댓글 금수정의 양사언 글씨입니다.
양평팔경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 양사언의 글씨가 맞군요? 자료 고맙습니다.
무슨 글자입니까?
@半山 韓相哲 ?
@半山 韓相哲 ?
@半山 韓相哲 한국서 젤 아름다운, 하트형의 창옥병 와준(술통)임다.ㅎ
@半山 韓相哲 창옥병임다. 산행 중이라 사진만 몇 올립니다요.
와! 사진 모두 좋습니다.
영평이 포천을 말하는 군요...~~
포천시에서도 이걸 알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하! 진덕 씨 촌평 좋습니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오? 혹 필요하다면 현장 안내문으로 넣을 지도 모릅니다.
이 시조는 한국최초로 지었고, 민족 고유의 정형시로 전승되리라 기대합니다. 성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