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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육사 34기 원문보기 글쓴이: 류석양(白石)
고향의 봄 / 이원수 작시 홍난파 작곡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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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시인 이원수(1911-1981) 선생의 동시 ‘고향의 봄’에 홍난파(1897~1941)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이원수 선생이 경남 마산에서 살던 14~5세 때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산에서 소년 회 활동을 하던 이원수는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 선생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소파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에 원고를 보냈는데 그 중 ‘고향의 봄’이 1926년 4월호에 입선되어 실리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원수 선생이 1911년생이니까 잡지에 실릴 때의 나이는 15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향의 봄’에 처음 곡을 붙인 이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동요작곡가 이일래(1903~1979)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이일래는 동요 ‘산토끼’의 작사 작곡가로 잘 알려진 분이나 이일래의 ‘고향의 봄’은 당시 마산 등 일부에서만 불려 지다가 1929년에 홍난파(1897~1941)선생이 곡을 붙인 후부터 지금의 노래가 전국적으로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표적인 봄 노래이며 동요이지만 성인들의 합창곡으로도 많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미국 카네기 홀에서 감칠 맛나게 ‘고향의 봄’을 불러 교포들의 향수를 자극했던 바로 그 노래입니다.
이원수 선생의 부인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되는 유명한 동요 ‘오빠생각’의 작사자인 최순애(1914-1998) 선생입니다. 이 역시 최순애 선생이 11살 어린 소녀 시절에 쓴 동시라고 합니다.
소파 선생의 어린이 잡지에 ‘오빠생각’이 실린 것은 ‘고향의 봄’ 보다 다섯 달 먼저인 1925년 11월이었다고 합니다. ‘오빠생각’도 홍난파가 ‘고향의 봄’과 같은 해인 1929년에 곡을 붙였지만 그 후 박태준(1900~1986)씨가 곡을 붙여 지금의 ‘오빠생각’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고향의 봄’이 발표된 후로 소년 이원수는 어린이 잡지에 계속 작품을 보내어 자주 발표가 되었고, 일간 신문에도 부지런히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전국 각 지방에 친구를 두게 된 소년 이원수는 서울, 대구, 원산, 진주, 함경도의 이원, 수원, 유천 등지에 있는 동요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사귀어 편지 왕래가 잦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던 낯 모르는 친구들 가운데 자신보다 먼저 ‘오빠생각’이란 시를 어린이 잡지에 실었던 최순애란 여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마산소년 이원수가 수원소녀 최순애 어린이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둘은 펜팔친구가 되었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약속까지 했답니다. 요샛말로 사고를 친 것입니다. 그래서 펜팔한지 7년 후에 기차역(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7년 후에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불온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구속되어 1년간 옥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순애의 집에서는 이런 예비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권해도 보았건만 어린 최순애는 완강히 거부를 하다 1년후에 이원수가 풀려나 최순애의 집으로 달려 오면서 곧바로 결혼식을 치르고 슬하에 3남 3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오빠생각 / 작사 최순애 작곡 박태준 노래 이선희
뜸북 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첫댓글 참나무쟁이걸어다니며 참많이도 불렀는데 ~그립다 그립다 뜸북뜸북새 논에서 울고 ~~~~~
좋다 ~
나이가 들은 탓이여 향수에 젖는것 보면.....컴에서 자주보아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