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로제타 홀 선교사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한강에는 두 물(兩水, 북한강, 남한강)이 하나가 되는 시점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5개의 나루(津)가 있습니다. 광진, 송파진, 노량진, 한강진, 그리고 양화진입니다. 각 진(津)은 한강변의 중요한 경제적 거점이었고,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중 한강 5진의 첫 번째 관문이었던 양화진은 옛적에 ‘머리를 치든 누에’의 모습을 닮았다 해 잠두봉(蠶頭峯)이라 불리던 서울, 경기권의 절경 중 한곳이었습니다. 이 봉우리와 맞닿은 한강 아래에 128년 역사를 품고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400여 기가 넘는 외국인 묘들 중에는 우리나라에 입국했던 140여 명의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의 헌신적인 삶의 이야기가 숨겨 있습니다.
닥터 로제타 홀은 1890년에 조선으로 파송되어 온 여성 의료 선교사입니다. 그는 화상을 입은 젊은 조선 여성에게 자신의 피부를 떼어 이식해 주었습니다. 같은 의료 선교사인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격무와 발진티푸스 감염으로 순교한 이후로도 그녀는 40년간 조선인들을 위한 삶을 이어 갔습니다. 특히 그들의 아들인 셔우드 홀은 우리나라 최초로 결핵 전문 병원과 요양소를 세웠는데, 결핵 퇴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의 결핵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아 모두 반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셔우드 홀은 “크리스마스실이 반드시 조선 민중 안에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열성을 부채질할 것으로 본다.”라며 가능성을 높게 보았습니다. 결국 크리스마스실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홀 일가의 묘비에는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고백이 쓰여 있습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손길에 하나님의 풍성한 복이 임할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