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管晏列傳 第二十(1)
管仲夷吾者潁上人也(관중이오자영상인야)
관중과 이오는 영상 사람이다.
索隱 潁水名 地理志 潁水出陽城 漢有潁陽臨潁二縣 今有潁上縣
<색은> 영은 물 이름이다. 지리지에 영수는 양성에서 출발한다. 한에는 영양과 임영 2현이 있고 지금도 영상 현이 있다.
正義 韋昭云 管仲姬姓之後 管嚴之子敬仲也
<정의> 위소에서 말하기를 관중은 희성의 후예이고 관엄의 아들 경중이다.
少時常與鮑叔牙游(소시상여포숙아유)鮑叔知其賢(포숙지기현)
젊었을 때 항상 포숙아와 놀았으며, 포숙은 그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管仲貧困(관중빈곤)常欺鮑叔(상기포숙)
관중은 빈곤하여 항상 포숙을 속였으나
索隱 呂氏春秋 管仲與鮑叔同賈南陽 及分財利 而管仲常欺鮑叔 多自取 鮑叔知其有母 不以爲貪
<색은> 여씨춘추에 관중과 포숙이 함께 남양에서 장사하여 이익금을 나누는데 관중이 항상 포숙을 속이고 자기가 많이 가져갔으나 포숙은 그에게 모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탐욕스럽다 하지 않았다.
鮑叔終善遇之(포숙종선우지)
포숙은 끝까지 잘 대우하였으며
不以爲言(불이위언)而已(이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
鮑叔事齊公子小白(포숙사제공자소백)管仲事公子糾(관중사공자규)
포숙은 제 나라 공자 소백을 섬기고 관중은 공자 규를 섬겼다.
及小白立爲桓公(급소백입환공)公子糾死(공자규사)管仲囚焉(관중수언)
소백이 즉위하여 환공이 되고 공자 규는 죽었으며 관중은 옥에 수금되었다.
鮑叔遂進管仲(포숙수진관중)
포숙은 드디어 관중을 추천하였고
正義 濟世家云 鮑叔牙曰 君將治齊 則高傒與叔牙足矣 君且 欲霸王 非管夷吾 不可 夷吾所居國 國重不可失也 於是 桓公從之 韋昭云 鮑叔齊大夫 姬姓之後 鮑叔之子 叔牙也
<정의>제 세가에서 말한다. 포숙아가 말하기를“임금께서 제 나라 만을 다스리겠다면 고혜와 숙아면 족합니다. 그러나 임금께서 또 패왕을 하고자 하신다면 관이오가 아니면 불가 합니다. 관이오가 나라에 머물면 나라가 중해지오니 놓쳐서는 안됩니다.”하자, 환공은 이를 따랐다.
<위소>에서 말한다. 포숙은 제 나라 대부요, 희성의 후예며 포숙의 아들은 숙아이다.
管仲旣用任政於齊(관중용임정어제)
관중은 이윽고 기용되자 제 나라 정치에 참여하였다.
齊桓公以覇(제환공이패)九合諸侯(구합제후)一匡天下(일광천하)管仲之謀也(관중지모야)
환공이 패자로써 제후들을 9번이나 규합하고 천하를 하나로 바로잡은 것은 다 관중의 계책에 따른 것이다.
正義 管子云 相齊 以九惠之敎 一曰 老 二曰 慈 三曰 孤 四曰 疾 五曰 獨 六曰 病 七曰 通 八曰 賑 九曰 絶也
<정의>관자에서 말한다. 제 나라의 정승이 되어 9가지 혜택을 가르침에 첫째 노인에 대해, 둘째 자비로움을 세 번째 고아, 네 번째 질병을 다섯 번째 독거인, 여섯 번째 병환을 일곱 번째 소통, 여덟 번째를 구휼함을 아홉 번째 끊음이다.
管仲曰(관중왈)吾始困時(오시곤시)嘗與鮑叔賈(상여포숙가)分財利(분재리)
관중이 말하기를 “내가 처음 곤궁하였을 때 일찍이 포숙과 함께 장사하면서 이익을 나눔에
正義賈音古
정의 賈를 고로 읽는다.
多自與鮑叔(다자여포숙)不以我爲貪(불이아위탐)知我貧也(지아빈야)
나 자신이 많이 가졌으나 나를 탐욕스럽다 하지 않았으니,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爲鮑叔謀事(오상위포숙모사)以更窮困(이갱궁곤)
내 일찍이 포숙을 위하여 일을 도모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곤궁하게 되었으나,
鮑叔不以我爲愚(포숙불이아위우)知時有利不利也(지시유리불리야)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 하지 않았으며 때는 유리한 때도 있고 불리한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吾嘗三仕三見逐於君(오상삼사삼견축어군)鮑叔不以我爲不肖(포숙불이아위불초)
내가 일찍이 세 번 벼슬하여 세 번 임금에게 쫓겨난 일이 있었으나 포숙은 나를 불초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知我不遭時也(지아불조시야)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하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三戰三走(오상삼전삼주)鮑叔不以我爲怯(포숙불이아위겁)
네가 일찍이 세 번의 전투에서 세 번 달아났는데,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 하지 않았으니,
知我有老母也(지아유노모야)
나에게 노모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公子糾敗(공자규패)召忽死之(소홀사지)
공자 규가 패하여 소홀이 죽었는데도
吾幽囚受辱(오유수수욕)鮑叔不以我爲無恥(포숙이아위무치)
내가 감옥에 갇히어 욕을 받음에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으니,
知我不羞小節(지아불수소절)而恥功名不顯於天下也(이치공명불현어천하야)
내가 소절에 굽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나 공명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生我者父母(생아자부모)知我者鮑子也(지아자포자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이다.”하였다.
鮑叔旣進管仲(포숙기진관중)以身下之(이신하지)
포숙이 이미 관중을 천거하고 자신은 그의 아래 지위에 있었다.
子孫世祿於齊(자손세록어제)有封邑者十餘世(유봉읍자십여세)
관중의 자손은 대대로 제 나라의 녹을 받았으며 봉지를 가진 것이 10여대나 이어졌으며,
索隱 世本云 莊仲山産敬仲夷吾 夷吾産武子鳴 鳴産桓子啓方 啓方産成子孺 孺産莊子盧 盧産悼子其夷其夷産襄子武 武産景子耐涉 耐涉産微 凡十代 世譜同
<색은> 세본에서 말한다. 장중산이 경중 이오를 낳고 이오가 무자명을 낳았으며, 명이 환자와 계방을 낳았고 계방이 성자유를 낳아으며, 유가 장자노를 낳고 노가도자와 기이를 낳았으며, 기이가 양자무를 낳고 무가 경자와 내섭을 낳았으며, 내섭이 미를 낳으니 무릇 10대 이었으며, 세보와 동일하다.
常爲名大夫(상위명대부)
항상 이름있는 대부가 되었다.
天下不多管仲之賢(천하불다관중지현)而多鮑叔能知人也(이다포숙능지인야)
천하의 사람들은 관중이 지혜가 많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포숙이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을 많이 알아 주었다.
正義 國語云 齊桓公使鮑叔爲相 辭曰 臣之不若夷吾者五 寬和惠民不若也 治國家不失其柄不若也 忠惠可結於百姓不若也 制禮義可法於四方不若也 執枹鼓立於軍門 使百姓皆加勇猛不若也
<정의> 국어에서 말한다. 제 나라 환공을 정승으로 삼으려 하자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신은 이오만 못한 것이 5가지가 있으니, 너그럽고 온화하게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이 그만 못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그 근본을 굳건히 함이 그만 못하며, 백성들이 충성으로 결속하도록 은혜롭게 함이 그만 못하고, 예의를 제정하여 사방이 본받게 함이 그만 못하며, 군문에서 북채를 잡고 서서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용맹을 배가하게 함이 그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管仲旣任政相齊(관중기임정상제)以區區之齊在海濱(이구구지제재해빈)
관중은 이미 정사를 맡아 제 나라의 정승이 되자 바닷가에 있는 하찮은 제 나라를
正義 齊國東濱海也
<정의> 제 나라는 동쪽 바닷가에 있다.
通貨積財(통화적재)富國强兵(부국강병)
물화를 유통시키고 재물을 축적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여
與俗同好惡(여속동호오)故其稱曰(고기칭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풍속과 같게 하였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索隱 是夷吾著書 所稱管子者 其書有此言 今擧其大畧也
<색은> 이는 이오의 저서 관자라고 하며 그 글에 이 말이 있어 지금 그 대략을 말한 것이다.
倉廩實而知禮節(창름실이지예절)衣食足而知榮辱(의식족이지영욕)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해야 명예와 욕됨을 알게 되며
上服度則六親固(상복도즉육친고)
위에서 법도를 따라야 6친(부,모,형,제,처,자)도 굳건해 지고,
正義 上之服御物有制度 則六親堅固也 六親謂外祖父母一 父母二 姉妹三 妻兄弟之子四 從母之子五女之子六也 王弼云 父母兄弟妻子也
<정의> 위에서 행실이 따르고 사물에 제도가 있으면 육친이 견고해진다. 육친은 외조부모가 하나요, 부모가 둘이요, 자매가 셋째요, 처형제의 자식이 네 째요, 외삼촌의 자식이 다섯 번째, 딸의 자식이 여섯 번째이라고 한다. 왕필은 부모 형제 처자를 말한다고 하였다.
四維不張(사유불장)國乃滅亡(국내멸망)
사유(예,의,염,치)가 신장되지 않으면 나라가 드디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하였다.
集解 管子曰 四維者 禮義廉恥也
<집해> 관자왈 사유는 예의염치다.
下令如流水之原(하령여류수지원)令順民心(령순민심)
명령을 내리니 물이 근원에서 흘러내리는 것처럼 민심에 순응하였다.
故論卑而易行(고론비이이행)
그래서 의론은 비근하고 행하기 쉬웠다.
正義 言 爲政 令卑下鮮少 而百姓易作行也
<정의> 말하기를 정치를 함에 아래에 명령함이 드물고 적어 백성들이 쉽게 행할 수 있음이다.
俗之所欲因而予之(속지소욕인이여지)俗之所否因而去之(속지소부인이거지)
풍속이 하고자 하는 바는 함께 하게 해주었고, 풍속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버리게 하였다.
其爲政也善因(기위정야선인)禍而爲福(화이위복)轉敗而爲功(전패이위공)
그의 정치함에 선인으로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하였다.
貴輕重(귀경중)愼權衡(신권형)
가볍고 무거움을 귀하게 여겨 권형을 유지함에 신중하였다.
索隱 輕重謂錢也 管子有輕重篇
<색은> 경중은 돈을 말한다. 관자에 경중편이 있다.
正義 輕重謂恥辱也 權衡謂得失也 有恥辱甚貴重之 有得失甚戒愼之
<정의> 경중은 치욕을 말하고, 권형은 득실을 말한다. 치욕은 매우 귀하고 중함이 있으며 득실은 매우 경계함과 신중함이 있다.
桓公實怒少姬(환공실노소희)
환공은 부인 소희의 일로 분노하여
索隱 謂怒蕩舟歸 而未絶 蔡人嫁之
<색은> 배를 흔들어 노하게 하고 돌아갔으나 절교하지 않았는데, 채 나라가 그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 보낸 것을 말한다.
南襲蔡(남습채)管仲因而伐楚(관중인이벌초)
부인의 고국인 남쪽의 채 나라를 습격하였을 때에 관중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초 나라를 치고
責包茅不入貢於周室(책포모불입공어주실)桓公實北征山戎(환공실북정산융)
초나라가 주 나라에 포모를 공납하지 않은 것을 문책하였으며, 환공이 북쪽 산융을 정벌하게 되었을 때
而管仲因而令燕(이관중인이령연)脩召公之政(수소공지정)
관중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연 나라로 하여금 시조인 소공의 어진 정치를 닦게 하였다.
於柯之會(어가지회)
가 땅에서 노 나라와 회맹하였을 때에
正義 今齊州東河也
<정의> 지금 제주의 동하이다.
桓公欲背曹沫之約(환공욕배조말지약)
환공이 조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索隱 沫音妹 左傳作曹劌
<색은> 말의 음은 매이고 좌전에 조귀로 쓰여있다.
正義 沫莫葛反
<정의> 말은 막과 갈의 반절 음이다.
管仲因而信之(관중인이신지)
관중이 믿음성을 보이게 하였다.
正義 以劫許之 歸魯侵地
<정의> 겁박 당하여 허락하니, 노 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은 땅을 돌려주기로 한 것
諸侯由是歸齊(제후유시귀제)故曰(고왈)知與之爲取政之寶也(지여지위취정지보야)
제후들이 이로부터 제 나라에 귀의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주는 것이 취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이다.”라고 하였다.
索隱 老子曰 將欲取之 必固與之 是知此爲政之所寶也
<색은> 노자가 말하였다. 가지고자 하면 반드시 주어야 하거늘 이를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이다.
管仲富擬於公室(관중부의어공실)有三歸反坫(유삼귀반점)
관중의 부유함은 공실에 비견하였고 삼귀와 반점이 있었으나
正義 三歸三姓女也 婦人謂嫁曰歸
<정의> 삼귀는 세가지 성을 가진여인이다. 부인이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고 한다.
齊人不以爲侈(제인불이위치)管仲卒齊國遵其政(관중졸제국준기정)
제 나라 사람들은 그를 사치하다 하지 않았다. 관중이 죽고 나서도 제 나라는 그의 정치를 이어받아
常彊於諸侯(상강어제후)
항상 어느 제후들 보다 강성하였다.
正義 括地志云 管仲塚 在牛山之阿 說苑云 齊桓公使管仲治國 管仲對曰 賤不能臨貴 桓公以爲上卿 而國不治 曰 何故 管仲對曰 貧不能使富 桓公賜之齊市租 而國不治 桓公曰 何故 對曰 疎不能制近 桓公立以爲仲父 齊國大安 而遂霸天下 孔子曰 仲之賢 不得此三權者 不能使其君南面 而稱伯
<정의> 괄지지에서 말한다. 관중의 무덤은 우산의 언덕에 있다. 제 나라 환공이 관중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자, 대답하기를 “천하여 귀함에 임할 수가 없습니다.”하자, 환공이 그를 상경으로 삼자 또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니, “무엇 때문인가”하자, 관중이 대답하기를 “가난하여 부자를 부릴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환공이 제 나라의 시장의 조세를 내리자 또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다고 하니, 환공이 무엇 때문인지를 묻자 “왕과 멀어서 근신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환공이 그를 세워 중부(작은 아버지)로 삼았다. 제 나라는 크게 편안해졌고, 드디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관중의 현명함에 이 세가지 권력을 갖게 하지 않았다면 그 군을 남면하고 제후들의 백이 되게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