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에기 / 강주인 2024. 8.
아침부터 벨 소리가 요란하다. 토요일 문어 잡으러 갈 계획인데 올라오실 수 있느냐는 큰아들의 전화다.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과 의논 후 답을 주기로 했다. 명절날 부산에 다녀오는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요즘 장거리 운전은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고민 끝에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창원은 자주 다니던 길이니 바람도 쐴 겸 한번 다녀오는 게 어떻겠소?”
반대하지 않는 것 같아 계속 말을 이었다.
“나이가 많아지면 가고 싶어도 못 가요. 불러줄 때 갑시다. 지금이 좋은 때랍니다.”
문어를 잡아놓고 자랑도 하고 싶은 아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가는 게 좋겠다며 졸라댔다. 아들이 낚시를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외삼촌을 따라 몇 번 다니더니 물고기의 입질에 완전히 매료된 모양이다. 낚시는 아들의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오래전, 물때가 딱 좋다는 삼촌의 말 한마디에 빨리 가자며 먼저 나서던 아들이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볼락이랑 노래미 등 바구니 그득히 잡아 와서는 큰 고기는 자기가 잡았다고 우기며 옥신각신할 때는 아들의 손을 들어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직접 잡아 온 물고기로 회를 만들어 먹는 재미는 더했다. 갓 잡아 온 자연산 회의 쫄깃하고 고소한 그 맛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서 맴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산다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진다. 나 역시도 이 질문을 끝없이 던지면서 살아왔다. 이것은 나의 삶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너의 삶에 관한 물음이기도 하다. 또한 너와 내가 주고받는 서로의 삶에 관한 대화일 것이다. 아들과 주고받는 대화가 나에게 삶의 의미를 새롭게 던져준다.
시골에 들러 텃밭에서 오이와 상추를 준비했다. 들뜬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얼마쯤 지났을까,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의 행렬이 숨 막힐 지경이다. 아차! 성묘 기간인 줄 미처 생각지 못하다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거북이걸음으로는 몇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남편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선수를 쳐볼 요량이다.
“되돌아갈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는 절대 이런 약속을 하지 말라며 뱉는 한마디는 나를 더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앉아있는 자리는 가시방석이다. 몇 번이고 차 문을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했다. 조금 지나자 정체된 구간이 빨리 풀려 다행이었다.
아들네 집에 도착할 즈음 해는 산허리에 걸러 곧 어두워질 것 같았다. 현관을 들어서자 학원에서 방금 도착했다며 생글생글 웃는 손녀의 모습에 금세 피로가 달아나 버렸다. 자식들아, 너희와 나 사이에는 사랑의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는가 보다. 왜 나는 너희들을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너희들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랑의 감정이 강물처럼 넘쳐나는 것일까?
아들의 문어잡이 자랑이 한창이다. 너무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낚싯대까지 가져와 잡는 흉내까지 내면서 설명하는데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든 것이 오색찬란한 빛깔로 만들어진 인공 먹잇감이다. 가짜 미끼를 ‘오징어 에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징어 모양의 인공미끼가 여러 개다. 각각 색깔도 다르다. 다양한 색깔들로 채색되어 만든 이런 것은 처음 본다. 진짜 오징어에선 이런 색을 볼 수 없다. 아름답게 보였다. 아니 화려함의 극치다. 손을 대니 부드럽고 매끈하다. 정말이지 가방에 장식으로 달고 싶은 욕구가 인다. 나도 그런 충동이 일어나는데 문어도 속을 수밖에,
살랑살랑 낚싯대를 흔들어 유혹하면 호기심 많은 문어는 먹잇감인 줄 알고 순간 덥석 덮치는 모양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잡아 올려야 하는데 그만 제일 큰 놈을 놓쳐 버렸다고 한다. 뜰채를 갖다 대는 순간 도망쳐 버리고 말았단다. 섭섭한 기색이 역력하다. 원래 놓쳐 버린 것이 제일 크게 보이지 않던가.
오늘은 물때가 좋아 많이 잡았다며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보이며 문어를 툭툭 건드린다. 박스 안엔 문어가 수북하다. 아들의 풍어엔 박수를 치면서도 마음 한쪽으로는 저 많은 문어가 모두 화려한 가짜에 이끌려 제 몸을 던졌다고 생각하니 생존의 허망함이 은근히 폐부를 찌른다.
어찌 문어만 그럴까. 우리 사는 인간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쫓아 차근차근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공에 뜬 애드벌룬처럼 잡히지도 않는 화려함을 좇아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들을 무수히 보았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뉴스를 장식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지겹도록 보아왔다. 그 모습이 ‘오징어 에기’ 미끼의 유혹에 물어선 안 될 것을 덥석 물었다가 낭패당하는 문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삼 문어낚시 솜씨를 자랑하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하게 보였다. 잘못된 것에 쏠리지 않고 잘 자라준 것만 해도 얼마나 대견한가. 바다가 허락하지 않으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땐 다음을 기다린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이제는 마음을 비울 줄 아는 어른이 되었구나, 흐뭇한 생각까지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었다. 곧바로 가져온 문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다루었는데도 최후의 순간 그만 새까만 먹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요즘은 문어 값이 비싸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데 함부로 취급하다 한 방 얻어맞은 것이다. 타일에 쫙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화려한 미끼에 속은 것이 분한지 내게 화풀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데, 너를 잡아 온 사람을 길러낸 엄마다. 질 내가 아니다. 소금을 확 뿌려 문질러 대니 금세 허물어진다. 남편과 함께 김이 오르는 문어 숙회를 먹는 동안에도 머리에선 내내 ‘오징어 에기’의 찬란한 몸짓이 너울너울 떠다니고 있었다.
첫댓글 강주인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8월 세미나에서 뵙겠습니다.^^
강주인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낚시엔 관심 없었던 사람이라 오징어 에기 제목에서부터 갸우뚱했습니다
신인상 축하드리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