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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환대하는 롯 19:1~4
1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성 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소돔의 죄 19:5~11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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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자 롯이 그들을 영접하고 집으로 모십니다. 무리가 롯의 집을 에워싸고 손님들을 끌어내라고 요구하자, 롯이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는 그들 대신 두 딸을 주겠다 합니다. 무리가 물러나지 않고 문을 부수려 하자, 천사들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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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
천사들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소돔 성에 이르렀을 때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이 그들을 발견하고
자기 집으로 초대 하니 그들은 길에서 밤을 지내겠다고 하고~ 그 성의 죄악을 아는 롯이 간청하여 자기 집에 모셔
저녁을 대접하고 그들이 잠 자리에 들기 전, 그 성의 사람들이 몰려와 나그네를 끌어내라~
자기들이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
허락도 없이 이방인들이 자기들 땅에 들어 왔기에 상관한다는 해석 보다는 성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한 것은
롯이 자기의 딸들을 그들 대신 내어 주고자 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미 죄악이 가득해서 심판하러 간 소돔 성에 도착했는데 바로 심판 하지 않고
롯의 대접을 받습니다
은혜로 택함 받는 롯과 은혜가 걷어진 그 성의 사람들을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여 하나님을 대접하게 되었는데 소돔성의 사람들은 나그네를 대접하기는 커녕
나그네들을 욕보이고자 하였으니,육체의 정욕대로 살고 있는 죄악을 낱낱히 드러내 주심으로 심판을 받아
마땅한 공의를 보여주십니다
그러한 소돔성에서 그 성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유일하게 홀로 성 문에 앉아 나그네를 대접하는 롯이 된 것도,
롯의 심령에 소돔성의 타락을 고통스러워 하는 것도 아브라함에게 기도하게 하신 기도 응답,은혜입니다
내게 타락한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그 죄악을 고통스러워 하는 심령이 된 것은 은혜가 하신 일입니다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죄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여주심으로 은혜가 걷어지는 순간 나도
그들과 한통속임을 알게하십니다
은혜로,주님께서 쉬지않고 하시는 중보의 응답으로 죄를 고통스러워 하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나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절절하게 깨닫기 전,이전 같으면 그런 죄악들을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나는 그들보다 깨끗하다는 것 증명하고자 더 욕을 하고 난리가
났을 나입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은혜를 알 수록 나의 죄는 더욱 더 드러나고, 그 은혜가 아니면 나도 그 죄악 가운데
있음을 알게됩니다
은혜 아니면 죄악의 성 소돔 그 자체인 자가 나라는 죄인입니다
아직도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자입니다
은혜 아니면 나도 소돔성인 것을 알았으니...은혜가 걷어지지 않고 영원히 내 위에 머무르기를 소원합니다
세상과 동화 되지않는다고,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진리를 말하며 비진리의 요구를 듣지 않는 나를 죽이려
세상이 덤벼도 악의 눈을 가리어 나를 보호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양의 문 되시는 주님 안에 진리이신 주님과 함께 있으면 세상이 들어올 수 없음을,악이 침범할 수 없음을
알려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은혜를 의지하며 ,은혜를 흘러 보내는 담대함과 지혜를 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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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우산질문
하나님의 천사가 소돔을 찾아옵니다.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오는데, 죄악으로 관영한 소돔을 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불과 유황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소돔의 죄악을 묵상하려 합니다. 왜 그렇게 참혹한 심판이 임했는지,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겸허히 돌아보기 바랍니다.
먼저, 나그네를 향한 무자비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그네의 모습으로 소돔을 찾아오는데, 롯이 극진하게 집안으로 영접합니다. 그냥 거리에서 밤을 새겠다고 했지만, 간청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환대하는 롯의 마음이 엿보이고, 더불어 나그네를 향해 무자비한 소돔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밤이 되자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나그네를 향하여 강간을 행하려 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하고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혹 우리 시대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동성애였습니다.
영어로 소도미(sodomy)가 동성애를 뜻하는데 여기서 유래하였습니다. 몰려온 무리에게 롯이 나그네 대신 자기 두 딸을 내어주려 합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제언하는 것인데 참 서글픕니다. 나그네를 강간으로부터 지키기 위함도 보이지만, 동성애라는 추악한 죄악을 거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소돔 백성은 이를 거절합니다. 그만큼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이 또한 우리 시대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셋째, 죄악의 문화화입니다.
소돔 백성에게 음행과 동성애는 특별한 죄라기보다 하나의 문화가 된 모습입니다. 4절에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왔다고 말합니다. 몇몇 음란한 사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죄악에 젖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회개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죄악으로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우리 시대도 죄악이 문화화 되고 있지 않은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과 도전
오늘의 말씀은 '소돔의 죄악'입니다. 죄악의 소굴인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웠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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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브라함의 조카 롯
오늘 롯도 아브라함과 같이 천사들을 대접했습니다. 롯은 소돔성에 거하였지만 그들과는 조금은 남다른 모습을 하며 살았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신앙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부터 아브라함과 동행하였습니다. 천사를 대접하는 모습 속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배운 신앙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 때 어떤 사람을 통해서 훈련 받는가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롯은 끝까지 천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이게 됩니다.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였습니다. 롯은 그 성이 가진 악함을 알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묵상하기
나는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돕는데 힘쓰는가?
2.악한일을 행한 소돔사람들(4-9)
롯의 집에 남자 손님들이 온 것을 안 소돔사람들은 롯의 집으로 몰려 왔습니다. 그들은 손님들을 자신들의 성적대상으로 생각하고 롯에게 내 보내라고 합니다. 롯은 용기를 가지고 그들을 막아섭니다. 하지만 그들을 안정 시키기 위하여 혼인을 앞 둔 두 딸을 그들에게 내어 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한 사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롯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을 부수고라도 그들을 끌어내어서 자신들의 동성적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타락되고 악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묵상하기
나는 구별된 성도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3.하나님의 방법(10-11)
롯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본 두 천사는 롯을 집 안으로 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폭도들의 눈을 어둡게 해 버림으로 모든 상황이 끝이 나게 됩니다. 롯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일어날 상황에 대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쉽게 악한 무리들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들의 눈이 보이지 않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악한 세상속에서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도 동일합니다. 악한 자들은 강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보다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성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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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9-11절 롯을 소돔 땅의 불한당들에게서 보호하십니다. 롯은 악한 소돔에서 주변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9절). 그럼에도 그는 의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불의와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롯을 악인과 함께 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3절 아브라함처럼 롯도 나그네를 환대합니다. 아브라함이 정오의 나그네에게 그늘을 제공한 것처럼, 롯은 밤중에 온 나그네에게 숙소를 제공합니다. 무법천지의 소돔에서 그들을 노숙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만류하는 나그네를 강권하여 집으로 들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할 뿐 아니라 위협에서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약자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내 편리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이들의 필요를 따라 섬기고 있습니까?
4,5절 롯이 나그네를 환대한 것과 달리,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를 겁탈하려고 몰려옵니다. 손님 대접이 미덕이던 당시 문화를 감안한다면, 나그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소돔이 얼마나 악한 도시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약자에게 다수가 힘을 합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일상이 된 소돔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덧보이지 않습니까? 나도 무심코 다수의 폭력에 가담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8절 롯은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두 딸을 대신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보호하는 주인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려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제안은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가 감당하려는 희생은 그의 딸이 감당할 몫이지만 딸의 의사가 배제된 대안이었고, 악을 피하려고 다른 악을 허용한 것이기에 바르지 않습니다. 소돔에서 머문 시간이 그를 소돔의 문화에 젖어들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제안이 실현되지 않도록 막으심으로 롯의 부족함을 메우십니다(참조. 20:1-18; 26:1-11). 불의와 악을 대항하는 방식이 선하고 의롭지 않다면, 그 불의와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악한 사회에서 약한 자로 사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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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4 소돔 같은 세상에 필요한 사람
날이 저물 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른다.(1)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한다.(2)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하나님을 영접할 때와 비슷한 상황인 것 처럼 보인다.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까지는 비슷한데 그 이후는 많이 다르다.
아브라함은 아내에게 급히 속히 떡을 만들라고 명령하고
자기도 손수 기름진 송아지를 잡고 하인들에게 주어 요리를 하게하고
옆에 서서 정중하게 시중을 들면서 대접을 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아내는 모습 조차 보이지 않는다.
딸랑 무교병을 구워서 그들을 먹인다.(3)
대접이 안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난리가 났다.
그들이 눕기 전에 소돔 백성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몰려 왔다.(4)
왜냐하면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5)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5) 한다.
점쟎케 번역이 되어서 상관하리라 라고 했지만 We can have sex with them이다.
마치 발정난 미친 개 처럼 강간을 하겠다고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그래도 정신 나간 짓들인데 어린아이들까지 미쳐서 날 뛰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얼마나 타락을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돔의 성적인 타락은 누구 한 사람의 개인적인 타락이 아니다.
은밀하게 저질러 지는 성적인 타락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총체적 구조적 집단적인 죄악이 였다.
이정도가 되면 하나님이 더 이상 두고 보실 수가 없는 지경인 가 보다.
우리 사회에도 구조적이고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범죄 행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위 공직자나 언론이나
미디어 방송들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지도층에 있는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개인 차원의 범죄나 부정도 용납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사회적 집단적 총체적 구조적인 죄악이 관행화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것 같다.
학교 인권 조례안으로 동성애를 합법화 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동성애를 비 윤리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그 부모의 자녀는 자기 자식이 동성애자가 되어도 좋다는 말씀인지 묻고 싶고
우리 사회도 소돔과 고모라 못지 않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곳곳에 감지된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
잘못을 잘 못이라고 말해도 농담으로 여기는 세상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이 아닐까?
하나님 아버지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한 한 상황을 봅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다 나와서 강간을 하겠다고 집단적으로 덤비는 세상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구조적이고 총체적이고 조직적이고 집단적이 죄악의
뿌리들이 뽑혀지게 하옵소서.
동성애를 합법화하자는 학교인권 조례안이 논의조차 되지 말게 하시며
잘못을 잘못이라 지적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게 하시고
잘못을 지적할 때 농담으로 받아 들이는 풍조가 사라지게 하옵소서.
특별히 사회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론과 미디어
지도층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되게 하시며
하나님 당신의 진노를 차곡차곡 쌓는 일들을 하지 않도록 역사하옵소서.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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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
소돔성의 죄악이 얼마나 극성스러웠는지는 천사들이 롯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에서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소돔성은 폭력적인 세대였습니다. 온 동 네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폭력을 휘두르며 손님으로 온 자를 끌어내라고 롯의 집을 에워싸며 위협합니다. 둘째로 성적 타락의 시대였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천사들을 남자들로 인식하면서도 떼거지로 몰려와서 음란한 짓을 하겠다는 강압적 폭도의 행동을 합니다. 셋째로 총체적으로 죄악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세대였습니다.
소돔의 엄청난 죄악의 범람이 아우성으로 하나님께 들려졌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창 18:20). 이 아우성은 엄청난 불의의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이 절규하는 도움의 외침입니다. 우리 사회 는 너무나 우리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유혹들이 즐비하게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상한 의욕이 있었 기 때문에 그 세대에 휩쓸려 그냥 떠내려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고통스런 길을 갔고 영혼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의의 길을, 신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 오늘의 기도
1.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라 거룩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 영적으로 늘 깨어 있고, 죄를 회개하면서 거룩하고 정결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롯은 두 천사를 만나고 대접하는 손길이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롯은 하나님과 그리고 세상까지도 섬기는 경건의 모양만 있을뿐 선과 악을 온전히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 모두 놓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도 배척당하게 됩니다.
세상의 재물과 하나님을 모두 섬길 수 없음에도 두 가지 모두를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신앙이란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들어서지 않는 것이며 택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