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절의 기적 (요6:9~13)
성도들은 성미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절을 지킵니다.
이는 일용한 양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 밥을 먹을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씩 떠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성미는 어렵고 힘든 시절 목회자의 일용한 양식으로 공급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눔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긍휼미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너무나 부족했던 시절에 쌀이나 보리 한 줌으로 각종 이름 모를 나물이나 야채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굶주린 식구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시절에 성미를 구별한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과 믿음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굶주린 배를 쥐고 새벽기도에 나와 식구들 굶지 않게 해 달라고 울며 기도하던 엄마들의 간구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지금은 세계가 부러워할 풍족한 국가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같은 고난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8: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를 떠돌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로 양식을 삼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환난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끼니 걱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신6: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말씀하셨고
[마22: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님도 이것이 첫째가 되는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랑과 맥추감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 번째로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요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작은 아이가 있고 그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으로 이십 세 이상의 남자 오천 명을 먹여야 하는데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하찮은 보리떡에 제자들은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보리 떡이 있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도 않되 우리는 망했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상대적 절망에 빠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옆집에 좋은 텔레비전이 들어오면서 불행이 시작됩니다.
친구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핸드백을 가진 것이 문제가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나보다 못한 친구가 해외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불행이 시작된 겁니다.
오천 명을 먹여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지만 보리떡 다섯 개뿐이 없기에 포기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를 먹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먹은 고기가 생각나면서 불행이 엄습한 것입니다.
출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심보라면 우리 역시 이스라엘 심보를 꼭 닮아 버렸습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는 데는 인색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찾는 것은 익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 성도님들이 먹을 것이 있으매 감사하며 성미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있는 것에 감사함이 있어야 넉넉함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을 먹어야 좋을지 모르는 부한 마음은 감사를 모르지만, 작은 것이라도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은 기적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보리 떡이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왕상18:44]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엘리야가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한 후에 산 위에 올라 먼 바다를 여섯 번이나 바라보았으나 아무런 증거가 없더니 일곱 번째에 사람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을 보고 아합 왕에게 큰 비가 내릴 것이니 마차를 타고 가라고 말을 합니다.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산을 움직이고 바다를 잠잠하게 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17:20]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지만 새싹이 나고 자라면 새들과 짐승들이 그 나무 그늘에 피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작은 믿음도 없을까요?
싹을 내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싹은 믿음대로 움직이고 실천할 때 솟아나는 것입니다.
보리 떡은 혼자 먹어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다섯 명도 아니고 오천 명의 장정들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오면 이는 절망을 만들고 맙니다.
이것이라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은 기적의 싹을 내고 열매를 보증합니다.
보리떡이 있음에 감사하며 성미를 뜨는 절실하고 간절한 소망의 믿음이 생기니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 가난한 자가 부해지며 얻어 먹던 사람이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부족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하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죽어 무덤에 갇힌 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오늘 보리떡에 싹이 나고 열매가 맺는 기적을 부릅니다.
세 번째로 준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요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님은 보리 떡이 있음에 감사하며 사람들을 앉게 합니다.
나누어줄 준비하는 것입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성전을 건축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정말 믿음이 좋은 성도의 말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단돈 만 원의 건축헌금이 아까워 헌금하지 못합니다.
죽은 신앙이고 허공을 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준비하는 믿음입니다.
보리떡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양이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3: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물에 들어섭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발목까지 물이 차자 강물이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이 갈라지고 난 다음에 가겠다고 하면 영원토록 물은 갈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보다 더 얇을 것입니다.
[눅16: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믿음에 큰 상급으로 보상하여 주십니다.
[마15: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그 믿음에 축사하시기를 원합니다.
요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다른 성경에는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잘 것이 없는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는 감사하는 믿음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는 은혜를 받아 맥추절에 기적을 부르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