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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의 전화가 왔을 때 김희연은 명혜에게 아침을 먹이는 중이었다.
[나야.]
박동진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김희연은 저도 모르게 짧은 심호흡을 내쉬었다.
[웬일이야?]
[별일 없지?]
[없어.]
스스로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느껴진 김희연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내 걱정은 마.]
[명혜는 어때?]
[지금 밥 먹이고 있어.]
[이젠 혼자서도 잘 논다며?]
[말도 제법 해.]
그러자 박동진이 한 호흡쯤 쉬고 나서 말했다.
[날씨 풀리면 명혜 데리고 올라와, 보고 싶으니까.]
[알았어. 하지만...]
그때 명혜가 밥그릇을 엎었다. 김희연은 한 손으로 흩어진 밥을 쓸어 담았다.
[난 3월 초부터 직장에 나가, 그래서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어딘데?]
[그건 알 필요 없어.]
[명혜는 어떻게 하고?]
[어머니가 계시니까 괞찮아.]
박동진이 다시 한 호흡쯤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우일이가 한국에 왔다는 소문이야. 학교에 복학 수속을 끝냈더군.]
[.....]
[아무한테도 연락을 안 했더군, 나는 말할것도 없고.]
[.....]
[물론 너한테도 연락이 없었겠지?]
[그걸 확인하려고 전화 한거야?]
김희연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러자 수화구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났다.
[너하고의 결혼생활 2년 동안 난 한번도 그놈 이름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어, 이혼할 때까지. 그렇
지?]
[명혜 밥 먹여야 해.]
[넌 나쁜 년이야.]
[그만 전화 끊을게.]
[추위에 몸 조심해.]
[고마워.]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희연은 길게 숨을 뱉었다.명혜가 다시 밥그릇을 엎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명
혜의 머리를 가볍게 한 대 때렸다.
[난 아무래도 대학원에 가야겠어.]
서미주가 찌푸린 얼굴로 말하며 경제원론을 폈다.
[주영기 교재나 복사하고 지내다가 기회를 잡으면 뛰쳐나가는 거야.]
[야, 그만해. 내일이면 또 바뀔 네 계획 듣기에도 지겹다.]
눈을 흘긴 이은강은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4학년 새학기였지만 모두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창가에 앉아 있던 손성태가 이은강의 시선이 옮겨져 갔을 때 눈을 크게 떠 보이면서 입 끝을 올렸다.
오늘은 케주얼한 재킷에다 조끼를 받쳐 입었는데 어울렸다. 경제학과 졸업반 40여명 중에서 진로 걱
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서너명 중에 포함된 손성태이다. 제대도 했겠다 졸업하면 바로 부친이 사주인
전자회사의 영업부로 갈 예정이어서 주변에는 예전처럼 너댓명의 추종자가 둘러앉아 있었다. 장래 일
신전자 경영주의 측근을 꿈꾸는 군상들이다.
그때 강의실 앞쪽 문이 열렸다. 이내 잡담이 그쳤다. 그런데 들어선 것은 주영기 교수가 아닌 장신의
가죽 점퍼 사내였다.
강의실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은 사내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돌리더니 이은강에게 물었다.
[여기가 경영학과 4학년 강의실 맞습니까?]
[맞아요.]
머리를 끄덕인 사내가 이은강의 옆자리를 보더니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강의실 안은 다시 잡담으로
덮어졌다.
[난 또 새 조교가 온 줄 알았네.]
뒤쪽에서 누군가가 불쑥 말하자 몇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은강이 힐끗 사내를 보았다. 그도 쓴웃음
을 짓고 있었다.
주영기 교수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50대 후반의 그는 학과장까지 맡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다소 거
북한 존재였는데 출석 확인이 엄격했다. 대리 대답이 들통났던 학생 하나가 1년동안 죽을 고생을 했
다. 주영기가 갖가지 방법으로 하도 골탕을 먹여서 나중에는 결국 군대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주영기가 강의실을 훑어보았다. 모두 입을 다물고 앞만 바라보았다. 주영기의 시선이 이은강을 스치
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그 옆의 사내에게서 멈췄다. 그리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자네, 윤우일 군 아닌가?]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교수님?]
사내가 일어나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주영기가 교단에서 내려와 손을 내밀었다. 웃음 띤 얼
굴이었다.
[이 사람아, 복학했으면 나한테 먼저 찾아오지 않고.]
[죄송합니다.]
[이게 몇 년 만인가? 한 5,6년 되었나?]
[5년입니다.]
[어쨌든 반갑네, 반가워.]
주영기는 다정하게 사내의 어깨까지 다독였다. 그리고는 곧 교단위에 올라섰다. 강의실이 잠시 술렁
거렸다. 주영기가 이렇듯 반갑게 맞는 복학생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조교 티오가 하나 줄었다.]
뒤에서 누군가 낮게 말했다. 그 소리에 몇 명이 다시 쿡쿡 웃었다. 이은강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내
를 힐끗 보았다.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은강이 윤우일을 다시 본 것은 학교 식당에서였다. 서미주와 같이 자장밥을 먹던 그녀는 윤우일이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볶음밥을 먹고 있었는데 시야 안에 이쪽이 들어왔어
도 전혀 초점을 잡지 않았다. 서미주도 윤우일을 발견했다.
[저기 복학생 있다.]
눈으로 윤우일을 가리킨 서미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5년이나 군대에 가 잇어서 그런지 팍 쉬었다, 얘.]
서미주의 속셈을 알아챈 이은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윤우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미리 침을 바른
것이다. 1미터 80이 훨씬 넘는 신장에다 어깨도 딱 벌어진 체격의 윤우일은 꼭 운동선수 같았다. 거기
에다 어딘지 차가운 인상을 주는 용모는 서미주의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너, 손 선배 몇 시에 만난다고 했지?]
수저를 내려놓은 서미주가 물었다. 이은강은 마침내 이맛살을 찌푸렸다. 서미주는 손성태와 자신의
관계를 재확인 시킴으로써 딴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 어딘지 범법자 같다.]
대답 대신 윤우일을 턱으로 가리킨 이은강이 정색하고 말했다.
[아니면 전과자든지. 군대에도 감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에 있었는지도 몰라.]
[설마……]
질색한 서미주가 눈을 치켜 뜨고 이은강을 쏘아보았다.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니?]
[추측이야.]
이은강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건너편 왼쪽 세 번째에 앉았던 윤우일
의 시선과 마주졌다. 그래서 이은강이 머리를 끄덕여 아는 체를 했지만 윤우일은 무표정하게 외면했
다.
동일증권 본사는 을지로 3가에 위치한 15층 빌딩이었다. 김대영은 로비에서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
리고 있었다.
[야아, 이 새끼야. 살아 있었구나!]
다혈질에다 정이 많은 김대영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버럭 소리치며 다가왔다. 윤우일이었다. 김대영은
윤우일의 상반신을 와락 껴안았다.
[너 보았다는 말 듣고 내가 학교로 찾아가려고 했다.]
[이젠 말단 봉급쟁이 티가 제법 나는군.]
윤우일이 포옹을 풀고는 김대영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웃었다. 오후 4시였다. 김대영은 근무시간일 텐
데도 윤우일을 근처 카페로 이끌었다. 김대영은 우선 입가심으로 맥주를 시키더니 환하게 웃었다.
[미국에서 갑자기 삼촌이 왔다고 했더니 일찍 내보내 주더구만.]
[하긴 촌수로 내가 네 삼촌뻘 되지.]
김대영과 한문석, 박동진과 윤우일 넷은 모두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단짝이었다. 과는 모두 달랐지
만 대학까지 같아서 언제나 함께 몰려다녔다. 대학 1학년 때 윤우일은 김대영을 청량리로 끌고 가 딱
지까지 떼어줄 정도로 친했다. 맥주잔을 든 김대영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윤우일을 보았다.
[임마, 5년이다, 햇수로는 6년이고.]
[벌써 그렇게 되었군.]
[그동안 미국에 있었던 거냐?]
[그건 이야기가 기니까 나중에 하자.]
의자에 등을 붙인 윤우일이 맥주 잔을 들더니 단숨에 비웠다. 이른 시간이라 카페에 손님은 그들 둘
뿐이었다. 김대영이 윤우일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나하고 문석이는 공군 장교로 작년에 제대했어. 동진이는 보충역으로 빠졌고.]
윤우일은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 김대영은 헛기침을 했다.
[문석이가 광고회사에 들어간 것 아냐?]
[들었어.]
[그럼……]
김대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윤우일을 보았다.
[동진이하고 희연 씨 사건도 알겠구만.]
[그것도 안다.]
[언제부터?]
[결혼했을 때부터.]
그러자 김대영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건 영화 끝나고 불켜진 기분이네.]
[영화가 싱거워?]
맥주 잔을 든 윤우일이 빙글 웃었다.
[이 새끼, 지금도 공짜 구경 좋아하는구만 그래.]
[김 선생, 학생들 반응이 좋습니다.]
원장 신재규가 붉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저녁반도 맡아 주셨으면 좋겠는데.]
[저녁반은 어려워요.]
바로 앞쪽에 커다란 벽시계가 걸려 있었지만 김희연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오후 5시 반이었
다. 어머니 대신으로 시장에 들렸다가 저녁을 지어야 한다. 신재규가 아쉬운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
다.
[아직 열흘밖에 안 되셨으니 시간이 지나면 요령이 생길 겁니다.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원장실을 나온 김희연이 이층 계단을 막 내려갈 때 가방 속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렸다. 계단에 멈춰
선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나다.]
[언니? 웬일이야?]
[학원이니?]
[지금 끝났어, 시장보고 가려고.]
[지난번에 이야기하려다가 말았는데……]
잠시 뜸을 들인 미연이 말을 이었다.
[너, 명혜를 위해서도 위자료 받아. 박 서방이 나한테 몇 번이나 연락을 했어.]
[제발 그만 좀 해.]
김희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명혜는 내가 얼마든지 키울 수 있어.]
[너, 박 서방 같은 남자가 또 있는 줄 알아?]
이번에는 김미연의 목소리도 올라갔다.
[결혼이 장난이냐? 내가 모를 줄 알어? 따지고 보면 박 서방도 희생자야. 넌 그놈에 대한 배신감으로
박 서방을 이용한 거라구.]
[도대체 언니가 뭘 안다고 그래?]
[나만큼 널 아는 사람이 있니? 나는 너를 너보다 더 잘 알아.]
[그만 끊어.]
김희연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왔다. 언
니가 그놈이라고 표현한 작자는 윤우일이다. 어머니는 아직 한 번도 내 앞에서 윤우일을 거론하지 않
았지만 언니하고서는 거침없을 것이다. 그리고 표현 방법도 비슷할 것이고.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 까놓고 얘기하겠는데……]
김희연이 전화를 끊은 즉시 집에다 전화를 건 김미연이 쏟아붓듯 말했다.
[희연이는 아직 정신 못 차렸어. 그러니까 엄마가 쫓아내야 돼.]
[얘가 미쳤나?]
이맛살을 찌푸린 정 여사가 혀를 찼다.
[너, 희연이하고 싸웠니?]
[걘 아직도 그놈한테 미련이 있는 거라구, 그래서 깬 거야.]
[글쎄, 자꾸 쓸 데 없는 소리 말라니까. 그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아무 문제도 없는 가정을 깨뜨리고 나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성격 차이라고 그랬지 않아? 박 서방도 내 앞에서 제 입으로 그런 걸 같이 듣고서는 왜 또 난리냐?]
[지금 생각해보니까 박 서방이 걔 미친년 만들어주지 않으려고 그런 거야.]
[별소리 다 한다.]
[박 서방은 성실하게 잘 했어. 지금도 걔한테 위자료 주려고 기를 쓰는 것만 봐도 알아. 문제는 걔야.]
[글쎄, 다 끝난 일 가지고 자꾸 혈압 오르게 만들지 마라. 엄마 죽겠다.]
[걔 오면 위자료 받으라고 해. 안 받으려면 나가서 살라고 쫓아내.]
[에구, 내가 어서 죽어야지!]
정 여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미연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때 안방에서 자고 있던 명혜가 두리번
거리며 응접실로 나왔다. 이야기 소리에 깬 모양이었지만 순해서 잘 울지는 않았다.
금요일 3교시 강의가 끝났을 때 윤우일에게 이제는 낯익은 과 후배가 다가와 섰다.
[형, 복도에서 누가 찾는데요.]
금요일 강의는 끝난 터라 가방을 쥔 윤우일이 복도로 나가자 창가에 기대서 있던 박동진이 손을 들어
보였다. 옅은 색 코트를 걸치고 진청색 넥타이를 맨 박동진의 차림은 말쑥했다.
[어떠냐?]
윤우일이 다가서자 박동진이 손을 내밀면서 어제 만난 사이처럼 물었다. 얼굴에는 옅게 웃음기도 배
어 있었다.
[애들이 첨엔 날 조교로 보더군.]
박동진의 손을 쥐었다 놓는 윤우일이 턱으로 밖을 가리켰다.
[나가자.]
그들은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박동진이 앞만 보고 말했다.
[학위 따러 올 놈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 땅 그리워할 놈은 더욱 아닌데, 궁금하군 그래.]
[글쎄, 발길이 그냥 이쪽으로 옮겨지더구만, 내가 곧 알 낳고 죽을 모양이다.]
강의실 건물 앞쪽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학생들로 소란했다.
그들은 건물 옆쪽 벤치로 다가가 앉았다. 그늘이 져 있긴 해도 조용한 곳이었다.
[대영이 만났다면서?]
박동진이 먼저 그렇게 물은 것은 김대영과의 이야기 내용은 다 들었으니 새로운 것을 말하라는 표시
나 같다. 담배를 꺼내 문 윤우일이 밝은 햇살이 펴진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도망칠 곳이 없더구만 그래.]
[잊을 수가 없어서겠지.]
대뜸 말을 받은 박동일도 담배를 꺼내 물더니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빈틈없는 동작이었다.
[어쩐지 네놈 시선이 항상 등 뒤에 박혀 있는 기분이었어.]
[네놈은 항상 그랬으니까.]
앞으로 곧게 연기를 뿜은 윤우일이 벤치에 등을 붙이고는 말을 이었다.
[내 꽁무니만 쫓아왔잖아? 그래서 자주 내 것을 나눠주었지.]
[네놈은 희연이를 철저히 버렸어.]
[오지랖이 넓기도 하구나.]
윤우일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래서 거둬 주었다고 말할 참이냐?]
[결론이 이렇게 되어서 할 말은 없다만.]
박동진이 머리를 돌려 윤우일을 보았다.정색한 표정이었다.
[희연이는 널 아직도 사랑한다. 가봐.]
[이 새끼, 노골 시켜놓고 나한테 3점슛이나 넣으려고 또 넘겨주는 거야?]
[넌 잔인한 놈이다.]
[정확하다고는 안해?]
[야 임마, 네 집안이 망한 분풀이를 아무데나 쏟지 마.]
[예전에도 수십번 충고를 했지만 넌 지구력이 부족해.]
이번에는 윤우일이 정색하고 박동진을 보았다.
[네 놈이 더 버텼어야 했어, 그러면 명혜엄마는 떠나지 않았을 거다.]
[끝난 일이야.]
[네가 다시 가봐, 늦지 않았어.]
[난 이미 희연이한테 네놈이 왔다고 해놓았어.]
[그래, 그렇다면.....]
눈을 치켜 뜬 윤우일이 입술 끝을 비틀고 웃었다.
[기회가 좋아, 걔 기질이 다시 발동을 시작했을 테니. 틀림없어.]
[.....]
[화냥년 기질 말이다.]
[개새끼!]
쓴웃음을 지은 박동진이 땅바닥에 담배를 버리고는 짓이겨 껐다.
[이제 조금 윤곽이 잡히는군 그래.]
벤치에서 일어선 박동진이 손을 내밀었다,
[네 놈이 갑자기 기어 들어온 이유를 말이다.]
[네 놈이 뭘 안다고 그래.]
박동진의 손을 잡은 윤우일이 정색했다.
[제 인생은 제가 사는 거야, 난 할 일이 많아.]
이은강이 다가가 섰어도 윤우일은 앞쪽 잔디밭만 본 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있었다. 이은강은 아까 박
동진이 앉았던 자리에 말없이 앉았다. 그제야 윤우일이 머리를 돌려 이은강을 보았다.
[형 친구예요?]
이은강이 물었다. 윤우일은 숨을 두 번이나 쉬고 뱉을 때까지 바라보기만 하더니 다시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이은강이 벤치에 등을 붙이더니 다리를 꼬고 편히 앉았다. 진바지와 옅은 색 스웨터 차림에 운
동화를 신고 있었다.
[형은 입대 전에 날렸다면서요? 다 들었어요.]
발을 까딱이며 이은강이 가볍게 말했다.
[여학생들한테도 인기가 좋았다던데.]
[오늘은 왜 혼자야?]
윤우일이 불쑥 물었다. 이은강이 빙긋 웃었다.
[형이 이곳에 있는 걸 보고 다 따돌렸어.]
그 말에 윤우일이 빙긋 웃었다.개학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이렇게 둘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이제까지
단 한번도 과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윤우일은 슬슬 열외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형 나하고 교회나 갈까? 드라이브나 해.]
이은강이 윤우일을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뚜렸했다.아담한 콧날 밑으로 옅은 색 루즈를 바른 입술이
도톰했다. 귀여운 인상이었다. 윤우일은 이은강의 표정 속에 떠 있는 자신감을 읽고 나서 얼굴을 펴고
웃었다.
[한 번도 거절 당하지 않은 표정이구나.]
[그래.]
[오늘은 내가 갈 곳이 있어.]
[그럼 할 수 없지.]
벤치에서 일어선 이은강이 윤우일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요즘 조금 답답해서 말야.]
이은강은 가벼운 걸음으로 벤치를 떠났다.윤우일은 한동안 잔디밭에 시선을 준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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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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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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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