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언니 / 윤이나 / RHK
청소년 성장 소설
나는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당연하게도 주변에 이런 부류의 소설이 눈에 띄면 목록에 추가한다. 2016년 10월 판이니 새 책이다.
성장 소설(成長小說)이란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라고 다음사전에 나온다. 정신적으로 바르게 성장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른이란 시기와 올바르게 성장했다는 정의도 참 어렵다. 그러니 이런 물음은 일단 접어두자. 나도 그 시기를 겪었지만 시시콜콜한 것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기에 나의 성장기를 더듬어보는,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를 얻기 위해 이런 부류의 소설을 읽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방편으로 삼기도 하고, 주변의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자료를 삼기 위해서 읽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처럼 복잡한 생각보다는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등장인물들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대하는 기간이라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 같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유정 <종의 기원>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리처드 휴스 <자메이카의 열풍>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자메이카의 열풍>이나 <파리대왕>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만 존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이 주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를 관찰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일들을 겪는지를 다룬 이야기였던 것 같다. 즉 기존 사회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간접적으로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이들은 뾰족뽁족해서 누구를 다치게 하기 쉬우니 잘 다듬어야 한다는 것. 아이들에게도 군중 심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등등을 생각하게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의 기원>이나 <다섯째 아이>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문제점을 가족에서 찾는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출생 과정에서 지금 성장 과정의 아이들에게 나타난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존감의 문제를 넘어선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다룬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 모두 공통으로 엄마로부터, 넌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였어, 라는 식의 분위기가 지배한다. 결국, 이 두 소설은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결혼은 앞둔 예비부부들은 읽어보아야 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윤이나의 <타로 언니>는 따끈따끈한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현직 교사이다. 그래서 낯선 용어들이 등장한다. 여고 1학년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들이 간혹 등장한다.
이야기는 몇개의 축으로 나뉜다. 윤아, 훈이, 지나
아버지로부터 지웠어야 할 아이로 자리매김 당한 윤아는 그녀의 모든 고통을 상담 선생님께 털어놓는다. 진정한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선생님들의 잡담을 듣게 되는데, 잡담의 화제가 자신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윤아는 학교에서 입을 닫아 버린다. 학교에 가기를 꺼리게 된다.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복학하여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168. 지워졌어야 할 아이. 없어졌어야 할 아이. 아빠는 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어야 헀다고 말하고 있다.
후니 오빠, 양친이 모두 의사이다. 사회적 명성도 있고 성공한 의사였으나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한 대학의 졸업장이었다. 부모는 훈이의 삶이 그것을 강요하였고, 훈이의 삶의 목표는 그것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수능에서 수학 한 문제를 "실수"로 맞추지 못해 그는 재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실에서, 그는 학교에 다니지 않은 윤아를 만난다. 훈이는 부모가 만들어준 세상에 갇혀 지내다가 두 번째 수능을 보고 같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 후, 그에게 옥죄오는 부모가 만들어주는 다른 삶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한다.
327. 내가 아는 다른 길은 아예 없으니까 ... 오빤 결국 다른 꿈과 다른 길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당연하다. 그런 건 나쁜 거라고 어른들이 가르쳐 주었으니까. 집중하지 않는 삶이라고 말해 주었을 테니까
지나, 쌍수(해미), 개새(민정) - 여고 내 불량(?) 동아리 라붐의 회원들이다.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지나는 항상 엄마를 그리워한다. 고향이 없어 명절이면 어디를 가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녀는 방황한다. 쌍수, 해미 모두 가정환경이 열악하다. 부모로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버림받은 형편이다. 라붐은 그녀들에게 가족이었고, 가족 이상의 안식처였다. 윤아의 등장으로 지나가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라붐의 조직은 와해하기 시작한다.
책에서 자주 나오는 내용인데, 메모를 해두지 않았다. 가짜 꿈에 대한 내용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많은 꿈을 갖는다. 작가는 그 꿈이 모두 진짜 꿈인가 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라붐이라는 모임을 통해서 가족을 꿈꾸는 것. 부모가 만들어준 삶을, 나의 꿈인 양 착각하고 그 꿈을 행해 나아가는 것. 그 꿈이 가짜 꿈이라는 것을 작가는 선생님으로서 주장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진짜 꿈을 많이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내 꿈들이 깨지는 것을 목격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가짜 꿈이라니.... 그러고보니 그럴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아이들에게 바른 꿈을 가지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윤아는 후니오빠로부터 받은 "타로"카드를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타로 카드는 단순한 카드가 아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증표이며, 받은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후니오빠는 생을 마감한 다음에 윤아에게 나타난다. 말없이 웃음으로, 눈빛으로 그녀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남긴 의문의 표식들이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209.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현재의 자기를 버릴 필요는 없어요.
329. 이젠 넌 진짜 삶을 살아야 할 때야
윤아가 그리는 세상은
42.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보이는 것보다 더 명료하고 매력적인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검정들이 여기저기 흐르고, 그 감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해도 부끄럽지 않은 세계.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은 보석이 돼 방울지고, 방울이 된 보석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기뻐하는 세계. 공기에는 생명이 뱉은 언어가 서리고 그 바람을 읽어내 환희에 차기도 하고 슬픔에 떨기도 하는 세계. / 그것이 내 세계였다. 사람들이 동화라고 비웃는 그 세계가 진짜 나만의 세계였다. 나와 같은 동류는 그 세계가 얼마짜리냐고 묻지 않고, 누구에게, 얼마나, 어디에 도움이 되냐고 묻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커다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작은 일들이 선행한다고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가족에서도 친구 연인 사이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도 조금씩 일어난다.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소중하다면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를 언제나 존중해야 한다. 상대의 나이와 관계없이, 성별과 관계없이, 강하고 약함에 관계없이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는 모두 언제나 쉽게 깨질 수 있는 얇은 유리잔처럼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훈이는 아버지에게 나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죽어버리고 훈이도 그 말과 함께 떠난다.
330. 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요. 아버지, 저는 지금 힘이 들어요.
111. 말하지 않은 건 대부분 죽은 거거든. 머리 속에서든 가슴속에서든.
요즘 반복해서 들는 이선희의 <그대가 떠나신 후에>라는 노래가 있다. 그런 세상이 난 좋아.
그대가 내게서 떠나신 그 후 모든게 달라지길 원했어요
하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함없이 시간만 흐를 뿐이야
그대 나를 떠나 난 온통 슬픔뿐인데 세상은 마냥 무표정해
어둠 내려앉은 거릴 방황해도 내 슬픔따윈 물거품이야
사랑은 사랑답게 피어나고 눈물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없을까
약속은 약속답게 지켜지고 이별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이 난 좋아
- 송시현 작사 / 송시현 작곡
(2017년 10월 24일 평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