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모천으로 회귀 중
조윤주
넘어져 등뼈를 다친 엄마는
몇 덩어리 큰 슬픔을 등에 지고 사셨어
병원에서 깁스하고 누워있어야
뼈가 제대로 굳는다는 의사 말씀을 휴지통에 버리고
자식 농사에만 전념하던 당신,
아버지가 청춘을 봇짐에 담아
저세상으로 가신 후
그것들이 다 자신의 죄인 양
거품 물고 올라오는 슬픔을 삭여
텃밭에 거름으로 쓰셨지
부러진 등뼈가 부풀어
스피노사우루스 공룡 화석을 닮아갈 때 굽은 등으로 똑바로 누울 수 없었던
등짝이 펴지던 짧을 찰나를 봤어
장례지도사가 슬픈 실오라기로 만든 천을 모아 염을 하던 날
앞가슴을 두 손으로 눌렀을 뿐인데
수십 년 굽었던 등이 뚝 소리를 내며 펴지더군
키가 큰 늘씬한 가냘픈 낯선 노인이
낯선 장례지도사 앞에 누워있었어 “천국으로 가셨을 것 같군요 얼굴이 아주 평안하고 몸이 사납지 않아요 어떤 분들은 단단하게 몸이 굳어 수의를 입힐 수가 없어요 얼굴도 험악하고요”
노잣돈 사이로 던져준 위안을 곱게 펴 상복의 옷고름을 고치던 그 날
시간이 박제되어 삶의 가보家寶가 되는 것을 봤어
우리 식구들은 가끔 붉은 눈물로
그날을 꺼내 이야기하거든
굽은 것들을 열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처럼
슬픔이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꼬리를 쳐
기억이 알을 낳으려고 모천으로
자맥질하는 중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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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 우리 엄마 3
조윤주
그러니까 엄마의 출생일은 1936년 10월생 김혜선인데 평생을 1934년 4월생 김순연으로 사셨어.
엄마의 기억으론 엄마의 언니와 형부가 1950~1951년 즈음 월북하고부터
엄마 가족은 날마다 피바람이 불었다고 해
기관에서 엄마의 부모를 데려다가
“딸년과 사위 놈 찾아내라고 각종 고문을 했고 엄마의 엄마는 시신도 찾지 못하고 어디선가 억울하게 고인이 되셨다지
엄마의 아버지는 궁여지책으로
김순연은 월북한 것이 아니라
여기 살고 있다고 김혜선은 죽었다고, 죽었다고, 혀가 빠지도록 증명하셨다지
그러니까 6.25가 발생한 시점
엄마의 언니 나이는 17세,
엄마의 형부는 22세,
그 젊은 청춘들이 무슨 이념으로 월북을 했겠어
엄마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니까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기억이 좋았던 곳을 향해 피난을 갔을 뿐이라는데…
그러니까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그 시절 다 억울하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평생을 남의 이름으로 살다가 보상이니 민주화니 그런 굴레 속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아웃사이더(outsider)로 살다간
사람도 있어
빨갱이란 이름만 들어도
산이 흔들리고 벼락이 치던 그런 생애 때문에
자신의 삶을 뒤주에 가둬
스스로를 생매장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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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
- 우리 엄마 9
조윤주
지렁이가 삽에 찔려 흙으로 돌아간 때
쥐약을 먹은 쥐를 먹고 독수리가 죽었을 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장막 뒤에 있는
불관용과 불관용이 부딪쳐 전쟁으로 치달을 그 때에
티벳에서의 7년, 이란 영화를 봤다
건축현장 삽질에 지렁이가 죽으면 안 된다고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지렁이들을 골라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내 기억은
흑백 필름으로 자주 상영을 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 위안의 계단 사이로 불현 듯 가슴팍을 치고 흔들며 올라오는 공포,
엄마는 당신의 부모가 폭력에 끌려가던 기억의 손들을 돌탑 사이에 끼워 넣고 암자에 가서 자주 불공을 들이셨다
어느 날 내 사주가 글로 풀어져 호수에 그림자로 읽히던 계절,
당신은 어린 나를 불상 앞에 앉혀놓고 아미타불을 외치셨다
산짐승들의 울음을 먹고
해를 잡아먹는 산을 보며 하산한 나는
아침 햇살에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한웅큼의 빛을 가지런히 포개 종교를 개종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잠언 18장 21절을 외우면서
죄가 스며들어간 혓바닥의 뾰루지를
그 뿌리를 들여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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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조윤주
본명 : 조유호
서울시 구로구 거주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예술시대작가회 36대 회장
중앙대문인회 이사
한강문학 이사
한국작가회 회원
(사)문학그룹샘문 회원
(사)샘문그룹문인협회 회원
(사)한용운문학 회원
(주)한국문학 회원
<수상)
1998 한국예총 시 등단
2022 전국탄리문학상
2021 서울오늘문학상
<시집>
나에게 시가 되어 오는 사람이 있다 외 6권 그 外 공저 수십 여 권
